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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시현이를 괴수의 왕으로 만들겠다면 지금 있는 괴수의 왕은요? 괴수들이 둘로 갈라져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될 것 같아. 만약에 시현이가 그럴 의사가 없다는 걸 확실히 한다면 하나로 뭉쳐서 공격을 하겠지.”
“당신은……. 뭐라고 말했어요?”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뭐라고 했어야 돼?”
“…….”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했어. 시현이는 내 아들이라고 했어. 괴수의 왕 따위가 아니라. 그 목소리는 화가 난 것 같았지만 그건 어차피 내 생각일 뿐이니까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군.”
“당신 생각요? 시현이 생각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시현이는 내 아들이예요. 우리 아들이라고요.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잠깐만요. 세상에. 그럼 이제는 그 괴수들이 전부 시현이를 공격할 거라는 거예요? 설마. 혹시. 정말 그렇대요?”
“시현이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거라고 했어. 그리고 그 목소리는. 자기들이 새 왕을 위해서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의 왕을 위해서 시현이를 제거해야 하는 건지 알려달라고 했어.”
“새 왕이라는 게 시현이를 말하는 거죠? 시현이가 왕이 되겠다고 한다면 시현이를 위해서 싸워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괴수의 왕과 힘을 합쳐서 시현이를 공격하겠다는 거고요?”
“그게 제국의 안정을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는 일이라고 했어.”
“제국요? 그런 것도 있대요? 콜로니를 차지하고 있는 괴수들이 영주들인가 보죠?”
임정은 시니컬하게 웃었다.
“기가 막혀서! 미국의 치안대 암살 요원들을 따돌려 놨더니 이제는 괴수들이요?”
임정이 말했다.
“캐츠 아이. 아. 그러니까 생각나는 건데. 연못에 떨어졌을 때 바닥에 캐츠 아이 스톤이 잔뜩 깔려 있더라. 나갈 때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시현이가 깨워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그게 전부 사라져 버렸어.”
“당신이 회유에 넘어가지 않으니까 화가 났나보군요. 그건 당신이 말을 들을 때 당신한테 주려고 했던 선물이었던 거고?”
“그걸 안 받았다고 화내지는 않을 거지?”
“캐츠 아이 스톤을 받고 아들을 팔자고요? 내가 그런 짓을 할 것 같아요?”
“시현이. 앞으로 험난해지긴 할 거야. 그동안 한국이 안전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아. 괴수의 왕이나 괴수들 모두 시현이를 특별히 자극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바뀌겠지. 미국에서 먼저 나타났던 것들이 이제 한국에서도 나타날 거야. 훨씬 더 급격한 변화를 거치면서 그렇게 되겠지. 강한 괴수들. 시스템의 규칙들이 깨질 거야.”
“지우씨…….”
“그런데도. 내가 거절을 하는 게 맞는 거였던 거지?”
지우가 물었다.
임정은 지우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시현이가 괴수의 왕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래요?”
“헌터들을 없애고 인류를 멸종시키고 1급 괴수가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세상이 도래하는 거지.”
“도저히. 타협의 여지가 없네요.”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다면 나도 흔들렸을 것 같거든. 시현이가 괴수들한테 쫓기는 삶을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우리. 이른 나이에 은퇴하기는 글렀네요.”
“내 말이 그 말이야.”
“클랜원들한테는 언제 말할 거예요?”
“콜로니의 공략이 끝나면. 당신한테 먼저 말하고 싶었어. 내 결정이 옳다는 걸 당신이 지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당신한테 실망했을 거예요.”
“아키라와 레이카도 만나볼 거야. 그 사람들한테 클랜 A에 합류해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아.”
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정은 한숨을 쉬었지만 그 끝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오랜만에 제대로 전투 의욕이 고취되네요.”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큰 일이기는 하지?”
지우의 말에 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나한테 목표 한 가지가 생겼는데 뭔줄 알아요?”
임정이 물었다.
“뭔데?”
“시현이한테 평범한 행복을 알게 해 주기. 소소한 삶의 기쁨들을 매일 알게 해 주기요.”
“나도 그 생각 했어. 그리고. 이걸 꼭 시현이가 알게 할 필요는 없잖아. 그 녀석. 알게 되면 괴로워할 거야. 괴수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죽는 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내 생각도 그래요. 자기가 사라지면 괴수의 왕이 포기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알게 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절대로 알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이 없이 서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임정이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를 냈고 그대로 그 얼굴을 지우의 어깨에 묻었다. 시간을 놓친 울음은 가슴에 상처를 만드는 법이라는 것을 아는 지우는 임정을 안아 주었다. 임정의 웃음이 울음으로 변해 흘렀다.
저 아래에서 시현이 그들을 발견하고 깡총 깡총 뛰어 오르면서 두 팔을 열심히 흔들어댔다. 두 손을 입에 대고 뭐라고 뭐라고 소리도 질러대는데 시현이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부른다. 가자.”
지우가 임정을 다독이며 말했다. 임정이 고개를 들자 그 옆에서 무영이도 시현을 따라하고 있었다.
효재와 제이는 나란히 그 옆에 서 있었다.
“괜한 걱정은 하지 말자고. 시현이도 혼자가 아니니까.”
지우의 말에 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
“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무영은 계속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상한 소리 좀 내지 말라고 제이에게 타박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무서워서 이러는 거 아니야. 무서운 거 감추려고 내는 소리 아니라고.”
그때쯤에는 무영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는데 무영은 혼자 뒷북을 치고 있었다. 콜로니에 들어가기 전에 콜로니 안의 상황을 다시 모니터링하던 지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왜 그래, 또오! 함부로 그렇게 고개 좀 갸웃거리지 말라고. 그럴 때마다 무슨 기분이 되는지 알아? 내 배를 갈라 놓은 의사가, ‘어,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는 기분이라고!”
이익헌이 말했지만 지연은 자기한테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항변했다.
“연못이 없어졌단 말이예요. 그동안은 클랜원들 차크라 양을 비교 분석하는데만 신경을 쓰느라고 지형 변화에 신경을 못 썼는데. 여기에 연못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지연이 말하자 모두들 감응기를 바라보았다.
“저 콜로니는 끝까지 마음에 안 들어. 연못이 없어진 게 크게 문제될 건 없겠지만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자꾸 생기는 건 정말 싫다고.”
이익헌이 말했다.
다들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익헌과 마찬가지였다.
“자. 기다리면 더 불어나기만 할 거예요. 어서 들어가요.”
서규태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서규태가 콜로니에 들어간 동안 와서 기다리고 있던 미키 위도는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자리를 비웠었다. 이러다가는 미키를 보지 못하고 콜로니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미키의 차가 달려왔다.
“십 년 넘게 썸만 타는 분들인데 콜로니 앞에서도 어긋나게 되는 줄 알고 내 속이 다 타들어갔네.”
태인이 지연에게 말했다.
“내가 하려던 말이 그 말이었어요.”
미키는 오랜만에 만나는 자신의 써전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처참한 몰골로 차에서 내렸다.
“싱크홀이 생기는 바람에 건물 두 채가 가라앉았거든요. 내가 있는 동안에도 한 채가 더 가라앉았어요. 다행히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곳이라 인명피해는 없었고요. 그 지역에 괴수가 나타났었던 게 결과적으로 그 사람들을 살린 격이 됐죠. 샤워라도 하고 오고 싶었는데 또 코 앞에서 놓치게 될까봐. 내 상태가 지금 심각하게 보이나요, 혹시?”
미키 위도가 십대 소녀처럼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말이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미키 위도의 위에서 시멘트 가루를 쏟아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고 미키가 조금만 움직여도 먼지가 폴폴 날려서 사람들은 기침을 해댔다. 그런데도 서규태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전혀 안 심각합니다.”
그러고는 애정은 가득 담아서 미키 위도를 안아주었다.
“아. 망할 놈의 싱크홀!”
연거푸 기침을 해대면서 이이헌이 싱크홀을 욕하면서 먼저 콜로니를 향해 떠났다.
“느긋하게 씻고 쉬어요. 나도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서규태가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클랜 A의 말미에 따라 붙었다. 신입 헌터들도 졸졸졸졸 그들을 따라갔고 사기가 높아진 베로니카 공격대와 헌터들도 그 뒤를 따랐다.
“샤워만 하고 빨리 준비를 해야 할 걸요? 오늘은 미키가 여기에서 특종을 잡을 거예요. 세계 최초로 콜로니가 공략당하고 사라질 거거든요.”
지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미키 위도가 지연에게 손가락을 딱 들어보였다.
“나. 그 말 믿을 거예요.”
“믿어야죠. 나는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 말 한 마디로 신뢰감이 급격히 떨어지는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키 위도는 1초도 허비하지 않겠다는 듯이 샤워장을 찾아 냅다 달려갔다.
***
갓 태어난 타일락들은 체력이 낮았다. 콜로니에 들어간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분업이 이루어졌다. 낮은 등급의 헌터들은 낮은 체력의 타일락들을 맡았고 클랜 A와 베로니카 공격대들은 체력이 높은 괴수들을 맡았다.
“우리도 한 마리 맡아서 하자.”
무영은 그렇게 말을 하고 열심히 스캔을 하면서 어떤 놈이 가장 약한지 체력들을 비교했다.
“저기다. 저걸 하자.”
제일 만만해 보이는 녀석을 향해서 애들을 데리고 달리다가 그 앞에서 바로 급선회를 했다.
“아니다. 저쪽이야. 저게 체력이 5600적어. 아아아아. 저게 12000이나 적어.”
“아, 그냥해!”
무영이 몇 번이나 타겟을 변경하는 바람에 다른 팀들도 쉽게 공격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제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12000이 적다고 지목된 녀석을 향해 달려가 선빵을 날렸다.
먼저 공격 대상들을 정한 팀들은 공격 대상들을 안으로 몰아부쳤다. 싸울 공간이 부족하다는 불평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에게 넉넉한 공간이 나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클랜 A는 벌써 한 마리를 해치우고 다른 개체를 향해 눈을 돌렸다. 한 마리가 쓰러졌다는 사실이 다른 헌터들의 사기를 더욱 고취시켰고 자기들도 조금만 더 하면 자기들 힘으로 타일락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에 열을 올렸다.
신입 헌터들은 타일락의 공격을 피해가면서 그동안 자기들이 연습을 해 왔던대로 한 방, 한 방 공격을 성공시켜 나갔다.
제이야말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그냥 힘을 쓰는 것으로만 하자면 제이가 가장 뛰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번 손과 팔의 방향을 바꿔 가면서 타일락에게 공격을 가하면서 자기한테 자연스럽게 익지 않은 각도에서의 공격도 손에 붙도록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효재는 검을 사용해서 시기 적절하게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차크라를 영리하게 분배하면서 타일락의 요소요소에 대담한 공격을 넣었다.
무영은 늘 하던대로 했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타일락의 몸을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니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냈다.
무영에게 레이드는 그 괴수를 쓰러뜨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었고 비슷한 개체나 다른 개체를 만났을 때 어디를 노려야 할지 정보를 축적하는 과정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