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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241화 (24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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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꼬꼬마 헌터

민효재는 가방을 풀지도 못하고 방 끝에 가서 대충 앉았다. 기숙사비를 낸 것도 아닌데 두 녀석 틈에서 자기가 한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게 편치가 않았던 것이다.

침대 두 개, 옷장 두 개, 책상 두 개가 전부인 살림살이였다. 두 사람이 사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넓고 시원하게 빠진 방이었지만 커다란 세 녀석이 갑자기 같이 살기에는 글쎄올시다인 상황이었다.

“저쪽 침대하고 책상이랑 옷장. 민효재 네가 써.”

시현이 교통 정리를 해 주었다.

“너는?”

“나는 이 침대 쓰면 되니까.”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길무영의 팔을 잡아당겼다. 길무영은 대충 털어내고 버티면 될 줄 알았다가 그대로 끌려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우, 이 씨발놈이, 지금 누구를!”

길무영이 눈에 불을 켜고 시현을 노려보았다. 주먹이 이미 어깨 위로 올라와 있었다.

“치게? 그걸로? 나는 네가 면봉 잡고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지금 주먹 다 쥔 거냐? 확 밟고 다닌다. 조용히 짜져있어.”

시현이 말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죽을라고!”

길무영은 제대로 빡돌아서 시현의 멱살을 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시현은 발을 떼지도 않은 채로 허리만 뒤로 젖혀서 길무영을 피했다.

문이 열렸다.

“자퇴서는 여기에 두고 간다. 길무영. 그만 다니고 싶으면 언제든지 빈칸만 채워와. 아니. 빈칸 있어도 돼. 네 이름만 써와도 돼.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와도 돼. 네 자퇴는 언제든 환영이다.”

“이사장님!”

“자퇴하게?”

길무영은 얼굴을 감쌌다. 제 처지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숙사에는 천민들이 드글드글 살고 있으니 그놈들 중에 하나랑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방은 특별하게 잘 나온 방이었지만 이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사장에게 신기(神氣)가 있는지, 길무영이 무슨 생각을 하기만 하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렇게 하는 건 안 되다, 저렇게 하는 건 안 된다 말이 많았다.

그렇게 방을 배정해준  용하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그런데 학생 신상 기록부를 쭈욱 훑어보던 이익헌이 길무영을 지목한 것이다.

"이 녀석. 그 놈인 거죠? 이 녀석도 현신 고등학교에 다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아는 애예요?"

이익헌은 길무영의 부모 이름을 헌터 협회에서 검색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얘네 엄마가 바람 피워서 낳은 애가 아니기만 하면 얘도 물건은 물건이겠네. 하긴. 지 엄마만 닮았어도 괜찮은 놈이 될 겁니다. 헌터 테스트에서 헌터 타투가 안 나타나면 팔에 타투를 새겨서라도 이 놈은 헌터로 만들어야 돼요. 쓸만한 놈이 될 거예요."

"길무영 부모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예요?"

용하가 물었다.

"시현이하고 얘하고 친해지면 좋을 텐데."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둘은 거의 원수지간인데. 아닌가? 원수 취급도 안 하나?"

"용하씨가 힘 좀 써봐요. 시현이도 많이 배울 거예요. 이런 애가 시현이 옆에 있어주면 좋죠."

"그래요? 그 정도라면. 그렇게 해야죠."

일이 그렇게 진행된 것은 전혀 모른 채 길무영은 바닥에 자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

삼촌과 떨어지게 된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헌터 아카데미 앞에서 죽칠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시현은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출근하는 시간에 기다리고 있으면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고, 기숙사에서 출발해서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출근길을 노렸다.

미하일은 어떤 경로로 다니는지 쉽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레오니드는 드디어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교수님!”

시현이 멀리에서부터 레오니드를 부르며 달려가자 레오니드는 곧바로 경직된 모습이 되었다.

시현이에 관한 진실과 시현이에게 말해도 되는 것들, 말하면 안 되는 것들. 시현이가 알고 있는 내용과 알면 안 되는 내용들, 시현이한테 주입된 내용들을 착착 분류를 하느라고 바빴다. 미리 정리를 해 두지 않았다가 실수가 생기면 난감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레오니드는 시험 직전의 수험생처럼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교수님!”

드디어 시현이 다가와서 레오니드에게 인사를 했다.

“어디에서 오는 거야? 왜 그쪽에서 와?”

“저 기숙사에 들어갔어요.”

“아, 그래?

레오니드가 시현의 너클을 발견했다.

“그건 뭐야?”

“이거요? 삼촌이랑 익스트림 헌터에 갔더니 익스트림 헌터의 무기 마스터라는 분이 주셨어요.”

“아, 그래? 거기에 갔었어?”

레오니드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거기 무기 마스터라면?"

"채준형 마스터님이라고 하셨어요."

"그래?"

레오니드의 소박한 뇌가 착오를 일으켰다. 채준형이 시현에게 무기를 준비해 준 걸 보면 이제 합의가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마스터님이 직접 무기를 만들어 준 걸 보면 얘기를 하기로 한 거지? 그랬으니까 무기를 만들어 준 거겠지? 저런 너클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그냥 주는 거라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레오니드는 한 눈에 너클을 만든 재료를 알아보았다. 무기의 종류가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무기의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무기를 만든 재료였다. 어떤 괴수의 사체로 만들었는가에 따라서 공격 증폭률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시현은 아직 헌터로 각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현의 타격이 괴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밝혀진 것은 없지만 언젠가 시현이 늪 아래로 내려가 레이드를 하게 된다면 너클의 공격 증폭률이 레이드의 성패를 가름하게 될 것이다.

시현의 너클은 괴수 노틸러스의 단단한 껍데기로 만들어진 거였고 노틸러스 괴수를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레오니드는 너클의 의미를 바로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제 시현에게 시현의 비밀을 숨기는 것이 무의미해진 거라고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하며 레오니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사람을 속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레오니드는, 시현을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잘 됐다. 하긴. 시현이 너도 이제는 어린 애가 아니니까. 잘 된 거야. 그리고 이럴 때는 네가 나서줘야지. 이제 대한민국도 청정지대가 아니잖아. 괴수가 늪에서 출몰한 걸 보면. 우리를 처음 봤을 때 알았겠지만 너는 우리랑 같은 과야. 알지?”

“네?”

시현은 레오니드가 자기를 다른 사람이랑 헷갈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소개를 다시 하려고 했다. 자기는 헌터 아카데미 학생이 아니라 현신 고등학교 옥상에서 만났던 현신고 학생이라고.

그러나 레오니드는 곧장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는 우리 과라고. 나랑 미하일. 그리고 야로슬라프. 결정적으로 너희 아버지 지우 형. 전부 다 같다고.”

“……네?”

시현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너희 아버지 지우 형'이라는 말이 시현의 귓가에서 자동으로 몇 차례나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클랜 A의, 안지우 헌터님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시현이 물었지만 레오니드는 그 말을 아예 듣지도 못했다. 레오니드는 옆에서 잘 따라오던 시현의 걸음이 갑자기 멈춘 것을 보고 시현을 바라보았다.

“왜?”

레오니드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천천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젠…장. 너. 나를 속인 거냐?”

“네?”

“채준형 마스터한테서 얘길 들었다고 했잖아.”

“마스터님이 이 너클을 만들어주신 거라고 한 건데요? 그리고 보호구도 주셨어요. 삼촌이랑 같이 익스트림 헌터에 갔거든요. 그날, 괴수가 나타난 날요. 삼촌이 저한테도 그게 필요할 거라고 말씀하셔서…….”

“그 말이었어?”

레오니드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슬아슬하게 지켜지고 있던 비밀을 누설한 사람이 결국 자기가 됐다는 사실에 레오니드는 그 일을 수습할 방법을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무슨 일인지 알려주세요. 저도 알아야 한다고요. 안지우…헌터님이……. 아버지라고요? 제 아버지요?”

레오니드는 이렇다 저렇다 말도 하지 못한 채 시현이를 바라보다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고개를 저었다.

신용하가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등골에서 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럼 우리 삼촌은요? 삼촌은 누구예요?”

시현은 아예 그것까지 묻고 있었다. 레오니드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야, 안시현.”

“네?”

“너. 이 말. 나한테서 들었다고 하면 죽을 줄 알어. 어?”

“네.”

“네 삼촌은 너희 아빠 친구고. 너희 아빠랑 우리는. 에이. 그래. 좋아. 뭐 어때. 죄지은 것도 아니고. 우리는 특별한 차크라를 가지고 있어.”

레오니드가 말했다. 수업이 곧 시작된다는 종소리가 울렸지만 시현은 걸음을 옮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자. 이런 데서 서서 나눌 얘기는 아니니까.”

레오니드가 말했다.

형식적으로 클랜 A는 해산되었지만 클랜 A의 해산을 발표한 이후로도 클랜원들은 같이 레이드를 계속해 왔다. 클랜 A에게는 그들만의 레이드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클랜 A의 싸움은 비단 괴수만을 상대로 하지 않았다. 미국의 치안대에서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노리고 특수 임무를 지닌 헌터들을 보내왔고 그들은 시현을 노렸다.

미국의 치안대에서는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 중 시현을 노렸다. 시현을 납치하는데 성공하면 시현과 지우를 동시에 손 안에 쥐고 주무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시현을 납치하면 지우와 클랜 A가 다시 예전처럼 미국을 위해서 미국에서 발생하는 늪들을 처리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 이유로 클랜 A는 괴수와 레이드를 하는 동시에, 시현을 노리고 잠입하는 미국 치안대의 태스크 포스팀을 괴멸시키는 임무도 같이 수행해야 했다. 후자의 중요도가 훨씬 더 막중했다.

"그럼. 삼촌이 갑자기 기숙사에 저를 보낸 것도."

시현이 레오니드에게 물었다. 레오니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놈들이 또 들어왔어. 그래도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자식들은 곧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니까. 너를 노린 놈들이 맞이하게 되는 운명은 다 똑같지. 우리 중에 아무도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면 돼. 안시현."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은 보였지만 시현에게 그 목소리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는 것 같았다.

***

12일전.

클랜 A의 임시 숙소.

“지우 형. 이것 좀 봐야 될 것 같은데요.”

강현이 지우에게 말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외부에 드러난 S급 헌터들은 미하일과 레오니드뿐이었지만 지우와 야로슬라프는 일부러 자신들의 등급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 이미 나란히 S-16등급이 되어 있었다.

매년 등급을 올리지 않으면 괴수의 차크라가 폭주하는 운명 때문에 그들은 등급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등급을 올리는데 필요한 경험치를 쌓는 것은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단지, 등급을 올릴 때마다 필요한 캐츠 아이 스톤을 모으는 것이 문제였는데 캐츠 아이 스톤은 괴수에게서 극악의 확률로 드랍되었다.

클랜 A가 지금까지 레이드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은 바로 그 캐츠 아이 스톤 때문이었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헌터가 세상에 몇 명이나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극악의 확률로 얻어지는 캐츠 아이 스톤을 획득하면서 계속해서 등급을 올려가며 살아남은 헌터가 다른 곳에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사람들이 등급을 올려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나, 세상에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일단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실 자체도 많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었다.

시현이 헌터 테스트에서 통과해서 헌터 타투가 나타나면 시현 역시 캐츠 아이 스톤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운명이 될 것이기에 지우와 클랜원들은 시현이 헌터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지우는 시현이 클랜 A를 따라서 늪을 찾아 돌며 이동하는 생활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고 헌터의 생활과는 분리된 일반인의 삶을 살아주기를 바랐다. 아예 헌터와 레이드의 세계는 모르는 채로 평화로운 삶을 살아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것이 지우가 시현을 직접 키우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어른들의 결정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겠지만 지우는 그것이 시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용하와 시현의 집에 달린 수많은 감시 카메라를 통해서 시현을 보고 있던 지우가 달려왔다.

“왜?”

“미키 위도가 새 글을 올렸어요.”

“홈페이지에?”

“네.”

강현이 말하자 지우뿐만 아니라, 레이드를 마치고 들어와서 각자 장비 정리에 여념이 없던 클랜원들이 하나 둘씩 주위로 몰려들었다.

미키 위도는 헌터와 레이드, 괴수와 맵에 대해서 심층적인 취재를 하는 것으로 유명해졌고 미키의 회사는 신문과 잡지, 케이블 TV와 인터넷, 출판사까지 흡수하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클랜 A의 막강한 후원이 없었다면 미키 위도가 그 일을 계속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미키 위도는 미국의 치안대와 헌터 협회 내부에도 폭넓게 취재원을 가지고 있었고, 여전히 클랜 A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미키 위도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의 치안대에서 캐츠 아이라고 불리는 헌터들을 한국에 몰래 보내도 매번 작전이 실패하는데는 미키 위도가 보내오는 정보의 도움이 컸다.

“캐츠 아이가 또 들어올 거래요.”

강현이 말했다. 강현을 중심으로 클랜원들이 다닥 다닥 붙어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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