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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54화 (5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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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먼저 나가요. 나는 탱커예요."

임정이 말했다.

"나한테 차크라가 전혀 남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나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우가 말했다. 자기는 져 줄 생각이 없으니 그쪽에서 먼저 고집을 꺾는 게 피차 시간 낭비를 피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은 눈빛이었다.

"왜요?"

임정이 물었다.

"헌터로서 나를 믿어준 첫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내가 목숨을 걸고까지 지켜주고 싶은 단 한 사람이고. 나는 이제 혼자서는 안 될 것 같으니까."

임정에 대한 호칭을 정해놓지 않은 탓에 자꾸 문장 성분 하나씩이 빠진 채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살아야 되는 거네요. 안지우씨를 위해서라도."

말은 절절했지만 누가 먼저 나가든 상관은 없는 상황이었다. 목이 잘린 마더 호크는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복에 앞으로 몇 십 초는 더 필요할 듯했고 그 시간이면 늪을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임정이 먼저 나갔고 지우가 가장 마지막으로 늪을 떠났다.

밖으로 나갔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치안대가 지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었다. 임정이 태인을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할 말이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태인은 고개를 저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정말 큰 빚을 졌어요. 늪에서 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는 말 같은 건 안 했으면 합니다. 그런 걸 떠벌일만큼 바보도 아니고, 탱커님이 저를 위해서 얼마나 힘든 결단을 내린 건지도 알아요.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임정은 조용히 태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천천히 임정에게 다가가 임정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고마워요.”

지우가 말하자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태인이 형 말처럼. 나도 알아요. 그 비밀을 다시는 사람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태인이 형을 위해서 탱커님이 힘든 결단을 했다는 것도.”

“강현이랑 써전님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혹시?”

태인이 말했다. 그러다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눈을 빛냈다.

“써전님도. 그렇게 된 거군요!”

태인의 말에 지우도 뒤늦게 깨닫고,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태인과 지우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임정이 사체 운반팀의 회식에 참석했던 날의 일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치유능력을 가진 탱커라니. 우리 팀. 정말 막강해지겠네요.”

태인이 말했다. 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만약에 괴수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아서 그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면 태인씨는 죽었을 거예요. 바위에 떨어지면서 입은 부상이라서 태인씨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임정이 말하자 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늪으로 들어가니까 괴수가 벌레를 발견한 새처럼 나를 물고 바위에 떨어뜨렸어요. 그러고는 발로 나를 휙 밀었고.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태인이 말했다. 뼈가 부러졌을 때의 끔찍한 통증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마더 호크가 태인씨를, 싸울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장난감으로 여겨서 태인씨가 산 거예요. 마더 호크가 진지하게 싸울 생각을 했으면 태인씨는 마더 호크의 공격 한 방에 죽었을 거예요. 나한테도 죽은 사람을 살릴 능력은 없어요.”

임정의 말에 태인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지우 너. 마더 호크의 머리를 베 버린 거야?”

“네? 아. 네. 형 도끼 좋던데요?”

태인은 지우의 차크라 운용 능력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자기로서는 아무리 해도 손도끼를 휘둘러서 괴수의 머리를 베어내는 일은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임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임정이야말로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괴수의 머리를 벤 레이더는 본 적이 없었다. 할 수 없었던 건지, 시도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 막 헌터 타투가 나타나고 차크라 훈련을 해 가는 헌터가 괴수의 머리를 벴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임정에게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임정은 솔직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임정은 지우의 잠재력이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레이더들. 완전히 미친 거예요.”

태인이 말했다.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레이더들은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적당한 제재를 받아야 되겠죠.”

임정이 말했다.

임정이 치안대를 불러들이는 동안 태인의 스마트폰도 바빴다. 그 날 같이 일을 하기로 했던 써전에게서 연락이 왔다. 써전은 태인에게 지우와 같이 있는지를 묻고 두 사람 모두 빨리 다음 늪으로 이동하라고 성화였다. 공원 입구의 늪은 공략에 실패해서 어차피 사체 운반을 할 수 없게 됐다는 말도 전했다. 다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태인이었다.

“정해진 시간까지는 가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어요.”

태인이 말했다. 그때 공원으로 강현이 달려왔다. 꼬리에 불이 붙은 토끼같은 모습이었다.

강현은 공원 입구에 있는 늪으로 먼저 오려다가 그 늪에서의 공략이 실패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 다음 늪으로 가 있었다. 그러다가 지우와 태인이 너무 늦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혹시나 하면서 전화를 해 봤던 건데 두 사람 모두, 임정까지 세 사람 모두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이 돼서 단숨에 달려왔던 것이다.

강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세 사람? 태인이 형은 왜 그래요? 다친 거예요?"

강현은 피로 물든 태인의 옷을 보고서 기겁을 했다. 하지만 태인의 표정이 워낙 태연해보여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레이드라도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한 피를 흘린 사람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수는 없을 거고 아마도 괴수의 피가 튄 것 같다고 생각한 거였다.

"말을 하자면 길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태인이 말했다.

그러는 동안 임정은 치안대에게 신고를 했다. 그 후로 모든 일은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치안대원들이 타는 지바겐 여섯 대가 공원 입구로 신속하게 들어왔다. 안에는 치안대원들 뿐만 아니라 태인을 늪으로 밀었던 딜러와 그의 행위에 동조했던 레이더들이 같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짓을 순순히 시인하지 않다가 태인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임정과 지우가 뒤따라 들어가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사체 운반이나 하는 하급헌터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니, 잘해서 살아나오면 셋이 모두 불구가 된 채로 겨우겨우 늪을 빠져나오거나 피투성이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 예상과 달랐다. 특히나 임정이 B급 탱커인 치안대원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모두의 낯빛이 흑빛으로 변했다.

임정은 여러 말을 하지 않았다.

헌터에 대한 살인미수. 임정은 그 죄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헌터를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쳤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임정이 말하자 태인을 늪으로 밀어넣었던 딜러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죽이려고 그런 게 아닙니다!”

“죽이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늪에 장비도 없이 하급 헌터를 밀어 넣는 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다는 말인가? 그런 분별과 판단 능력도 없는 헌터라면 헌터 사회에 없는 게 낫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저를 비웃었어요! 저희 모두를 비웃었다고요!”

딜러는 표정없이 저를 바라보는 임정에게 눌려서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임정이 옆에 서 있던 치안대원을 향해 팔을 뻗었다. 익숙한 검이 임정의 손으로 건네졌다. 임정은 검에 차크라를 실었다. 검이 휘둘러지고 딜러의 오른팔이 어깨 밑에서 잘려나갔다.

“늪과 시스템은 여전히 너를 헌터로 인식할 거다. 하지만 너는 헌터로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나는 사형을 집행했다. 헌터로서의 너는 죽었다. 치안대는 죽은 헌터의 활동을 용인하지 않는다. 만약 이 몸을 가지고 헌터로서 생활하다가 치안대에 붙잡히면 그때는 헌터로서의 사형이 아니라 네 존재의 모든 것이 그 순간에 전부 끝나게 될 거라는 걸 명심해라. 그게 크리미널 헌터의 숙명이고 그 숙명은 너에 의해 결정됐다.”

딜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통을 느낄 틈이 없었다. 임정의 시선이 공대장을 향하자 공대장은 사색이 된 얼굴로 임정을 바라보았다.

“방관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방관한 것. 그 죄도 절대로 가볍지 않다.”

하지만 공대장은 방심하고 있었다. 임정과 저와의 사이에 꽤 거리가 있었던 탓이었다. 공대장은 임정이 그곳에서 차크라를 검에 실은채 휘둘러 자신의 팔을 자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팔이 발치에 툭,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것이 제것으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뜨거운 것에 데인 느낌이라서 깜짝 놀라며 팔을 휘둘러 그 느낌을 털어내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미 그런 짓을 할 팔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상황에 놀란 사람들은 레이더들만이 아니었다. 치안대원들은 임정이 월권 행위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치안대장은 성격이 안 좋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러다가 임정이 치안대장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고 치안대에서 쫓겨나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강현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놀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면서 태인에게 물었더니 태인은 최대한 간단하게 브리핑을 해 주었다.

"레이드에 성공도 못한 것들이 빡쳐서 나를 늪으로 밀었는데 두 사람이 와서 나를 구해줬어."

그 말을 들은 지우는 그 일이 단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사실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진짜. 미친 새끼들이네!”

강현은 상황이 전부 끝난 다음에야 혼자서 길길이 날뛰었다. 처음에는 임정이 드디어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남의 팔을 연달아 두 개나 날려버리는 것을 봤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태인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화를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레이더들의 잘려나간 팔을 보면 화가 가라앉기는 했다.

다른 레이더들에게는 처벌이 유예되었다. 앞으로는 굉장히 조심해야 할 거라는 임정의 말이 골에 박힐 듯이 쏙쏙 들어갔다.

치안대원들이 레이더들을 데리고 돌아가는데 치안대원 하나가 쭈뼛거리다가 임정에게 다가왔다. 뭐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얼굴을 보는 순간, 지우가 전화 했을 때 무시했던 사람이겠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당신도 경고다. 앞으로는 아주 많이 조심하는 게 좋아.”

임정의 말에 치안대원은 일단 면죄부를 얻은 것에 기뻐하면서 무리에게로 돌아갔다.

“그럼 우리도 일을 하러 가야겠군요.”

태인이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일터로 향해야 했다. 삶의 단면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서 쌉싸름한 기분이 들었다.

“지우씨는 괜찮아요? 마더 호크 목을 벨 때 어깨랑 팔에 충격이 많이 갔을 것 같은데.”

임정이 말했다. 굵은 목뼈를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잘라냈으니 팔이 괜찮은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우는 팔을 휘휘 둘러보고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좀 시큰한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좀 봐 줄까요?”

“그런데 우리가 좀 늦은 것 같아서요. 써전님을 화나게 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어요. 그럼 일 구하는 게 어려워져요.”

지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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