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53화 (53/331)

0053 / 0331 ----------------------------------------------

3.클랜의 멤버

“형!”

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다른 때 같았다면 수치스러웠겠지만 그 순간은 아니었다. 지우가 달려와 줬다는 것이 그저 고마웠다. 고개를 들었을 때 임정이 같이 오는 것이 보였다. 태인은 이제 이 모든 상황이 급격히 일단락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놓았다.

‘너는 이제 죽었어. 시발놈아. 그냥 괴수한테 먹히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거다!’

태인은 저를 붙잡은 딜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은 거라는 말이, 막 태인의 머릿속에 떠오르려 하고 있었지만 태인은 고개를 저어 생각을 억지로 털어내려 했다.

“해 보라고, 이 새끼야!”

딜러가 태인의 어깨를 확 붙잡고 질질 끌고 갔을 때 태인은 딜러가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도 몰랐다. 그때 레이더들의 입에서 비열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태인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건지 정확히 안다는 듯이 길을 터 주었다.

태인은 저를 잡은 딜러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등급에 따른 헌터의 공격력이라는 것은 헌터 간에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차크라를 실은 물리력은 헌터나 일반인에게도 통한다. 태인은 이 정신 나간 딜러가 저를 늪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대로 억지로 자신을 늪으로 빠뜨릴 생각인가 하면서 태인은 힘을 써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딜러 역시 차크라를 쓰면서 버텼다. 마침내 태인의 두 발이 늪 위에 올려졌을 때 태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빨리 빼달라고 외쳤지만 태인을 바라보는 레이더들의 얼굴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난폭한 장난기만 가득했다.

태인이 늪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봤을 때 지우와 임정은 거의 정신을 놓칠 뻔했다. 그 모든 일이, 불과 몇 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임정은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태인을 구하는 게 더 급하다는 것을 알았다.

임정은 제 스마트폰을 지우에게 주며 말했다.

“치안대에 연락해요. 여기로 출동하라고 말하고 여기에서 기다려요.”

임정은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늪으로 뛰어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이 미친 새끼들이 그런 똘짓을 할 거라는 걸 조금이라도 예상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략에 실패했다고 레이더가 동료 헌터를 괴수 밥으로 던져줄 거라고 세상의 누가 상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지우는 임정의 지시를 수행했지만 상대방이 지우의 말을 믿고 움직여줄지 어떨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우도 늪으로 뛰어 들었다. 살아있는 괴수가 있는 늪에서는 언제나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안에 있는 사람이 태인과 임정이 아니라면 절대로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늪 아래에는 거대한 암석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불쑥 불쑥 솟아오른 바위를 보는 순간 처음에 지우가 떠올린 것은, 바위가 피난처가 돼 줄 거라는 생각이었다. 저 뒤에 숨어 있으면 괴수의 눈을 피하고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난히 뾰족하고 거친 바위의 단면에 진한 갈색 페인트 같은 것이 발라져 있는 것을 보고 지우는 바위가 괴수의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위는 숱한 레이더들의 피를 삼킨 채 엄청난 위용을 드러냈다.

지우는 임정과 태인을 찾았다. 임정은 괴수를 태인으로부터 유인해내고서 간간이 공격을 했다. 공략을 위한 공격은 아니었다. 만약 공략을 위한 공격이었다면, 자기가 실컷 떨어뜨린 괴수의 체력이 지우의 등장으로 인해 리셋되는 것을 보았을 때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목적은 태인을 구출해서 데리고 나가는 것에 있었다. 지우는 왜 임정이 태인을 데리고 곧바로 나가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태인에게 다가갔다.

그러는 동안 늪의 주인은 새로 입장한 레이더를 환영해 주고 싶어했고, 임정은 그런 괴수의 시선을 뺏기 위해 연거푸 공격을 퍼부었다.

늪의 주인은 마더 호크였다. 두 발과 두 날개를 가진 대표적인 맹금류 괴수인 마더 호크는 극단적으로 작은 머리와 날카로운 부리를 가지고 있었다. 크기는 8미터 정도로, 동족 개체에 비해서는 평균수준이었다. 마더 호크의 주무기는 날카로운 발톱이었다. 순식간에 날아올라서 커다란 날개로 하늘을 덮고 다가와 발톱으로 갈퀴면 레이더들은 혼비백산하며 달아나기 바빴다. 특히 마더 호크의 날갯짓은 레이더들에게 수많은 부상을 안겨주었다.

그 자체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마더 호크가 날갯짓을 해서 바람을 일으키면 몸이 날아가다가 거친 바위에 몸이 내동댕이쳐지면서 부상을 당하는 식이었다. 그것이 마더 호크의 특징이었다. 그런 점들 때문에 마더 호크는 그다지 위력적인 괴수가 아닌데도 공략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아니라 마더 호크는 거대한 날개로 이리저리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때때로 바위 뒤로 숨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이 마더 호크에게 쉽게 닿지 못했다. 레이더들은 마더 호크의 체력을 효과적으로 깎아나가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면 스스로 공략을 포기하게 되었다.

앞서 나간 레이더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괴수에게 공격을 넣는 것은 점점 까다로워졌다. 그랬기에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서 공격을 그만두기로 결정을 내리고 늪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마더 호크를 피하다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생긴 크고 작은 부상도 원인이었다.

임정은 갑옷도, 어그로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고 있었다.

“여기서 나가요, 어서!”

지우가 소리쳤다. 임정이 지우를 보았다.

“먼저 나가세요. 차크라는 내가 더 많잖아요. 내가 태인이 형을 데리고 나갈 테니까 먼저 가세요.”

태인에게 다가간 지우는 태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태인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지우를 밀쳐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지우는 태인의 뼈가 안에서부터 부러진 채 살을 뚫고 나온 것을 보았다. 날카로운 뼈의 단면이 예리한 칼날처럼 태인의 피부를 찢고 나와 있었다.

지우가 보인 반응을 봤을 때는 몸의 다른 뼈들도 부러진 것 같았다. 태인이 견뎌주기만 한다면 데리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태인이 당한 부상을 확인하고 보니 섣불리 태인을 이동시킬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무리하게 태인을 들춰업거나 안았다가는 태인이 사지가 마비된 채 평생을 살게 될 수도 있기에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지우가 임정에게 다가갔다. 임정은 마더 호크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마더 호크를 상대하던 중이었다.

“형이 움직이지 못해요. 업지도 못하겠어요. 들것에 싣지 않는다면 데리고 나가지 못할 것 같은데요.”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두 사람이 태인을 들것에 싣고 데리고 나가는 것을, 마더 호크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임정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태인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지우와 마더 호크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상대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임정이 묻자 지우는 정보창을 보았다. 괴수의 체력은 1200만에서 거의 깎이지 않은 채였다.

“필요한 만큼 제가 버틸게요.”

지우가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에게 과연 방법이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움직일 수 없는 태인.

무기와 장비가 없는 임정.

공격력 10의 자신.

자신의 경우에는 리로딩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12시간 안에 4급 괴수를 임정과 단 둘이서 공략할 가능성은 전무했다. 임정은 어느새 태인에게 돌아가 있었다. 그때 마더 호크가 임정과 태인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우는 태인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 태인의 손도끼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손도끼를 휘두르면서 마더 호크가 감히 다른 데에 정신을 팔 틈이 생기지 않도록 정신없이 마더 호크를 몰아붙였다. 마더 호크는 날아오를 틈도 찾지 못했다. 지우가 휘두르는 손도끼는 이곳저곳에서 정신없이 들어왔다. 마더 호크는 그때마다 괴로워하며 날갯짓을 하면서 퍼득거렸다. 마더 호크가 커다란 날개를 퍼득거릴 때마다 거친 바람이 일어났다.

“안지우씨. 3분동안 그쪽을 맡아줄 수 있어요?”

임정이 물었다.

“그러겠습니다.”

임정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쪽을 맡아달라는 게 마더 호크를 어느 정도로 잠잠해지게 해달라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그럴 경우에는 아예 마더 호크를 쓰러뜨려 놓는 것이 확실한 게 아닌가 하면서 지우는 태인의 손도끼를 든 채로 마더 호크의 몸통에 뛰어 올랐다.

마더 호크는 제 몸에 뛰어오른 헌터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지우는 순식간에 마더 호크의 목까지 타고 올라갔다. 마더 호크는 제 몸에 달라붙은 헌터를 어떻게 떼어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마더 호크는 날개를 펴고 거칠게 날면서 지우를 떼내려고 몸을 바위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지우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마더 호크의 몸에만 상처가 남았다. 하지만 괴수의 회복력은 무시무시했다. 불과 몇 십 초가 지났을 뿐인데 상처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지우는 손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우는 마더 호크의 등을 타고 올라가 목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도끼를 하늘로 쳐들었다. 마더 호크는 제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하늘로 쳐들렸던 도끼가 떨어져 내리면서 마더 호크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더 호크의 피가 폭포가 되어 쏟아져내렸다.

마더 호크의 회복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의 치명상이라면 적어도 3분 정도는 잠잠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는 임정과 태인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지우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임정의 차크라가 태인의 몸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임정은 신중한 눈으로 태인의 몸을 바라보면서 태인의 몸을 고치고 있었다.

지우의 입이 놀라움으로 점점 벌어졌다. 태인의 뼈가 붙고, 벌어진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

치유 능력을 가졌던 탱커에 대해서 지우는 써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탱커가 임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임정은 고개를 들어 지우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지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이 쓰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우는 마더 호크의 몸에서 내려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태인이 목을 흔들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자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모양이었다.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임정이 태인에게 말했다.

임정은 짧은 시간동안 차크라가 엄청나게 소진된 듯이 보였다.

“마더 호크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나가죠. 내 차크라로는 못 싸워요. 장비도 없고요.”

임정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태인은 자기가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하지만 태인의 몸은 늪으로 들어오기 이전만큼이나 정상적이었다. 태인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태인다운 관조적인 눈빛이 돌아와 있었다.

“가요. 다같이 퇴장하는 거예요.”

지우가 말했다.

임정이 태인의 어깨를 두드리자 태인이 가장 먼저 늪을 빠져나갔다.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