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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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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가 어디에 있든지 시현이는 지우를 쫓아다녔다. 무언가를 하다가 옆을 보면 시현이가 그 옆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지우는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그대로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될 만큼 고맙고 행복했다.
임정이 서운해하는 거야 당연했지만, 시현이가 엄마와 아빠중에 누구를 더 좋아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지우의 곁에 있는 동안 시현이에게는 어떤 걱정도 없어보였다. 용하마저도 지우와는 감히 겨룰 수가 없었다. 지우가 같이 있는 동안에는, 시현이는 용하에게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시현이는 자기가 숭배하는 영웅을 보는 것처럼 지우를 바라보곤 했다. 지우가 하는 일이기만 하면 덮어놓고 따라하려고 했기에 지우는 그 점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하다못해 지저분한 습관까지도 따라해서, 지우가 발뒤꿈치를 박박 긁고 있으면 어느새 시현이도 그걸 따라하고 있었고 겨드랑이를 긁어도 그랬다. 임정은 그렇지 않아도 시현이가 아빠만 좋아한다고 감정이 좋지 않은데 아이한테 그런 걸 가르친다고 지우에게 바가지를 긁어댔다. 아마 임정이 지우에게 바가지를 긁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지우는 시현이야말로 지능높은 안티 팬이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지우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볼 때마다 시현이는 온몸을 들썩거려가면서 광신도처럼 흥분상태에 돌입했다. 그러고는 입에서 분수같은 침을 흘려대며 저를 좀 안아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 것이다. 지우는 그런 시현이를 볼 때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현이는 아빠가 그렇게 좋아?”
지우가 시현이에게 물었다.
“도아, 빠!”
“아빠가 된다는 건 말이야. 한 아이의 영웅이 되는 것 같아.”
용하가 시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우는 시현이가 너무 눈치없이 자기만 좋아해줄 때마다 임정과 용하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시현이한테 눈치를 주고 싶기도 했다. 아빠한테만 너무 몰빵으로 애정을 주지 말고 조금씩 떼서 엄마한테도 나눠주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시현이는 아빠바라기를 멈추지 못했다. 멍하니 지우를 바라보면서 침을 흘리는 일도 있었다.
임정은 그런 시현이를 보면서, 아빠가 뭐가 그렇게 좋을까? 하고 진심으로 궁금해하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다가 지우가 괴수의 발에 밟힌 채 공격을 당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꿈이 얼마나 현실감 넘쳤는지 지우는 잠을 자면서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괴수는 육중한 무게로 지우의 가슴을 밟고 올라가 버텼고 지우의 얼굴에 폭포같은 물이 떨어지면서 지우는 몸을 떨었다.
그게 꿈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망함. 그리고 그런 꿈에 시달리게 한 사람이 바로 시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터져나온 실소. 잠에서 깨고 보니 시현이가 아빠 배 위에 올라가 엎드려 자면서 지우의 목에 침을 흘려서 그런 꿈을 꾸게 됐던 것이다. 얼굴에 떨어지던 폭포수가 사실은 시현이의 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우는 한참이나 웃어댔다. 지우가 웃는 통에 배가 들썩이자 시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지우의 셔츠를 꽉 붙잡았다. 숨을 쉬는 것도 답답할 정도였지만 지우는 시현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시현이가 지우의 배에서 떨어지려고 할 때마다 시현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시현이는 아빠를 믿니?”
시현이는 얕게 코를 골기만 할 뿐 지우의 말에 대답을 해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야말로 멍청한 질문이라는 것을 지우도 알 수가 있었다.
그때 야로슬라프가 열려진 문에 대고 노크를 했다.
“들어와. 일어나서 맞이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해해라.”
지우가 말하자 야로슬라프가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그다지 편해보이지 않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지우는 곧바로 걱정이 들어서 물었다.
“아뇨. 별 일은 아닌데요. 저, 잠깐 러시아에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러시아에? 왜?”
“레오니드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레오니드? 레오니드 소로킨?”
“네. 동류를 발견한 것 같대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를 말하는 거야?”
“네. 아마. 그런 것 같아요.”
“그 사람도 레벨 업을 시작했대?”
야로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어떤 상탠데?”
“레오니드는 거의 맞을 거라고 말하고 있기는 한데 제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연이 누나가 감응기를 가지고 같이 가 주겠다고 했어요.”
“같이 가자. 용하랑 시현이도. 용하하고 같이 러시아에 가 보고 싶기는 했어. 필요할 것 같아.”
“저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형이 시현이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시는 중이라.”
“시현이하고 좋은 시간을 오래오래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잖아.”
지우가 말했다. 야로슬라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어떤 상탠지 자세하게 말해봐.”
“레오니드 말로 미하일은.”
“미하일? 미하일도 캐츠 아이 스톤을 남기고 죽지 않았어? 캐츠 아이 스톤을 가리키면서 미하일이라는 이름을 말했던 것 같은데?”
“이름을 잘 외우네요?”
야로슬라프가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때 죽은 헌터 중에도 미하일이 있었죠. 이번에 나타난 헌터도 미하일이고요. 미하일 세르게예프요.”
“아아.”
“미하일은 C급 헌터고 이제 B급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예요. 2주일도 안 남은 것 같아요.”
“미하일도 그 사실을 알아? 자기가 기간 내에 등급을 올리지 못하면 폭주하게 될 거라는 거.”
“모르나봐요. 그게 문제예요. 세멘노프 교수가 미하일을 놓쳤던 것 같아요.”
“그럼 미하일은 자기가 지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거겠군.”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그동안은 용케 기간 내에 등급을 올려왔던 거네.”
“그렇죠.”
“경험치는 얼마나 모자라대?”
“이대로는 어림도 없대요.”
“그럼 어차피 우리가 나서야 되는 일이네.”
지우가 시현이를 잘 안은 채로 손을 내밀자 야로슬라프가 지우를 일으켜주었다. 시현이는 그러는 동안에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됐는데? 경험치 몰아주기.”
지우의 말에 야로슬라프가 웃었다.
“흔쾌히 도와주기로 해줘서 고마워요.”
“이건 내 일이기도 하고 내 아들 일이기도 하잖아.”
지우에 의해서 클랜 A의 모든 사람들이 미하일 세르게예프의 일을 알게 되었고, 항상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답게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두 러시아로 가는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용하와 시현이도 함께였다.
“조금 위험한 시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언젠가 한 번은 해 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예요.”
서규태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그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미하일에게 경험치를 몰아주고 마지막 경험치를 조금만 남겨놓고 그 날을 맞이해 보는 건 어떻겠어요?”
서규태가 조심스럽게 야로슬라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로슬라프는 지우와 용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고 용하는 그들이 지금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런 시선을 주고 받는 건지 뒤늦게 깨달았다.
“차크라가 폭주하도록 하자는 말…씀인 건가요? 저한테 폭주를 막아보라는 말씀…인 거죠?”
용하의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고요. 우리는 이 일이 될지 안될지 그걸 알아보려는 것 뿐이니까요. 우리는 어차피 계속해서 레이드를 할 거고 캐츠 아이 스톤을 모을 거예요. 그러니까 용하씨가 차크라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서규태가 말했지만 용하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 시현이와 지우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있으려면 저절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서로 얼마나 같이 있고 싶을지 너무나 잘 아는데 그들이 곧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레이드에 쫓겨서 시현이와 함께 있을 수 없는 지우의 인생이야말로 너무 큰 저주를 받은 삶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캐츠 아이 스톤이 필요없게 된다면 자기가 지우와 시현이의 삶을 완전히 바꿔줄 수 있는 거였다.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용하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길 바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모두가 기대하고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데 자기한테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 밝혀질까봐 걱정이 되고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용하는 남들이 잠깐씩 눈을 붙이는 동안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시현이는 뭘 하고 있는지 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시현이는 지우의 옆에 앉은 채로 제 아빠를 보고 있었다. 손으로는 지우의 손등을 만지고 있었다. 지우는 피곤한 와중에도 시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꿈결과 현실을 오가며 시현이를 챙겨주었다.
‘아, 제발. 이제부터 다른 소원은 안 들어주셔도 되니까요. 이번에만 제 소원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컨트롤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제발 제가 컨트롤러이게 해 주세요. 제발 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시현이의 차크라만큼은 이대로 쭉 통제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용하는 쉼없이 기도했다. 시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시현이는 이 네 개를 전부 드러내 보이고 용하를 보고 웃어주었다.
“시현이는 삼촌 믿냐?”
“요아 안똔.”
“그래. 요아 안똔이 시현이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
용하는 정말 울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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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로슬라프는 다시 고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감동할 겨를도 없이 레오니드와의 접선을 위해 서둘렀다. 야로슬라프가 레오니드를 만났을 때는 한국에서 온 지연도 합류를 한 후였다. 지연과 지연의 감응기를 보자 야로슬라프는 든든해졌고, 그곳까지 군말 없이 와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지연은 뜨끔해 하면서, 군말은 굉장히 많이 하면서 왔다고 실토했다.
레오니드는 야로슬라프가 클랜 A의 클랜원이 됐다는 사실과 익스트림 헌터로부터 무한한 지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눈 앞에 야로슬라프와 함께 클랜 A가 나타나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이렇게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 얼굴이었다.
제 친구를 만난 사실에 반가움을 표하기도 전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자기가 세기의 헌터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껏 즐겼다.
“그래서. 미하일한테는 어떻게 설명했어?”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생각때문에 저절로 서두르게 되었다.
“아직 말 못했어. 감응기를 보면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야로슬라프도 알겠지만 이제 러시아에 이런 차크라를 가진 사람은 나뿐인 거잖아. 야로슬라프도 클랜 A랑 활동을 하면서 러시아를 떠나 있으니까. 나는. 내가 하는 말을 미하일이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을 다른 사람들한테 퍼뜨려 버릴까봐서 겁이 났어.”
레오니드의 말에 야로슬라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니드의 말을 들으면서 지우는 그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을 기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그런 소식을 들은 사람이 처음 보일 반응이 공격적이고 적대적일 거라는 사실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서규태가 나서서 용하를 레오니드에게 소개시켰다. 시현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가 뜻을 같이 한 사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