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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 괴수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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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가 레이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천천히 움직여.”
“왜요?”
“잠깐 보고 올 게 있어.”
“같이 가면 안 돼요?”
“잠깐이면 될 거야.”
“그 여자애?”
아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레이카 역시 정원에게 신경이 쓰였다. 정원에 대해서는 클랜 A의 클랜 마스터로부터 설명을 들은 게 있었다. 정원을 콜로니 앞에서 봤을 때 아키라가 직접 날개를 돋아나게 해서 정원의 청력을 시험한 것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신기한 일이기는 했지만 사실 신기한 걸로 치자면 아키라나 레이카를 따라올 사람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도 정원이 가진 능력에 오랫동안 마음을 뺏길 이유는 없었다. 그러다가 콜로니의 입구 가까이에 있던 까다로운 괴수 하나를 해치우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잡고 지나쳐 왔을 때 선뜻한 느낌이 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레이카는 그런 느낌을 느낀 게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키라의 걸음이 갈수록 느려지더니 알아보겠다고 돌아간 것이다.
그때 레이카의 눈 앞에 거대한 스컨데르가 나타났다. 네 발 짐승의 기본 골격에, 새의 주둥이에 날개가 달린 괴수였고 늪에서 나타나는 스컨데르에 비해서 체력이 높기는 했지만 레이카 역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의 집에 들어갔는데 주인은 없고 주인 행세를 하는 객들이 앉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이제 곧 본 요리가 나올 거라고 광고만 요란하게 하면서 주구장창 에피타이저만 내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지.
공격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봤을 때도 비슷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느끼는 불편감이 뭔지 생각하려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 없이 묵묵히 딜을 넣고만 있었다.
콜로니의 깊은 곳까지 가장 먼저 들어갔던 선두 그룹이 돌아왔다. 그들은 안에도 이렇다할만한 괴수들이 없었다고 말했다.
어느새 아키라도 돌아와서 레이카의 곁에 서 있었다.
“남은 괴수들이 없는 거면. 이제 곧 콜로니도 사라지겠군요. 러프 스톤만 챙겨서 어서 나가죠.”
야로슬라프가 말하자 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이한테 확인해 볼게.”
콜리니 밖에서 기다리면서 안에 전달 사항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지 알았기에 지연은 우선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레이드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안에서 전화를 하면 지연이 받을 수가 있었다.
“끝난 것 같은데. 어때? 콜로니 안에 남아있는 괴수가 있어? 감응기로 확인해줘.”
태인이 지연에게 물었다.
“없어요. 나오면 될 것 같아요.”
지연의 말을 듣고 태인이 사람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두르죠.”
러프 스톤을 챙기면서 서규태가 입을 열었다.
“콜로니 끝에 갑자기 암석지대가 나타나서 좀 긴장을 하기는 했는데. 거기에 있던 놈들도 너무 싱겁게 끝나서 어이가 없었어요.”
서규태가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콜로니는 왠지 소문만 무성한 채 별 것 없이 끝나버린 잔치같다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콜로니 안이 어두웠다 밝아졌다 해서 공략에 애를 먹었어요. 다음부터는 조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강현이 말했다.
“정말 그래야겠더라고요.”
여기저기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왔다. 태인은 마지막으로 지연에게 한 번 더 콜로니 안의 상황을 확인해 달라고 말했고 지연은 그대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이 콜로니를 모두 떠났을 때 한 사람이 콜로니 안 쪽을 향해서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정원이었다.
“시현씨.”
정원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벽은 정원이 내는 소리를 완벽하게 흡수했다.
정원이 내는 소리는 퍼지지 못했다.
정원은 자기가 입구 쪽을 향하고 있는 건지 안쪽을 향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대로 가면 입구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입구가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괴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도 보이지 않았다.
제 허리를 감아챈 맹렬한 바람.
그것이 정확히 바람이었는지 괴수의 촉수였는지 다른 무엇이었는지도 정원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시현의 곁에서 시현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는데 괴수가 나타났고, 시현이 괴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정원 역시 시현을 백업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다가 무방비 상태로 무언가에 당했다. 공격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재빠르게 무언가 입 안으로 들어와 정원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막았고 그 후로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정원을 낚아채버렸다. 정원은 제 옆으로 콜로니의 벽이 엄청난 속도로 휙휙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정원을 낚아챈 것은 정원을 바닥에 떨어뜨려 버린 채 사라져버렸다. 토네이도에 휘말렸던 낙엽 신세가 된 채 정원은 자기가 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 채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시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콜로니 안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정원은 콜로니의 공략이 끝났고 모든 헌터들이 그곳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러프 스톤은 빠짐없이 챙겨가지고 나간 것 같았다. 다들 콜로니가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빠르게 움직였다.
“러프 스톤 챙기는데 급급해서 동료들은 놓고 오지 않았는지 잘 챙겨요. 특히 짝 없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잘 챙기셔야 돼요.”
태인이 말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미하일이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를 챙겼다.
사람들은 조금씩 들떠있는 것 같았다. 좋은 의미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머리 뒤꼭지를 잡아당기는 그 불쾌한 의문들의 실체에 대해서 아직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콜로니의 목적이 뭐였는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태인도 나오자마자 지연에게 그 얘기를 했다.
“이 콜로니 이상해. 뭔가.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를 시험해 보려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지연도 딱히 태인이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지연도 밖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무슨. 콜로니 공략이 3급 늪 정도를 공략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느껴졌다.
클랜원들이나 신입 헌터들 할 것 없이 열심히 싸워줬지만 그렇다고 콜로니의 공략이 이렇게 쉽게 끝나나 하는 생각이 지연에게도 들었다.
“끝까지 다 들어가 봤던 거죠?”
지연이 묻고 있는데 지우와 서규태가 다가왔다. 그리고 끝까지 들어갔던 게 맞다고 말해주었다.
“안쪽에 있던 괴수들은 강하던가요?”
지연이 물었다.
“꼭 그렇지도 않았어요.”
지우는 대답을 하면서 감응기를 들여다보았다.
지연은 감응기를 통해 콜로니의 가장 안쪽을 보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우가 서규태를 불렀다.
“써전님. 우리가 봤을 때는 저기가 암석지대였지 않았나요?”
“그러게요. 감응기가 그런 것들은 구현해 내지 못하는 모양이죠?”
서규태가 물었다.
지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형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응기가 놓친 게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지우는 감응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감응기에 보이는 콜로니가 전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장 안쪽은 감응기에 나타나지 않고 그 앞에서 임의로 편집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지우는 그게 별 문제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서규태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명백히 지연과 감응기의 문제 때문인 거라고 생각했기에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괜히 지연이 의기소침해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계획을 세우는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콜로니에서의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때 감응기의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콜로니가 사라지고 있어요!”
제이가 소리쳤다.
모두들 콜로니를 바라보았을 때 정말로 콜로니가 사라지고 있었다.
콜로니에 있던 개체들이 그다지 쓸모있는 것들이 아니어서 괴수의 사체 운반을 해 올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고 있었는데 콜로니가 마지막 개체가 죽은 후에 48시간 동안 유지될 거라는 사실을 믿고 무리하게 사체 운반에 나섰다면 큰일 날 뻔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노무 콜로니는 정말 여러 가지로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야!”
레오니드가 말했다.
모두들 그 말에 공감했다.
“아무튼. 공략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겁 먹었었는데 결국 콜로니가 이렇게 공략이 돼서 다행이네요.”
임정이 말했다.
“오늘은 일찍들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일찍 다시 만나서 얘기를 좀 더 나누는 걸로 합시다. 우리가 뭔가 놓친 게 없는지. 거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도록 하고요.”
서규태가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 헌터들은 자기들이 콜로니를 공략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헌터가 돼서 몇 달만에 B급이 된 것도 신기했고 자랑스러웠는데 연달아 콜로니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자기들이 전부 한 건 아니었지만 콜로니에 있는 괴수들 중 몇 놈은 자기들 손으로 해치웠다고 생각하니 자신감이 고취되었다.
“어떻게 해? 오늘 술 한 잔 하나?”
무영이 바람을 잡아보려고 했지만 별로 좋다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무영이도 빨리 여자친구 좀 만들어 봐. 그러다가 미하일처럼 된다.”
태인이 무영의 어깨를 감싸면서 말했다.
왜 하필 미하일처럼 된다고 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레오니드도 있고 야로슬라프도 있는데.
레오니드나 야로슬라프를 생각하면 뭔가 멋스럽게 스스로 고독을 씹는 것 같은 이미지지만 미하일은 교미에 실패한 낙오자 수컷 이미지가 강한데.
태인은 딱 그걸 노렸다는 듯이 미하일과 무영에게 동시에 엿을 먹이고 지연에게로 도망쳤다.
“나도 아마 안 될 것 같아.”
시현이 정중하게 사양하며 말했다.
“오늘 안 들어올 거야?”
무영이 시현과 정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도?”
“이 자식이! 민효재 너도?”
“나는 들어가긴 할 거야. 새벽에.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이 자식들이 진짜!”
시끌벅적해지기는 했지만 결국 그 자리는 곧 정리가 되었다. 콜로니가 생겨나서 그곳을 떠났던 사람들도 이제 슬슬 다시 돌아올 거라는 예상이 되었다.
***
시현은 정원의 손을 쥔채 걸었다. 언제부턴가 그것은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시현에게 할 말이 있을 때 정원이 손을 한 번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었다.
“콜로니에서 괴수가 나타나서 잠깐 손을 놓쳤을 때 있잖아. 그때 걱정했어.”
시현이 말했다.
정원은 아무 일도 없었으니 된 거라고 말했다.
“조금만 자고 다시 훈련을 해야 될 것 같아. 아직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껴져. 괴수 차크라를 쓰지 않으면 나는 그냥 어린애 수준이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 레이드를 할수록 내가 약하다는 것만 자꾸 느껴져.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해.”
시현이 침울하게 말하자 정원은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훈련을 하고 싶으면 헌터 아카데미의 숲으로 같이 가 줄 수 있다고 했다.
시현은 미룰 생각이 없었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한밤중에도 그곳을 찾아서 훈련을 하는 헌터들이 많아진 것을 알고 현신 헌터 아카데미에서 그곳에 조명 시설을 해 둔 덕에 밤에도 낮처럼 훈련을 할 수가 있었다. 어떤 때는 밤이 낮보다 더 환한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