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95화 (29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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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무영은 서문열 교수의 개인 교습을 받아가면서 자신에게 내성이 있는 독을 제 몸에 주입했다가 그것으로 괴수를 공격하는 것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훈련이 계속 되다보면 자기가 직접 만든 독으로 괴수를 직접 공격할 수도 있게 될 거라고 믿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수준에는 이르러서 무영은 작은 개체에 그것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타일락의 어느 부위가 가장 약한지 부지런히 찾으면서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제이가 무지막지한 주먹을 꽂아넣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달려가 제이를 밀어냈다.

“너는 이제 다른 데로 가.”

제이가 반항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무영은 그 앞에서 준비를 했다. 무영의 손가락 끝에 차크라 기류가 단단하게 뭉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아직 레이드가 끝난 상태가 아니라서 제이도 무영을 한없이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크라 사이에서 검은 먹물 같은 것이 스며나오자 무영이 타일락의 상처에 대고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제이의 주먹이 워낙 세게 들어가는 바람에 타일락의 상처가 곧바로 회복되지 못하고 더디게 아물어가는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무영의 독이 들어갔던 것이다.

무영은 그게 먹히는지 알아보고 싶어 정보창을 바라보았지만 다른 녀석들 역시 쉬지 않고 공격을 해 대는 중이어서 정보창에서 타일락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자신의 독 때문인지 다른 녀석들의 공격 때문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자기들 끼리만 있었다면 또 꼴통짓을 한다고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애들을 멈추게 하겠지만,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자신의 영웅들인 클랜 A까지 있는 마당에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무영은 자신의 공격이 통한 건지 어쩐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그 짓을 계속 해야 되는지 어째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그때 미하일이 다가와 무영의 어깨를 툭 쳐 주었다.

“통하고 있어. 서문열 교수님이 너를 지켜봐 달라고 하더니. 정말 해냈구나. 통하고 있으니까 계속 해 봐.”

미하일이 돌아가자 효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우리 타일락 체력은 졸라 이상하게 떨어져. 2씩 떨어져. 무슨. 링거에서 약물이 한 방울씩 톡 톡 떨어지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2씩 떨어지고 있어. 누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뭔데 2씩 떨어져?”

무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10씩은 떨어질 정도의 독을 만들 때까지는 그게 자기 짓이라고 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한 번 흘려 넣어 놓은 것이 이자를 불리듯 체력을 꾸준히 떨어뜨려주니 혼자서 재미를 느꼈다.

시현은 공격을 하면서 자꾸 한 눈을 팔았다. 엄마랑 아빠와 같이 레이드를 하는 건 처음이어서 두 사람이 하는 레이드를 구경하고 싶었다. 시현이 자꾸 그쪽으로 눈팔이를 한다는 걸 알고 효재가 시현이까지 챙기느라 집중력이 두 배로 소모가 되었다.

“안시현. 끝내놓고 보는 게 어때?”

결국 효재가 한 마디를 했고 시현이는 빙구처럼 웃어보이며 사과를 하고 다시 타일락에게 집중했다.

임정과 지우는 말도 없이 타일락을 공격했다. 분노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었고 그것을 풀 기회가 필요했던 차에 타일락이 걸려들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기회였다.

두 사람은 울분을 타일락에게 터뜨렸다. 특히 지우는 엑스 블레이드를 들고서 타일락들의 몸을 타고 날아다니며 목을 떨어뜨리고 몸을 반으로 가르고 다리를 썰어내버렸다. 엄청난 주먹을 찔러 넣고 그것만으로 치명상을 입히기도 했다.

임정도 마찬가지였다. 임정은 이곳저곳 돌아다닐 것도 없이 한 곳만 집중했다. 한 곳에 서서 자기가 서 있던 곳에서 연신 타일락의 몸통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맨손으로 가격을 하다가 손을 뺄 때마다 그 주위에 살기가 가득 도는 차크라가 단단하게 뭉쳐있는 것이 보였다. 타일락은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다시 고통당하기 위해서 회복되는 것. 그것 밖에는 타일락의 회복력이 가지는 의미가 없었다.

타일락의 입장에서는 빨리 죽여달라고 빌고 싶었을 것이다.

클랜원들은 그들의 몸의 언어를 이해했다. 불쾌한 생각이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만한 세월을 함께 보내 왔으니 호흡의 무게만으로도 어떤 근심이 있는지 알아차릴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서 타일락들이 넘어갔다. 그 후로는 가속도가 붙었다. 먼저 해치운 헌터들이 다른 헌터들을 도운 탓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타일락이 바닥에 쓰러지며 정보창의 체력이 0으로 바뀌었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콜로니의 공략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베로니카 공격대와 다른 헌터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에 겨워하는 동안 신입 헌터들도 마구 그 기쁨에 동참했다.

“우와! 나 봤어? 내가 멋있게 공격을 성공시키는 거 봤어? 내가 공격할 때마다 데미지가 팍팍 들어가는 거 봤어?”

무영이 말했다.

“그걸 누가 봤겠냐? 구경할 사람이 없어서 널 봤겠냐? 내가 클랜 A랑 같이 레이드를 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야. 세상에. 클랜 A는 진짜 전쟁의 신들 같더라. 그냥 막 날아다니시던데. 그러면서 무기를 꽂는데 힘이 조금도 넘쳐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꽂으시는 것 같고. 전에도 존경했지만 옆에서 직접 보니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제이도 무영만큼이나 들떠서 말했다. 얼굴에 홍조가 깃든 채 신이 나서 떠드는 모습이 귀여웠다.

클랜 A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놀고 있는 거야. 신입들이? 빨리 돌 주워 가지고 나가자고. 콜로니가 언제 사라지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으니까 서둘러. 콜로니에 살던 개체가 다 죽어서 이 콜로니도 아마 사라질 거야.”

강현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들어서 신입 헌터들은 러프 스톤을 줍느라고 혈안이 되었다. 다른 헌터들도 그 말을 듣고 그때부터 열심이었다.

“콜리니 안에 있는 괴수가 죽은지 몇 시간만에 콜로니가 사라지는지 아직 안 밝혀졌어요?”

무영이 묻자 레오니드가 웃었다.

“콜로니가 공략된 일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니까 정보가 없는 건 당연한 거지. 우리가 역사를 새로 쓴 거야. 콜로니의 최초 공략.”

레오니드의 말에 무영의 눈이 댕그래졌다.

“일 해. 일. 일! 콜로니에 갇히지 말고!”

제이가 무영의 뒷통수를 툭 치고는 러프 스톤을 찾아 달려갔다. 콜로니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모두가 서둘렀다. 헌터들이 콜로니를 떠나고도 한동안 콜로니의 입구는 그대로 남아있더니 최후의 개체가 죽은지 48시간이 지나자 콜로니가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혹시나,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러프 스톤에 욕심을 냈다가 그대로 콜로니에 갇힌 채 콜로니와 같이 사라져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욕심을 낼 수가 없게 되었는데 결국 그렇게 48시간이나 유지되는 것을 보고 허망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역의 애물단지였던 콜로니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면서 그들은 클랜 A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클랜 A에게도 큰 성과였다. 이틀 동안 레이드를 해서 벌어들인 것이 3천억에 달했다. 그 중에 네 개의 러프 스톤은 따로 빼서 신입 헌터들이 사용하는 칼에 박아주기로 하고, 어디 또 돈 쓸 데가 없나 하면서 두리번거려야 할 정도였다.

미키 위도는 서규태와 감격스런 재회의 시간을 또 잠시 미뤄야 했다.

콜로니의 최초 공략이라는 역사적인 현장에 혼자 있었던 미키 위도는 자신이 쓴 기사에 무수한 후속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그렇게 서로 어긋나기만 하는 것 같던 두 사람의 만남은, 그 후에 꽤 큰 결실을 맺었다.

콜로니 공략에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면서 클랜 A 헌터들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 것이다. 이후에 급한 일정이 잡힌 것도 아니어서 서규태가 남아서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기로 했고 그 이후의 시간은 미키 위도와 밀월 여행을 약속했다.

서규태가 미키 위도를 그리워하면서 한숨짓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던 클랜원들은 두 사람의 재회를 같이 기뻐해 주었다.

미키 위도의 곁에서 클랜 A와 신입 헌터들을 배웅하던 서규태가 지우의 손을 유난히 꼭 잡았다.

콜로니의 연못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지우에게서 들은 후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잘 해 낼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에 볼 때는 숙소에 아키라랑 레이카도 들어와 있겠군요.”

서규태가 말하자 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써전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까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잘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요.”

“그거야 당연하잖습니까.”

서규태가 지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그렇게 지우를 놔줄 것 같더니 지우를 와락 끌어 안아주고 등까지 토닥거려 주었다. 왜 이 사람한테만 이렇게 힘든 일들이 생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마음이 짠해져서였다.

***

그 시간들이 다 꿈처럼 느껴졌다. 무영은 시현의 침대에 제멋대로 올라가서 뒹굴거리면서 자신의 활약에 대해서 몇 번이나 들려주었다.

시현과 효재는 귓등으로 듣는 것도 지겨워져서 하나 둘씩 방을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무영이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와보니 녀석들은 싹 사라진 후였다.

“이 비겁한 놈들! 흥! 그래. 내가 부담되기는 하겠지. 이제 내 손가락에서 독을 품은 차크라가 나간다는 걸 알았으니까 나한테 함부로 하지도 못할 거고, 혹시 이 자식들. 내 선물 사러 갔나? 그동안 나한테 잘못한 게 생각나서? 에이. 귀여운 자식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해 줄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 무영도 나갈 준비를 했다.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걸로는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영이 훈련을 하려고 숲으로 가는데 현신고 여학생 하나가 무영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의 소감은, ‘우와. 제이보다 못 생긴 애는 진짜 간만에 본다.’ 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무영을 바라보더니 한다는 소리가,

“선배는 그 옷 입으면 목이 굵어보여요.”

라는 거였다.

“뭐?”

일단 말은 거기에서 멈췄다.

하고 싶은 말은, ‘뭐래, 저 병신?’ 이었지만 일단은 사회적인 포지션을 먼저 생각하고 말을 걸렀다.

“그 옷은 안 어울리니까 입지 마세요. 다른 옷 없어요?”

여자애는 자기가 무영의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헐.”

'미쳤나봐.'

무영은 부들부들 떨었다.

“너 뭔데?”

무영이 공격적으로 말했다.

“내 목 원래 굵거든? 그러니까 신경쓰지 마시지? 아오, 진짜. 진심으로 말하는데 나한테 아는 척 안 해 줬으면 싶거든?”

어떻게 저한테는 핑크빛 기류의 기미조차 없는 건가 하면서 숲으로 들어간 무영은 눈에 보이는 나무들을 마구 쓰러뜨려 버렸다.

그러고는 주구장창 그 옷만 입고 다니기로 작정했다. 나중에 보다못한 시현이 그 옷을 쓰레기통에 갖다 박아버릴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되었다. 시작될까 말까 하던 무영의 봄날은 시작도 못하고 그렇게 끝이 났다. 무영은 억울하다고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 왜 저한테는 꼭 저같이 생긴 것들만 접근을 해 오느냐는 거였다.

효재와 시현은 무영의 슬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시간이 없었다. 효재는 여자 기숙사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기숙사에 들어가는 여학생에게 제이를 불러 달라고 해서 제이와 함께 산책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 전부터 제이에게 호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레이드를 하면서 괴수들을 짓이겨버리는 제이의 모습을 보고 반해버렸다. 채미영 사건을 제이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밤마다 이불을 차게 됐지만 그래도 아직은 너무 늦은 게 아닐 거라는 생각에 조금씩 용기를 내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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