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눈앞에 있는 낡은 갑옷을 보며 건우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복원된 갑옷에서 광택이 반짝 빛나며 그 위용을 자랑했다.
건우는 자질구레한 건 생략하고 오직 효과만 확인했다.
<오리엔트의 미늘갑옷>
등급: 노멀
설명: 옛 전쟁에서 활약하던 한 기사의 갑주
내구도: 50/50
*방어력 80 상승, 체력 35 상승
*단단한 강철,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받을 시 경감하기 위해 경화된다.
“적당하겠는데.”
건우는 씨익 웃으며 다음 스킬을 전개했다.
[인스파이어를 발동했습니다.]
우웅.
갑옷에 밀집되어 있던 혼이 일제히 건우의 손에 몰려들었다.
건우는 그대로 자신의 옷에 미늘갑옷의 혼을 주입했다.
우웅!
미늘갑옷의 혼이 스며든 옷에서는 이전엔 느낄 수 없던 힘이 느껴졌다.
또한 아티팩트의 효과 역시 고스란히 깃들었다.
건우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완전 쓸만한데.”
요령을 깨달은 건우는 쓸만한 아티팩트를 찾아 헤맸다.
<페르세의 레그가드>
-등급: 레어
-설명: 다리에 장착하는 전투용 부츠. 기동력이 대폭 증가한다.
*민첩 40 상승, 공격력 75 상승
<너드비안의 목걸이>
-등급: 레어
-설명: 흡혈귀, 너드비안의 생기를 흡수하는 목걸이.
*퇴치한 몬스터의 생기를 흡수해 해당 몬스터 체력의 일부만큼 회복할 수 있다.
[인스파이어를 발동했습니다.]
양손에 두 아티팩트의 혼이 맺혔다.
건우는 레그가드의 효과는 바지에, 너드비안의 목걸이 효과는 다시 웃옷에 불어넣었다.
중간에 몇 번 실패하기도 했지만 복원이 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완전 날로 먹네. 이 자식.
그 광경을 지켜본 세이비어는 절로 혀를 내둘렀다.
“기왕 말하는 거 좋게 말해주세요. 지혜롭다고.”
건우는 이리저리 몸을 풀어 보다가 그대로 허공에 발차기를 날렸다.
휘리리릭! 파앙!
예고 없이 파공성이 터지며 후폭풍이 일어났다.
작고 가벼운 아이템들이 그대로 뒤로 밀려 나갔다.
“좋아. 나중에 제법 근사한 전투복을 만들 수 있겠어.”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을 때.
체내에 마력이 점진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라? 끝났나 보네.”
이를 통해 복원이 끝난 걸 눈치챈 건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회귀의 링에 둘러싸여 있던 아티팩트들이 원상태로 말끔히 복원되어 있었다.
“밤새도록 하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건우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고철의 산을 바라보았다.
***
고요한 새벽.
우웅!
깊게 자고 있던 박춘삼의 머리맡으로 스마트폰 진동이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박춘삼은 눈을 감은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새벽에 미안하다, 춘삼아. 창고로 좀 와줄 수 있겠냐?]
목소리의 주인이 건우임을 알아챈 춘삼이 번쩍 눈을 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형님! 곧장 가겠습니다.”
[그, 그래.]
전화를 끊은 춘삼은 몸을 휘청거리며 세면실로 향했다.
약 1시간 후.
“왔냐?”
“형님. 이 이른 새벽에 무슨 일입니까?”
“부탁할 게 한 가지 더 있어.”
건우가 먼저 발을 옮기자, 박춘삼도 자연스레 건우의 등을 쫓았다.
끼익!
그리고 창고 문이 개방된 순간, 박춘삼은 가까운데 놓인 아티팩트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랍게도 너무나 멀쩡한 아티팩트가 무려 200개나 바닥에 놓여 있었다.
“혀, 형님 이, 이건?!”
“전부 복원해 둔 거다. 궁금하면 확인해 봐.”
박춘삼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팔찌를 들어 상태를 확인했다.
낡고 부스러질 것 같던 팔찌가 멀쩡한 형상을 완벽히 찾은 상태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박춘삼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무리 S급이지만 완전 규격 외잖아.’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박춘삼에게 물었다.
“이거 전부 팔아줄 수 있을까?”
“이, 이걸 전부요?”
“불가능해?”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아, 돈 때문이지. 얼마나 받고 싶냐?”
원래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박춘삼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뗐다.
“한 9대 1정도.”
이 비율은 보통 S급과 길드 간에 성립된 정산 비율이었다.
건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표정을 본 박춘삼은 이마를 매만졌다.
‘역시 안 되겠지.’
길드도 아닌 개인이 1이나 떼먹다니 업계에서는 당연 화를 낼 일이었다.
“그럼 9.5대 0.5정도로.”
“…….”
그러자 건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눈치를 살피던 박춘삼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10:0으로 일하겠습니다.”
“하아.”
건우는 기가 찬 듯 한숨을 내쉬었다.
“……넌 어디까지 날 쓰레기로 만들 생각이냐?”
“네?”
“7대3정도로 하자. 네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4까지 떼 줄게.”
“……형님?”
박춘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을 놓고 있다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평생 모시면서 살겠습니다.”
“됐거든.”
***
전직 퀘스트 후 닷새가 흘렀다.
모처럼 집에 복귀한 건우는 편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아아, 죽인다. 완전 푹신푹신하네. 전에는 이런 건 꿈도 못 꿨는데.’
건우는 얼마 전에 구매한 500만 원에 육박하는 천연 소가죽 소파에 몸을 묻고 TV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건우는 누워 있을 뿐.
티비를 시청을 하는 건, 세이비어였다.
드라마를 시청할 때마다 그의 반응은 시시각각 다양했다.
-세상에! 어떻게 진짜 저 처자의 아들이었다니!
-왜 여기서 끝나는데?!
-다음 거, 다음 거 결제해! 인마!
-저 시어머니 정말 너무 하는구먼.
“…….”
건우는 티비보다 세이비어의 반응이 훨씬 재밌었다.
‘엄청 재밌나 보네.’
반지 속에서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지혜가 들어왔다.
“왔어?”
건우가 몸을 벌떡 일으키자.
-아아악!
세이비어는 의미 모를 소리를 내질렀다.
“…….”
건우는 슬쩍 반지를 빼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조용한 걸 보니 TV시청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가 잘 통한 것 같다.
“오빠 왔구나.”
“응?”
평소라면 반갑게 맞이해 줄 법한데, 오늘따라 지혜의 표정이 어두웠다.
“무슨 일 있어?”
지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응. 내 일은 아닌데, 요즘 선정이가 많이 힘들어해서 걱정이야.”
잠시 후.
건우는 지혜와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지혜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사실 선정이가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가 있거든. 근데 요즘 들어서 그 남자 친구가 카페에서 알바까지 하는 곳까지 쳐들어오더라고.”
홱!
건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헤어졌으면 헤어진 걸로 끝난 거지. 뭐 하러 만나러 온대?”
“내 말이. 근데 집착이 점점 심해져서 떼어 놓기가 쉽지 않아.”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 거 아니야?”
“경찰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전 남자 친구가 C급 헌터거든.”
“협회 직원한테는 신고 안 했어?”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협회 직원이랑 친분이 있나 봐. 그냥 대충대충 조사하다가 간대.”
이쯤 되니, 썩 유쾌하지 않은 화제인 건 틀림없었다.
건우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어떤 사람인데?”
“이름은 윤여훈이고, 송파에 있는 흑월 길드 소속이야. 덩치가 좀 크고 무섭게 생겼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전에 나도 만났거든. 근데 내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나한테 번호만 묻더라고. 무서워서 일단 도망쳤었어.”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건우의 노기 어린 시선에 지혜는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어, 어쨌든 나보다는 선정이가 걱정이야. 힘들다고 울어서 한참 달래 주고 왔어.”
“그러냐?”
건우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혜가 슬쩍 건우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오빠가 한 번 도와주면 안 될까? 다시는 오지 못하게 으름장만 놔주면 되는데.”
“그러지 뭐.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라이선스를 활용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겠지. 윤여훈 이 새끼.’
건우가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지혜가 건우의 손을 붙잡았다.
“그냥 오빠가 카페 알바 도와주면서 며칠 동안 선정이 챙겨 주면 안 돼?”
“……뭐?”
건우는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부탁할게.”
하지만 지혜의 눈빛이 너무 애절한지라 건우는 당황했다.
“카페 시급이 얼만데?”
지혜는 귀엽게 검지를 추켜세우며 답했다.
“한 시간에 10000원.”
“지혜야. 오빠 몸값 얼만지 알아?”
S급 헌터는 하루 억대를 벌 수 있는 인재였다.
하나, 지혜는 그 S급 헌터의 머리 위에 있었다.
“나한테는 0원 아니었어?”
“……마, 맞지.”
건우는 애절하게 부탁하는 그 눈빛에 결국 굴복했다.
그러고는 괜히 눈을 치켜뜨며 아직 얼굴도 모르는 윤여훈에게 증오를 품었다.
‘바빠 죽겠는데, 감히 내 앞을 가로막아? 이 새끼.’
***
하트 벅스, 종로지점.
카페 직원 복장 차림을 한 건우는 카운터에 서 있었다.
머리에는 카페 베레모.
얼굴에는 유리알 없는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헌터 세계에 무관심한 점장은 건우를 못 알아보고 어깨를 두들겼다.
“허허허허, 근사하게 생긴 인재네.”
“감사합니다.”
어차피 단기 알바기 때문에 건우는 간단한 교육만 받았다.
건우에게 교육을 하고 있던 선정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괜스레 저 때문에…….”
“응, 아니야. 이거 이렇게 누르면 되고, 이렇게 주문받으면 되는 거지.”
건우는 계산대에서 선정이 보여 준 시범대로 완벽하게 따라 했다.
능숙한 솜씨에 선정은 깜짝 놀란 듯 눈을 떴다.
“오빠 카페 알바 해보셨어요?”
“아니. 그냥저냥 기억력이 좀 좋아.”
건우가 피식 웃자, 긴장이 풀렸는지 선정도 덩달아 웃어 보였다.
시간은 분주하게 흘렀다.
점심시간이 되자 떼로 몰려오는 손님 때문에 직원 모두가 정신이 없었다.
탁! 탁!
하지만 그중 건우만은 능수능란하게 주문을 받고 커피까지 타며 여유를 선보였다.
같이 일하고 있던 직원들은 경악했다.
‘저게 사람이야!’
‘하, 하루 만에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카페 알바 안 해본 사람 맞아?’
착각인 건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부담이 절반은 줄어든 것 같았다.
“자, 여기.”
“네.”
건우가 커피를 타서 건네면, 선정은 밝게 웃으며 카운터에 커피를 올렸다.
딸랑!
“어서 오세…….”
그러다가 카페에 막 들어온 한 남자를 보고는 표정이 굳어 버렸다.
190cm에 육박하는 덩치와 험상궂은 인상.
표정에는 매우 언짢다는 기색이 들어 있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그 기세에 겁을 집어먹고 우르르 피해 갔다.
그는 선정에게 다가와 치근거렸다.
“선정아. 언제까지 내가 여기 들락날락하게 할 건데?”
눈빛은 어울리지 않게 능글맞기까지 했다.
“여, 영업 중이에요. 나, 나가주세요.”
선정이 바싹 겁을 집어먹자, 건우는 눈매를 좁혔다.
‘이 새낀가 보네. 윤여훈이.’
여훈은 주변의 소란은 신경 쓰지 않고 선정에게 윽박을 질렀다.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나 기다려야 되냐고 묻잖아!”
“꺄악!”
보다 못한 건우가 나섰다.
“저기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요?”
건우를 본 윤여훈이 더욱더 자신의 불쾌한 심리를 드러냈다.
“너 나 안 보는 사이에 이런 비리비리한 거랑 노닥거렸냐?”
울컥.
모욕을 느낀 건지 선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건우는 냉담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지랄하고 있네.”
여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휘둥그레 눈을 뜨다가 눈매를 좁혔다.
“너 뭐라고 지껄……!!”
파앙!
그 순간 윤여훈의 명치 부근에서 파공성이 터졌다.
주륵.
윤여훈은 코피를 흘리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람들이 어리둥절할 때, 건우는 윤여훈의 목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잠깐 쓰레…… 아니 이분 좀 밖으로 데리고 갈게요.”
건우는 윤여훈을 쓰레기장에 던지고 왔다.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