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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33화 (13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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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야로슬라프의 목소리가 지우의 머릿속에 차갑게 번졌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악물었다.

“할 수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요.”

“그래. 그러자.”

지우는 야로슬라프를 보고 웃어주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자신도 다시 다짐을 했다.

지우는 끝없이 칼을 휘둘렀다. 한 손에는 엑스 블레이드가, 한 손에는 론 디어가 들려있었다. 코모도 괴수의 몸에서 푸른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지우의 차크라가 쏟아져 들어간 탓이었다.

지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야로슬라프는 지우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매몰될까봐 걱정이 됐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심장까지도 내걸 수 있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지우의 움직임을 점점 둔하게 만들었다.

“형. 나 혼자는 못해요. 형이 도와줘야 돼요.”

야로슬라프의 목소리에 지우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코모도 괴수의 혀가 야로슬라프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숙여, 야로!”

지우는 야로슬라프를 향해 몸을 날렸고 코모도 괴수의 혀가 지우의 등을 관통하려 했다. 지우의 차크라가 순간적으로 방어막을 두르지 않았다면 지우는 거기에 꿰뚫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우를 안고 누운 자세로 야로슬라프가 팔을 뻗어 코모도 괴수의 혀에 제 칼을 찔러 넣었다. 코모도 괴수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혀를 내뺐을 때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섰다.

“미안하다.”

지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로슬라프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코모도 괴수가 할 수 있었던 마지막 반항이었다.

야로슬라프는 지우의 눈에 푸른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그 빛은 지우의 온 몸을 감쌌다. 코모도 괴수는 제 앞에 닥칠 운명을 감지한 듯 비명을 지르면서 맵 안에서 도망쳤지만 엑스 블레이드에 의해서 몸이 조각 조각나고 말았다.

일격, 일격이 전부 치명상이었다. 그렇다고 속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야로슬라프도 그 뒤를 따라가며 공격을 가했다.

지우는 정보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괴수의 체력이 바닥났을 때 곧바로 늪을 뛰쳐나갔다. 1급 괴수의 러프 스톤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

임정의 가슴이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 마취없이 지연이 회음부를 절개했을 때도 그것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연이 아기를 받아주었다. 그 와중에도 임정은 아기와 지연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트레일러의 창문이 코모도 괴수의 쇠갈고리같은 발톱으로 부서지고 창틀이 뜯겨나갔다. 트레일러는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세 사람은 서로에게 묶여있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포기한 채로 달아나지 않았다.

“미안해요…….”

임정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코모도 괴수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코모도 괴수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았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것을 향해서 코모도 괴수는, 트레일러 안에 발만 집어넣고 공격을 감행하는 중이었다. 코모도 괴수의 발이 그들을 향해 정통으로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임정이 방패를 쳐들었지만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임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코모도 괴수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코모도 괴수는 발에 창이라도 박힌 것처럼 비명을 지르면서 발을 빼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임정은 이해하지 못했다. 늪에서 헌터들이 돌아온 건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기예요. 콩알요.”

지연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을 때 임정은 그제야 아기를 바라볼 생각을 했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주름이 잔뜩 있는 신생아다운 모습을 한 아기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눈을 꾹 감고 있었다. 다른 아기와 다른 점은 그 주위에 일렁이는 주황색 차크라뿐이었다. 그것은 어느새 아기를 넘어서 임정과 지연까지 둘러싸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요.”

지연이 말했다.

“네?”

“아기의 차크라요. 2만 8천이었거든요. 아무도 콩알의 차크라는 물어보지 않아서 알려주지 않았지만.”

“네에?”

“타고난 탱커네요. 콩알은.”

그때 트레일러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코모도 괴수의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졌고 검을 휘두르는 소리와 헌터들이 날아가다 착지하는 소리들이 마구 뒤섞이며 들렸다.

임정은 방금 전에 출산을 한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출산을 위해 지연이 절개한 회음부도 그 사이에 모두 아물어 있었다. 지연은 다시 한 번 임정의 재생 능력에 혀를 내둘러야했다.

“이런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반갑다. 콩알. 이모야.”

지연이 말하면서 아기를 감쌌다. 임정은 아직 방패를 내려놓지 못했다. 아기를 감싸고 일렁이던 차크라는 어느새 얌전하게 잦아들었다.

“아빠는 너만했을 때 차크라가 없었을 텐데. 그런데도 지금 저런 사람이 됐는데 너는 자라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임정이 콩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저도 사람이라고 거기에 털이 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거의 구색만 갖춘 정도로 아주 소박하게 조금만 나 있는 거기는 했지만.

임정의 얼굴에 연신 웃음이 지어졌다. 아기가 괴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겁에 질렸던 날들이 얼마나 무의미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연도 마찬가지였다. 초음파검사로 아기가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이 그렇듯, 혹시나, 어쩌면, 이라는 걱정과 불안에서 자유로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요?”

임정이 지연에게 물었다.

“뭔데요?”

어떤 거창한 말이 나올까 기대하면서 지연이 물었다. 아무리 어려운 걸 원한다고 해도 웬만하면 임정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엎드려서 자는 거.”

“네?”

“아기를 가진 내내 엎드려서 잘 수가 없어서. 아기만 낳고나면 계속 엎드려서 자야지, 그렇게 벼르고 있었거든요.”

“커피도 마구 마셔요. 카페인에 왕창 취해보고 술도 마시고. 아기 때문에 못했던 것들 잔뜩 하세요.”

“그리고 레이드도.”

임정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저 사람들의 여분이 생명이니까. 아기를 맡아줘요.”

임정은 그렇게 말을 하고 트레일러 밖으로 나갔다. 몸에 맞지 않게 된 갑옷이 조금 거추장스럽게 보였을 뿐, 지연이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임정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모습이었다. 지연은 아기를 꼭 끌어안았다.

“구해줘서 고마워.”

아기는 지연의 품 안이 불편하고 답답한 듯 꼼지락거리다가 쭈글쭈글한 얼굴에 주름을 더 만들어내면서 하품을 해댔다.

“그래. 자.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아빠를 만나게 될 거야.”

지연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기는, 이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은 가난한 잇몸을 드러내고 잠이 들어 있었다.

***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표정.’

아기에게 몰려들어 아기를 바라보는 헌터들의 표정을 찍어두었다면 그 사진의 제목은 당연히 그게 되어야 했을 것이다.

임정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해주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면서 부상당한 헌터들을 치료해주었다. 지우는, 자기는 다친 곳이 없다면서 위생 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팔과 목을 임정에게 보여주었다가 여기저기에서 전부 걸려서 임정의 차크라 세례를 잔뜩 받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날은 모두들 부상을 당했다. 워낙 상상하기 어려운 공격이었고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도 있었고 1급 괴수가 두 마리나 나와서 어쩔 수 없기도 했다. 그래도 큰 부상은 아니었고 임정의 차크라 세례를 받은 후에는 모두들 말짱하게 나아 있었다.

늪이 사라지기 전에 괴수 사체를 끌고 나와야 한다는 문제는 야로슬라프로 인해서 해결이 되었다. 일단 서규태가 큼직 큼직하게 토막내주기만 하면 야로슬라프의 괴력으로 괴수 사체를 늪 밖으로 끌고 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야로슬라프의 몸 속에 차크라가 정리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기만 했었다면 이제는 차크라가 정교하게 다듬어졌고 야로슬라프에게 힘을 주었다. 야로슬라프는 전에는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몰랐던 힘을 이제는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한계는 매번 무너졌다.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계속해서 부정되었다. 더, 더, 더. 야로슬라프는 계속 그 한계를 깨면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야로슬라프는 괴수의 사체를 빠른 시간 안에 끌고 나오는 것을 자기 혼자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된 듯했다. 그래서 남들은 전부 트레일러 안에서 아기를 구경하고 있는데도 혼자서 괴수 사체를 끌어냈다.

어느새 강현이 나와서 야로슬라프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야로슬라프 전용으로 절단해놓은 사체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현은 야로슬라프를 따라다니면서 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기한테서 어떤 차크라가 나왔는지, 트레일러 안에 있던 사람들이 코모도 괴수의 공격을 당했을 때 아기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했는지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야로슬라프는 정말? 정말? 이라는 말을 연신 해대면서 아기에 대한 궁금증을 키웠다.

그리고 다음 날 하늘 위에서 잠자리같은 방송국 취재용 헬기가 달달달달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닐 때까지 클랜원들은 정신없이 잠을 잤다.

가장 먼저 깬 사람은 아기였고, 아기는 자기가 태어난 이후로 아직 변변하게 먹은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것처럼 우렁차게 울어댔다. 임정에게서는 모유가 나오지 않았고 분유는 아무리 트레일러를 뒤집어 털어봐야 나올 리가 없었고 궁여지책으로 보리차를 끓여서 식혀주자 아기는 그걸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기의 옆에는 코모도 괴수에게서 얻은 두 개의 러프 스톤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팔지 말고 아기의 탄생석으로 삼고 아기에게 주자는 태인의 말에 모두가 동의를 해서 그 두 개의 러프 스톤은 아기에게 주어졌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선아영에게 얘길 해서 한 쌍으로 된 검과 비수를 만들고 손잡이에 두 개의 러프 스톤을 나란히 박아서 아기에게 선물하자고 하면서 그들은 다같이 기대에 들떴다.

아기는 헌터들의 생활을 단번에 바꿔놓았다. 아기는 엄청나게 자력이 강한 자석 같았다. 헌터들은 아기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했다. 얼굴이 눈에 밟힌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확실하게 깨달을 정도였다. 뭘 하든지 아기의 모습이 떠올랐고 보고싶어졌다.

그건 엄마와 아빠한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익헌과 야로슬라프까지,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까지도 아기의 열성적인 팬이 되어 버렸다.

아기가 대단한 차크라로, 태어나자 마자 엄마를 구했다는 사실에 헌터들은 더 감동을 받았다. 출산 예정일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도 자신의 차크라로 사람들을 구하려고 스스로 나온 거라면서 확실히 남다른 아기라고들 말했다. 아기의 차크라양이 2만 8천이라는 말을 듣고 야로슬라프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기는 클랜 A의 클랜원이 될 거라면서 그들은 기대에 차 올랐다.

하지만 그때마다 야로슬라프는 헌터들이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것은 아기가 헌터가 되어 E급으로 올라가는 순간, 아기도 사냥을 멈출 수 없는 숙명의 수레바퀴에 오르게 된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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