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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70화 (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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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처음 헌터가 되고 사체 운반을 위해서 늪 아래로 내려갈 때 헌터들은, 늪 아래의 공간이 물로 가득찼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무의식중에 숨을 참곤 한다. 하지만 사체 운반 헌터 과정을 거치고 레이드를 하면서 숙달이 되다보면 어느덧 그 기억은 사라진다. 그런데 그 늪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기억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고스트 피쉬가 서식하고 있는 늪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으면서도 가장 먼저 늪에 입장했던 서규태는 곧바로 다시 늪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단 한 번의 호흡으로 물을 마셔서, 밖으로 나온 후에 한동안 괴로워해야 했다.

고스트 피쉬의 공략이 어려운 것은 고스트 피쉬가 살고 있는 맵이 심해라는 이유만이 아니었다. 고스트 피쉬에게 그 이름이 붙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스트 피쉬는 몸안의 자체 발광기관을 통해서 제 몸에 빛을 냈고 그 빛으로 자신의 몸을 헌터에게 감추었다. 고스트 피쉬가 사는 늪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하더라도 고스트 피쉬를 찾는 것이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되는 것이다.

고스트 피쉬가 사는 맵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공략 방법을 같이 연구한 후에 다음날 다시 오는 것으로 계획을 급수정해야 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감응기에서는 고스트 피쉬의 위치가 나타났지만 늪 아래로 내려가보면 고스트 피쉬가 그 자리에 없었다. 이동하는 고스트 피쉬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감응기를 늪 아래로 가져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감응기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계가 아니었다. 심연의 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았겠지만 물 속으로는 가져갈 수가 없다고 지연이 미안한 듯이 설명을 했다. 가져가더라도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게다가 야로슬라프는 그 와중에 그동안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하던 자신의 비밀 하나를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그에게 심각한 심해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늪 아래에는 어떤 공간이든 펼쳐질 수가 있었다. 우주가 펼쳐져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맵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니던 야로슬라프가 유독 심해의 맵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다. 기를 펴지 못한 것 뿐만 아니라 몸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늪 아래에서 바로 엄청난 수압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클랜원들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것이 그냥 압력의 문제이기만 했다면 야로슬라프도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공포증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클랜원들은 야로슬라프가 같이 레이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했다. 어느덧 야로슬라프는 클랜 A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서 세진은 쉽게 자신의 불안장애에 대해서 말할 수가 있었다. 세진이 늪 아래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듣고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평소에 큰 기대를 받지 않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상 늪 아래로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고스트 피쉬에게 어떻게 공격을 할지 그것도 문제였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야로슬라프가 괴력으로 고스트 피쉬를 늪 밖으로 끌어오는 거였다. 일단 그렇게 하고나면 고스트 피쉬를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경험치가 고스란히 날아간다는 문제가 생기기는 하겠지만 늪이 오픈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늪이 오픈되면 고스트 피쉬만 나오는 건가? 아니면 물이 같이 범람하는 건가? 고스트 피쉬는 심해언데 물이 범람한다고 해서 그 압력이 그대로 유지되지는 않을 텐데?”

이익헌이 의문을 품었다. 그 늪은 그냥 오픈일을 기다렸다가 공략을 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클랜 A는 철수를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쉽게 늪을 떠나지는 못했다. 클랜원들은 고스트 피쉬의 공략법을 두고 토론을 벌였고 이익헌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한 곳으로 떨어져나가 선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아영은 조용히 이익헌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더니 뭔가 생각이 날 것도 같다고 말했다.

“마스터님이랑 얘기를 하고 다시 전화할게요. 10분쯤 후에 다시 통화해요.”

그래도 선아영과 마스터에게서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오겠는가 싶어서 이익헌은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선아영이 다시 전화를 하기로 했던 시간이 지나면서 이익헌은 희망을 완전히 버렸다. 선아영도 그 일에만 신경을 쓸 수 있는 입장도 아닐 거고 익스트림 헌터 일로 바쁠 거라고 생각했기에 서운한 마음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이익헌은 다시 헌터들과 머리를 맞댔다.

“우리한테 중요한 건 지금 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태인이 말했다. 이 늪을 놔두면 오픈일에 늪에서 괴수가 출몰할 테고 그때 괴수를 공력하는 일은 분명히 까다롭기는 하겠지만 세상의 모든 문제를 클랜 A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머리를 쓰다보니 슬슬 심사가 뒤틀렸던 것이다.

“저도 기본적으로는 태인이 형 생각이랑 같아요. 지금은 미하일의 경험치를 올리는 게 더 급한 문제잖아요. 일단 머릿속에 담아두기는 하자고요. 고스트 피쉬를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서요. 그리고 접근법이 떠오르면 그때 다시 공략을 시도하든지 하고 우선은 당면과제를 처리하는 걸로 하죠?”

강현까지 그러고 나서자 그렇게 방향이 잡혔다.

미하일은 자신의 경험치를 올려주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클랜 A가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를 정확히는 알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고마움을 느꼈다. 경험치를 올려서 등급을 올려주겠다는데 싫을 리가 없었다.

작전을 변경해서 그들은 다른 늪을 물색했고 미하일과 레오니드를 대동하고 공략을 하러 갔다. 고스트 피쉬를 대신해서 찾아간 2급 늪에서는 시시하리만치 빨리 공략이 끝났다. 도무지 어려울 것이 없었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 무려 네 명이었다. 거기에 A급 헌터, B급 헌터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데 그런 구성을 해 가지고 레이드가 오래 걸렸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미하일을 위한 경험치는 전부 다 쌓아 준 상태였고 이제는 5급 늪에만 데리고 들어가도 미하일의 등급이 저절로 올라갈만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는 미하일이 레이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모두가 주안점을 두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명백한 계산 착오였다.

미하일이 바보가 아닌 한, 그런 클랜 A의 행동을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그동안에는 끈질기게 끌고 다니면서 레이드를 시키던 사람들이 갑자기 뭉쳐서 집단 따돌림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미하일을 두고 레이드를 다니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었겠는가.

그러나 미하일은 '바보가 아닌 한'이라는, 바로 그 단서에 해당이 되는 바보였던 것인지 클랜 A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보다 자기가 차크라를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거라고 느꼈다.

레오니드는 미하일이 혹시라도 혼자서 레이드를 하지 못하도록 밀착 감시를 했다. 이제 미하일은 그대로 청정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가 용하의 앞에서 차크라가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야하는 거였다. 애초에 클랜 A가 시간과 레이드 배분을 조금 더 세련되게 했더라면 괜히 신경쓰일 일을 만들지 않았어도 좋았을 텐데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남은 시간은 이틀이었다. 지연은 미하일의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를 대비해서 야로슬라프의 늪이나 미하일의 늪을 찾으려고 했지만 괴수가 사라진 늪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브래들리 허버트에게 따라주었던 운이 지연은 외면하고 있었다.

남는 시간 동안 클랜원들은 고스트 피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기들의 앞에는 더 중요한 문제, 폭주하는 괴수의 차크라를 막아야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려고 하면서 억지로 고스트 피쉬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독한 피로감만 남았다. 억지로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노력에도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새삼스럽게 깨닫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자처럼 두 사람이 나타났다. 헬기가 굉음을 내고 내려오더니 그곳에서 선아영이 내렸다. 선아영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며 기뻐했던 이익헌은 그 뒤에서 따라 내리는 사람이 채준형이라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섰다. 그러나 채준형은 이익헌에게 다가와서 담담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익헌은 어색한 표정으로, 채준형에게 눈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한 채 그의 손을 잡았다.

“고스트 피쉬에 대해서 마스터님이랑 얘기를 했는데 마스터님한테 아이디어가 있어서요.”

선아영이 클랜원들에게 설명했다. 어느새 모여든 클랜원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채준형을 바라보았다. 강현은 반가운 표정으로 채준형과 눈빛을 나누었고 채준형도 반갑게 웃으면서 재회를 기뻐해주었다.

“고스트 피쉬가 자체 발광물질로 물 속에서 몸을 감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수류탄인데 수류탄을 물에 던져서 그 진동으로 괴수를 물 위로 튀어오르게 하는 겁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겠지만 우리한테는 그 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잠깐만요. 늪 아래가 바로 물이예요.”

서규태가 말했다.

“조금의 틈도 없나요?”

채준형이 물었다.

“약간의 틈은 있습니다.”

“그러면 아마 통할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은 임정 탱커님이 해 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고스트 피쉬가 어디로 떠올지 모르니까요. 딜러보다는 탱커가 낫죠.”

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진동에 의해서 고스트 피쉬가 튀어 오르겠지만 곧 다시 가라앉을 겁니다. 임정 탱커님이 고스트 피쉬가 수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해서 페인트 건을 쏘시는 겁니다. 그게 뿌려지면 고스트 피쉬를 물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그냥 페인트가 아니라 특수 염료가 들어있거든요.”

“잘 됐네요. 그렇게 하면 일단 고스트 피쉬를 찾을 수는 있겠네요.”

서규태가 말했다.

지우는 걱정된다는 듯이 임정을 바라보았지만 임정은 아무런 걱정도 없어보였다.

“내가 클랜 A에서나 쩌리지, 나도 B급 탱커라는 거 잊었어요? 내 재생능력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예요.”

임정이 당당하게 말하자 그제서야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소리굽쇠예요. 소리굽쇠를 직접 무기로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고스트 피쉬는 심해에서 사는 괴수라서 청각이 굉장히 발달해있을 겁니다. 이 소리굽쇠를 치면 고스트 피쉬에게 괴로운 자극이 될 겁니다. 고스트 피쉬가 이 노이즈에 신경을 쓰는 동안 고스트 피쉬의 집중력이 조금은 분산이 될 겁니다.”

채준형의 설명이 얼추 끝나자 선아영이 다른 물건들을 꺼냈다.

“이건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특수 갑옷이예요. 이걸 입으세요.”

“이건 언제 준비한 건데요?”

서규태가 그야말로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맵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익스트림 헌터에서는 계속 연구와 개발을 하니까요.”

선아영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지에 몰려있던 클랜원들은 다시 방향을 잡을 수가 있었고, 각자가 역할 분담을 하고서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용하와 시현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헌터들을 바라보는 시현의 눈빛은 어린 아이의 눈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영민하게 빛났다.

“시현이는 저럴 때 보면. 꼭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시현이를 발견하고 선아영이 말하자 이익헌과 다른 헌터들이 시현이를 바라보았다. 시현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자기를 바라보고 아빠까지 저를 봐 주자 좋아서 마구 들썩였다.

“빨리 끝내고 놀아달래. 시현이 불쌍해죽겠다. 하루 종일 아빠가 저 쳐다봐주기만 바라면서 너만 보고 있잖아.”

용하의 말에 지우도 미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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