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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서규태는 클랜 A가 미하일과 함께 레이드를 하면서 경험치 몰아주기를 해서 미하일의 등급을 올려줄 거라고 말했다. 레오니드는 정말로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울컥해져서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또 한 명의 동류를 그대로 잃게될 줄 알았다가 그에게 일 년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서규태는 거기에서 말을 멈추지 않고, 자기들이 용하와 함께 한 가지를 실험해 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우리는 미하일이 경험치를 다 쌓지 못한 채로 그 날을 맞이하게 할 겁니다. 그대신 우리가 모두 미하일과 함께 있을 거예요. 괴수의 차크라가 폭주한다고 미하일이 다른 헌터들에게 사냥을 당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레오니드는 의심스런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용하는 레오니드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자기도 똑같은 표정으로 자기 자신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봐도 상관 없어요. 나도 나를 전혀 믿지 못하고 있거든요."
용하가 그렇게 말하자 레오니드가 당황하면서 곧바로 사과했다. 사과를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용하는 레오니드가 거듭 사과를 하자 말리는 것도 귀찮아져서 사과를 받아들였다.
"만약에. 만약에 이 분이 성공하지 못하면요?"
레오니드는 그런 질문을 하는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듯이 용하를 바라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서규태에게 물었다.
"그러면 괴수가 있는 늪으로 미하일과 같이 들어가서 괴수를 사냥하고 미하일의 경험치를 채워줘야되겠죠. 그렇게 하면 미하일은 등급이 올라갈 테고 차크라의 폭주가 멈출 겁니다."
"그렇게 위험하게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따로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미하일은 깨닫게 될 겁니다. 괴수 차크라가 폭주하는 걸 보면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걸 알게 되겠죠. 감응기도 필요가 없게 되겠죠.”
서규태의 말에 레오니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미하일이 받을 충격이 너무 생생하게 상상되어서였다.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도 빨리 극복하는 수밖에 없어.”
야로슬라프가 말하자 레오니드도 마음을 다잡고 그들을 인도했다.
미하일 세르게예프는 클랜 A가 나타난 것을 보고 레오니드보다 훨씬 더 놀랐다. 그러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은 미하일에게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클랜 A가 미하일과 함께 레이드를 같이 하고 경험치를 몰아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미하일은 그들의 갑작스런 제안을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었지만 자기 조상들이 3대에 걸쳐서 덕을 쌓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클랜 A가 먼저 나서서 제안을 해 오는데 어떤 바보가 의심스럽다고 그런 기회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서규태는 미하일이 의심할 상황을 대비해서 떡밥을 깔아놓기도 했다. 야로슬라프의 친구인 레오니드가 미하일의 레이드 실력을 보고 추천을 해 주었다고 말을 한 것이다. 미하일도 자신의 레이드 실력에 대해서만큼은 평소에도 자부해 오고 있었기에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미하일은 클랜 A가 그와 함께 레이드를 하고 경험치를 몰아주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말로 그 생활을 같이 하게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워밍업이라는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실전이었다. 미하일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인적인 스케쥴에 자기가 내던져질 줄은 알지 못했지만 곧 거기에도 익숙해져갔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미하일 세르게예프는 괴수 차크라를 가진 남자였다. 그 사실은 지연의 감응기가 증명해 주었고 지연의 감응기에 나타난 화면을 보고 클랜 A의 모든 사람들도 그 사실을 확신했다. 하지만 지연의 감응기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미하일 세르게예프가 괴수 차크라를 가진 남자라는 사실은 곧 명백해졌다.
늪 아래에서의 미하일은 야로슬라프와 쌍둥이 같았다. 레오니드도 마찬가지였다. 지우와 서규태, 이익헌, 임정, 태인과 강현,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까지. 세진은 갑자기 나타난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에 하마터면 개점 휴업 상태에 돌입할 뻔 했지만 다행히 레이드에 낄 수가 있었다.
열 명의 입장을 허용하는 늪의 마지노선에 간신히 걸려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 뿐, 세진은 레이드 실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밀렸기 때문에 클랜 A에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벤치를 지키는 선수 신세로 전락할 게 훤했다.
강현과 태인이라고 해서 절대로 자만할 수가 없었다. 언제 이런 사람들이 훅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들도 훈련의 강도를 더 높여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에 있는 늪의 주인들은 지각 변동을 느꼈을 것이다. 클랜 A와 미하일의 무자비한 행보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상급 늪을 위주로 미하일은 어디로든 끌려다녔다. 헌터 타투가 나타난 이후로 차크라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클랜 A의 자비없는 손아귀에 붙잡힌 후로는 늘 차크라 부족에 시달렸다. 다른 헌터들은 미하일의 옆에 붙어서 괴수를 같이 공략해주다가 괴수의 체력이 거의 바닥나면 미하일에게 마지막을 맡기고 늪을 빠져나갔다. 그러면 미하일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면서 괴수를 쓰러뜨리고 경험치를 획득했다.
미하일은 차크라를 회복할 시간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다른 늪으로 끌려가다시피했다. 문제는 갈수록 드러났다. 그는 좋은 조건을 가진 헌터였지만 그 조건을 충분히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의 차크라는 좁은 통로를 통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앞에 고여서 세련되지 않은 방식으로 툭, 툭, 터져나오는 꼴이었다. 그렇게 차크라를 사용해 왔어도 지금까지 차크라의 부족을 느낄 틈이 없었기에 그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고 훈련을 해야겠다는 목표의식도 없었다.
골목대장 노릇을 하는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가 지금껏 공략해 왔던 늪들은 거의 3,4급이었다.
야로슬라프는 곧 그의 문제를 깨달았고 자기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미하일은 야로슬라프의 말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차크라의 통로를 확장하려고 애를 썼다. 처음 시도로 한 번에 성공하는 행운 같은 것은 없었지만 점진적인 발전은 확실히 이루어졌다. 동료들의 응원 속에서 미하일은 확실히 전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그 점을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었던 사람은 레오니드였다. 레오니드는 미하일을 보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내둘렀다. 한 시간, 한 시간이 지날수록 미하일은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미하일이 잘해서이기도 했지만 꼭 야로슬라프가 마술을 부린 것 같았다.
강행군은 계속되었고 그 와중에 레오니드도 죽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오니드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지치게 될 때마다 왜 자기가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나선 건가 하면서 후회를 했다. 그럴 때마다 야로슬라프를 바라보면 야로슬라프는 귀신 같이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웃음을 짓고 있었고 레오니드는 뜨끔해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클랜 A와 함께 레이드를 하게 돼서 영광이라는 생각은 클랜 A와 같이 이틀쯤 돌아다닌 후에 쏙 들어가버렸다. 앞으로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을 만나게 되면 클랜 A랑 같이 레이드나 하고 돌아다니라고 저주를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마운 건 정말 눈물나게 고마운 거지만 몸이 힘들어지다보니 서러움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강해지기까지, 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혹독한 자기단련의 시간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다.
클랜 A는 단순히 경험치만 몰아주는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스스로 능히 하급 늪 정도는 혼자서 레이드를 할 수 있도록, 자기들이 가진 모든 노하우를 한꺼번에 전수하려고 했다. 덕분에 레오니드와 미하일은 수많은 위기에 봉착했고 괴수에게 목숨을 거의 내줄뻔한 순간도 수십번이나 경험을 했다. 그렇게 해 놓고도 클랜원들은, '내가 말한 게 뭔지 알겠죠!'라면서 끝까지 몰아붙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오니드는 야로슬라프가 부러웠다. 클랜 A가 아직 열 명이 된 것도 아니니 자기도 클랜 A에 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로슬라프 역시 레오니드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레오니드를 클랜 A에 소개를 해 주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꼈다. 만약 다른 클랜원들이 레오니드가 클랜 A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먼저 의견을 내준다면 그때는 당연히 그 의견에 힘을 실어주기는 하겠지만 자기가 먼저 레오니드를 추천하는 것에는 불안을 느꼈다.
희한한 일이었다. 차크라의 양으로는 레오니드가 야로슬라프보다 우세했다. 그것은 지연이 감응기를 보면서 확인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레이드 실력과 전투 감각을 봤을 때는 미하일이 야로슬라프보다 나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완전히 실전에 쏟아붓지 못했다. 누구도 그 부분에서 야로슬라프를 따르지 못했다.
그것은 희생을 바탕으로 한 센스였을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의 순위에서 야로슬라프는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야로슬라프는 레이드의 성공으로 인한 러프 스톤의 획득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안 될 것 같으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두었다. 그러나 팀원이 다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동시에 두 사람이 같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야로슬라프가 누구를 향해서 먼저 몸을 던지는지를 볼때마다 지우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구하는 순서에 차크라 양이나 헌터의 레이드 실력은 관계가 없었다.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슬럼프에 빠져 있거나, 최근에 자기가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해서 자괴감에 빠져있는 사람이 야로슬라프에게 가장 우선 순위가 되었다.
야로슬라프는 어느 새 클랜 A에서, 가장 삐거덕거리고 느슨해진 계단을 지지해주는 버팀목이 되어 있었다. 야로슬라프가 잠시 그렇게 조용히 버팀목이 되어주면 계단은 스스로 다시 저를 조였다. 지우는 야로슬라프가 그동안 클랜 A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주고 있었던 건지를 그 시간을 통해서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 빛 하나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야로슬라프뿐이었다. 그것이 레오니드와 미하일로 야로슬라프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들이 야로슬라프보다 훨씬 더 뛰어나고 실력있는 헌터로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듯했다.
혼자서 괜히 위기의식을 느끼던 야로슬라프는 클랜원들에게서 레오니드나 미하일에 대해 특별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자기가 그들보다 낫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킬 수는 있게 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경험치 몰아주기를 위한 마지막 레이드가 다가왔다.
그들이 고른 늪은 오픈일을 앞두고 있는 1급 늪이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마지막 레이드에서 제대로들 실력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미하일이 앞으로 레이드를 할 때 참고가 될 거라는 뜻으로 서규태가 주장해서 결정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늪으로 하면 마지막까지 모두 남아서 같이 싸울 수가 있었다. 경험치를 전부 나눠가져도 미하일에게 돌아가는 경험치가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늪의 괴수는 쉽게 그곳을 내주지 않았다. 입장마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고스트 피쉬라고 불리는 괴수가 살고 있는 늪은, 늪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물과 마주해야 했다. 맵은 거의 모든 부분이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도 높은 수압의 영향을 받는 심해였다. 고스트 피쉬는 심해어 괴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