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헌터시험 (7)
“…….”
세이비어의 갑작스런 책임 전가에 건우는 적잖이 당황했다.
바로 앞에서는 에르모스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냥 말이라도 하지 말지.’
건우는 남모르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에르모스는 사념을 전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이지?
“별것 없어요. 잠시 다가가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에르모스는 몸을 숙이자 건우는 몸에 올라탔다.
“심하네. 이건.”
날갯죽지는 거의 뜯겨나갈 것만 같았다.
훤히 드러난 속살에는 피가 응고돼 있었다.
누가 봐도 이 날개는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역시 무리인가?
“최선을 다해 봐야죠.”
건우는 곧바로 날개에 손을 갖다 댔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우웅!
찬란한 금빛무리가 단숨에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이건?!
무언가 직감한 듯 에르모스의 동공이 크게 확대됐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꿈틀!
이미 부러져서 조각이 난 뼈의 파편들이 조밀하게 모이며 다시 골격을 형성했다.
응어리져서 죽은피 역시 다시 생생한 피로 돌아가 몸을 활성화시켰다.
하지만 그 속도는 퍼붓는 마력에 비해 무척이나 느렸다.
-힘을 보태주지.
에르모스는 마력을 활성화시켜 건우에게 집중시켰다.
[마나스킨을 통해 에르모스의 마력을 흡수합니다.]
[에르모스의 마력 부여로 마력의 농도가 짙어집니다.]
[마력 농도 상승으로 스킬 사용에 따른 마력 소모치가 대폭 하향 조정됩니다.]
꿈틀.
유입된 마나량에 건우는 화들짝 놀랐다.
‘뭐야? 장난 아니잖아.’
예전에는 100의 마력을 소모했다면, 지금은 20정도만 사용해도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약 4시간 후.
건우는 절단된 날개를 완전히 복구시킬 수 있었다.
뚝뚝.
정신력을 극도로 발휘했는지, 얼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제 살점을 복원하는 관계에서 피가 오밀조밀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귀걸이가 세차게 흔들렸다.
[니제르의 귀걸이가 현 상황에 위험을 경고합니다.]
[에르모스 몸속에 잠들어 있던 모손충이 피 냄새를 맡고 눈을 뜹니다.]
“뭐?!”
당황한 건우가 눈을 부릅뜨기가 무섭게 에르모스의 몸속에서 살벌하게 생긴 벌레들이 떼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력 공유다.
세이비어의 일갈에 건우는 곧장 마력 공유를 시전했다.
마력을 공급받은 세이비어는 상처 부위에 몰려온 모손충들을 실드를 여러 겹 중첩해서 가뒀다.
육방팔면체로 생성된 실드 안에는 모손충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실드를 갉아먹는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지 세이비어는 실드를 연이어 생성했다.
“하, 할아버지 이건.”
대답은 세이비어 대신 에르모스가 해 주었다.
“악질적인 신의 장난이지. ‘높은 거처의 주인’이라고 하더구나.”
‘높은 거처의 주인? 그건 뭐야?’
건우는 의문을 뒤로하고 세이비어에게 물었다.
“해치울 방법은 있어요?”
“내 권능이었으면, 삽시간에 끝났을걸.”
“그건 지금 못 쓰잖아요.”
“모손충의 본체는 하나다. 본체만 사멸시키면 돼. 이 안에 있을 거야.”
“그건 더 어렵겠는데요.”
건우는 실드에 갇혀 있는 모손충들을 살폈다.
좁은 공간에도 윙윙 날아다니는 녀석들을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건우는 차례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조치하기 시작했다.
‘일단 못 움직이게 가둔다.’
우선 에르모스에게 행하던 복원을 멈추고, 모손충들이 갉아먹는 실드를 연이어 복원시켰다.
꽈아악!
더욱 두터워진 실드에 밀린 모손충들이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밀렸다.
스릉.
건우는 뒤이어 인벤토리에서 검을 한 자루 꺼냈다.
크루엘의 마검.
아라크네를 해치운 레어급 무기였다.
‘그리고 본체를 포착한다.’
[초감각을 시전했습니다.]
윙윙 움직이는 모손충들의 움직임이 급작스럽게 느려지며 세밀하게 주시할 수 있게 되었다.
‘찾았다.’
건우는 눈을 부릅뜨며 동공에 비친 모손충을 노려보았다.
한 놈만이 다른 놈들과 달리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키이이이익!
자신이 포착된 것을 간파한 것일까?
모손충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애를 썼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건우는 그 상태로 검을 직선으로 내질렀고, 그 타이밍에 맞춰 세이비어가 실드의 강도를 대폭 낮췄다.
니제르 삼식, 월광.
카치치치치칭!
중첩된 실드가 단숨에 깨지며 크루엘의 마검이 모손충의 본체를 소멸시켰다.
[초감각의 숙련도가 향상됐습니다.]
[현명한 지혜로 신의 저주를 무찔렀습니다. 히든 퀘스트, ‘명운역전’의 실마리가 주어졌습니다.]
‘히든 퀘스트?’
예상치 못한 문구에 건우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뇌리 속으로 에르모스의 사념이 울려 퍼졌다.
-고맙구나.
“아니. 뭘 이 정도 가지고요.”
“후우, 아슬아슬했구나. 손자야, 잘했다.”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방금 사태는 분명 위험한 상황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건우도 한시름 놓았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요.”
말을 마침과 동시에 건우는 복원스킬을 발동했다.
[복원스킬 숙련도가 향상됐습니다.]
[절단되어 잃어버린 신체의 수복이 가능합니다. 80퍼센트 이하로 원형을 잃은 무구의 복원이 가능합니다.]
우웅!
숙련도가 향상된 덕분인지 에르모스의 날개는 순식간에 치유가 끝났다.
-세상에.
에르모스는 믿을 수 없는지 날개를 접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후우우웅!
힘을 정상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되자, 섬 곳곳에 펼쳐진 게이트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찾게 해 줘서 고맙구나. 현자여.
“아, 현자까지는 아닌데.”
낯부끄러웠는지 건우가 손을 들며 웃을 때.
에르모스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건우의 몸이 마력에 둘러싸였다.
그리고 등부터 목 언저리로 시조룡을 상징하는 문신이 새겨졌다.
[에르모스가 문장을 수여합니다.]
[드래곤과의 친화력이 70퍼센트 상승됩니다.]
[이그너스 마나연공식 4성에 도달했습니다.]
[칭호, 용인의 혈족을 획득했습니다.]
<칭호: 용인의 혈족>
-설명: 시조룡에게 인정을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시조룡의 가호로 마력이 두 배 가까이 상승된다.
*주의! 역량이 맞지 않으면 가급적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오오!!”
체내에 있던 마력의 농도가 짙어지고 양도 훨씬 많아졌다.
-대가가 충분할지 모르겠구나.
“충분하고도 남죠.”
그때, 다시 반지 속으로 들어간 세이비어가 건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나저나 너 괜찮은 거냐?
“왜요?”
-오늘이 시험 종료되는 날이잖아. 해가 지기 전에 복귀해야지.
“아!”
예리한 지적에 건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못 돌아가겠지.”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시조룡, 에르모스가 건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
명도의 안전구역.
오늘로써 시험 7일차였다.
시험 감독자, 이서진은 참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돌아온 헌터는 총 4명.
그중 A급 헌터 합격자는, 서유라 한 명뿐이었다.
조광철은 부상으로 기권, 신촌 브라더스, 강성민과 강하민은 마정석 채취에 실패하여 자동으로 B급 헌터가 될 예정이었다.
남은 헌터는 조사해 본 바로 전부 트윈헤드 오우거한테 죽음을 맞이했다.
이서진은 손목시계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남은 시간 10분. 최건우 씨가 도착하지 못하면 불합격 처리하고, 구조대가 수색에 나설 겁니다.”
“그럴 리가 업습니다.”
조광철은 강하게 부인했다.
서유라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그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깔려 있었다.
웃고 있는 이는 단 두 명.
강성민과 강하민, 신촌 브라더스였다.
“샘통이다. 그 자식 진작 까불었을 때부터 알아봤어.”
“지금쯤 몬스터 먹잇감으로 씹어 먹히고 있겠지.”
희번득.
서유라는 쌍둥이들을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뭐, 뭐야!”
“한 번 해 보자는 거냐!”
그녀의 살기에 짐짓 놀란 쌍둥이들이 주춤 뒷걸음질 쳤다.
“앞으로 5분 남았습니다.”
끼이이이이익!
바로 그 순간, 명도의 끝자락에서부터 어떤 존재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저게 뭐야?”
하늘에 활개치고 있는 것은 은은히 빛을 반사하는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아름다운 깃털을 흩날리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일순간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그러던 중 이서진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무전기를 통해 말을 전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즉각 공중전을 준비하십시오!”
협회 헌터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침공을 대비했다.
후웅!
그때 드래곤에게서부터 한 인영이 떨어져 추락했다.
그에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헌터가 화살을 쏘려고 하는 찰나.
추락하는 인영을 알아본 서유라가 소리를 질렀다.
“쏘지 마세요!”
“…….”
그 외침에 모두가 머뭇거렸고, 인영은 그대로 낙하했다.
콰앙!
지반이 강렬하게 울리며 먼지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크윽!”
이서진은 즉각 앞으로 나서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먼지가 걷힐 때쯤, 한 인영이 저벅저벅 걸어오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안 늦었죠?”
“최, 최건우 씨!”
건우의 모습을 알아본 이서진은 눈을 부릅떴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 활개 치던 드래곤은 그대로 시공간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이서진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건우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꿀꺽!
이서진이 목에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설마 그 이야기가 진짜였던 건가?’
그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마정석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읏차! 여기 있어요.”
건우는 등에 매고 있는 아공간 배낭을 눈앞에서 탈탈 털었다.
촤르르르르륵!
배낭 안에 쏘아진 마정석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며 형형색색 빛을 냈다.
“……이, 이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어떻게 봐도 S랭크의 합격 기준인 2000개를 월등히 넘어섰다.
“합쳐서 5222개입니다. 정확하게 기억해 둔 거니까 세어 보셔도 돼요.”
“…….”
주변에 있는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그중 신촌 브라더스는 턱이 닫히지 않는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기준치를 두 배 넘기면 SS등급이라고 해야 되나?’
지금까지 전례 없던 일에 이서진은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얼굴로 경악의 감정을 티 내지는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S급 확정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만 더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
건우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건우는 모두와 함께 측정기 앞에 서 있었다.
이서진은 오해가 생기기 전에 누차 설명을 했다.
“S급 마력이 안 나와도 S급임에는 변함은 없습니다.”
“이 정도쯤은 괜찮아요.”
건우는 피식 웃으며 측정기에 손을 올린 뒤, 마력을 불어넣었다.
질투심이 생겼는지 강하민은 툴툴거렸다.
“흥! 얼마 전에 F급이었던 녀석이 우리보다 앞서면 얼마나 앞서겠어.”
“……아니야. 달라.”
반면 건우를 줄곧 주시하던 강성민은 불안의 낯빛을 띄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용솟음치듯 각성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마력.
보통 저쯤 되면 마력 고갈을 겪기 마련인데, 건우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멍하니 마력을 측정하고 있던 건우는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 잠깐 용인의 혈족 칭호를 안 뗐는데.’
쩌걱!
바로 그 순간 측정기와 연결된 각성석이 갈라지며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났다.
측정치를 확인 중이던 협회 일원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최대 측정치 9999를 넘겼습니다. 곧 1만을 돌파합니다.”
우지끈! 콰앙!
한계치를 넘어섰는지 각성석은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건우는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너무 힘을 줬나 봐요. 이거 어떡하죠? 하하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넋을 놓고 건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11번째 S급 헌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