소설리스트

SSS급 리커버리 마도사-54화 (54/308)

54화

타닥.

뇌정이 파고든 지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치지지직!

선우유정의 시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렸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선에 손을 뗀 건우는 체내에 남은 마력이 소실되기 전에 몸을 회복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빗금이 간 갈비뼈와 찢어져서 몸 구석구석 퍼진 내장 파편들이 모두 원래 자리를 되찾으며 복원됐다.

파지지지직!

마력은 다시 전기로 전환돼 체외로 방출됐다.

건우는 공허감에 인상을 홱 찌푸렸다.

‘비석 복원은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러다가 발치에 굴러다니는 병을 주워들었다.

선우유정이 힘을 증폭시킬 때 쓰던 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건우는 그 약의 정확한 명칭을 알고 있었다.

“레이즈를 왜 이 녀석이 갖고 있는 거지?”

심지어 약물 제작자의 정체까지 알고 있었다.

“사제트.”

그는 최강의 네크로맨서이자, 동시에 약물 제조의 대가였다.

그가 만든 레이즈는 수명을 대가로 힘을 대폭 늘려주는 시약이었다.

‘느낌이 안 좋아.’

건우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죽음제작자, 사제트.

여타의 몬스터들과 달리 그는 인간임에도 세상을 멸망시키는데 가담했다.

그는 수많은 스켈레톤과 마물 군단을 창설해 한 지방을 죽음의 도시로 만들었다.

또한 그가 만든 독극물에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 결과 인구수에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확실하게 공포의 존재로 각인시켰다.

당시 그의 정체를 쫓기 위해 로한을 비롯해 대륙의 강자들이 나섰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그만큼 용의주도한 존재였다.

“우연히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

쨍그랑.

건우는 손에 쥐고 있는 시약병을 깨뜨렸다.

세이비어가 건우의 추측에 확신을 불어넣어 줬다.

-그 시약은 우연히 개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가설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제조법이 이 세계에 전파됐거나, 혹은 사제트가 살아있거나.

‘후자면 최악이겠네.’

건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건 시간을 두고 알아봐야 될 것 같네요.”

어차피 지금 당장 고민해 봐야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열정이 감도는 이 도시에는 사람들이 접근하기 꺼려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의 헌터 일가인 스코필드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에리조나 지역의 상징인 피닉스와는 달리 뱀의 문장을 상징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토착민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야유의 대상이 되었다.

명백한 차별행위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괄시하는 이유는 몇 가지 더 있었다.

첫 번째, 스코필드 가문은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으면서도 사회 공헌에 이바지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기부 문화가 원활한 미국에서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

두 번째, 그들은 사람들의 죽음에 무관심했다.

시민이 몬스터에게 죽건 말건 그들은 기계처럼 정해진 일만 치르고 빠지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그들을 두고 악마교도가 아니냐며 수군덕거렸는데, 특히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가주의 나태함이었다.

가주의 이름은 빌라이언 스코필드.

그는 1년 가까이 집에 있는 자신의 공방에 머물고 있었다.

현재 그는 세상사를 등지고 오롯이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화륵.

그런 그의 동공에 처음으로 이채가 발했다.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책상 위에 올려둔 목각인형이었다.

그것은 주술의 일종으로, 감아둔 머리카락의 주인의 몸 상태를 살피는 용도였다.

화르륵!

헌데, 어찌 된 일인지 목각인형이 타닥 타더니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빌라이언은 머리칼의 주인을 떠올리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우유정이 죽었다고?”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선우유정은 미국에 오더라도 S급 헌터로서 충분히 대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을 파고든 감정은 슬픔이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으으, 아까워. 좀 더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워하는 그에게 정장차림의 집사가 커피를 건네주었다.

“아, 고마워.”

빌라이언은 각설탕을 한 주먹 집어 들어 커피에 넣은 뒤, 스푼으로 휙휙 저었다.

끈적끈적할 정도로 점도가 생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원 샷을 했다.

그리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아크 길드는 선우유정을 잃었다.

S급 헌터를 잃었으니 당분간 시끌벅적할 것이다.

그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 아크 길드는 반드시 스코필드에 협력을 요청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빌라이언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 어떤 대체품을 가지고 오려나.”

그동안 지내온 정도 없었는지 빌라이언은 피식 웃으며 다시 실험에 나섰다.

***

아크 길드에 불현듯 먹구름이 끼었다.

길드의 수장, 선우혁은 이마를 매만지며 깊은 고심에 잠겼다.

고심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선우유정의 행방불명.

즐길 거리가 있다며 자신의 정예 부대인 킬더스크를 이끌고 가더니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그 날짜가 무려 사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놈이 연락 안 할 놈도 아닌데. 왜?’

아무리 천방지축 날뛴다고 하지만 선우유정은 늘 자신의 위치는 꼬박꼬박 보고했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일주일이나 연락이 두절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를 찾아온 비서는 참담한 얼굴로 오늘도 같은 보고를 하고 말았다.

“CCTV부터 시작해서 모든 증거를 다 뒤져봤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증거를 조작한 이는?”

비서는 표정을 풀지 못하며 말했다.

“역시 킬더스크 멤버가 가담한 것 같습니다.”

콰앙!

선우혁은 책상을 내려쳤다.

“멍청한 놈들. 지들 꾀에 지가 걸려!”

그는 격분을 토해냈다.

하지만 마냥 비난만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킬더스크는 음지에서 활동해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길드에 해가 되는 각성자를 죽여 왔다.

S급인 선우유정이 리더로 있으니 성공률은 100%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철두철미하여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행위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꼴이 돼버렸다.

자신들의 흔적마저 지웠으니, 추적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임무 내용도 선우혁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하다가 행방불명됐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남은 방법은 협회를 통해 선우혁의 행방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쓸 수는 없다.

킬더스크는 어디까지나 암부.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이들이었다.

“젠장!”

선우혁은 이빨을 빠득 갈았다.

선우유정의 부재로 입는 타격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

‘괜찮아. 우린 아직 6위를 보유하고 있어. 이정도로 흔들리지 않아.’

심지를 다진 선우혁은 눈을 부릅떴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찾아.”

“알겠습니다.”

비서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선우혁은 깍지를 끼며 생각했다.

‘만약, 내 자식이 해를 입은 거라면, 내 모든 걸 걸고 죽여주지.’

그는 분노를 주체하기 위해 연신 호흡을 골랐다.

***

킬더스크의 습격 이후.

건우의 일과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련과 레이드의 반복.

그리고 그 성과는 생각보다 굉장했다.

[트롤의 늪지]

-등급: C+

-지형: 트롤이 서식하는 늪지

-서식 몬스터: 트롤의 무리.

건우와 같이 레이드에 참여한 서유라와 봉황 길드원들은 넋을 잃었다.

“마, 말도 안 돼.”

“S급 혼자서 4성 보스까지 홀로 잡을 수 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구나.”

그들의 앞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그것은 산이 아니었다.

죽은 트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뿐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트롤 무리는 마법을 써서 잡은 것이 아니었다.

오롯이 검만을 휘둘러 도륙해버린 것이다.

트롤.

그 자체는 강한 몬스터지만 A급 헌터들에게 어려운 사냥감은 아니었다.

허나, 팔이 잘려도 바로 재생되는 특유의 능력은 헌터들을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헌데, 그런 트롤을 한 마리도 아니고, 보스까지 포함해서 모두 괴멸시켰다.

그것도 오직 건우 혼자 힘으로 이룩한 것이다.

“…….”

봉황 길드원들은 아예 넋을 놓고 있었다.

‘정말 봉황검술을 완전히 다 익혔어!’

“오, 오빠 몸은 괜찮으세요?”

“응. 어디 다친 걸로 보여?”

건우는 상쾌하게 웃으며 보스, 트롤의 수염을 붙들고 다가왔다.

“……아, 아니요.”

“마정석 외에는 전부 봉황 길드에서 처리해 줘.”

“저, 정말 괜찮아요?”

서유라는 믿을 수 없었다.

트롤의 피는 포션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그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헌데, 그 이득을 포기하고 간단히 넘겨주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건우는 명쾌하게 웃으며 그 이유를 말했다.

“지난번의 차가 부서진 것에 대한 변제라고 치지. 뭐.”

건우는 지난번 킬더스크의 습격 때 반파된 차를 언급했다.

봉황 길드에는 정체불명의 적이 습격해서 추적했으나 결국 놓쳤다고 이야기를 둘러댔다.

서유라는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에요. 오히려 기사님까지 구해주셨잖아요.”

“그럼 그동안 배운 수련 비용이라고 치자.”

“……못 말리겠네요.”

서유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슬슬 나갈……. 아! 근데, 오늘 저녁 시간되니?”

“네?”

반문하는 서유라는 잠시 가슴이 설렜다.

이 징조는 설마…….

“이번에 새로 이사했거든. 손님도 몇 명 초대했으니까 너도 오라고.”

시무룩.

기대가 꺾인 서유라가 휘익 고개를 돌렸다.

“저녁 좋죠. 언제까지 가면 될까요?”

볼을 쀼루퉁 부풀린 그녀를 보며 건우가 당황했다.

“바, 바쁘면 다음에 미뤄도…….”

“언.제.까.지 가면 돼요? 오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 말하자,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

집들이 한 시간 전.

치이이이익!

춘삼은 건우의 집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깔려있었다.

잘근잘근.

“이 고기 완전 죽여주네.”

그는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의 고기를 음미하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지혜는 집 안 곳곳을 치우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춘삼의 옷자락을 당겼다.

“응?”

밑을 살피니, 마리오네트 상태로 있는 세피아가 그에게 콜라캔을 건네었다.

“오! 나 준다고! 땡큐! 이 기특한 것!”

춘삼은 세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선 콜라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빠직!

세피아는 분노했다.

퍼억! 퍼억!

그녀는 발로 춘삼의 종아리를 힘껏 걷어찼다.

“끄아아아악!”

쇠몽둥이로 후려친 것만 같은 통증이 춘삼의 다리를 뒤덮었다.

콜라를 내뿜은 춘삼이 그대로 엎어졌다.

“이, 이게 미쳤어?”

춘삼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런 춘삼에게 지혜가 멀찍이서 소리쳤다.

“춘삼 씨. 세피아 콜라 캔 좀 따주세요. 제가 뭐 좀 하고 있어서.”

“으윽!”

세피아는 떨어진 콜라캔을 가리켰다.

아마 새로 내놓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뒤졌어. 인형 주제에 감히 사람을 샌드백처럼 두들겨 패.’

춘삼은 요 며칠 세 마리의 마리오네트 때문에 큰 곤욕을 치렀다.

다른 녀석들도 문제는 많았지만, 특히 세피아의 건방짐은 하늘을 찌르기 직전이었다.

열이 뻗친 춘삼은 냉장고에 콜라캔을 새로 꺼내들었다.

파바바바바밧!

그리고 있는 힘껏 흔들었다.

“자, 이렇게 흔들면서 마시면 더 맛있다고.”

이제는 인형한테까지 사기를 치기에 이르렀다.

“자, 여기를 집고 제끼면 돼. 이제 따봐.”

세피아는 순진하게도 캔을 받아들고는 춘삼의 말대로 행했다.

따악! 쏴아아아아앗!

캔을 딴 순간, 안에 있던 거품이 용솟음치며 세피아의 얼굴을 흥건히 적셨다.

춘삼은 그대로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 쌤통이다.”

……그리고 얼굴이 홀딱 젖은 세피아는 서슬 퍼런 눈으로 춘삼을 노려봤다.

잠시 후.

집에 도착한 건우가 거실에 들렀다.

“다녀왔습니다. 춘삼아, 요리는 다 됐…… 뭐 하냐?”

건우는 어처구니가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끄아아아악! 형님! 살려주세요! 이것들 완전 미쳤어요!!!”

춘삼은 양손과 양다리가 묶인 채,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춘삼을 향해 세피아가 얼음송곳을 다트처럼 날리려는 참이었다.

55.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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