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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성
임정이 처음에 헌터가 됐을 때 사람들은 임 정이 깨우치는 것을 보면서 임 정을 천재라고 부르며 치켜세웠지다. 그러나 지금 지우가 보이는 속도는 그때의 임 정보다도 훨씬 빨랐다.
파동은 점점 커졌다. 임 정은 지우가 차크라의 양을 조절하는 것을 보았다. 아직 정교하고 세련되게 그 크기를 조절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분출하는 양이 제법 일정했다. 그뿐 아니라 처음치고 분출해나는 양이 많았다.
임 정이 예상했던 것은, 수면에 겨우 파동을 일으켜 놓고 차크라가 소진되는 모습이었는데 지금 지우의 손가락에서는 꽤 오랫동안 일정한 차크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크라를 정교하게 사용하는 기술이 습득되지 않아서 그렇지, 저 정도의 차크라 양이라면 실전에서 영 가망 없지는 않겠는데?’
임 정은 지우의 모습을 뒤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지우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결과물이 나오자 만족감을 감추지 못했다.
“돌아가면 무기에 차크라를 흘려넣는 연습을 해 보세요.”
임 정이 말하자 지우가 깜짝 놀라 돌아서며 임 정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와 있었어요?”
“방금요. 손바닥 안에 차크라를 모은다는 느낌으로도 연습을 해 봐요. 연구소에서 나갈 때까지 그걸 해 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대단하네요. 스물 여섯에 타투가 생긴 건 그냥 우연이 아니었던 건가 봐요. 안지우씨는 선택받은 사람 같아요.”
“정말 제가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지우가 물었다.
“안지우씨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잖아요. 그러면 되는 거예요. 안지우씨의 공격력은 지금 10이지만 공격력이 50인 사람이 한 번 공격할 때 안지우씨는 다섯 번을 공격하면 되잖아요. 리로딩 시간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으면서 계속 훈련을 해 보세요. 체력이 2백만인 괴수를 만나면 안지우씨는 20만번 딜을 부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계속 레이드를 하다보면 올라가겠죠. 경험치가 300, 600, 1800. 계속 그렇게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상급 헌터가 되겠죠.”
지우는 임 정의 말대로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래봐야 남들이 50, 100, 150, 200으로 오르는 동안 자기는 10, 20, 30, 40으로 오르겠지만 10보다는 20이 낫고 20보다는 30이 낫다고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다. 임 정이 자신의 근성을 인정하며 믿어주었다는 사실도 기분이 좋았다.
“또 모르죠. 안지우씨가 A급 헌터가 될지도.”
임 정이 말했다.
지우가 우여곡절 끝에 A급 헌터가 된다고 해도 공격력은 고작 60일 것이다. A급 헌터가 된다고 하더라도 F급 딜러의 공격력에도 못 미치는 수치인 것이다. 하지만 A급 헌터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졌다.
“A급 헌터요.”
지우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임 정이 지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뭘 하자는 건지 몰라서 우두커니 있는데 임 정이 지우의 팔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우는 타투를 보자는 말인가 하면서 타투를 보여주었다.
“처음으로 경험치 1을 얻으면. 그래서 타투의 숫자가 변해서 1/300이 되면, 그 날 저한테 밥 사주세요.”
임 정이 말했다.
“왜요?”
임정은 그렇게 말을 하면 자기가 지우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우가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우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하면서 되물을 뿐이었다.
‘너무 우회적으로 말했나?’
임 정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지우는 처음으로 경험치를 얻는 순간을 상상하느라고 임 정의 얼굴이 한없이 붉어지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우의 무지는 임 정에게 깊은 빡침을 안겨주었다.
***
드디어 지우가 연구소를 떠나는 날이었다. 지우가 연구소를 떠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처음에 실내에서 늪이 발견됐다는 사실과, 만 18세의 헌터 테스트 때 타투가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타투가 발견됐다는 사실이 여과없이 언론에 보도된 후, 정부는 뒤늦게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우의 집 거실에서 발견된 늪에 괴수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면 사회에 혼란과 불안만 가중될 거라는 헌터 협회 관계자들의 의견에 따라 정부와 헌터 협회는 지우와 지우의 늪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우도 자신의 집 늪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연구소에서 나오는 날, 지우는 홀가분함을 느꼈다.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는 점과 훈련을 받을 때 임 정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점들이 아쉬웠을 뿐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시원섭섭하다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완벽하게 시원하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이별은 조금도 아쉽지 않았지만 임 정과 헤어질 때는 조금 힘이 들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임 정이 눈물을 펑펑 흘려서 주위사람들조차 당황한 채 어쩔 줄을 몰라했다. 결국 지우가 임 정의 팔을 쓱쓱 쓰다듬어 주고,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하면서 떠나고서야 그 신파같은 장면이 끝이 났다.
지우를 배웅하기 위해 로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떠나는 지우를 보면서 지우가 과연 헌터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자기들끼리 내기를 했다. 절대다수가 지우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점쳤다. 사람들은 안지우가 절대로 D급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긴. 이건 내기를 할 수도 없겠네. 한 사람이라도 반대 의견을 가져야 내기를 하는 건데 이건 원.”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 임 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요?”
“네?”
‘국내 최연소 공대장’, ‘국내 최연소 B급 탱커’, ‘국내 2급 늪에 대한 최단시간 공략 기록’, '솔로레이드 성공기록 200회' 등의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가진 엘리트 탱커 임 정의 도발에 좌중의 표정이 일순간 흔들렸다.
“받아줄 상대가 없어서 걱정이라면. 제가 받아주죠. 거세요.”
마침 헌터 치안대 사람들 한 무리가 로비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요, 다들?”
가장 먼저 들어오던 유지나가 물었다. 임 정은 치안대 선배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텐텐이 D급 헌터가 될 수 있냐 없냐 하는 걸로 여기에서 이러고들 있다는 건가요?”
강동호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일순간 로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업무 시간에 몰래 월드컵 예선을 보고 있다가 사장한테 걸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동호의 표정은 곧 바뀌었다.
“얼마까지 걸 수 있는데?”
강동호가 임 정에게 물었다.
“그러게. 나도 걸래. 텐텐이 어떻게 D급 헌터가 돼? 일단 공격력 수치가 10인데 그걸 무기로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차크라 숙련도로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보다 레이드를 같이 하자고 텐텐을 받아주는 공대 자체가 없을 텐데?”
유지나가 엄청난 의욕을 보이면서 말했다.
“나도 원래 내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건 땅 짚고 헤엄치기 하는 거네. 나도 걸게. 안지우씨가 D급 헌터가 되지 못한다는 쪽에.”
임재욱까지 나섰다.
“베팅 상한이 얼마야? 이 베팅 언제까지 유효해? 상한선 없으면 돈 좀 만들어 와 봐야겠다.”
현동기가 그렇게 말을 하자 이제 하나 둘씩 임 정을 말리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임 정. 정신 차려.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면 여기에서 넘어가 주겠지만 되지도 않을 고집을 부리는 건 안 봐준다. 임 정이 유능한 탱커라는 건 인정하지만 어린애처럼 치기 부리는 건 용납 안 돼. 만약에 강행하겠다고 하면 우리도 안 봐줄 거야. 정말로 자기 말에 책임을 지겠다면 털릴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고.”
유지나가 말했다.
임 정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기랑 생각이 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냐고 물어보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동조자도 없었다.
“좋아요. 거세요. 베팅 상한선은 없어요. 안지우씨가 D급 헌터가 될 수 없다는 쪽에 돈을 거세요. 그럼 그걸 제가 받을게요.”
임 정이 말했다.
“좋아. 나는 오만원 걸게.”
“나는 십 만원.”
“나는 임 정씨 불쌍하니까 그냥 오 만원. 아니. 삼 만원.”
“임 정씨 무시하냐? 나는 50만원. 텐텐은 절대 D급이 못 돼. 아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같으니까 텐텐이 E급 헌터가 될 수 있는지 거기에 거는 걸로 바꿔도 돼.”
여기저기에서 중구난방으로 말이 나왔다.
“아뇨. 안지우씨가 D급 헌터가 될 수 있을지. 거기에 걸면 돼요.”
임 정이 말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랐다. 임 정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자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이 자극을 받았다.
“천 만원을 건다면 받을 거야?”
현동기가 물었다.
“걸어요. 얼마든지 받아줄 테니까요. 일 억도 상관 없어요.”
임 정이 모아놓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판돈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저러다가는 감당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몇 명이 중재에 나서려고 했지만 이미 판은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기간은 정해야 할 텐데? 기간을 텐텐이 죽을 때까지라고 하면 기다리다가 우리가 먼저 죽을 수도 있잖아.”
유지나가 말하자 임 정은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3년 안에 안지우가 D급 이상이 될 거라고 말했다. 강동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정말로 일 억을 걸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3년이 경과하도록 안지우가 D급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임 정의 일 억을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임 정은 쿨하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요. 더 올리고 싶은 사람은 더 올리고 참여를 안 했던 사람도 참가해도 돼요.”
임 정이 말했다.
이쯤 되자 임 정이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지 슬슬 의심이 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우가 D급으로 승급하는 것이 하루 이틀만에 될 일은 절대로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그 내기가 그냥 유야무야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임 정을 모르고 한 소리였다. 임 정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자산 관리사를 불렀다. 소환된 자산 관리사는 일반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기관에 들어와있다는 사실에 먼저 주눅이 들었지만 자기가 불려온 이유를 알고는 묵묵히 일을 수행했다.
임정은 말을 꺼냈던 사람들에게서 전부 돈을 거둬 들였다. 너무 큰 금액인 경우에는 직접 계좌로 이체를 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일이 이렇게까지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가 기왕 3년동안 묶어두는 돈이라면 제대로 박아 놓겠다고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 모아왔다.
“임 정 탱커님은 이 분들이 내는 금액과 정확히 동일한 금액을 내셔야 합니다.”
자산 관리사는 임 정에게 딱 그 한 마디만 했다.
“내 돈 전부 관리하고 있잖아요. 거기에서 옮기면 되죠.”
임 정의 말에 자산관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씨발. 솔로 레이드 뛰면 돼. 러프 스톤 팔아서 돈 만들면 되지.”
현동기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계좌 이체를 시작하자 자산관리사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이건 이미, 웃자고 하는 이야기의 수준을 훨씬 벗어나고 있었다. 입금된 금액이 1억씩 다섯 번이었는데 현동기는 여전히 이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재욱은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정해진 계좌에 한 번에 이십 삼 억을 이체해 놓고 자산관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계약의 증인이 돼 주시는 거죠? 증권은 헌터 협회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치안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공대장으로서 헌터들을 이끌고 괴수를 공략할 때는 상황에 맞게 치고 빠질 줄도 알았고 후퇴하자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승부욕이 발동된 다음에는 통제가 어려운 유형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