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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감응기에는 콜로니 내부에 존재하는 괴수의 차크라가 잡힙니다. 여러분은 차크라로 괴수의 존재를 감지하시게 될 거예요. 괴수의 머리 옆에 나타난 동그라미는 콜로니 내의 서열을 나타낸 라벨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동그라미의 색깔이 짙고 크기가 클수록 상위 포식자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분류는 계속해서 바뀔 거예요. 지금 감응기가 포착한 건 활동이 가장 왕성한 순서로 16종이예요. 지금은 가장 낮은 개체가 16번째로 강한 걸로 표시되죠. 하지만 감응기가 새로운 괴수를 발견하게 되면 변동이 생기겠죠. 지금 최상위 포식자라고 표시된 녀석보다 더 강한 녀석이 감응기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나머지 괴수들이 한 단계씩 아래의 레벨로 낮춰져서 표시가 될 거예요.”
지연이 말했다.
하필 예를 들어도 끔찍한 것을 예로 드는 바람에 사람들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F급 헌터들은 다른 사람들이 시키지 않아도 자기들이 할 일을 알았다. 동그라미의 색깔이 가장 연하고 크기가 작은 괴수들의 서식지를 집중적으로 찾고 그 괴수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면 되는 거였다. 그 위의 D급이나 C급들은 자기들이 어떤 괴수들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했지만 F급들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헌터들은 모니터를 살피다가 베로니카 공격대에 차출되었다. 대부분이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격대에 편성되어 활동을 하는 헌터들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원을 맞춰 임시 공격대를 꾸려서 늪으로 공략을 하러 갈 겁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 호흡을 맞춰보고, 콜로니에는 내일 들어가는 걸로 합니다. 그동안 클랜 A와 베로니카 공격대가 콜로니 내부 탐사를 할 겁니다. 감응기로 분포도를 만드는 일도 같이 진행될 거예요. 늪에서 돌아오면 그때 그 내용들을 토대로 브리핑을 하고 내일 다 같이 콜로니를 공략하러 가는 겁니다.”
사람들은 결전의 날이 다가왔음을 느끼며 각자 무기와 장비를 재점검하고 새로 만들어진 임시 공격대에 투입돼 각자에게 할당된 늪을 향해 떠났다.
콜로니 앞에 베로니카 공격대의 대원들 여남은 명과 클랜 A들만이 남겨졌을 때 지연과 태인, 조위가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콜로니에 그 녀석들도 있대요. 우리가 공략했던 괴수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게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어요. 헤르겐이랑 레드런요. 기억 나시죠?”
태인이 서규태를 바라보며 말하자 서규태가 웃었다.
“기억 나죠.”
헤르겐과 레드런은 클랜 A가 베로니카 공격대를 처음 만났을 때 베로니카 공격대와 함께 공략을 시도했던 콜로니에서 마주쳤던 괴수들이었다.
괴수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괴수라는 생각을 했지만 베로니카 공격대는 클랜 A에게 아무 것도 아닌 그런 괴수들을 처리하는데도 애를 먹고 있었다.
헤르겐은 여러 개의 촉수에 독을 품고 있었고 평소에 콜로니의 벽에 붙어서 생활했지만 움직이기도 했다. 헤르겐의 촉수에 있는 독은 맹독이었지만 그것이 같은 콜로니에 살고 있는 스켈이라는 괴수에게는 통하지 않아서 헤르겐은 스켈의 무기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켈에게 몸을 붙잡힌 채, 스켈을 공격하려는 괴수들에게 독을 쏘면서 전투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스켈은 이족 보행을 하는 괴수로 조류와 아주 가깝지만 날개가 달려 있어야 할 곳에 팔이 있었고, 그 팔 때문에 날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기능성이 떨어지는 괴수였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보니 헤르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헤르겐을 손에서 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손에 들고 있던 헤르겐을 적의 공격으로 잃거나 하면 다른 손에 남아있던 헤르겐을 찢어서 나눠쥔 채 상대를 공격했다.
두 종에 대해서는 쉽게 마스터를 했다는 생각에 클랜원들은, 특별히 한 것도 없이 마음이 편해졌다.
“레드 런도 있습니다.”
조위가 거들었다.
“레드 런도요? 그럼 세 종은 날로 먹고 가네요? 탑시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아니까 네 종은 알고 가는 거군요.”
강현이 말했다.
레드 런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해서 레드 런을 우습게 볼 것은 아니었다. 레드 런의 등에는 가시처럼 생긴 게 달려있었는데 그게 자유자재로 크기가 늘어났다. 레드 런의 등에서 그게 튀어나와서 사람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와 찌르고 들어가버리면 레드 런에게 찔린 그 자리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레드 런에게 찔려도 신경 쓰이는 정도의 통증이 아니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그냥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금씩 나오던 피가 그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헌터들을 골치아프게 만드는 게 바로 레드 런의 공격이었다. 그 자체로는 위협적이라고 볼 수가 없었지만 실혈이 계속 되다보면 괴수로 가득찬 콜로니에서 쓰러지게 된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레이드를 하는 도중에도 자기가 부지불식간에 레드 런에게 물리지 않았는지 자주 살펴야 했고, 약간 따끔한 느낌만 들어도 레드 런이 주위에 있다가 공격을 한 것은 아닌지 바로바로 확인을 해야 했다.
“여기. 벽에 붙어서 별로 이동이 없는 놈들이 헤르겐일 것 같아요.”
지연이 말하자 조위도 그게 맞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이게 헤르겐이라고 한다면. 헤르겐을 양손에 들고 팔을 내두르면서 움직이는 이 녀석들이 스켈이겠죠?”
"그렇겠네요. 헤르겐의 차크라가 두 개씩 움직이는 걸 보니까 이게 스켈이 맞겠어요."
조위가 말하자 태인이 조위를 바라보았다.
“스켈은 어떻습니까? 베로니카 공격대가 스켈은 처리할 수 있습니까?”
태인이 물었다.
감응기에 나타난 라벨을 봤을 때 스켈은 콜로니 내 서열 11위였다. 그때까지 감응기가 발견한 차크라는 열 여덟 개로 불어나 있었다. 그 중 11위라는 것은, 그 콜로니에서는 스켈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냥 헤르겐의 독을 이용해서 겨우겨우 신변 보호나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켈은. 예. 스켈은 할 수 있습니다.”
조위가 말했다. 어째 대답이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클랜 A도 솔직하게 대답을 해 보라고 재촉을 하지는 못했다.
스켈 정도는 베로니카 공격대가 스스로 해치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조위가 그렇게 대답해주는 게 오히려 고마웠던 것이다.
“말 하는 순간. 하나가 더 나타났네요. 그리고 등장하자마자 1순위로 등극했어요. 이 표시 보이세요?”
지연이 크고 분명하게 빛나는 동그라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콜로니 가장 안 쪽에 있어요. 자기가 먼저 나서지는 않겠다는 생각인 것 같은데요? 이 괴수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조위.”
지연이 말했지만 조위는 고개를 저었다. 콜로니의 가장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데 그런 놈을 조위가 만났을 리가 없었다.
“다른 놈도 있습니까? 그 놈이랑 같은 종요.”
조위가 묻자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하나예요. 지금까지 감응기에 반응을 보인 것들로 먼저 분포도를 뽑아줄게요. 최상위 포식자부터 차순위로 4순위까지예요.”
지연이 분포도를 만들어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보내주고 이익헌에게 다가갔다.
“사장님한테는 특별히 부탁할 게 있어요. 채준형 무기 마스터님의 특명이라 저도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크게 힘든 일도 아니니까 그냥 해 주세요.”
“아, 뭔데! 자꾸 그런 부탁을 나한테까지 끌고 오지 말라고.”
이익헌이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봤자 자신에게 선택의 자유는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부리는 투정이었다.
“어려운 건 아니예요. 탑시스 알에 있는 성분 중에 채준형 마스터님한테 필요한 게 있는데 그걸 좀 구해달라는 거거든요.”
“그건 조위한테 부탁해도 되잖아. 베로니카 공격대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이 알 도둑질이라는 얘기 못 들었어?”
“신선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알로 요리라도 할 거래?”
“궁금한 건 나중에 만나서 물어보시고요. 장비로 탑시스 알을 빨아들이기만 하면 돼요. 그럼 통으로 필요한 성분만 바로 걸러져서 들어가고 다른 것들은 바로 버려질 거예요. 불필요한 것들로 통을 채울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
“탑시스 알을 장비로 빨아들여서 시체를 콜로니에 다시 버리라고? 그러면 탑시스들이 나를 가만히 놔두려고 할 것 같아? 알을 잃은 엄마들 생각은 해 봤어?”
이익헌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의미를 너무 부여하지는 말자고요. 괴수잖아요. 괴수한테 사람들이 죽은 걸 생각하세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고 잔인하게 죽었는지 알잖아요. 발암 억제제를 만드는데 쓰일 수 있을 거라고 했으니까 그냥 좋게 생각하세요. 인류애도 없는 분이 이제 와서 안 어울리게 괴수애까지 주장하시지 말고요. 무겁지도 않아요. 통은 콜로니 입구에 내려놓고 안으로 쭉 들어가면서 탑시스 알이 보일 때마다 빨아들이면 돼요. 선이 계속 나올 거니까 통이 다 차거나 선이 다 되면 그때 멈추시면 되고요.”
이익헌은 어차피 자기가 거절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게 어디에 있는지 내놓기나 하라고 말했다.
지연이 가리킨 곳을 보니 소형 자동차만한 크기의 커다란 통이 서 있었다.
"저걸 다 채우라고?"
이익헌이 말하자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을 떠넘기면 누군가는 아주 열정적으로 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이익헌이 두리번거리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익헌을 바라보던 댈러스가 이익헌의 눈에 딱 들어왔다. 댈러스는 그게 뭐냐고 물었고 이익헌은 청소기라고 알려주었다.
“vacuum?”
댈러스가 다시 확인했다.
“야, 앱설루틀리!”
되는대로 아무 말이나 주워 섬기고 이익헌이 댈러스에게 작동법을 설명해 주었다. 지연이 그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그림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기에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만 했다.
“효과는 좋겠네. 탑시스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지연의 옆에서 두 사람이 하던 말을 모두 들었던 태인이 말했다.
“모성 강한 엄마들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몇 개월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알만 돌본다던데. 저렇게 하는 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요?”
강현이 물었다. 태인도 약간 의문스러운 듯했다.
“그럼 탑시스의 반응을 일단 살펴본 다음에 하는 걸로 해요. 그리고 콜로니에 같이 들어가는 사람들한테 저걸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미리 설명을 해 주고요. 탑시스가 갑자기 날뛰면 다른 사람들도 그 이유를 알아야 하잖아요.”
지연이 말했다.
설명은 태인이 맡아서 했다. 태인이 설명을 아주 잘 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콜로니에서 배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베로니카 공격대의 공격대원들은 탑시스라면 아주 치를 떨었기에 배큠의 활약을 기대했다. 그들에게 모성애 운운 했다가는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 중에는 콜로니에서 나온 괴수에게 가까운 친구나 친척을 잃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에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살벌해질 수도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지연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콜로니로 사라졌고 그 순간에 낯익은 애스턴마틴 벌칸이 빠르게 다가왔다.
지연은 차에서 허겁지겁 내리는 미키 위도에게 손뼉을 쳐주었다.
“네. 지각입니다. 써전님을 코앞에서 놓쳤어요.”
지연의 말에 미키 위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혼자 기다리려면 심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됐네요.”
지연은 감응기의 화면을 띄운 스마트폰을 들고 미키 위도의 차에 올라탔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미키 위도가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냐고요? 지금 들어갔어요.”
지연이 화면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여기가 콜로니 입구고 여기에 보이는 차크라들. 이게 헌터 차크라예요. 이제부터 시작인 거죠.”
지연의 말에 미키 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 앞에 서 놓쳤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