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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임정은 지연과 함께 거기에 남기로 했다. 늪 안에서의 사냥이라면 모를까 일단 괴수가 늪 밖으로 나와버렸는데 임정의 안전을 장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우는 서규태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가 괴수를 늪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야로슬라프. 나를 도와줄 수 있겠어?”
지우가 물었다. 야로슬라프는 기가 질린 얼굴이기는 했지만 일단 해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은 괴수가 다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도록 유도해주세요.”
지우의 말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트레일러에서 나가기 전에 익헌이 지연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밖에서 우리가 전멸하는 것 같아도. 코모도의 혀에 당하면 끝장이야. 탱커도 지금 아이 때문에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야. 차크라가 분산되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어?”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가지를 부탁하는 거야. 탱커를 지키라고.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 파이널 환우. 할 수 있지?”
지연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익헌은 세띠 아르마딜로의 등껍질로 만든 방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우는 트레일러에서 나가기 전에 임정을 바라보았고 임정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우가 돌아오면, ‘괜찮지?’라고 물을 것이고 자기는 그 말에 괜찮다고 말하게 될 거라고 임정은 생각했다.
야로슬라프는 코모도 괴수를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다른 클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놈은 달랐다. 코모도 도마뱀 괴수는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로 한없이 긴 혀를 휘두르면서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을 건들어보기만 하고 있었다.
“코모도의 침에는 독성 강한 물질이 들어 있어서 몸에 닿기만 하면 마비가 될 겁니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죽겠죠. 갑옷을 입어서 어느 정도의 피해는 막을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모두들 주의를 기울이세요.”
서규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익헌은 코모도의 시선을 제 쪽으로 이끌어갔다.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 시야에서 코모도의 모습이 흐려지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지만 뱀처럼 긴 코모도의 혀를 놓치는 거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지우가 강현에게 부탁을 하기도 전에 강현은 코모도의 늪으로 달려가 늪 안으로 뛰어들었다. 강현은 늪 안을 탐사하고 곧바로 나와 지우에게 소리를 질렀다.
“늪으로 끌고 가는 게 나아요. 이대로는 위험해요. 코모도도, 코모도 혀도 안 보이잖아요.”
그 말에 지우가 알았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 갑자기 주위가 환해져 돌아보니 트레일러에서 그쪽으로 조명을 비추고 있었다. 경기장 조명등처럼 환한 불빛이었다.
지우가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제가 엑스 블레이드로 코모도의 혀를 자를 게요. 코모도가 그걸로 치명상을 입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코모도를 늪으로 옮길 수는 있을 거예요.”
모두들 그 말을 같이 들었다.
“야로. 준비해. 차크라를 비축했다가 단 번에 코모도를 끌고 가는 거다. 코모도의 혀는 계속해서 주의해. 코모도의 상처가 회복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자르자마자 다시 자랄 수도 있고.”
익헌이 야로슬라프에게 주의를 주었다.
“네, 아짐!”
야로슬라프는 지우가 엑스 블레이드를 어깨 위로 높이 쳐드는 것을 보았다. 같이 레이드를 해 본 경험이 쌓여서 이제는 지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 것인지 감이 잡혔다. 야로슬라프는 익헌의 말대로 차크라를 모았다. 그리고 지우가 엑스 블레이드를 들고 코모도를 향해 달려간 순간, 야로슬라프는 동시에 코모도를 향해 달렸다.
코모도는 저를 향해 달려오는 야로슬라프를 노렸다. 지우와 서규태, 이익헌 모두 야로슬라프의 한 발 빠른 움직임에 경악했다. 좋은 의미의 놀라움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갔다가는 속도가 맞지 않았다. 야로슬라프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지우는 코모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어깨에 차크라를 실어 그대로 엑스 블레이드를 코모도에게 빠른 속도로 날렸다. 엑스 블레이드는 크게 허공을 가르고 그대로 코모도의 주둥이를 아래에서부터 베어버렸다. 야로슬라프를 노리던 혀는 뿌리를 잃은 채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야로슬라프는 뒤늦게 제 실수를 깨닫기는 했지만 기왕 거기까지 간 것, 추진력을 잃지 않고 그대로 코모도의 몸을 늪까지 밀어버렸다. 모두가 야로슬라프의 괴력을 보고 입을 벌렸다. 하지만 한가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야로슬라프에게 힘을 보탰다. 오랜만에 전력으로 싸운다는 생각이 그들에게 흥분감을 감돌게 했다.
얼굴의 앞쪽이 통째로 잘려나간 코모도 괴수는 늪으로 던져졌다. 지우는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았다. 그가 깨닫지 못했다면 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야로슬라프는 잔뜩 기가 죽어서 마구 후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익헌이 먼저 나섰다. 지우가 일단 화를 내기 시작하면 야로슬라프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서두르는 건 금물이야. 항상 옆 사람의 속도를 살펴. 우리는 앞사람을 열심히 쫓는 역할을 하는 엑스트라랑 마찬가지야. 열심히 쫓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도망치는 사람을 잡으면 안 되는 거라고.”
“네, 아짐.”
야로슬라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에 지우도 야로슬라프의 등을 한 번 두드려주고 늪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놓친 한 가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강지연이었다.
“치안부장님. 여길 좀 보셔야겠어요…….”
지연이 임정에게 말했다.
그동안은 커다란 괴수 차크라의 아우라에 가려서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코모도 괴수가 늪으로 떨어지자 감응기에 또 하나의 괴수 차크라가 잡혔다. 이전의 것보다는 작았지만 분명하고 강하게 뭉쳐있는 차크라였다.
임정은 감응기를 바라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것은 양쪽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늪 안으로 들어간 코모도 괴수는 1급 괴수였다. 모든 사람이 전력을 다 해서 싸우기 시작해도 아홉 시간은 족히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준비한 레이드였다. 마비를 일으키는 혀가 문제였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코모도 괴수가 나타났다고 도와달라고 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진행될 터였다. 괴수가 늪 아래에만 머무는 개체라면 다른 헌터들이 나와서 먼저 도와주고 다시 공략을 하러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늪을 탈출했던 괴수였다.
“일단은 트레일러의 모든 문을 모두 잠가요.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 앞에 가져다 둘 수 있는 건 전부 가져다 두고 숨어요."
임정은 갑옷을 입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검을 들었다. 지연은 임산부에게 그런 일을 맡기고 도망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임정이 지연을 노려보았을 때, 지연은 더 이상 주저할 수가 없었다. 그때의 임정의 모습은, 서규태와 함께 처음으로 자신을 찾아와서 임재욱 헌터의 일을 추궁하던 그 치안부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제발, 무사하셔야 돼요. 치안부장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는 아마 살 수 없을 거예요.”
“나는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예요. 지우씨를 빼면 클랜내 차크라 서열 2위고요.”
임정이 지연을 안심시키려고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지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때였다. 감응기에 거대한 차크라가 잡힌 것은.
그것은 트레일러 안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지연은 어느새 괴수가 트레일러 안까지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임정이 검을 들고 앞으로 뛰어나가자 차크라가 같이 움직였다. 지연의 얼굴에 감당할 수 없는 놀라움이 번졌다.
“치…치안…부장님…!”
지연이 임정을 불렀다.
임정은 지연에게 위험이 닥친 건가 하고 지연에게 달려가다가 지연이 가리키는 감응기를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그 때였다. 임정이 서 있던 곳 주변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양수가 터진 것이다. 진통도 없이 시작된 일이었다.
“안 돼……!”
임정이 비명을 질렀고 지연이 임정에게 달려갔다.
“제발요. 아무라도 와줘요. 아이가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다른 괴수가 더 있어요!”
지연은 태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태인이 들었는지 어쨌는지도 알지 못했다.
***
늪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지우가 다른 헌터들을 모두 내보낸 탓이었다. 제발 제 아내와 아이를 살려달라고 말하고 지우는 야로슬라프를 제외한 모두를 내보냈다. 지우가 야로슬라프를 바라보자 야로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나가서 아기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코모도 괴수의 회복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혀를 자르거나 얼굴을 통째로 베어버리거나 치명상을 입혀도 1분이 지나기 전에 회복을 보였다. 클랜 A를 만나지만 않았다면 한 도시를 파괴시킬 수도 있을 놈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지우의 엑스 블레이드 전체가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야로슬라프조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몸 전체를 갈라버릴 테니까 공격을 해 줘. 야로. 네가 해 줘야 돼.”
야로는 무기를 치켜들고 지우가 다시 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방금까지 그의 옆에 서 있던 지우의 모습이 사라진 것과 동시에 코모도 괴수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몸이 갈라졌는데도 버틸 수 있는 괴수는 없었다. 야로슬라프는 코모도 괴수를 향해 달려갔다. 코모도 괴수의 베어진 몸 위로 수도 없이 칼날이 날아들었다. 지우는 숨을 쉴 틈도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우리 지우 형은 1초에 두 방을 넣는데 그게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요.’
야로슬라프의 머릿속에 강현의 말이 떠올랐다.
코모도 괴수의 몸에서 미동이 느껴졌을 때 야로슬라프는 제 무기에 차크라를 실었다. 지우가 계속해서 공격을 가할 수 있도록 이제는 자기가 기회를 만들어줄 작정이었다.
야로슬라프는 코모도 괴수의 심장을 쑤셨다. 미동이 사라졌다. 지우는 야로슬라프에게 웃어보일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듯보였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야로슬라프는 저도 모르게 지우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던 남자였다. 조급함이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위기를 느끼는 때도 없었다. 그 남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순간은 아기와 아내에 대해 걱정을 할 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두 사람이 밖에서 괴수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는 거기로 가지 못한 채 이 괴수에게 붙잡혀있는 판이었다.
늪 안에 있는 두 사람이 끝내지 않으면 이 괴수가 다시 그들을 위협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야로슬라프는 지우가 쓰러지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어떤 것도 지우를 쓰러뜨리지 못하겠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에 대한 염려로 그가 평정을 잃을까봐서 그것이 걱정되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그는 분명히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었다. 칼이 들어갔지만 차크라가 모아지지 않았다. 그만큼 칼을 휘두르는 속도가 빠르고 마음이 급한 거였다.
야로슬라프는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남자가 이곳에서 공략을 끝내고 나갈 수 있도록, 나가서 자신의 아내와 아기를 볼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코모도 괴수가 다시 꿈틀거렸을 때 야로슬라프는 코모도 괴수의 머리를 베어냈다. 지우의 입에서 헉헉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할 수 있어요, 형. 형이 무너지면 안 돼요!”
필사적으로 공격을 넣으며 야로슬라프가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