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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콜로니
"그건 아니예요. 일어날 거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미키 위도하고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미키 위도요?”
“미키 위도라면 그 일이 일어나는 걸 막아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잠깐 기다리세요.”
지연이 미키 위도의 번호를 찾기 위해 전화를 끊은 사이에 해민이 용하를 바라보았다.
“미키 위도라고요?”
해민이 물었다.
“그 사람을 알아요?”
“세계적인 언론인이니까요. 헌터가 아니면서도 헌터들을 위해서 공헌한 업적도 많고 용기와 신념이 대단해서 헌터들 사이에 신망이 아주 높죠.”
“미키 위도가 나선다고 하면 중재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헌터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은 거랑 미국 정부가 미키 위도의 말을 들어먹을지랑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해민이 말했다. 그래도 가능한 방법은 뭐라도 동원을 해야 했다.
잠시 후에 지연으로부터 톡이 들어왔다. 미키 위도의 전화 번호였다. 지연이 미키 위도에게 용하에 대해서 알려줬고, 용하가 클랜 A의 일로 전화를 할 거라는 걸 알려줬으니 지금 전화를 해서 통화를 하면 될 거라는 내용이 같이 왔다.
용하는 미키 위도와 통화를 했고, 미키 위도는 자기가 부탁한 일로 클랜 A가 함정에 빠지게 됐다는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알아볼게요. 세상에. 이런 일이 다시 생기다니…….”
미키 위도가 얼마나 상심할지 가늠이 되었지만 지금은 남의 상처에 관심이나 갖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해민은 어차피 자기 차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는지 과격하게 운전을 했고, 용하가 운전을 했다면 반이나 왔을까 하는 시간만에 익스트림 헌터의 정문 앞에 차를 세웠다.
“아빠가 뭐라고 해, 삼촌?”
시현이 용하에게 물었다.
“이미 레이드가 시작된 거야. 다른 클랜원들은 이미 싸움을 시작했을 거야. 아빠하고는 제대로 통화를 하지도 못했어.”
용하가 시현에게 말했다.
“마음 강하게 먹어. 지금부터는. 시현이 너한테 달렸어.”
용하가 시현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말했다.
***
용하와 제대로 통화를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지우는 이제 용하와의 통화 내용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워즈는 초반부터 강하게 클랜 A를 괴롭히며 달려왔다.
“내가 탱커라는 걸 다들 잊을만할 때 이런 녀석들이 하나씩 나와 주는 것 같아서 고맙더라고요.”
임정은 그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탱킹을 하면서 워즈의 시선을 뺏었다. 임정이 세계 최고 수준의 탱커라고는 하지만 블랙 서커가 한꺼번에 공격을 하면 임정의 방어구로도 감당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와 서규태도 임정에게 바짝 붙어선 채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다.
클랜 A의 헌터들은 천천히 몸을 풀어가면서 워즈를 공격했다. 블랙 서커가 언제 날아들지 모른다는 걱정을 떨칠 수는 없었지만 기왕 워즈를 사냥하기 위해 나섰다면 성과를 거두자고 다짐을 한 상태였다.
“블랙 서커에게는 진행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워즈의 목 아랫부분에서 날아가는 거기 때문에 주의해서 보고 있으면 블랙 서커에게 무방비로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워즈의 뒤에서 워즈를 공격한다면 블랙 서커가 방향을 틀어서 뒤로 날아갈 때까지 2분 정도는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블랙 서커의 공격 반경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는 겁니다. 블랙 서커가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차크라를 풀어서는 안 됩니다.”
서규태가 클랜원들에게 말했다.
그들도 차츰 워즈의 움직임에 눈이 익숙해지면서 여유롭게 딜을 가하게 되었다. 아직 블랙 서커들은 잠잠했다. 워즈는 헌터들의 공격에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달아나려고 소극적으로 저항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만한 반격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개체 하나를 먼저 떼낼 게요. 미하일하고 저는 그걸 먼저 끝내놓을게요. 블랙 서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요.”
레오니드가 말했다.
“저는 강현이랑 맡을게요.”
태인이 말하면서 다른 개체를 공략했다. 두 개의 개체가 거의 동시에 떨어져 나갔고 무자비한 딜이 들어갔다. 개체가 각자 독립적이라는 말이 맞았는지 두 개의 개체는 몇 번 저항을 하다가 이내 완전히 잠잠해졌다. 두 개체는 완전히 끝이 난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개의 개체가 공략을 당하도록 블랙 서커가 잠잠한 것이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다.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먼저 워즈의 본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고 태인과 강현도 합류했다.
“어떻게 할까요? 이런 식으로 계속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태인이 서규태에게 물었다. 서규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워즈가 너무 오래 참은 것 같지 않냐는 말을 하려는 순간 워즈가 움직였다.
블랙 서커가 그들을 향해 날아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 삼 백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는 위엄은 대단했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워즈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모두가 블랙 서커에만 신경을 썼다. 아무리 블랙 서커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었다. 블랙 서커가 헌터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기 전에 블랙 서커를 공격하고 차크라로 몸을 방어하면 블랙 서커의 공격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블랙 서커의 공격이 끝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있는 블랙 서커들은 우리한테 맡기고 지우씨랑 야로가 워즈 본체의 블랙 서커를 맡아줘요. 본체에 있는 블랙 서커들이 성체가 되지 못하도록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이 없을 겁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끝이 안 나요.”
이익헌이 말하자 지우가 다른 클랜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블랙 서커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당황하고 지쳐가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블랙 서커를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지우는 야로와 시선을 교환하고 워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두 사람이 워즈에게 채 다 가기도 전에 세진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지우와 야로는 세진에게 달려갔고, 그때는 이미 임정이 세진의 갑옷을 벗겨내고 세진을 공격하는 블랙 서커를 칼로 찔렀다. 세진의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임정은 그 자리에서 세진을 치료했다. 강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세진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저에게 달려드는 블랙 서커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강현이 소리쳐 물었다.
“괜찮아요. 잠깐 방심했어요.”
세진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리가 심하게 떨리면서 두 무릎이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방심했다는 것은 솔직한 말이 아니었다. 세진은 두려움에 질식되는 중이었다. 세진의 마음 속에서는 워즈와 블랙 서커를 이길 수 없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세진의 안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세진의 균형을 무너뜨린 거였다.
“잠깐 빠져. 차크라를 회복하고 준비가 되면 그때 다시 들어와.”
임정이 말했다. 세진은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으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야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세진에게 문을 열어주었지만 세진은 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두려울 텐데 자기만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자책이 됐다.
야나의 문이 살랑거렸다. 괜찮다고 위안을 해 주려는 것 같아서 세진은 야나의 본넷을 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애도 아닌데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그렇지, 야나?”
야나의 헤드 라이트가 번쩍였다.
“그래. 너도 믿지? 우리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거.”
세진은 자신의 무기를 챙겼다. 야나를 보고 웃고 나니, 워즈와 블랙 서커로 인해서 겁먹었던 것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클랜원들은 세진을 걱정하면서도 격려해 주었다. 세진은 눈 앞의 블랙 서커에게 집중하다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것을 몇 마리 놓쳤고 그때마다 강현이나 레오니드가 그것들을 처리해 주었다.
“미안해요.”
세진이 말하자 강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려면 네 발 아래에 떨어져 있는 블랙 서커를 봐. 다른 여자들은 블랙 서커를 그렇게 학살하지 못해. 네가 별 것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마.”
강현의 말에 세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열심히 싸웠다. 최고의 레이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유일한 문제점이라고 한다면 블랙 서커의 번식 능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블랙 서커는 히드라처럼 작은 개체를 만들어 그것을 성장시켰다. 성장하는 속도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정도였다. 블랙 서커의 몸에서 나온 작은 블랙 서커가, 몇 십 분도 되지 않아 이전 세대만큼 성장을 하고 다시 작은 블랙 서커를 만들어냈다.
이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처음에는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클랜원들은 블랙 서커의 증식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혼란에 빠져들었다.
패배가 정해져있는 싸움이라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여지없이 그들의 동작을 둔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동작에서 실수가 나왔고 실수는 치명적인 공격에 그들을 노출시켰다. 여기 저기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그때마다 가까이에 있던 다른 동료가 갑옷을 벗기고 블랙 서커를 떼냈다.
블랙 서커를 떼내면 블랙 서커의 입에는 클랜원들의 살덩어리가 붙어 나왔다. 고집스러운 거머리처럼, 몸을 떼내는 중에도 블랙 서커는 입에 문 것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동료를 구하는 동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헌터는 다시 블랙 서커의 목표물이 되어 공격을 당했고 계속해서 악순환이 이어졌다.
“후퇴합시다. 일단 후퇴해요!”
서규태가 소리쳤다. 그러나 클랜원들이 도망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한 무리의 블랙 서커들이 그들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끝까지 남아있던 레오니드가, 날아오는 블랙 서커들을 향해 손을 펼치자 날카로운 나뭇가지들이 뻗어나가며 블랙 서커들을 관통했다. 몇 십 마리가 순식간에 후두둑 떨어졌지만 역부족이었다.
클랜원들이 도망치고 레오니드만이 남겨졌을 때 지우가 레오니드의 몸을 들춰업고 야나의 뒤로 날아가다시피 하며 도망쳤다.
클랜의 등장으로 공략의 가능성을 점쳤던 사람들은 클랜이 퇴각하자 아쉬움을 드러냈다.
워즈가 얼마나 강한 괴수인지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랐던 도시, 블랙 스왈로워가 워즈를 이기고 다시 평화를 되찾기를 기도했다.
클랜 A의 활약을 지켜보며 잠시 공격을 멈추고 있던 군인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육해공군의 합동 작전이 다시 펼쳐졌다. 그러나 블랙 서커는 무서운 번식 능력을 무기로 삼아 어디로든 날아들었다. 전투기의 맹폭이 이어졌지만 워즈는 콩알이 떨어지는 것을 맞기라도 한 것처럼 귀찮고 짜증스런 기색을 보였을 뿐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입지 않았다. 오히려 블랙 서커들이 전투기를 노리고 날아 올라가 전투기의 시야를 순식간에 가리고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일이 생겼다.
클랜 A에 이어 합동작전을 펼치던 육해공군도 모두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상부에서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도시 매몰.
상황을 보고 받은 군 수뇌부가 마지막 선택을 한 것이다. 블랙 서커의 위력에 대해서 전해들은 그들은 블랙 서커가 다른 도시로 퍼졌을 때의 사태를 예상했다.
“블랙 스왈로워로 가는 모든 도로를 봉쇄한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군을 추가로 투입하고 언론을 장악하기로 한 것이 미국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내놓은 방책의 전부였다. 혼란은, 아직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믿을 때 벌어지는 저항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었다.
블랙 스왈로워를 워즈로부터 구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병력은 이제 블랙 스왈로워의 시민들을 향해서 총구를 겨누었다. 상황이 급변하는 것을 알아차린 시민들은 울부짖었다. 뒤늦게 도시를 떠나고 싶어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것도, 떠나는 것도 이제는 원천 봉쇄되어 그곳을 거대한 무덤으로 삼는 것밖에는 방법이 남지 않았다. 하늘에 다시 전투기가 떴을 때 그것이 시민들을 향해서 무차별 폭격을 가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쫓고 쫓기는 동물의 세계에서처럼 도망쳤다. 누군가 넘어지고 밟혀도 그들을 위해서 손을 내밀어주지도 못했고 바라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앞을 보고 달리기만 했다.
혼돈에 빠진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재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