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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34화 (13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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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캐츠 아이 스톤에 목말라하며 괴수들을 쫓는 숙명을 피할 길은 하나뿐이라고 야로슬라프는 말했다.

아기는 절대로 E등급으로 올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아기의 침실에는 심각한 표정의 세 사람이 아기의 주위에 서 있었다. 지우와 임정, 그리고 강현이었다. 강현은 아기 침대 옆에 서서 아기에게 자기 손가락 하나를 잡힌 채 연신 웃음을 짓고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도 빛을 잃지 않은, 완벽하게 영롱한 눈빛이었다. 어떤 허물을 가지고 있어도 전부 다 알아볼 것 같은 눈빛이 까맣게 빛나고 있었다.

안시현.

그것이 아기의 이름이었다. 아기의 이름으로 생각해 둔 게 있냐고 임정이 묻자마자 지우가 말한 이름이었다.

“시현? 왜요?”

임정은 이름이 너무 빨리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채로 누군가 물어봐주기만 기다렸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내 이름이 싫어서 어렸을 때 엄마랑 아빠한테 나를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었어. 아무도 협조를 안 했지만.”

지우가 말했다.

“지우씨 이름이 싫었어요? 왜요? 나는 좋은데.”

“안지우라고만 하면 상관이 없는데 안지우지? 안지우냐? 안지울래? 안지워? 지워라. 그러면서 애들이 놀렸거든.”

“그런 생각은 못 했는데.”

임정의 말에 강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임정을 바라보았다.

“누나가 더 이상한 것 같아요. 그 생각을 왜 못해요? 나도 형 처음 봤을 때 이름 듣고 드립치려다가 말았는데.”

“그래애?”

그러면서 임정은 시현이라는 이름을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신 느낌이 나. 시큼한 느낌.”

강현이 말하면서 아기의 손에 붙잡힌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기는 강현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

“너는 이제부터 시현이다.”

임정이 아기의 이마를 톡 건들이면서 말하자 아기가 눈을 꿈벅거리면서 임정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 너무 일찍 나온 거잖아요. 아직 출산 예정일은 더 남았잖아요. 그런데 이 녀석이 엄마를 구하려고 미리 나온 거라는 거죠?”

강현은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신기하다는 듯이 손등으로 아기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병원에는 가 보지 않아도 돼요?”

“안 그래도 지연씨가 아기랑 같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차크라 문제도 있고.”

“아! 차크라 문제! 그러네. 이제 누나 뱃속에서 나왔으니까 시현이 차크라가 드러나겠군요.”

“지금 우리한테 사람들의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어서 우리가 다같이 미국을 떠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고. 우선은 지연씨한테 시현이를 맡겨야 할 것 같아.”

강현은 지우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즉흥적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강현은 아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후, 후 입으로 바람을 불어 머리카락을 날렸다.

머리카락들이 몸서리를 치면서 바들바들 떨렸다. 힘이 없이 부드럽기만 한 것들이 몇 가닥씩 모여서 서 있다가 파르르르 떨었고, 눈을 감고 있는 아기의 얼굴에 강현의 서늘한 입김이 닿을 때마다 시현은 움찔거렸다.

강현은 아기가 보이는 반응이 재미있어서 생각도 없이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주변으로 주황색 차크라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게 보였다.

“어이, 김강현. 그러다가 아기 차크라에 맞아서 울지 말고 그만둬.”

지우가 알려줬을 때에야 강현은 상황을 깨닫고 아기에게서 달아났다. 아기의 차크라가 잦아들었다.

“무턱대고 걱정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시현이는 자기를 귀찮게 하는 사람한테서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강현이 말했다.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임정은 코모도 괴수가 그들을 공격했을 때 아기가 차크라로 엄청난 방어막을 만들어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코모도 괴수의 발이 거기에 닿았을 때 코모도 괴수가 얼마나 끔찍한 비명을 질렀는지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자그마치 1급 늪의 주인이었다. 그런 늪의 괴수가, 아기의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고 아기의 차크라가 친 방어막에 닿았다는 것만으로 소름끼쳐하며 비명을 지르고 달아난 것을 생각하자면 강현의 말이 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현이도 공격력이랑 방어력이 같을까요? 방어력이 얼마나 큰지는 이미 입증이 된 거나 마찬가지니까 방어력이랑 공격력이 같다고만 한다면 시현이는 정말 대단한 헌터가 되겠어요."

임정이 말했다.

"내가 시현이한테 바라는 건 헌터가 되지 않는 것 뿐이야."

지우가 말했다.

지우는 아기가 세상을 구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아기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만을 바랐다.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행복이라는 단어에 스스로 정의내릴 수 있게 되기를, 그러면서 소박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오래오래 그 행복을 지켜나가기를 바랐다. 남의 평온을 위해서 몸이 찢겨나가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가 않았다. 저라면 시현을 위해서 얼마든지 그런 일을 겪어주겠지만 시현이 세상을 위해서 그런 것들을 감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우는 한없이 부드럽기만한 아기의 팔을 들어서 만져보았다. 헌터 타투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 거기에 선명한 문신이 생겨날 거라는 것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자기가 간절히 바라더라도 아기의 운명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고 그 생각이 지우를 괴롭혔다.

임정은 지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듯이 지우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걱정만 하지는 마요. 걱정을 하다보면 행복해야 할 시간도 다 뺏겨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이렇게 좋은 아기를 만났잖아요. 그리고 시현이는 아직 헌터가 아니고요. 그리고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강한 차크라로 보호를 받고 있고요. 이 차크라가 시현이를 지켜줄 거예요. 당신을 지켜줬던 것처럼요."

"응."

지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제 어깨에 올라온 임정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

서규태와 이익헌은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나서 클랜원들에게 연락을 해왔다. 미국에, 성장하는 1급 늪이 나타나면 한국과 러시아 다음으로 최우선 순위를 미국에 두고 와서 공략을 해 주는 조건을 먼저 걸었고 1급 늪 150개당 캐츠 아이 스톤 하나씩을 주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재 미국에 있는 1급 늪의 개수와,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는 늪의 숫자를 감안했을 때 하루에 하나씩 공략을 한다고 하면 다섯 달에 캐츠 아이 스톤을 하나씩은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임정이 아기를 낳아서 이제부터는 다시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고 유라슬라프라는 전력까지 보강된 상태라서 하루에 두 개를 공략하는 것도 가능할 듯했다.

“늪 120개당 하나로 하자고 해 보세요. 어차피 받아들이긴 할 거예요. 어렵다고 하면 조금씩 올려보고요. 캐츠 아이 스톤을 발견한 헌터들은 가장 높은 가격에 그걸 팔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걸 알 거고 여기로 모여들 테니까 캐츠 아이 스톤을 받기 위해서는 미국이랑 앞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 거예요.”

태인이 말했다. 그런 문제에 지우나 임정이 직접 나서는 건 아무래도 어색해서 두 사람은 거의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클랜 A에 갑자기 캐츠 아이 스톤이 필요해진 것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 예전에는 눈치볼 필요없었던 상대에게 저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것도 모두 자기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불편했다.

실제로 지우와 임정 두 사람은 자기들 둘이서 늪을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캐츠 아이 스톤은 1급 늪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늪에서든 나올 수 있는 것이니 쉬지 않고 레이드를 하다보면 극악한 확률이기는 하지만 캐츠 아이 스톤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이미 지우가 한 번 캐츠 아이 스톤을 그런 식으로 얻은 적이 있어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운에 기댄 말이었고 그렇게 해서 일년 내내 레이드를 한다고 해도 캐츠 아이 스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서규태와 이익헌은 태인의 말을 받아들였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다시 또 장시간의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에만 아홉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는 그야말로 진이 다 빠진 모습이었는데 어쨌거나 그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키고 돌아오기는 했다.

“삼촌 잘 했지? 삼촌 잘 했지?”

이익헌과 서규태는 아기 침실로 달려가서, 세상의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구경할 수 없을 표정을 아기에게 지어보이며 시현에게 자신들의 귀환을 보고했다.

“부사장님도 그렇고 치안부장님도 그렇고. 저 분들이 저런 짓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지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진저리를 치면서 말했다.

일은 하나씩 하나씩 마무리가 되었다. 이제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지연이 시현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시현의 차크라를 감출 방법에 매진하는 일이었다. 급한대로 선아영의 익스트림 헌터에 의뢰를 해서, 지우의 옷을 만들었던 소재로 아기 옷을 만들어서 공수를 받기는 했지만 일단은 아기가 한국으로 돌아가 클랜 A동에 머무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에 모두의 뜻이 모아졌다.

괴수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늪 주변으로 아기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지연이 시현을 데리고 떠나기로 한 날이 되기 전부터 임정은 자주 울었다. 지우도 울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다. 시현을 낳는데 관여한 바가 없는, 무뚝뚝하고 시커먼 삼촌들까지도 마음이 아프고 벌써부터 그리워질 정도였으니 부모가 어떨 거라는 건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시현이가 헌터들 틈에서 자라다보면 자연스럽게 레이드에 뛰어들게 될 거예요. 나는 시현이가 헌터들이 아닌 일반인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게 시현이한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야로슬라프의 말은 지우와 임정의 머릿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한 번 들은 그 말이 두고두고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지우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신용하.

천기정과 선아영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클랜 A보다도 더 헌터와 많이 연관이 된 조직이었다. 두 사람과 함께 산다면 헌터들의 이너 써클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을 한 후로는 신용하 외의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신용하는, 이미 지우의 부탁을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쪽에서 벌써 신세진을 맡아달라고 부탁해온 입장이었으니.

“용하씨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 시현이를 봐 줄 수 있겠어요?”

임정이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가 남는다는 듯이 물었다.

“연봉을 다섯배로 올려주고 집과 차를 제공하고, 시현이를 키우고 용하랑 시현이가 살아가는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대주는 걸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신용하가 우리 시현이를 학대할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장소에 카메라를 달아놓자. 신용하의 사생활은 존중을 해 줘야 하니까 신용하 침실만 비공개로 하기로 하고.”

지우가 말했다.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절대로 그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일언반구도 없이 그런 일을 추진하면서 용하에게 미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용하 말고는 아무도 생각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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