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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결국 강동호는 유지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정보창도 뜨지 않는 늪에서 수색을 감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잘못해서 시간을 초과해 늪에 갇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모두 퇴장합니다.”
강동호의 명령에 딜러들이 입장했던 순서와 반대로 늪을 빠져나갔다. 임재욱도 크게 이의를 달지는 않았다.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도박을 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이 수집한 정보라는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맵의 크기가 반경 5.3킬로미터였다는 것과 그 늪에는 정보창과 괴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이 그들이 알아낸 것의 전부였다.
늪에서 나온 후에도 그들은 한동안 지우의 집 거실을 떠나지 못했다.
늪은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1급 늪처럼 늪이 아예 커지지 않는다면 일단 안심을 할 수 있겠지만 이 늪은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매일 0.5센티씩 반경을 늘려나가고 있었다.
“괴수가 없는데 왜 늪이 사라지지 않는 거죠? 그걸 떠나서. 괴수가 없는 채로 이런 늪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건가요?”
유지나가 물었다.
강동호는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대로 늪이 계속 자란다면 여섯달이 지나서 괴수가 튀어, 아, 아니지. 그건 괴수가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서 해야 될 말인 건데.”
“팀을 꾸려서 매일 늪 아래로 내려가서 늪 상태를 관찰해 보는 걸로 하죠. 겉에서 늪의 반경만 확인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임재욱이 말했다.
괴수가 있다거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유지나와 대립각을 세울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임재욱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이 팀을 계속 유지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에 모인 분들은 각자 공격대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맡아주셔야 할 분들이니까요. 우리가 언제까지 이 늪에만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이 늪의 탐사를 맡을 팀은 빠른 시일 내에 꾸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오늘 모인 일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짓죠.”
강동호가 말하자 모두가 그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 늪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돼야 한다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 그 탐사 이후 지우의 집이 있던 아파트 한 동이 전부 국가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주인 없는 집에서 늪은 소리없이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고, 지우는 그런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연구소에서의 시간은 지루했지만 지우는 그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활용할지 깨달아 가게 되었다.
헌터 협회 연구소는 정보의 보고였다. 지우는 그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모아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숙지하는데 모든 시간을 들였다. 가장 관심이 간 것은 괴수에 대한 공략법이었다. 자기도 언젠가는 레이드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는 거기에 맞춰서 훈련을 해나갈 계획을 세웠다.
헌터 협회의 연구원들이 처음에 세웠던 가설은, 지우가 특이체질을 가지고 있거나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뒤늦게 헌터 능력이 각성된 걸 거라는 이론이었다. 그러나 검사가 거듭될수록 그들은 지우처럼 평범한 사람도 드물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혹시라도 실험 과정에서 놓친 것이 있을까 해서 보충 실험을 하고 있을 뿐, 지우가 연구소를 떠난다고 아쉬움을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지우는 연구소의 가장 높은 층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지우의 임시 숙소도 그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지우가 지하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받아 숙소로 올라가는데, 닫히는 엘리베이터로 임 정이 뛰어왔다.
“잠깐만요. 같이 올라가요.”
임 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는 엘리베이터를 멈춰주고 싶었지만 두 손으로 책을 잔뜩 들고 있던 탓에 열림 버튼을 눌러주지 못했다. 팔을 다 뻗어서 책을 들고 있는데 맨 위에 있는 책이 지우의 입술을 누르는 정도였으니 지우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혼자만 타고 올라간 꼴이 되어서 지우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임 정을 기다려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 임 정이 내렸다. 임 정은 지우가 가지 않고 거기에서 기다려준 것에 감동을 받은 눈치였다.
“왜 안 갔어요?”
“여기에 있으면 시간도 잘 안 가는데 서두를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혼자 들고 가기에 너무 벅차기도 하고요.”
지우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임 정은 군말없이 책을 나눠들었다.
“시간이 안 간다고 하지 말고 훈련을 해 봐요. 차크라 운용능력은 헌터 능력이 각성된다고 저절로 올라가는 게 아니거든요.”
“안 그래도 그걸 연습하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이 잘 안 와요.”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임 정이 말했다.
“정말요?”
“차크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중요한 일이예요. 게다가 지우씨는, 이렇게 말하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사실이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되죠?”
“네. 네. 막 해도 돼요.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도 대충 알 것 같고요.”
“네. 지우씨는 기본 스텟이 워낙 낮으니까 지금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전부 다 강구해야 돼요. 당장 레이드를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 레이드를 할 때는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게 좋죠. 레이드를 뛰어야 경험치도 올릴 수가 있는 거고 그래야 승급을 할 수도 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네. 레이드를 하기도 어렵겠죠.”
지우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말했다.
“무기를 사서 증폭률을 올리는 건 나중으로 미룬다고 해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요. 차크라 숙련도를 높이는 거예요. 절대로 하루 이틀에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예요. 그래도 하는 방법을 알아야 연습을 할 수 있는 거니까.”
“네. 알려만 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어요.”
지우가 제법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 정은 지금 지우가 어떤 상황인지 너무나 이해가 잘 되었다. 초반에는 자기도 그랬다. 차크라 숙련도를 높이고 싶은데 이게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잘 하고 싶다는 열정이 앞서고 훈련은 제대로 되지 않으니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아무한테나 화풀이를 하는 일도 있었다.
“어떻게 깨우쳤어요?”
지우가 물었다.
“그때는 정말. 별 짓을 다했어요.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 아무나 쫓아가서 알려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내 머릿속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되니까 이렇게 해 봐. 열심히 해 봐.’ 그러는데 되지는 않고. 내 손가락을 다 부러뜨려버리고 싶었어요. 왜 나는 안 되는 건가 하면서.”
“내가 지금 그런 심정이예요.”
지우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반복하다가 어느날 ‘문득’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하다보면 언젠가 깨우치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었는데.”
“빠른 방법은 없을까요?”
“어떤 분이 해 준 말이 있어요. 죽을 수도 있을 정도의 공격을 받게 되면 그게 될 수도 있대요.”
“네?”
“그때가 되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체의 군더더기 동작들은 배제한 채 꼭 필요한 동작에 모든 힘을 실을 수가 있게 된대요.”
“정말 그러던가요?”
“몰라요. 그런 일을 당한 적은 없었거든요. 대신 저는 다른 방법을 터득했어요.”
임 정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앞장을 서서 걸어갔다. 그동안 지우에게 출입이 허락 되었던 곳은 아니었다. 따라가도 되는 건가 하고 머뭇거리는데 임 정이 지우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는 임 정을 따라갔다. 방음을 위한 특수 재질로 사방을 마감처리해 놓은 특이한 곳이었다.
“상급 헌터들이 와서 훈련을 하는 곳인데 여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훈련이 끊기기도 하고 자신만의 훈련법을 공개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임 정이 지우를 향해 돌아섰다.
지우는 임 정을 보면서 책을 내려 놓았다. 임 정도 책을 내려 놓았다.
“유치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이게 내가 터득한 방법이예요. 다른 사람한테 알려준 적도 없고요.”
지우는 기대감이 극에 달한 표정으로 임 정을 바라보았다.
“내 몸 속에서 어떤 기운이 운행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그 흐름에 집중한다고 생각했어요. 발바닥부터 머리 끝까지. 집중해서요.”
“…….”
지우에게는 임 정의 말이 전혀 와 닿지 않았다.
“타투가 생겼다는 건 지우씨한테도 차크라 운용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자기 방식으로 끌어올리고 숙련되게 하는 게 지우씨가 지금 해야 할 일이고요.”
“죽을 정도로 공격을 받으면 될지도 모르겠네요.”
“필요하면 얘기해요. 해 줄 수는 있으니까.”
임 정은 그렇게 말을 해 놓고 혼자서 나갔다. 지우는 그 이상한 곳에서 자기 나름의 훈련을 이어갔다.
그날부터 지우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그곳에서 연습을 했다. 지우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그곳으로 지우를 찾으러 올 정도였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우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지우는 달라지고 있었다.
연구소를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임 정은 지우를 찾아다녔다. 임 정이 지우를 발견했을 때 지우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임 정을 보고 웃은 것은 아니었다.
임 정은 그런 웃음이 어느때 나오는 건지 알고 있었다. 지우가 긴긴 수행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깨닫게 된 거라는 것을 임 정은 알게 되었다.
지우는 표현하기 어려운 만족감을 느끼다가 임 정이 저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우가 임 정에게 다가갔다. 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임 정이 먼저 웃었다.
“허무할 정도죠? 막상 깨달아지게 되면. 이거였는데 왜 이걸 몰랐을까, 그런 생각밖에 안 들죠?”
“네. 그러네요. 정말 그 말이 맞아요.”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하고 싶었지만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던 말들이 임 정의 입에서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수련하세요. 연구소를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때 많이 놀랄 준비를 하고 있을 게요.”
임 정이 말했다.
지우는 생각에 잠기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감정을, 소음을 일으켜서 해치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에 자신의 집무실에서 주차장 쪽을 내려다보던 임 정은 지우가 주차장의 구석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는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웅덩이가 있었다. 임 정은 지우가 뭘 하려는 건지 보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지우는 임 정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손가락에 차크라를 모았다. 푸른 기운이 지우의 손가락 끝에 모아졌다. 그 기운은 점점 누르스름한 색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점점 선명해지더니 작은 구슬 모양으로 단단해져갔다.
임 정은 지우가 손가락을 수면 위에 대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우의 손가락이 직접 수면에 닿지 않았는데도 물에 파동이 일었다.
“아……!”
임 정은 작은 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자신의 귀에도 겨우 들릴까 말까한 작은 소리였다. 지우가 여기까지 이를 거라는 생각은 임 정도 미처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임 정의 놀라움은 그만큼 컸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고 막, 바닥에서 두 손을 떼고 처음으로 두 발로 일어선 것 같은 동작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지우만큼 깨우친 사람을 임 정은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