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5 / 0331 ----------------------------------------------
11부. 콜로니
***
“600미터를 지나면 연못이 하나 나옵니다. 수심이 20미터는 되는 것 같아요. 그 안에도 뭔가 있을 것 같긴 해요. 감응기에서 뭔가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감응기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래도 나는 여전히 거기가 좀 의심스러워요.”
조위가 말했다.
"연못에도 괴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강현이 물었다.
"그 주위에서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갑자기 물 속으로 뭔가 뛰어드는 소리요. 같이 들어온 사람들은 그대로 있었는데 말이예요."
조위가 말하자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헌터들은 주의를 기울였다. 처음은 한 발 한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이익헌은 탑시스의 알을 발견할 때마다 댈러스에게 알려주었고 댈러스는 배큠을 돌렸다. 필요한 부분들은 통으로 이동되고 대부분의 것들은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알들은 난자당한 상태여서 어미가 보면 정신적인 데미지를 상당히 받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탑시스가 떼를 지어서 헌터들을 공격했다. 가장 앞에 있던 사람들은 탑시스들이 날아오는 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앞에서부터 충분히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무기를 휘두르는 게 어려울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익헌은 지우의 엑스 블레이드를 보고 웃었다.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엑스 블레이드는, 탑시스를 상대로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지우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엑스 블레이드를 벽에 세워 놓고서 주먹으로 탑시스를 상대했다.
뒤따라오던 베로니카 공격대의 공격대원들은 지우의 주먹 한 방을 맞고 탑시스들이 그대로 죽어버리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이 각자 몇 등급의 헌터들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 중에 S급 헌터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들의 스탯에 대해 알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추측만 무성했던 클랜 A의 실력을 눈 앞에서 보면서 그들은 할 말을 잊었다.
지우만이 아니었다. 레오니드와 미하일, 야로슬라프도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탑시스를 떨어뜨렸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클랜원들의 실력도 발군이었다.
임정과 서규태가 A급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B급이었지만 누가 B급이고 누가 A급이고 S급이라는 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떨어뜨리느냐, 두 세 번의 공격으로 떨어뜨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고 한 번의 공격으로 탑시스를 떨어뜨릴 수 없는 사람들은 몇 배로 빨리 움직이면서 균형을 맞추었다.
콜로니에서의 싸움은 클랜 A에게 유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콜로니에서 괴수에게 적용되는 공격력은 늪의 시스템과 다르게 돌아갔다. 레오니드가 헌터 아카데미의 신입생들에게 알려주었던 것처럼 콜로니에서도 원칙적으로 기본 공격력을 기준으로 하기는 하지만 헌터의 공격이 얼마나 강하게 들어갔는가에 따라서 기본 공격력의 70퍼센트, 100퍼센트, 120퍼센트, 150퍼센트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클랜 A가 앞서오던 탑시스들을 압살하자 뒤따라오던 탑시스들이 주춤했다. 선두에 섰던 녀석들은 알을 잃은 녀석들이었는지 앞 뒤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지만 그 후에는 조금씩 이해관계가 먼 당사자들인 것 같았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가겠습니다.”
지우가 말했다. 나머지 탑시스들은, 공격해 오는 것들에 한해서 당신들이 해치우라는 말이었다. 댈러스는 탑시스들이 공격을 해 오는 것을 보고 잔뜩 겁을 집어 먹고 배큠을 살짝 내려 놓았다. 이익헌도 그것을 보았지만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괜히 탑시스의 알을 노리면서 불안을 가중시키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서규태도 막 그 말을 하려다가 댈러스와 이익헌의 사이에 벌써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보고 말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오십 여 미터를 가도록 괴수를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순식간에 해치운 탑시스가 서른 마리가 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오랫동안 아무 개체도 나오지 않으니 이상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헤르겐이었다.
“헤르겐이예요!”
강현이 소리쳤다. 소리친 것과 공격한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헤르겐들은 혼자 떨어져서 살아가는 개체들이 아니어서 한 마리가 발견된 후에 주위에서 여러 마리가 동시에 발견되었고 클랜원들이 먼저 헤르겐을 해치우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베로니카 공격대에게 뒤에 남은 것들을 맡겼다.
이제 헤르겐 정도는 베로니카 공격대도 어느 정도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클랜 A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약한 짐승들을 위해서 약한 사냥감을 넘겨주지 않으면 그들은 사냥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도태하다가 멸종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레드 런도 금방 나올 것 같은데. 헤르겐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레드 런들이 있었지 않아요?”
임정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무언가가 튀어나왔지만 레드 런은 아니었다. 스켈이었다. 스켈은 두 발로 선 채 난감한 얼굴로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스켈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스켈을 조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왜 생겨난 건지 알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눈 아래에 부리가 달려 있었고, 날개가 있을 자리에 자라있는 팔의 끝에는 여지없이 헤르겐이 들려 있었다.
스켈은 헤르겐이 대단한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것을 양손에 들고 의기양양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헌터들이 헤르겐의 씨를 거의 말리다시피하고 자기 앞에 선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생긴 게 정말 끔찍하네요.”
세진이 말했다. 스켈은 세진의 말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세진을 향해 헤르겐을 들고 달렸다. 여전히 많은 괴수들이 클랜 A에서 가장 약한 타겟을 선정할 때 세진을 노렸다. 스켈의 속도는 빨랐지만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야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였다. 클랜 A의 클랜원중에는 스켈의 속도에 놀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건 그냥. 빨리 해치우고 가죠. 징그러워요.”
세진을 노리고 달려가던 스켈은 다음 차례에 바닥으로 내디뎌져야 할 다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임정의 칼에서 검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임정이 칼을 다시 휘두르려고 했을 때 조위가 다가왔다.
“스켈은 저희 공격대가 처리하게 해 주시죠.”
임정은 기꺼이 그들에게 스켈을 양보했다. 베로니카 공격대의 공격대원들은 며칠동안 굶은 사람들이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잔혹한 분노를 스켈에게 풀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 있는 클랜원들을 향해 조위가 다가왔다.
“스켈이 콜로니에서 나왔을 때 두 가족이 몰살됐었어요. 갓난 아기도 있었는데 스켈은 아기의 내장만 꺼내서 먹고 아이 시체를 버렸어요.”
조위가 말했다.
“그 중에는 우리 공격대에 속해있던 헌터도 있었습니다. 죽은 갓난 아기의 아버지였죠. 그를 묻으면서 언젠가 복수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조위의 말을 듣고 클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 스켈은 어떻게 됐습니까?”
서규태가 조위에게 묻자 조위는 정말로 힘겨운 싸움이었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헌터 중에 더 이상의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많은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레이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후유 장해를 얻었다고 말했다.
베로니카 공격대원들이 스켈을 해치우는 동안 클랜 A는 앞서서 길을 개척하며 나아갔다. 임정의 공격을 받은 후라서 스켈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베로니카 공격대원들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렸다. 헌터의 비명 소리였다. 가장 뒤에 있던 임정과 야로슬라프가 베로니카 공격대원들을 향해 달려갔다. 스켈의 반격이었다. 스켈이 헌터들의 공격에서 빠져나와 저를 공격하던 헌터의 목을 부리로 물어뜯고 목뼈를 으스러뜨리는 중이었다. 날아오른 야로슬라프가 스켈의 머리를 내리치고 들고 있던 칼로 연이어 공격을 가하자 스켈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임정은 부상을 당한 헌터에게 달려갔다. 헌터의 목은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그대로 놔두면 수 분만에 죽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임정은 긴장도 하지 않은 얼굴로 자세를 잡고 그에게 치유 차크라를 쏟아부었다. 다른 클랜원들이 달려 왔지만 임정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로도 충분하니까 어서 가요.”
이미 야로슬라프도 스켈을 끝내 놓은 후였다.
"괜찮겠어?"
지우가 물었다.
"금방 끝나요. 먼저 가요. 곧 뒤따라 갈게요."
임정이 말하자 지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누나. 기다릴까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하지만 임정은 고개를 저었다. 앞에 어떤 괴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전력을 낭비하게 할 수는 없었다.
“됐어. 먼저 가. 끝나는대로 나도 갈게.”
조위도 임정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서 야로슬라프를 뒤따라 갔다. 남아있던 베로니카 공격대원들은 임정이 헌터를 고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스켈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는 손 쓸 방법도 없이 죽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스켈에게 동료를 잃은 경험이 있었기에 그들은 어느 정도 그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임정이 그를 살려내고 있었다.
몇 분쯤 흐르자 피가 멈추고 살이 서로 붙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동료가 살아났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에 대해서는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우리 동료를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고개를 들고서야 임정은 자기에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베로니카 공격대에 여자 대원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반가워요.”
임정이 말하자 여자 대원은 자신을 쥬드라고 소개했다. 임정에게 치료를 받은 헌터는 이제 일어서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다시 걸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도 몇 번이나 임정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차크라를 많이 써서 혹시 몸에 무리가 생긴다거나 하는 건 아니예요?”
그가 물었다.
임정은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곧바로 클랜원들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고 조금쯤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쉬어야 했기에 임정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쥬드가 임정과 보조를 맞추면서 그 지역의 늪에 나타나는 괴수와 자기가 공략했던 괴수들에 대한 얘기를 해 주었다. 쥬드는 가끔 임정이 한 번도 보지도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얘기를 해 주어서 그 시간이 임정에게 꽤 유익했다.
“새로 나타난 괴수 중에 라이어 버드라는 괴수가 있어요. 한국에도 그 괴수가 나타나나요?”
쥬드가 물었다.
“라이어 버드요? 거짓말쟁이 새라는 말이예요?”
임정이 관심을 가지고 되물었다.
“네. 어떤 사람들은 흉내쟁이 새라고도 하는데 그 새는. 생긴 건 그렇게 괴상하지 않은데 정말 까다로운 공격을 해요.”
“독을 가졌나보죠? 아니면 부리랑 발톱이 아주 날카로워요? 한국에 그런 괴수가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미키 위도가 라이어 버드에 대해서 기사로 다루려고 했는데 새로운 일이 계속 일어나서 자료를 보충해야만 했어요. 라이어 버드로 인한 피해가 계속 발생했거든요."
"해독제가 없는 맹독을 가지고 공격을 하는 건가요?"
임정이 물었다.
날개를 가진 괴수가 공략하기 까다롭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류 괴수가 독창적인 공격 방법을 갖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