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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지우가 말하는 동안 커다란 응접실로 강현과 태인이 나왔다. 강현은 자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는 건 모르는 듯했고 세 사람이 자기를 보고 웃자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뭐가 묻은 줄 안 모양이었다.
목이 마르다는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시현과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강현이 얘기에 끼어들었다.
"그냥. 시현이한테 옛날 얘기 해 주고 있었어."
지우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그런데 왜 아빠를 좋아하게 됐어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났어요?"
시현이 물었다.
"그거야말로 미스테린데. 나도 아직 그 이유를 모르겠어. 네 아빠가 왜 좋았는지. 그냥 운명이었나봐. 처음에는 아빠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몰랐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됐지. 아빠가 안 보이면 불안하고 속상하고 그렇더라고. 같이 있으면 그냥 좋아지고."
임정이 옛날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너희 엄마가 아빠를 스토킹 했지. 우리는 그때 전부 사체 운반 헌터였거든? 아빠랑 나랑 강현 삼촌 모두. 우리 셋이 한 팀이었고 서규태 치안1부장님이 그때 우리 팀의 써전님이었고. 써전이 뭔지는 알지? 공략이 끝난 괴수 사체를 해체하는 일을 맡는 분 말이야. 우리는 전부 F급 헌터였고. 차크라도 제대로 못 쓰고 레이드도 못하는 하급 헌터라서 무시도 많이 당하고 그랬는데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엄마가 나타나곤 했지. 지바겐을 끌고."
태인이 말해주었다.
"그때 엄마는 몇 급이었는데요?"
"엄마는 그때부터 전설이었지. 엄마는 치유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탱커 중에 하나잖아. 그때 벌써 B급 탱커였고. 치안대에서도 서열이 높았지. 사실은 치안대장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상급 치안대원이라고만 알았는데 그래도 엄마 포스가 장난이 아니어서 우리가 엄마 도움을 많이 받았지. 서규태 써전님은 레이드 도중에 입은 부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셨고 그것때문에 레이드를 못하고 써전이 되신 건데 써전님의 다리를 고쳐주신 분도 엄마야."
강현이 말했다.
"엄마가 원래 성격이 안 좋은데 우리랑 같이 지내면서 많이 착해진 거야. 착한 사람들을 보다보니까, 아, 사람은 저래야 하는 거구나, 하면서 조금씩 착해진 거지. 엄마가 이렇게 착해진 건 다 삼촌 덕이라고 생각하면 돼. 안 그랬으면 너는 마귀같은 엄마한테 맨날 혼났을 거다."
강현이 말하며 하하하 웃었지만 그 웃음을 따라 웃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강현을 노려보는 임정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시현은 그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귀를 기울였다.
"제 얘기도 해 주세요. 저는 언제 태어났어요? 어떻게 태어났어요? 저는 언제까지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았어요?"
시현이 물었다. 시현이 품은 궁금증은 너무나 많았다.
"시현이 너는 정말 급했지. 나올 때가 안 됐는데 나와버렸어. 트레일러 안에서. 레이드를 하려고 늪 근처에 가서 레이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시현이 네가 나왔지. 아마 사막 한 가운데에 있던 늪이었을걸? 그때 늪 밖으로 괴수가 출몰했었는데 그때 시현이 네가 나왔어. 그리고 네 차크라로. 우리를 구했지. 나랑 지연 이모를."
임정은 꿈꾸듯이 말했다.
그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게 벌써 언제 일이예요? 17년도 더 된 얘기네?"
강현이 말했다.
"그러게. 시간 정말 빨리 흐르지?"
임정이 말했다.
"제 차크라로 두 분을 구했다는 게 무슨 뜻이예요?"
시현이 물었다.
"네 차크라는 특별해. 시현아. 네 차크라가 네 주변 사람들을 구한 건 그 때만이 아니었어. 그 후로도 몇 번 그런 일이 있었어. 너는 용하 삼촌을 구하기도 했어. 네 안에 있던 차크라가 그런 거긴 하지만 너는 그 차크라에 눌리지도 않고 그걸 통제하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나 준 거지. 그게 우리가 너한테 바랐던 단 한 가지였어. 그래서 고마워."
지우가 말했다.
시현은 입을 동그랗게 모은 채 눈을 크게 뜨고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요? 다른 헌터들도. 다른 헌터의 차크라도 그렇게 해요?"
시현이 물었다.
"네 차크라가 특별하다는 건. 다른 헌터들의 차크라는 대부분 그렇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지우가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보고 괴수라고 하는 거라고요?"
시현이 물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쓸 건 없어. 바보들이 하는 말이니까 신경쓰지 마. 그 사람들은 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떠드는 인간들이야. 그리고 그런 특별한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 너만 있는 것도 아니야. 아빠도 그렇고 야로슬라프, 레오니드, 미하일 모두. 훌륭한 레이더들은 괴수 차크라를 가졌지."
강현이 말했다.
"삼촌은요?"
시현이 강현에게 물었다.
"나? 나는 아니야."
"만약에 삼촌이 결정할 수 있었다면 삼촌은 괴수 차크라를 갖고 싶었을 것 같으세요?"
시현이 물었다. 따지려는 말투가 아니었고 솔직한 호기심에 묻는 말이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게 바보지. 당연한 거야. 다른 사람한테 있는 걸 뺏어서라도 그렇게 되고 싶은데. 내가 강해져서 내 팀에 도움이 되고 팀을 구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나는 강해질 거야."
강현이 말했다.
"아참. 괴수 차크라를 가진 게 또 있지. 야나는 만나봤어?"
태인이 말했다.
"야나는 원래 괴수였다가 클랜 A한테 공략 당했어. 죽은 거지. 그랬던 야나한테 아빠가 차크라를 주입해서 부활시켰고 그때부터 야나는 클랜 A를 데리고 어디로든 다니지."
강현이 말했다.
태인과 강현은 시현에게 서로 말을 하고 싶어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조금 잦아들기만 하면 방심하지 않고 있다가 치고 들어왔다. 덕분에 시현은 이쪽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익헌이 자기 침실에서 나왔다.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나. 먼저 잠든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어."
이익헌이 말하자 모두들 코웃음을 쳤다. 누가 봐도 자다가 나온 얼굴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 나온 김에 나가볼래? 야나를 열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 야나가 문을 열어줄 때는 있지만 야나의 문을 스스로 열 수 있는 사람은 야나를 공략할 때 야나의 맵에 들어갔던 헌터들로만 제한이 되는 것 같거든. 그래서 이 중에 어떤 사람은 절대로 야나의 문을 못 열지."
태인이 말하면서 이익헌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어, 정말요? 그럼 저도 당연히 안 되겠죠. 야나는 헌터만 탈 수 있어요? 저는 헌터가 아니니까 타지도 못하겠네요."
시현이 말했다.
"가보자. 해보자고. 주차장까지 가서 확인만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거잖아."
강현이 재촉을 하면서 시현의 팔을 잡아당겼다.
"보나마나 안 될 텐데요?"
그러면서도 시현은 못이기는 척 일어섰다. 주차장에 내려가자 야나의 헤드라이트가 저절로 켜졌다. 그리고 저절로 시동이 걸리더니 운전석에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움직여 클랜 A를 향해 야나가 다가왔다.
정정. 야나에게는 원래 운전석 자체가 없었다.
"어린 애한테 괜히 바람을 넣고 그래. 열릴 리가 없잖아. 시현이 얼굴을 보라고. 혹시나 하고 기대하고 있잖아. 이랬다가 결국 안 열리면 애가 얼마나 낙심을 하겠냐고. 사람들이 참 못 됐어."
이익헌이 팔짱을 끼고 선 채 말했다. 시현이 야나에게 다가갔다.
“야나. 내 아들이야. 알지?”
지우가 조용히 야나를 협박한 것은 이미 문이 열린 후였다.
“삼촌은 못 연다고?”
시현이 익헌에게 물었다.
“뭐야, 너!”
이익헌이 시현에게 달려갔다.
“삼촌은 이걸 왜 못 열어? 힘이 달려?”
시현이 물었다. 사지멀쩡한 삼촌이 왜 그걸 못 연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묻는 것 뿐이었다.
“역시 야나다. 시현이를 알아보는 거네. 야나라면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
강현이 말하자 이익헌이 더 화를 냈다.
“왜 시현이만 알아보는 건데. 바보야? 왜 나는 못 알아보는 거냐고. 어? 그렇게 같이 다녔으면 바보라도 알겠다. 야나 이 멍청아!”
"에에이. 그러지 마세요. 그러다가 혼자 뛰어다녀야 하게 될 수도 있다고요. 야나가 한 번 마음을 닫기로 마음 먹으면 십 년 넘게 안 풀어주는 거 모르세요? 혼자만 못 타게 되면 우리도 귀찮아져요. 매번 사장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잖아요."
태인이 말했다.
익헌이 화를 내건 말건 시현은 내친 김에 안에 올랐다. 안락함의 수준이 상상 이상이었다.
“야나를 탄 채로 클랜 A가 전부 늪 아래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어. 특히 콜로니를 돌 때는 야나가 있는 게 아주 좋지. 콜로니는 여러 군체들이 같이 사는 맵이라서 그런지 맵 크기가 엄청나거든. 우리는 미국에 온 김에 콜로니들을 돌아볼 거야.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늪이랑 괴수가 한 단계 빨리 나타나는 느낌이거든.”
지우가 말했다.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만약에 간다고 해도 밖에서 기다려야 되는데 심심할 걸? 같이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알지?”
임정이 말했다. 시현이 아쉬워하자 태인이 시현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네가 헌터가 되면, 하기 싫다고 해도 레이드를 해야 할 때가 와. 그때는 정말 지겹도록 레이드를 할 거다. 너무 조바심 내지마. 자연스럽게 하게 될 테니까. 헌터 테스트를 받을 때까지는 너한테 있는 시간을 실컷 누려. 연애도 많이 하고.”
태인이 말하자 임정이 눈을 크게 뜨면서 태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고등학생인데 무슨 연애예요?”
“에에에이, 뭘 그러세요. 우리 시현이도 이제 다 컸지. 우리 강현이가 한창 야동에 빠져서 심취해 있었을 때가 시현이만 했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니죠. 형. 시현이보다는 나이가 많았죠. 헌터가 된 후였는데.”
강현이 즉각 반박했다. 두 살 차이면 어마어마한 차이라는 듯이.
"저는 시현이 나이 때는 순수했다고요."
“그래? 시현이 너. 윤해민 교수랑 무슨 사이야?”
태인은 강현에게는 저언혀 관심없다는 듯이 즉각 화살을 시현에게 돌렸다.
“무슨 사이는요. 아무 것도 아니예요. 교수님이 저를 훈련시켜 주시는 것 뿐이예요.”
그냥 그 말만 하는데도 얼굴이 붉어졌다. 모두가 날카로운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지만 시현을 더 이상 추궁하는 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뭐 어때. 다다익선이라고 하잖아. 다다익선. 이 사람 저 사람 겪어봐야 정말로 좋은 여자를 만나는 거지.”
이익헌이 말했다.
“이 얘기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안시현.”
임정이 말하자 지우가 큰 소리로 웃으며 시현에게 다가갔다.
“엄마가 생긴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시현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이 임정의 귀에 안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잔소리 2막이 시작될 뻔했다.
주차장을 떠나 다시 윗층으로 올라갔을 때 해민이 응접실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현에게 윙크를 하기도 하고 화이팅을 외치기도 하면서 잠을 자러 들어갔고 시현이 해민에게 다가갔다.
“집 좋다.”
해민은 할 말이 별로 없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클랜 A가 미국에 오면 머무는 집이래요. 다른 때는 익스트림 헌터 지사에서 관리를 해준대요. 클랜 A가 미국에 온지가 꽤 되니까 아마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을 거예요."
“오래 방치된 느낌은 안 드는데. 관리를 잘 했나보다.”
“그러게요.”
“어땠어. 오늘? 부모님도 다시 뵈었고 클랜 A를 도와서 공을 세웠잖아.”
“아직도 어리둥절해요.”
“축하해. 안시현. 정말 오래 기다렸잖아.”
“그렇죠. 고마워요. 여러가지로요.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오늘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모두들 그러셨어요. 교수님한테 꼭 고맙다는 말을 해 달라고도 하셨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