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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57화 (25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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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어린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리다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혼자 달리는 것도 버거웠을 텐데 네 살이나 됐을까 하는 어린 아이를 안은 채 뛰느라고 버거웠던 것이다. 제대로 달려가지 못하는 여자의 움직임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뒤에서 달리던 사람 중 하나가 여자의 몸을 잡아 밀쳐버렸고 여자는 아이를 안은 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자기 품에 끌어 안으며 아이가 놀라지 않기를 바라면서 여자는 아이를 지키려 했다. 아무도 그들을 구해주지 못했고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살 길을 찾아 도망쳤다.

그때 그들을 보고 있던 임정이 두 사람에게 달려갔고 그와 동시에 지우와 다른 클랜원들도 똑같이 움직였다. 여자는 자신을 향해 내밀어지는 손길을 바라보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절망은, 모든 일이 끝난 후에 해도 늦을 것이 없었다.

임정이 아이를 안으려고 하자 지우가 아이를 대신 안고 달렸다. 임정은 여자를 일으켜 부축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린 아이들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대피를 시키기는 했지만 그곳이 언제까지 안전한 장소가 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지금 괴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군인들의 총구를 피해 달아나는 중이라는 거였다. 이제는 워즈와 블랙 서커의 공격보다 전투기의 폭격이 더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워즈와 블랙 서커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았다. 블랙 서커는 달아나는 사람들을 향해 날아가 배를 불렸다. 달아나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블랙 서커의 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클랜 A가 사람들의 대피를 돕는 동안 몇 몇의 미국인 헌터들은 자기들이 가진 차크라를 이용해 군인들의 저지선을 뚫고 달아났다. 여기저기에서 총성이 울렸지만 헌터 몇 명은 달아나는데 성공을 거둔 것 같았다. 군인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총을 갖고 있어도 헌터를 상대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피해가 계속 생겨났다. 괴수의 공격을 받고, 군인의 공격을 받고, 아니면 헌터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잠시 조용했던 하늘이 시끄러워졌다. 멈추었던 폭격이 다시 시작되었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었다.

지우와 서규태의 눈이 마주쳤을 때 서규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심정이었다.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동료들을 이곳으로 끌고 온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블랙 스왈로워라는 도시는 그 이름처럼 그들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이곳을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서규태에게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도 피해요.”

태인이 소리쳤다. 강현이 서규태를 챙겼다.

“이건 써전님 잘못이 아니예요. 이런 명령을 내린 쓰레기놈들 잘못인 거예요.”

서규태는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현에게 엿보였고, 강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움직여야 했다. 야나가 미리 그들에게 다가와 있다가 클랜원들을 태우려고 기다렸다. 클랜 A가 그곳에서 철수하려고 했을 때, 두둘두둘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하늘에 방송국 헬기가 날아왔다.

“미키예요!”

헬기에는 미키가 만든 회사의 케이블 TV 로고가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사람들이 미키를 알아보았다. 미키는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건물에 헬기를 착륙시키고 내렸다. 미키의 등장으로 사태가 진정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미키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마음은 각자에게 조금씩 있었다.

“나는 미키 위돕니다. 이 방송은 지금 전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의 손을 이용해서 블랙 스왈로워의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정을 했는지 모든 미국인이 볼 거예요.”

확성기를 통해 미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당신들을 위해서 싸워주기 위해서 온 헌터들. 그들이 누군지 당신들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그들을 소개하지 않았으니까요.”

미키가 말을 하는 동안은 전투기의 폭격도 멈췄다. 모든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된다는 말 때문이기도 했고, 종군기자로 활약한 적이 있는 미키의 경력과 미키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미키의 말에 잠깐이나마 귀를 기울였다.

“미국이 16년 전에 배신했던 클랜 A가 여러분을 도우려고 돌아왔어요. 그런데 미국 정부는 다시 또 그렇게 갚는군요. 이번에는 뭐라고 할 건가요? 16년 전에는 미국을 위해서 레이드를 해 준 클랜 A를 위협하고 궁지에 몰아넣고 그들의 캐츠 아이 스톤을 뺏으려고 속임수를 쓰고서 클랜 A를 범죄자 집단으로 몰아붙이더니 이제 16년이 흐른 지금, 다시 또 그 짓을 할 건가요? 당신들이 죽인 사람들이 보여요. 당신들이 죽인 거예요. 이 도시를 묻으라는 명령을 내린 당신들이!”

미키의 웅변이 계속됐다. 그러나 미키에게도 시간이 한없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군인들을 진정시킨다고 하더라도 워즈는 미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녀석이 아니었다.

지우가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서규태는 미안한 마음에 지우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야로슬라프가 서규태의 어깨를 쓸어 주었다.

"여기에서 잘못 되더라도 써전님을 원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야로슬라프가 말하자 모두들 서규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워즈가 다시 움직였고 워즈의 몸에서 블랙 서커들이 날아갔다. 클랜 A는 블랙 서커를 공격했지만 그들이 놓치는 블랙 서커가 훨씬 더 많았고 그렇게 클랜원들의 손에서 빠져나간 블랙 서커들은 사람들을 공격했다. 시민들이 울부짖었다. 그들은 군인들이 멈춰있는 동안 저지선을 뚫고 달아나려고 했다. 군인들은 자기들이 받은 명령이 있었지만 그들을 막지 않았다.

모두가 멈췄다. 폭격을 멈추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지만 조종사들은 그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

블랙 스왈로워에는 다시 일시적인 평화가 찾아왔다. 워즈마저도 잠잠했다. 차크라를 회복하는 중인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지나치게 조용했다.

방송국 헬기 한 대가 더 날아오는 것이 보이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미키 위도와 뜻을 같이 하는 방송국에서 블랙 스왈로워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계하려는 건가 보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헌터들의 시선은 이제 워즈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블랙 서커가 공격을 시작하면 한 마리도 빠뜨리지 않고 해치운다는 생각으로 잔뜩 집중을 하고 있었다. 무기를 쥔 손에서 피가 나고 살이 너덜거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상처와 통증에 관심을 두고 있는 클랜원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인 헌터들도 하나 둘, 그들의 주위로 모여 들었다. 그들도 각자의 무기를 꺼내고 블랙 서커의 공격에 대비했다.

“아직 시간이 있을까요?”

시선을 워즈에게서 떼지 않은 채 임정이 말했다.

“어떤 시간요?”

태인이 물었다.

“우리가 이 레이드에서 역전할 시간요.”

“블랙 서커의 씨를 말릴 수만 있다면. 가능할 거야.”

지우가 말했다.

“다시 싸운다는 말인 건가요?”

강현이 물었다.

지우는 대답대신 워즈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 뒤를 임정과 서규태가 따라갔다.

“하여간. 무모하긴.”

이익헌이 말을 하는 동안 야로슬라프와 미하일, 레오니드도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워즈의 갑작스런 반격에 주춤했다.

워즈가 조용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워즈가 고개를 들자 머리 밑에서 수 천 마리의 블랙 서커가 한꺼번에 날아왔다. 도무지 피할 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레오니드가 나무 벽을 만들었지만 블랙 서커들은 레오니드가 만든 나무 벽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서 날아왔다. 헌터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것도 헛된 시도에 불과했다. 한 번에 수 십 마리를 떨어뜨려도 그 많은 블랙 서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야나는 그들에게 다가와 어서 도망치자고 재촉했다. 블랙 서커의 공격을 당하고 비명을 지르던 헌터들 몇 명이 야나에게 도망치려고 했지만 야나는 다른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는 것은 거부했다.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많던 블랙 서커가 공중에서 한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블랙 서커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부서졌다. 그것이 물이 되는 것을 보고 클랜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시현이다!”

“시현이가 온 거야!”

“시현이야.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시현이밖에 없어!”

모두가 시현이를 찾으며 고개를 돌렸다.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건물 옥상 위, 방송국 헬기 앞에 그들이 서 있었다.

용하와 효재, 해민과.

그리고.

시현이었다.

시현의 주위로 얼음처럼 묘한 차크라가 피어나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기운을 지닌 투명한 색이었다.

지우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지우가 임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개했나? 내 아들이야.”

임정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말 해서 뭐하지만. 아직 레이드가 끝난 건 아니예요. 내 조카가 워낙 대단한 일을 해내서 다들 넋이 나간 모양인데.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익헌이 말했다.

“안시현. 야, 인마!”

강현이 시현을 향해서 폴짝 폴짝 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런 강현을 바라보는 시현은 뻘쭘함의 극치를 맛보았다. 자기를 보고 반가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주기는 했지만 어색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시현을 보고 용하가 웃었다.

"강현이 삼촌이다. 아빠하고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았지. 아마 클랜 A 멤버들 중에서 아빠하고 제일 오래된 사람일 거야."

"아."

"내 사촌 동생이랑 결혼했어. 내 사촌 동생은 저기. 못생긴 여자애. 다행히 투구를 써서 얼굴이 잘 안 보인다. 특별히 소개받지 않아도 될 거야."

"왜?"

"별 볼일 없는 애니까."

그러는 동안 지우가 레오니드에게 다가갔다.

“레오니드. 워즈의 가슴팍을 노려볼 수 있겠어?”

레오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우가 말한대로, 블랙 서커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워즈의 가슴 팍에 굵은 나무줄기를 날렸다. 그것은 흔들림없이 워즈를 뚫기는 했지만 워즈를 관통하는 위력에는 이르지 못했고 더군다나 블랙 서커에게는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한 두 마리가 거기에 관통돼서 죽을 수는 있었겠지만 워즈는 멀리 달아나 헌터들을 노려보고 그곳에서 다시 또 블랙 서커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이 싸움의 끝을 알고 있었다. 워즈는 죽을 것이고 블랙 서커들은 바닥에 쏟아질 것이다. 물이 돼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클랜 A의 모든 클랜원들은 오랜만에 만난 시현에게 병풍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힘으로 워즈를 공략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현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들에게 기회를 준 채 기다리고 서 있었다.

효재는 뜻밖의 광경들을 바라보고 턱이 도무지 멈추질 않아서 계속해서 다닥다닥 턱을 떨면서 시현의 한쪽 팔을 꾹 잡고 있었다. 해민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프레딕터가 보여주었던 한 장면이었다.

덜덜덜 떠는 효재가 시현의 팔을 붙잡고 서 있는 모습.

해민은 그 모습을 잘못 이해했었다.

효재가 본 장면이, 최후를 맞은 클랜 A의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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