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건우의 질문에 지혜는 살짝 떨며 다급하게 대답했다.
“소, 송덕에서 온 사람이 때렸어. 키가 작은 남자였는데…….”
“아팠겠다. 병원 갈까?”
지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됐어. 뭐 이 정도가지고.”
“그럼 오늘은 오빠 말대로 하는 거다. 알았지?”
“……알았어.”
대답과 함께 지혜는 건우의 말대로 간단히 짐을 싸들고 친구인 선정의 집으로 갔다.
“몸조심해. 핸드폰 절대 끄지 말고.”
지혜의 재촉에 건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엄마 기질은 여전하네.’
“알았으니까 빨리 들어가.”
탁.
지혜가 선정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건우의 눈빛이 돌연 매서워졌다.
그러자 반지 속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이비어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쿠, 살기가 득실득실 하구나.
“다른 건 다 참겠는데. 가족 건드리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죠.”
-하긴 너는 전생 시절에도 그런 부분에선 절대 참지 않았지.
“그럼요. 저 뚜껑 열리면 무섭습니다.”
전생을 각성하기 이전에도 건우는 가족에 관해서만큼은 한 발짝의 양보도 없었다.
그 때문일까?
건우의 걸음에는 망설임은 살펴볼 수 없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그가 고개를 들 때는 이미 송덕 길드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정문 앞에는 두 명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다.
안으로 진입하면 몇 명이 더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 역시 각성자로 최소 E~D급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
‘지금 내가 지닌 마력이 대략 D급 정도니까 별 무리는 안하겠네.’
골똘히 고심에 잠긴 건우에게 세이비어가 질문했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냐?
건우는 터벅터벅 걸으며 입을 뗐다.
“글쎄요. 한 명의 목숨을 장담 못할 것 같은데요.”
-크허허허, 좋은 기세야.
건우는 그대로 송덕 길드의 건물로 향했다.
***
자정을 넘은 심야.
송덕 길드 2층.
“끝났냐?”
길드 대표 이진만의 질문에 간부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털썩.
그러고는 그의 앞에 피투성이가 된 한 남자를 무릎 꿇렸다.
남자는 심한 고문으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잘도 협회에 고발할 생각을 했네. 어쩌나? 우리가 먼저 알아버려서.”
이진만은 그의 앞에 사진과 서류를 내던졌다. 서류와 사진에는 송덕 길드에서 벌인 만행이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남자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끄윽,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진만은 히죽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안 되지. 그러면 본보기가 될 수 없잖아.”
“그, 그럼?”
“끌어내. 반쯤 죽여 놔야 다른 놈들이 고발할 생각을 안 하지.”
이진만의 명이 떨어지자 길드원 두 명이 남자의 팔을 질질 끌고 갔다.
“이, 이러지 마!”
남자는 비명을 내지르며 절규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손잡이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앙!
“으아아악!”
문짝이 완전히 박살나며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날아갔다.
당황한 이진만이 눈썹을 꿈틀거릴 때, 안쪽으로 녹색 후드티를 걸쳐 입은 한 청년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는 방긋 웃으며 이진만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에요. 사장님. 저 기억나세요? F급 헌터, 짐꾼으로 계약한 건우예요.”
“……글쎄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어떻게 들어왔지?”
대신 슬그머니 책상 아래에 있는 비상버튼을 눌렀다.
“저 아직 이 회사 소속인데요. 들어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인데.”
이진만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문밖으로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이진만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림자의 주인이 경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그렇지. 쥐새끼처럼 몰래 숨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짐꾼이 경비인력을 어떻게 상대해.’
한데, 어째서인지 그림자가 비틀거리고 있다.
덥석!
그림자의 주인은 벽에 기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커허허헉.”
그의 정체는 이진만의 예상대로 경비원이었다.
그런데 무슨 봉변을 당한 건지, 그는 피투성이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사, 사장님. 도, 도망가세요. 미친놈이 쳐들어…….”
털썩!
경비원은 말을 매듭짓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진만은 다급히 부하들에게 명했다.
“뭐해? 해치워!”
“으아아악!”
이진만의 부하들이 일제히 건우에게 돌격했다.
그러자 건우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역중력 마법(Revers gravity)를 시전했습니다.]
콰콰콰콰콰쾅!
그러자 그들의 머리가 일제히 허공으로 치솟아 천장에 박혀 버렸다.
그들 모두를 쓰러뜨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초 내외였다.
“오호, 갑자기 환대해 줘서 깜짝 놀랐네.”
“너, 너 뭐 하는 새끼야! 짐꾼이라며?!”
대꾸하기도 귀찮은 건지, 건우는 그대로 걸어와 바닥에 널려 있는 서류와 사진을 주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진만이 화들짝 놀라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 그거 내려놔! 우리가 누군지 알아?!”
“쓰레기 아니에요?”
“이 미친놈이 우리 뒤에 아크 길드가 있어! 알아들어?”
“그건 대형 폐기물이라는 말이죠?”
“이게 어디서 말장난이야!”
“말장난은 그쪽이 좋아하는 거고, 응?”
바로 그때, 건우는 음습한 기척을 감지했다.
-뒤다. 조심해라!
세이비어의 경고에 건우는 급히 등을 돌려 방어 자세를 취했다.
콰앙!
하지만 한 발 늦었는지 습격자의 발차기에 건우는 그대로 날아갔다.
[갑작스런 타격으로 팔이 부러졌습니다.]
[복원을 발동했습니다.]
[팔이 원상 복구되었습니다.]
습격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분명 부러뜨린 소리가 났는데.”
타격을 입었을 건우가 너무 건재했기 때문이다.
“바, 박노준! 와 줬구나.”
이진만이 기쁜 듯이 후다닥 달려 남자의 등 뒤에 숨었다.
작은 키에 쥐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닌 남자.
“……너?”
건우는 그의 인상을 알아보고는 눈매를 좁혔다.
“겨우 이런 놈 때문에 절 부른 겁니까?”
박노준은 어이가 없는지 이진만을 쏘아봤다.
“이,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보통 놈이 아니야.”
그 말에 박노준이 칫 혀를 차며 건우를 노려봤다.
“어디서 굴러먹고 들어온 개뼉다구인지 모르겠는데, 곱게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박노준의 엄포에 건우가 코웃음 치며 입을 열었다.
“박노준, 소속은 아크 길드. D급 헌터나부랭이에 주 업무는 중소 길드에 횡포 부리기, 살인, 상해치사 혐의는 스무 개가 넘네.”
“……너, 뭐 하는 새끼야?”
건우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팔락팔락 흔들며 말했다.
“그냥 여기 써져 있는 거 생각나는 대로 줄줄 읊어 본 건데. 틀린 거 있어?”
박노준이 이진만을 노려보았다.
“내, 내가 아니야. 저놈이 멋대로 가져갔다고!”
그 말에 박노준은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건우에게 말했다.
“그거 내…….”
쿵!
한 발짝 내딛으려던 박노준은 순간, 몸을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스.
바닥에 마찰계수를 지워 버리는 마법이었다.
그리 대단한 마법은 아니지만 박노준이 놀란 것은 바로 건우가 마법을 구현한 시점이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더라도 짧게는 입을 놀리기 마련인데, 건우에게서는 어떠한 예비동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영창 캐스트?!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동요하는 박노준을 보며 건우가 천천히 입을 뗐다.
“오늘밤에 내 여동생한테 손찌검은 왜 했냐?”
박노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그것 때문에 온 거냐? 그년한테 죽은 오빠 말고 빌붙은 오빠가 한 명 더 있었나보네. 그년이 자기 오빠는 안 죽었다고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모습이 귀엽잖아. 괴롭혀 주고 싶더라고.”
“흐음.”
“기분이 언짢나 보네?”
“어떻게 패면 잘 팼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고 있어.”
콰앙!
“어디서 이 새에끼가~.”
박노준이 바닥에서 힘껏 발을 내디뎠다.
쩌걱!
그러자 바닥에 일제히 균열이 가면서 박노준이 그리스의 영향 범위에서 벗어났다.
“잔재주 좀 부릴 줄 안다고 까부는데, 방법이라면 내가 가르쳐 주지.”
쫘아아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노준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옷이 찢어졌다.
잿빛으로 뒤덮는 털, 엉덩이 쪽에서 흘러나오는 꼬리.
박노준의 크기는 2미터 가까이 커졌다.
그의 정체는 바로 웨어 렛이었다.
박노준은 새빨간 동공으로 건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잘 패려면 힘이 있어야지. 이게 바로 힘이다! 이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아!”
거대한 야수의 포효가 방안에 메아리처럼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박노준의 주먹이 건우의 얼굴을 부술 듯 덮쳐왔다.
위기의 순간이지만, 건우는 그저 두 손가락으로 허공에 한 획을 그을 뿐이었다.
[윈드 커터를 시전했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거대한 삭풍이 칼날처럼 박노준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서걱! 푸쉿!
“크아아아아악!”
박노준의 팔이 윈트 커터에 싹둑 잘려 나갔고, 상처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어 나왔다.
“주, 죽인다. 이 개자식!”
박노준은 즉시 잘린 팔을 주워들어 접합하기 시작했다.
“힘이라고? 내 눈에는 쥐새끼가 찍찍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는데?”
건우는 구태여 녀석의 팔이 접합되기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파이어 볼을 시전했습니다.]
[파이어 볼을 시전했습니다.]
[파이어 볼을 시전했습니다.]
허공으로 수많은 홍염의 구가 떠올랐다.
“…….”
털썩.
정면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던 박노준은 아픈 것도 잊은 채 힘없이 잘린 팔을 떨어뜨렸다. 이제야 건우와 자신의 실력 차를 실감한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S급도 이렇게 빨리 마법을 생성하진 못한다고?!’
짐승적인 본능이라고 할까?
그는 알 수 있었다.
무영창 캐스팅 따위가 아니다. 그것을 상회하는 그 무언가가 이 남자한테 있다.
박노준이 다급하게 손을 들어 올렸다.
“잠, 잠깐! 내가 잘못했어!”
건우는 빙그레 웃었다.
“응. 나도 알아, 그럼 잘못했으니까 죗값은 달게 받아야지.”
“!!”
박노준은 황급히 방을 이탈하기 위해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수십 개의 파이어 볼이 방 안을 메우며 난사 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사무실의 유리창이 터져나가고 방 안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화르륵! 타닥! 타닥!
“커, 커헉!”
박노준은 죽지 않았지만 새까만 잿더미에 뒤덮여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야수화는 진작에 풀린 상태였다.
건우는 화재의 중심지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거 아직까지 조절하기 어렵네.”
-뭐 이렇게 화끈하게 일을 처리해.
“화나게 하니까 그러죠.”
건우는 세이비어에게 투덜거리며 이진만에게 다가갔다.
이진만은 방금 전 건우의 마법을 보고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는지, 바지에 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너, 너 대체 뭔데 나, 나한테 그러는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이진만은 가까스로 눈앞의 건우가 누군지를 떠올렸다.
그는 분명히 이번 던전 공략전에서 행방불명 처리된 파견계약자였다.
“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아이고, 사장님. 아크 길드가 오기 전에 제 주먹이 사장님한테 먼저 날아갈 수 있다는 점 꼭 명심해 주세요.”
“…….”
그가 조용히 입을 다물자 건우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그냥 깔끔하게 계산하고 인연 끊읍시다. 제 배상금이랑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빼먹은 수수료, 그리고 오늘 제 동생한테 뜯어 간 등록금 합쳐서 1억 2천 내놓으세요.”
“……??”
이진만은 파이어 볼에 그을려 타다 만 금고를 열어 돈더미를 휩쓸어 가방에 담은 뒤 책상에 올려놨다.
그러고는 살벌한 눈빛으로 건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내가 정당하게 번 몫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알았다. 이제는 다시…….”
퍼억!
건우는 뭐라 말을 하려던 이진만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어서 기절시켰다.
세이비어는 건우의 행동에 웃으며 말했다.
-바지에 오줌까지 지린 녀석은 왜 때리냐, 남자라면 이쯤에서 깔끔하게 계산을 끝마칠 줄도 알아야지.
“아, 제가 마침 한 방을 때려야 된다는 걸 미처 빼먹었네요.”
-웃기고 있네. 그냥 성질나서 때린 거면서.
건우는 피식 웃으며 세이비어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두 놈 기억 소거가 가능할까요?”
그러면서 바닥에 쓰러진 이진만과 박노준을 각각 가리켰다.
-가능하다. 근데 왜?
“저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어서 좋을 건 없잖아요.”
-알겠다.
건우가 마력 공유를 하자, 세이비어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건우의 기억을 삭제했다.
‘이건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어야겠네.’
그는 손에 쥐어진 서류와 사진을 서류 봉투에 담으며 씨익 웃었다.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