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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58화 (25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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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시현의 모습은 굳건했다.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참혹했지만 시현은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마치 제황 같았다. 해민은 시현을 보면서, 시현이 드디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비단 해민만이 아니었다. 용하도 가슴 깊이 안도감과 격한 감동을 느꼈다.

임정은 레이드에 전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자력에 끌리듯이 자꾸만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시현은 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면서 제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엄마가 자기를 바라보다가 방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조금 더 레이드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임정은 자꾸 눈팔이를 하다가 지우에게 경고를 들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마음은 이미 옥상 위로 올라가 있었다. 모두가 그런 임정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냉정하기만 한 치안대장이 시현이를 보고서 마음이 녹아 제대로 걸음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기까지 했다.

야나는 말 안 듣는 주인들 때문에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였다. 야나가 조용히 다가와 지우의 옆에 선 채로 차 문을 확 여는 바람에 지우는 불의의 공격을 당하고 바닥에 넘어졌다. 굴욕적인 자세였지만 웃음이 나왔다.

“야나. 장난하지마.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잖아. 그리고 내 아들이 보고 있다고. 엄청 멋있게 보여야 돼.”

지우가 말했지만 야나는 그걸로는 화가 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현이 나타나기 전까지 야나는 그들이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전부 죽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 지우에게 세진이 다가왔다.

“야나가 눈을 내리면 어떨까요? 블랙 서커는 어쨌거나 날아서 이동해야 하는 녀석들이잖아요. 야나의 무거운 눈덩이에 맞으면 블랙 서커의 움직임도 둔해지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라고 제 생각을 말하는 중이었는데 이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정교한 조작이었는지, 눈송이가 각각 블랙 서커를 겨냥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야나가 내리는 눈송이는 일반적인 눈송이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눈싸움을 할 때 비열한 녀석들이 눈뭉치 속에 돌을 넣어서 뭉쳐 만든 눈덩이처럼, 그 하나 하나가 위력적이었다.

야나의 눈덩이에 맞은 블랙 서커들은 난생 처음 맞는 눈덩이에 비틀거렸고 어떤 것들은 아예 바닥에 처박히기까지 했다. 눈송이에 맞았다고 죽지는 않았지만 일단 데미지를 입기는 했고 다시 날아오르느라고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그렇게 블랙 서커의 속도가 느려지자, 미국인 헌터들이 블랙 서커를 상대했다. 그 전까지는 감히 자기들이 나서서 뭔가를 해 보겠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이 정도의 블랙 서커라면 그들도 충분히 클랜 A를 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전설적인 클랜 A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들은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 레이드를 해 보고 싶었다.

“그럼 우리는 워즈를 맡으면 되는 건가요?”

미하일은 그렇게 말하고 어느새 워즈를 향해 달려갔다. 남은 개체는 여섯 개였고 워즈는 분노에 떠는 클랜원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워즈를 구성하고 있던 각 개체가 무자비하게 분리되었고, 달아나려던 개체들이 갈 길을 잃은 채 헌터들에게 붙잡혔다.

워즈의 가슴팍과 머리는 하나의 개체였다. 그 개체만큼은 끝까지 쉽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러나 클랜 A도 이제 더 이상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미키 위도의 케이블 TV로 레이드가 생중계되고 있었고, 무엇보다 시현이가 그들을 보고 있었다.

“블랙 서커가 더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야나를 믿고서 워즈를 해치우자고.”

지우가 강현에게 말했다.

본체를 끝내지 않는 한 블랙 서커는 계속해서 만들어질 터였다. 블랙 서커들이 다시 폭풍 성장을 하려는 것을 보고 지우가 강현에게 피하라는 신호를 보였다.

“숙주가 일시적으로 죽으면 이것들도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할 거야.”

지우는 엑스 블레이드에 차크라를 모았고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워즈의 목을 쳐냈다. 다른 개체들의 공략을 끝낸 클랜원들이 워즈에게 달려와 딜을 퍼부었다. 지우의 예상대로 블랙 서커는 그 상태로 성장을 멈추었다.

“진작 이렇게 하지 그랬어요.”

강현이 말했다.

“내 아들이 다른 블랙 서커들을 처리해줘서 이게 가능해진 거야. 그리고 야나 덕도 본 거고. 아까처럼 블랙 서커가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워즈의 목을 쳐낸다고 해도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을 거야. 이미 성장해서 날아간 블랙 서커들은 계속 우리를 공격했을 테니까.”

지우가 말하자 강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들 자랑이 시작되겠네요. 하긴. 시현이 정도면 입 열 때마다 자랑해도 돼요.”

강현이 말했다.

워즈는 마침내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블랙 서커도 자라나지 않았다.

임정은 워즈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시현을 향해 달려갔다. 지우도 시현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그때 이익헌이 지우의 팔을 잡았다.

“왜요?”

지우가 익헌을 바라보았다.

“시현이가 차크라를 쓰는 거. 그게 생중계됐어요.”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는 놀란 얼굴로 주위를 돌아 보았다. 클랜원들이 모두 지우를 바라보았다.

“미키를 먼저 만나봐야겠군요.”

지우가 말하자 서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키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서규태가 말한대로 미키 위도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미키 위도의 표정을 본 지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안하다는 말을 준비하고 달려오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미키! 방송에 나간 거예요?”

지우가 물었다.

“미안해요. 일이 이렇게 될지 몰랐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끝까지 싸울 거라고 약속할게요. 시현이가 블랙 스왈로워를 지킨 거예요. 미국 정부가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들을 시현이가 살린 거라고요. 사람들도 알 거예요. 누가 괴수인지 말이예요. 이미 그런 반응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번에는 절대로 이전처럼 그냥 숨어버리지 마세요.”

미키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증인이 돼 줄 거예요. 누가 학살자인지, 누가 자기들을 구원해 줬는지에 대해서요.”

사람들이 클랜 A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며 현장을 수습하러 달려갔다. 그들에게는 구해야 할 부상자들과 수습해야 할 시신들이 있었다. 헌터들도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은 채 클랜 A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시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강현이 지우에게 다가왔다.

“형.”

강현은 손을 펼쳐 그의 손에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 손에 다 담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여덟 개의 러프 스톤과, 전에는 본 적이 없었던 돌이 하나 더 있었다. 노란 색과 파란 색이 어우러지면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묘한 문양이 있는 돌이었다.

“이건 뭐지?”

“그러게요. 캐츠 아이 스톤이 아닌 건 분명한데. 군체를 공략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러프 스톤이 여덟 개예요.”

강현이 말하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기분 좋게 웃었지만 이익헌은 혼자서 뾰로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반칙이지. 블랙 서커를 몇 마리나 죽였는데!”

“블랙 서커는 괴수가 아니었던가 보죠. 괴수였다면 일격을 당했다고 죽어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죽었잖아요.”

태인이 말했다. 자기도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블랙 서커 한 마리당 러프 스톤이 떨어졌다면!

“어쨌거나 레이드도 끝났으니까 적어도 몇 분 동안은 시현이만 봐야겠어요.”

지우가 말을 하자마자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서로 자기가 먼저 가겠다고 유치한 다툼을 벌이면서 시현에게로 달려갔다.

16년만의 재회였다.

그 중에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있다는 것은 시현에게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 두 사람까지도 새로 소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시현의 뇌 용량으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이야아아. 시현이 머리 작아진 거 봐라.”

태인이 말했다.

“팔은 길어졌어요.”

강현이 말했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시현은 도대체 자기 머리가 얼마나 컸다고 이 사람들이 자기만 보면 머리 얘긴가 했다.

하긴. 도토리 머리를 하고 용하의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머리가 좀 과하게 크긴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임정은 자기보다도 훨씬 커진 시현을 안고 또 안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효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이. 민효재. 너한테는 내가 있잖아.”

익헌이 효재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현신 고등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블랙 스왈로워라는 도시에서 벌어진 일은 모든 이슈를 제치고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미키 위도가 현장에서 생중계를 한 덕에 사람들은 매몰될 뻔 했던 도시 블랙 스왈로워가 어떻게 극적으로 구조되었는지를 생생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클랜 A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감격할 일이었다. 아무도 손을 쓰지 못하고, 그 나라 최고의 헌터들이 전부 매달렸음에도 결국 공략에 실패했던 괴수를 클랜 A가 해치우고 도시를 구했다. 더군다나 그 나라 정부가 그 도시를 괴수와 함께 묻어버리려고 군을 동원해서 폭격까지 가한 마당에, 그리고 그 나라의 헌터들이 살 길을 찾아 도망치는 마당에 클랜 A의 헌터들만큼은 끝까지 남아서 괴수를 상대하며 시민들을 구했다. 각본을 만들어서 찍어도 그보다 더 감격스러운 장면을 담기 어려울 정도로 감격적이었다.

이제 누구라도, 자기가 대한민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다 좋은데.

다 좋았는데.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꼭 환영할만한 일들이 아니었다.

특히 현신 고등학교의 상류 계층에 위치해 시현을 괴롭혀왔던 녀석들은 얼굴이 누렇게 뜰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분명히 클랜 A는 레이드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워즈가 얼마나 강력한 괴수인지는 넘쳐나는 정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엇다. 워즈라는 괴수가 여덟 개의 개체로 이루어진 군체라는 사실과, 블랙 서커라는 까다로운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클랜 A는 성공 가능이 희박한 레이드에 목숨을 걸고 뛰어든 거나 마찬가지였다.

블랙 서커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사람들의 살과 피를 빨아먹는 것을 그들도 TV를 통해서 전부 볼 수 있었다. 블랙 서커에게 공격을 당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쓰러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TV를 보던 사람들은 레이드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워즈와 블랙 서커를 상대로 싸운 헌터들이 클랜 A라는 것은 나중에 미키 위도의 멘트를 듣고서야 알았기에 그들에 대한 믿음은 더욱 없었다.

그런데 그 흐름을 바꾼 사람이 시현이었다. 방송국 헬기를 타고 나타나서 건물 옥상에 선 채로 차크라를 뿜어대던 시현의 위용을 보면서, 그 아이가 시현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현신 고등학교에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현은 헌터 테스트를 받지도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헌터 타투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헌터가 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시현을 지금까지 꾸준히 괴롭혀온 녀석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그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거야말로 멍청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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