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헌터시험 (6)
트윈헤드 오우거와의 결전.
결과는 건우의 압승이었다.
축하라도 하는 듯 그의 눈앞엔 연신 시스템창이 도배되고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트윈헤드 오우거 건틀렛을 획득했습니다.]
“중요한 걸 빼먹었네.”
건우는 트윈헤드 오우거의 명치에 박혀있는 마정석을 뽑아 들어 챙겼다.
그런 건우를 향해 조광철과 서유라가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형님. 이 은혜 각골난망 하겠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는 말투에 건우는 지그시 눈매를 좁혔다.
“솔직히 말해. 너 스무 살 아니지?”
“저 스무 살 맞습니다. 형님!”
“알았다. 알았어.”
그다음으로는 서유라가 건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서유라라고 해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서유라가 손을 내밀자, 손을 마주 잡으며 건우가 말했다.
“최건우입니다.”
“건우 씨라고 하는군요.”
서유라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틀림없어. 이 사람은 S급 라이센스를 취득할 거야. 어떤 조건을 내걸더라도 우리 봉황 길드에 반드시 섭외해야 돼.’
그녀가 몹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건우는 조금 당황했다.
“저기 유라 씨.”
“……왜 그러시죠?”
“이제 손 놔주셔도 되는데요.”
자신이 계속 건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서유라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홱 놓았다.
“초, 초면에 죄송해요.”
“아니. 뭐 괜찮아요.”
서유라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건우를 슬그머니 보다가 다시 얼굴을 홱 돌렸다.
‘왜 저러지?’
알 수 없는 반응에 건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쇄액!
바로 그때, 수풀 건너편에서 다수의 사람이 몰려왔다.
비상용 폭죽이 터진 것을 보고 긴급히 파견된 구조대였다.
구조대에는 시험 총괄감독자, 이서진도 포함돼 있었다.
다급하게 달려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넋두리를 놓았다.
주변 땅이 완전히 뒤집힌 파괴의 흔적.
뿐만 아니라 그 위에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숨을 거둔 상태였다.
“세상에.”
“저거 트윈헤드 오우거 아니야?”
“저 크기 보니까 완전 변종인데?”
이서진은 곧 냉정을 되찾고 건우 일행에게 다가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부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가장 크게 다친 조광철은 곤란한 미소를 띠었다.
“아, 참고로 비상용 폭죽은 제가 쏜 거라, 이 두 분은 해당사항 없습니다.”
내심 자신 때문에 서유라와 건우가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 염려한 듯 보였다.
이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남은 두 분은 어떠십니까?”
“팔에 근육이 약간 찢어진 정도? 그 외에는 괜찮습니다.”
서유라가 무덤덤하게 답하자, 건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남겼다.
“아파 보이는데, 고집부리지 말고 그냥 치료받으세요.”
“……네.”
홰액!
서유라는 이번에도 얼굴을 붉히며 건우의 시선을 피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서진은 무심코 건우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남자가 자존심도 없이.’
현재 그는 건우가 조광철과 서유라의 보호 아래 자신의 몸만 챙겨 살아남은 짐꾼, 즉 들러리로 오해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등급이 소실되기는 했지만, 건우의 전 등급이 F급이었기 때문이다.
“두 분은 일단 안전구역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최건우 씨는 어떻게 할 거죠?”
건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직 시험시간 남았으니까 좀 더 둘러보겠습니다.”
이서진은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뻔뻔한 놈 같으니라고.’
어린 동생과 여자의 손에 보호를 받았으면, 반성하고 얌전히 있을 줄 알아야지.
어째서 주제를 모르고 설친단 말인가.
‘참아라. 참아라. 평정심을 가져라. 이서진.’
이서진은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되뇌며 건우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철수하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물품 있으십니까?”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구조절차를 끝마친 이서진이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
“자, 잠깐만요.”
서유라가 건우를 급히 멈춰 세운 뒤, 다가갔다.
“저 무뚝뚝한 처자가 왜 저렇게 덤벙거린대.”
“그러게. 드문 일이네.”
구조대는 서로 숙덕거리며 지금의 상황에 의문을 표했다.
A급 각성자 서유라.
봉황 길드 대표의 차녀로 유망주로 손꼽히며 인망과 실력이 두터웠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해서 표정이 늘 얼어있었다.
물론 이거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고, 주변에서는 그저 무뚝뚝한 차도녀로 기억되고 있다.
헌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 건지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더듬더듬 건우에게 말을 이어갔다.
“여, 여기 아직 미지의 것들이 많으니까 조심하세요. 이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붉은 병을 건우에게 건네주었다.
“고맙습니다.”
건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병을 받아들었다.
“그, 그리고 또.”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보며 건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자, 천천히 숨을 들이쉬시고.”
건우의 말에 서유라는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내뱉어요.”
“후우.”
숨을 내뱉자, 그녀는 한결 가벼운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유라 씨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
“2, 21살이요.”
“그럼 우리 동생이랑 동갑이네요. 편하게 말 놔도 돼요?”
“네. 그, 그럼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렇게 해.”
건우의 말에 서유라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재빨리 길드 명함을 건우에게 들이밀었다.
“이건 제 명함이에요. 혹시 건우 오빠 번호 알 수 있을까요?”
“기억할 수 있겠니?”
건우가 난처한 표정을 지을 때, 서유라가 즉시 수첩과 펜을 내밀었다.
“여기에 적어주시면 돼요.”
“그럼.”
건우는 번호를 적어 유라에게 건네주었다.
“근데 내 번호가 왜 필요한 건데?”
“……그건.”
‘어어? 왜 전화번호를 받으려고 했지?’
어느새 그녀는 자신이 전화번호를 물었던 이유를 잊어버렸다.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건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건우는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혹시…….”
건우의 시선에 서유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허, 혹시 뭐요?”
“혹시 길드에서 섭외하는 문제라면, 고심해볼게. 아직 내 몸값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거든.”
‘아’
서유라는 그제야 자신이 전화번호를 물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심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가볼게.”
“조심하세요.”
건우는 그대로 발길을 옮겼다.
“저희는 이만 가도록 하죠.”
“네.”
이서진의 안내를 서유라는 묵묵히 따랐다.
그는 그런 서유라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만한 몬스터를 퇴치하다니 과연 봉황 길드의 유망주는 다르군요.”
“제가 해치운 게 아닌데요.”
서유라는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서진의 시선은 자연히 조광철에게 향했다.
“저는 그냥 무참히 깨졌습니다.”
조광철이 어색하게 웃자, 이서진은 눈매를 좁혔다.
“설마?”
“그래요. 그 설마입니다.”
조광철은 만족스러운 듯 입가를 빙그레 올렸다.
아무리 꽉 막혔어도 이렇게 이야기하면, 못 알아들을 리가…….
“강 씨 형제들이 해치운 건가요?”
있었다.
미끈.
핀트가 어긋나자, 조광철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아니. 왜 한 명은 꼭 빼두고 그런 싸이코 형제들을 언급해요. 그 트윈 헤드 오우거는 바로 건우 형님이 쓰러뜨렸습니다. 건우 형님이!”
조광철은 말끝에 악센트까지 넣으며 말했다.
슬쩍.
서유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그 발언에 힘을 넣어주었다.
이서진은 크게 당황했다.
“……그, 그게 말이 되나요? 건우 씨는 상처도 없었는데.”
서유라는 그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해주었다.
“11번째가 나타난 거죠.”
휘청!
믿기지 않는 소식에 이서진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
명도의 끝자락.
그곳에서도 몬스터 사냥은 끝없이 이어졌다.
뚝뚝.
손에 쥐고 있는 리자드의 도에는 피가 잔뜩 맺혀있었고, 건우가 지나온 길에는 몬스터의 사체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건우의 마법과 검술이 확연히 세련되어진 걸 느낀 세이비어는 모처럼 감탄하고 있었다.
-고비를 넘기니까 일취월장하구나.
“아직 한참 멀었어요.”
-웬일로 겸손이냐? 나한테 그럴 필요 없다.
“진심이에요.”
-전생에 복원만 쓰던 너하고는 차원이 달라.
“그건 확실히 그러네요.”
건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잠깐 발을 멈추었다.
눈앞에 펼쳐진 길은 갈림길.
길이 비슷해 보여 어리둥절했지만, 건우는 곧 왼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뒤숭숭한 마력을 감지했다.
마력의 양은 웬만한 탐색자들도 못 찾을 정도로 미미한 양이었다.
세이비어는 건우가 직감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말했다.
-마력 감지도 예전보다 훨씬 능숙해졌구나.
“다 스킬 덕분이죠.”
건우는 마력이 피부에 스며드는 감각을 느끼며 스킬창을 확인했다.
그것은 일전에 니제르의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마나스킨이었다.
<마나스킨> 패시브
-등급: C
-설명: 마나 연공법보다 효율이 떨어지지만 대기 중의 마나를 피부를 통해 흡수할 수 있다. 마력감지에 능숙해진다.
*피로도 30% 감소, 마력효율 15% 증가.
‘저기구나.’
한창 걸어가자 보이는 길 끝에는 시공간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좀 더 깊이 진입하니 벼랑 끝에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대략 7미터.
몸 곳곳은 깃털로 덮여있는 존재는 아름다운 빛을 내뿜고 있었다.
“드래곤?”
그 존재와 마주친 건우는 바싹 긴장했다.
분명 깃털로 덮여있지만 그 형체가 드래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반면, 세이비어는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호오! 귀한 걸 봤구나. 시조룡을 한 번 더 보게 될 줄이야.
“시조룡이요?”
-어마어마한 괴물들이지. 시공간을 왜곡시키면서 날아다니거든. 아마 이 섬 주변에 게이트가 무차별적으로 형성되는 건 저놈이 원인인 것 같구나.
“위험한 놈이라는 거네요.”
-글쎄? 저놈 상태가 영 안 좋은 것 같구나.
세이비어의 말에 건우는 다시 한번, 시조룡을 살펴봤다.
<시조룡, 에르모스>
-등급: ★★★★★★
-설명: 드래곤의 시초라 불리며 차원이동을 하며 살아간다. 드래곤 사이에서는 고귀한 존재라고 일컬어진다. 현재는 날개에 부상을 입어 휴면 중.
-능력치
체력: 130/27000 공격력: 32000 방어력: 60000 마력: 1200/8880
“압도적이네.”
6성급부터는 과연 스펙이 차원이 달랐다.
“날개는 거의 반 정도 찢어졌네.”
왼쪽 날개를 살펴보니, 어떤 일을 겪었던 건지 날갯죽지가 거의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 에르모스가 번뜩 눈을 뜨며 건우의 머릿속에 사념을 집어넣었다.
-누구냐?
“아, 저기.”
-가만히 있거라.
무어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반지 속에서 세이비어가 유령의 모습으로 튀어나오더니 에르모스에게 예를 갖췄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드래곤의 시조여.”
세이비어를 목격한 에르모스가 의아한 어조로 말했다.
-나를 알고 있다니 그대 역시 만만치 않은 세월을 살아왔군.
“뭐, 그렇게 됐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째서 여기에 머무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떤 신의 유희에 놀아났을 뿐이다. 힘도 제어가 안 되기에 여기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지.
에르모스의 말투는 반쯤 포기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도움을 드리는 건 어떠신지요?
에르모스가 눈을 반쯤 떴다.
-너희가? 무슨 수로?
그는 건우와 세이비어를 비웃고 있었다.
그들보다 격이 훨씬 높은 자신의 힘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떤 꿍꿍인지 일단 살펴볼까?’
결국 에르모스는 일단 세이비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를 도와준다면, 이 은혜 반드시 갚도록 하겠다.
[퀘스트가 형성됐습니다.]
<퀘스트: 에르모스의 날개를 치료하라.>
-달성조건: 에르모스의 완치
난이도: 최상
보상: 에르모스의 각인
퀘스트 실패 시: 에르모스를 기만한 대가가 치러집니다.
건우는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뭐야? 왜 퀘스트 창이 나한테 떠?’
세이비어가 훈훈하게 웃으며 건우에게 말했다.
“할 수 있지?”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