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크루엘의 마검>
-등급 : 레어
-설명 : 숙련된 대장장이, 크루엘이 만든 마검. 광기가 실려 있어 그 빛에 취한 사용자는 마검에 조종을 당하기도 한다.
-공격력 : 270
-내구도 120/120
*적을 벨 때마다, 공격력 0.2%씩 상승 및 내구도 1%씩 감소
처음으로 갖는 어마어마한 레어 아이템.
하지만 아이템 설명을 본 건우는 절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사신의 저주는 다시 복원시키지 못하겠지.”
원래 검에 깃들어 있는 사신의 저주가 두려운 이유는 상대가 죽을 때까지 저주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가 죽으면 주술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건 뭐야?”
건우는 입맛을 다시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주웠다.
그것은 어떤 가문의 문장이 박힌 반지였다.
“……이건.”
건우는 그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윤회의 바퀴.
그것은 저쪽 세상에서 시간의 신인 차이트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 문양을 가문의 상징으로 할 수 있는 건 이그너스 가문밖에 없었다.
건우는 반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이그너스의 반지>
-등급 : 유니크
-설명 : 마도사 가문, 이그너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반지. 현재는 던전의 코어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내구도 1/100
*착용 시, 던전 보스로 격이 상승한다.
*게이트 생성 유무를 결정할 수 있다.
“……?!”
건우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통의 경우, 던전 보스를 처치하면 게이트는 자동적으로 소멸한다. 던전의 보스가 던전의 핵심인 코어와 동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던전 코어만 따로 떼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인건지 이 던전의 코어는 아라크네가 아니라 이그너스 가문의 반지였다.
그때 아라크네가 없어져 제한이 사라진 건지, 세이비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울상으로 반지를 보며 쩔쩔 맸다.
“이, 이게 어떤 물건인데, 이렇게 금이 갔어!”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고치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잠시 후.
공방에 복귀한 건우는 그 뒤로 쉼 없이 반지에 복원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흘렀다.
“헉, 헉!”
건우는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반지를 살폈다.
테두리에 있는 스크래치는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균열은 아직 곳곳에 남아 있었다.
예상과 달리 정성을 쏟는 게 무의미해 보였다.
[내구도 11/100]
복원시킨 내구도를 확인한 건우는 머리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유니크를 복원시키려면 마력이 10배 이상 뛰네.”
“이, 이놈아! 빨리 어떻게 손 써봐!”
곁에서 지켜보던 세이비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건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체내에 있는 마나는 이미 고갈된 지 오래였다.
스윽.
건우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이그너스 영지의 보스가 되었습니다.]
[복원 스킬을 발동했습니다.]
스킬의 영향으로 반지는 은은한 금빛을 내뿜었다.
“24시간 내내 복원 스킬을 가동하다 보면, 언젠가 회복될 거예요.”
더불어 숙련도까지 늘어나니 일거양득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지.”
세이비어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건우가 애쓴 걸 보았기 때문이다.
꼬르륵.
그때, 건우의 배에서 소리가 울렸다.
[공복치가 70%에 달했습니다.]
“네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거든요.”
‘쓸데없는 것까지 가르쳐 주네.’
건우는 애꿎은 시스템에게 화풀이를 하다 곧 이그너스의 반지를 가동시켰다.
우웅.
[게이트를 형성하시겠습니까?]
“수락.”
수락하기가 무섭게 건우의 눈앞으로 게이트가 형성됐다.
여타의 게이트와는 달리 사람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이를 본 세이비어가 말했다.
“가는 거냐?”
“슬슬 배고프니까 집에서 밥 먹어야죠. 같이 가실 거죠?”
“……그래도 되냐?”
건우의 자연스런 권유에 세이비어는 주춤 망설였다.
수천 년 가까이 그림에만 머물렀던 탓인지 바깥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어울리지 않게. 무서운 거예요?”
“이놈이! 어디서 겁쟁이 취급하는 거냐! 좋다. 따라가 주지.”
“초상화 들고 올까요? 아, 근데 집에 걸어 둘 때가 있을지 모르겠네.”
세이비어는 어디까지나 유령, 그를 이곳에 붙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초상화였다.
하지만 세이비어는 쿨하게 답했다.
“필요 없다. 초상화 대신 할게 생겼으니까.”
“대신 할 거라뇨?”
스스스스스스.
반문하기 무섭게 세이비어는 이그너스 반지에 스며들었다.
-자, 됐다.
“역시 대마도사는 다르네요.”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대로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
서울 종로구.
이제 막 공사에 들어가려는 철골 구조물 끝에서 게이트가 형성됐다.
게이트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아 존재감이 옅었다.
스스스스.
그 게이트 너머로 한 존재가 빠져나왔다.
녹색 후드티를 입고 커다란 아공간 배낭을 착용한 짐꾼. 바로 아라크네의 던전을 공략하고 막 현세로 돌아온 건우였다.
건우는 오랜만에 도시의 야경을 보며 한마디를 뗐다.
“왜 살벌하게 이런 곳으로 튀어나오는 건데.”
그때 건우의 반지에서 노인의 음색이 흘러나왔다.
-호오, 세상도 많이 변했군.
“여긴 그냥 할아버지가 있던 곳하곤 다른 세계예요.”
-그, 그러냐?
”네. 그럼 슬슬 이동해 볼까요?”
건우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타악!
건우는 있는 힘껏 발을 박차더니 그대로 떨어졌다.
“할아버지 역중력 마법이요.”
-그럴 줄 알았다.
마력공유를 통해 마나를 얻은 세이비어가 건우의 몸에 역중력 마법을 시전 했다.
둥실.
빠르게 추락하던 건우의 몸이 풍선처럼 잠시 떠올랐다.
스스스.
그리고 이어 역중력 마법이 사라지려는 순간, 건우는 손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역중력 마법(Reverse gravity)을 복원하셨습니다.]
[역중력 마법(Reverse gravity)를 터득했습니다.]
다시 몸이 둥실 떠오르기가 무섭게 건우는 지면에 무사히 안착했다.
세이비어는 그런 건우가 샘나는 듯 투덜거렸다.
-너무 날로 먹으려 드는 거 아니냐?
역중력 마법은 5성급에 해당되는 고위 마법이다.
정석대로라면 3성인 건우는 익힐 수 없는 것이다.
“요령을 터득한 거라고 해 주세요. 후손한테 마법을 전수해 주는 게 그리 아까우세요?”
-…….
건우는 눈매를 지그시 좁혔다.
“지금 아깝다고 생각했죠?”
-아니 그러면 안 아까워? 내가 고생한 세월을 홀라당 가로채는데.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죠.”
건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집까지는 이제 5분 거리.
뚜벅뚜벅.
그때 가로등 밑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성이 건우를 스쳐 지나갔다.
한 명은 홀쭉하고 한 명은 꽤 큰 덩치를 가진 남자였다.
건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스텟이 대폭 상승한 덕분인지 상대가 각성자인지 아닌지 판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왜 각성자가 이곳에서 기웃거리는 거지?’
그는 특히 단신에 쥐의 면상을 한 사내에게 슬쩍 눈길을 건넸다.
D급 잘 쳐주면 C급 정도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지금 급한 건 지혜지.’
곧바로 신경을 끈 건우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막 도착하자마자 건우는 현관문을 열었다.
덜커덩.
“지혜야. 나 왔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얘는 이 야심한 시간에 어딜 나간거야……?!”
신발을 벗고 안에 들어선 건우는 한순간 마음이 가라앉았다.
깨진 유리창.
부서진 장롱.
그리고 바닥에 널린 식자재와 깨진 화분까지.
말끔했던 방이 무슨 봉변을 맞은 건지 어지럽혀져 있었다.
“지혜야!”
깜짝 놀란 건우는 지혜의 방을 열었다.
문이 잠겨 있었는지 건우의 힘에 문고리가 박살이 났다.
“이, 이제 그, 그만!”
흠칫.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지혜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는지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한쪽 뺨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건우는 경계하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혜야. 나야.”
“……오, 오빠?”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락.
지혜는 건우를 알아보고는 그대로 끌어안았다.
“왜 이제 왔어. 바보야. 흐엉.”
몸을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애처롭게 보던 건우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지혜는 거실에서 건우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우는 그동안 행적에 대해 간단하게 던전에서 조난을 당했고, 우연한 계기로 나올 수 있었다고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득 볼 것도 없고.’
다행히 지혜는 건우를 의심하거나 추궁하려고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건우 쪽에서 지혜에게 사정을 물었다.
“그래서 집안은 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거야?”
“한 달 전쯤에 갑자기 오빠가 던전에서 죽었다며 송덕에서 왔어. 어딘지 알아?”
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덕 길드는 건우가 임시계약을 맺은 길드였다.
‘수수료 겁나 떼 가는 양아치들이었지.’
게이트는 아크 길드에서 구매한 거지만, 짐꾼을 길드원으로 취급하지 않던 아크 길드는 항상 중소 길드를 끼고 던전에 진입했다.
그런 이유로 아크 길드의 하청업체가 바로 송덕 길드였다.
좁은 업계 특성상 그들의 행위는 악질적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우에게 선택지는 그곳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녀석들이 왜?”
“오빠 때문에 크게 피해를 봤다면서 며칠 동안 우리 집에 들이닥쳐서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다 뒤집고 갔어. 무서워서 일단 다음 학기 등록금을 줘버렸어. 미안해. 오빠.”
지혜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 돈을 건우가 어떻게 장만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지혜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내가 약해서 이렇게 된 건가?’
“배상을 해 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우리한테 뜯어가려고 했다는 거지.”
건우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했다.
계약서에는 분명 짐꾼이 죽으면 보상금을 지급하게 돼 있다.
그 금액은 상당했지만, 송덕은 죽어도 보상을 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짐꾼이 잃은 아이템에 대한 배상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상대는 가족을 잃은 여성 한 명. 게다가 지혜는 헌터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일반인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최적의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건우는 지혜의 머리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많이 무서웠지?”
“응.”
지혜는 아직까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여성으로서 들으면 안 될 소리까지 들어 치욕스럽고 두렵기까지 했다.
굳이 그 녀석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던 건우는 그저 미안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는 선정이 집에 가 있어.”
“오, 오빠! 또 어디 가려고?”
“응. 협회에 가서 보고도 해야 하고, 계속 행방불명 상태로 있으면 안 되잖아.”
꼬옥.
지혜가 건우의 소매를 붙들었다.
“오빠. 그냥 이 일 그만두면 안 돼?”
“이제 몸 사리면서 일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응.”
지혜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건우는 지혜의 머리칼을 뒤로 넘기다가 부어오른 뺨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혜야?”
“응.”
“이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오싹!
순간 건우와 눈이 마주친 지혜는 소름이 돋았다.
건우의 눈빛은 지금까지 봤던 그의 모습 중에서 가장 살벌했기 때문이다.
7. 돌아가기SSS급 리커버리 마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