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259화 (25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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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시현이 옥상 위에서 차크라를 뿜고 그것으로 블랙 서커들을 일순간에 얼려버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까무라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는데 더 놀라운 일이 그 뒤에 벌어졌다. 레이드가 끝나고 클랜 A의 핵심 멤버인 치안대장 임정이 건물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더니 시현을 격하게 끌어안았던 것이다.

시현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은 보였지만 시현이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 입모양을 보고 시현이 뭐라고 하는지 전부 알아들었다.

엄마!

'엄마래. 엄마라고? 어떻게 엄마야?'

현신 고등학교 학생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그거였다. 부모가 없어서 현신 고등학교에서 천민 취급을 받으면서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을 이루고 있던 녀석이 어떻게 그 상황에서 치안대장을 보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모두가 멘붕을 겪었다. 설마 모두가 그랬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모두가 그랬다.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 가까운 녀석들일수록 시현을 괴롭히는데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퇴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 녀석도 적지 않았다. 유기태가 가장 빨랐다. 유기태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대단한 추진력을 보였다.

민효재의 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클랜 A와 함께 있는 민효재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천민이! 저 천민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들부들 떠는 녀석들이 많았지만 그래봐야 클랜 A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민효재였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길무영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이틀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길무영이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웃기는 일이기는 했다. 시현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다. 자기한테도 부모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믿지 않은 것은 자기들이었다. 그런데도 길무영은 혼자서 멋대로 배신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시현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비티 때만 해도 그랬고 미키 위도의 자료와 사진을 보고도 느꼈었다.

하지만.

하지만.

수많은 '하지만'에 깔려 길무영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길무영은 하루 종일 방에 처박혀서 벽만 보고 한숨을 쉬었다.

주인이 없는 두 침대를 오고 가면서 드러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바닥 근성이 생겼는지 바닥으로 내려가서 자리를 펴야 잠이 왔다. 어이가 없었다.

안시현과 민효재의 소식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새 그들의 소식을 탐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뭐냐, 이거? 천민들이 왜 이렇게 된 거야, 건방지게?”

그래도 방을 지키고 있다가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제 방을 향해 가까워지면 귀를 잔뜩 기울이고 혹시 천민놈들이 돌아온 건 아닐까 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윤해민 교수와 함께 두 녀석이 떠났을 때는 잠깐 갔다 올 것처럼 갔기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긴. 오래 있다 올 거라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살갑게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다. 만약에 인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면, '뒤지지나 말고 와, 븅신아.' 라는 정도의 말이나 했을 것이다. 거의 확실했다.

입맛도 없었고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녀석들이 같이 있을 때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이제는 주위가 너무 고요하니 잠이 오질 않았다. 아침에는 안시현이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밟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몸을 움츠리고 피하는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밟아주는 놈이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재미도 없어져 버렸다.

자기가 어느새 이 천민놈들한테 길들어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약이 올랐다. 두 놈이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는데 허공에 대고 혼자 그렇게 진술을 해 놓고서, 길무영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까지 찾아가면서 미국 신문 기사들을 찾아 정독을 했다.

그렇게 두 녀석의 소식을 챙기던 길무영의 눈에 희한한 기사가 발견되었다. 안시현이 괴수 차크라를 가진 괴수라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에는 찬반 댓글이 극렬하게 갈리며 달렸는데 시현을 두둔하는 쪽의 화력이 달리는 것 같았다.

길무영은 즉각 노트북을 켜고 허벅지 위에 노트북을 올렸다. 준비는 완료되었다. 내 방 새끼들 건드는 놈은 가만 안 둔다는 생각으로 한참동안 키보드로 전쟁을 하다가 오랜만에 학교에 나갔다. 드르르륵 교실 문이 열리자 안 그래도 이런 저런 고민으로 얼굴이 초췌해져있던 녀석들이 퀭한 눈으로 길무영을 바라보았다. 저 미친 놈은 또 무슨 일로 저런 표정을 짓고 나타난 건가 하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각자 스마트폰 꺼내.”

길무영이 교단으로 올라가서 말했다. 그러고는 그들이 접속해야 할 주소를 칠판에 적어주었다.

“발라버려, 이 새끼들. 내 방 새끼들을 까고 지랄이야. 병신 새끼들! 실컷 가서 좆빠지게 레이드해서 구해주니까 괴수라고? 각자 댓글을 다섯 개씩은 달아. 다들 영작 되잖아. 되지?”

꿀먹은 벙어리 몇 놈이 출현했다.

“좆까고 입 닥치라고라도 써.”

길무영이 말했다.

“그건 뭐라고 하는데?”

“모르겠으면 퍽큐 퍽큐라고 써!”

“그런 건 금지어 아닐까?”

“네가 써보고 알아봐. 병신아. 금지어면 입력이 안 되겠지! 그럼 별표 하나씩 섞어서 써!”

시현의 반 녀석들은 억눌렸던 감정을 그 사이트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폭발시켰고 대한민국 키보드 워리어의 실력을 세계 만방에 펼쳐보였다.

처음에 시현을 겨냥해 저격 글을 올렸던 놈은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현신 고등학교 학생들에 의해서,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엄마는 대단한 활약을 한 창녀가 되어 있었고 그 집 식구들은 근친상간을 한 패륜아들이 되어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욕들이 깔끔하게 영작이 되어 악플로 현현했다.

길무영은 의기양양해졌지만 자기가 이룬 성과를 천민이 모를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로는 영 기분이 좋질 않았다. 그래서 천민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여론이 좋아지는 건 무조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특별히 알려주기로 했다.

시현은 길무영의 전화를 받고 이 자식이 아직 살아있기는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웬일이냐?"

"거기까지 가서 다굴 당하고 있냐, 병신아? 네가 다굴당하는 것 같아서 내가 여기서 여론전을 펼쳐줬다. 키보드 워리어들 다 동원해서 병신들을 아주 뭉게놔 버렸어."

"누가 그러래?"

"누가 그러라고 하긴? 내가 언제 네 말 듣고 했냐? 웃기는 놈이네. 어쨌거나. 그런 줄 알고 있으라고. 거기에서 여론이 좋아지면 그건 다 내 덕인줄 알라고. 네가 잘 해서 여론이 바뀌는 거라고 오해할까봐 전화했다."

"지랄을 해라, 인마. 빨리 돌아가서 저 새끼를 또 밟아줘야 못 까불지. 너. 나 없다고 내 침대에 올라가서 자면 뒤질 줄 알아. 베개에다 침 흘리지 말고. 머리카락 떨어뜨리지 말고. 네 자리에서 처 자. 알았어?"

"네 베개? 네 베개를 내가 왜 베? 거기다가 발 올려놓고 자는데?"

"이런 개새끼! 가면 너는 뒤졌어."

"근데 언제 오냐?"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라는 듯이, 무관심을 가장하며 길무영이 물었다.

"뭔 상관이야, 네가."

"너무 오래 걸리면 휴학 신청서 써 주래? 아니면 자퇴 신청서 써줄까?"

"그러든가."

"왜? 진짜 학교 그만 다니게? 거기에서 다니기로 한 거야?"

길무영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가 자기가 너무 놀란 표시를 냈다고 생각하고 큼큼거렸다.

"현신 고등학교에 내가 없으면 현신고는 누가 지키냐? 다들 병신들만 있는데."

시현이 말했다.

"개새끼. 지랄하고 있네. 조용히 하고 빨리 튀어오기나 해, 인마."

"효재가 먼저 갈 거니까 효재나 챙겨줘."

"내가 그딴 천민 새끼를 왜 챙겨? 내가 그 새끼 베이비 시터냐?"

"효재한테 미리미리 잘해 놓는 게 좋을 걸?"

"왜?"

"그냥 잘 하라고. 끊어. 내 침대 올라가면 뒤질 줄 알고."

"무슨 재주로?"

"이제 나는 천민이 아니잖아. 너도 이제 알아서 기어야지. 븅신아."

길무영은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자기가 뭘 믿고 깝친 건지 이해가 안됐다.

"이제 뭔가 좀 깨달았냐?"

길무영이 갑자기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시현이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나 갈 때까지 분위기 정리 잘 해 놔라. 알았어?"

"그런 게 어딨어. 한 번 천민이면 영원한 천민이지."

"영원한 천민 좋아하시네."

"그런 거야. 맞는 거야. 그리고 이런 시대에 무슨 부모 직업 따라서 줄을 세우고 그래. 자기 실력으로 하는 거지."

길무영은 무조건 우겨댔다. 이제는 우기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네 실력으로 헌터 각성을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서? 그래비티도 못 드는 놈이?"

시현이 본격적으로 길무영을 놀렸다.

"그건 지금 좆나게 연습 중이니까 너 오면 들고 있을 거야. 주둥이로도 들 수 있을 거다. 아무튼. 거기 새끼들한테 다굴당하지 말고 살아서 돌아와라. 천민아."

"이 개새끼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서 낄낄거리다가 시현은 전화를 끊었다. 사정도 모르고 임정은, '친한 친구 전환가 보구나?' 라고 말했다.

'이 새끼가요?' 라고 했다가 시현은 말이 너무 거칠다고 혼이 났고, 엄마란 이런 존재구나 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꼬투리를 잡아서 혼을 내려고, 아들이 하는 말에 내내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잔소리가 싫지 않아서 시현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뭔가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그때마다 임정은 시현을 바라보고 있다가 웃었다. 시현이 바라봐주기만 기다리면서 거기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도 피곤할 것 같고, 이제 방에 들어가서 쉴 때가 된 것 같은데 엄마가 들어가질 않으니 시현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배는 안 고프니? 엄마가 뭐라도 만들어줄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임정이 묻자 시현이 환한 얼굴로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임정의 등 뒤에서 지우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엄마. 지금은 배불러요. 나중에요."

지우가 임정의 등 뒤에서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시현을 보고 웃었다. 시현은 아빠가 왜 그런 건가 하다가, 언젠가 용하 삼촌에게서 엄마의 요리 솜씨에 대해서 들었던 게 떠올라서 혼자서 웃었다.

'너희 엄마가 재앙을 일으키는데는 늪도, 괴수도 필요없어. 그냥 소금 봉지 하나만 있으면 돼.'

용하가 시현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 배고프면 언제든지 말해."

임정은 아쉬워하면서 말했고 시현을 위해서 언젠가 꼭 실력 발휘를 하고야말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런데 시현이 너. 친구들한테 좋은 말을 써야겠더라. 네가 만나는 사람들이랑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임정이 말하자 지우가 갑자기 웃었다.

"당신이 그런 말 하니까 좀 웃긴다."

지우가 말했다.

"내가 왜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편은 아니잖아. 친구도 별로 없고. 좋은 말도 안 쓰고."

"왜요? 엄마가 어땠는데요?"

시현이 묻자 지우가 엄마의 전설을 아직 못 들었냐면서 시현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치안대 지바겐이 나타나면 헌터들이 전부 오줌을 지릴 정도로 긴장을 했는데 엄마는 치안대 중에서도 짱이었지. 치안대장이었거든. 지금도 마찬가지고. 엄마가 치안대장이라는 건 한동안 비밀이었어. 아주 오랫동안 비밀이었지. 엄마가 치안대장이라는 걸 모르고 치안대원 중에 엄마한테 깝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나중에 짤렸지. 엄마한테 깝치면 그렇게 돼. 하급 헌터들한테 함부로 군 상급 헌터 팔을 그 자리에서 잘라버린 적도 있고."

"팔을 잘라요?"

시현이 기겁을 하며 물었다.

"응. 헌터 타투가 있는 오른 팔을 자르면 시스템이 그 사람을 더이상 헌터로 인정해주지 않거든. 헌터로서의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엄마가 그랬다고요?"

"그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할만 했어. 하급 헌터가 죽도록 방치한 거나 다름이 없었거든. 그런 사람은 헌터로서 이미 자격이 없다고 봐야지."

"그런 사람이 있어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시현이 물었다.

"헌터 세계도 사람들이 사는 세계니까 별별 사람이 다 있지. 아. 그거도 생각난다. '한 가지는 새겨라. 갑질은 갑이 하는 거다. 쓰레기야.' 그런 말도 했고. 아 맞다. '네가 좋아하기 시작했으면 네가 지켜. 다른 사람이 건들어서 싫다는 거야?'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어."

"누구한테요?"

"아마 김강현일 걸?"

"누구에 대해서요?"

"누구가 아니라. 강현이 무기. 강현이가 봐둔 무기를 다른 사람이 채가려고 했거든. 강현이가 그걸 포기하려고 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말했지."

"당신은 쓸데없는 걸 왜 다 외우고 있어요? 시현이 괜히 겁 먹게."

임정이 물었다,

"내 머릿속에는 임정 어록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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