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화산천검 7권(9화)
4장 소강상태(2)
탁탁탁!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앞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 오랜만입니다.”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은 선풍각 오칠.
반갑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오. 그리고…….”
선풍각 오칠이 마주 인사를 하며 사부에게 살짝 눈길을 주었다.
“이 아이의 사부인 화산파 장로 무진이라고 하오.”
“아, 무진 장로님이셨군요.”
선풍각 오칠이 포권을 취하며 예를 표했다.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분명히 장문인들이시겠지.’
그렇다면 다행이다.
어디로 갈지 몰랐는데 직접 불러 주셔 시간을 절약한 것이다.
“누구신지는 알려 주실 수 없소?”
“장문인들께서 부르십니다. 사천의 일 때문인지 상당히 어두운 표정이셨습니다.”
‘역시나…….’
사천에서의 일은 주변에 있던 많은 민초들과 관가의 사람들, 그리고 낭인들에 의해서 많이 알려졌다.
혈천회 쪽에서 많은 타격을 입히고 신룡을 납치했지만, 흑풍의 본거지가 무너졌다.
그리고 무림맹 쪽에서는 흑풍의 본거지를 무너뜨렸으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신룡이 납치당했다.
둘 모두 타격을 입었기에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본 눈들이 너무도 많아 결국 전국적으로 알려져 버린 것이다.
‘바로 앞에서 본 나와 사부의 이야기를 들으시려는 건가?’
당가에서의 편지는 보고서 같은 개념이다.
정보에 살을 붙이기 위해서 방금 들어온 우리를 부르신 것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 후에 도착한 회의장.
꿀꺽!
지금까지 몇 번이고 느껴 왔던 거대한 존재감이 뭉쳐 있는 건물.
전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이 되자 긴장이 되어 마른침이 넘어갔다.
“저는 이곳까지입니다. 그럼…….”
전과 마찬가지로 선풍각 오칠은 우리를 앞까지만 데려다 주고 다시 자신의 일을 하러 돌아갔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나와 무거운 표정의 사부.
사부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 문을 두드리며 말을 하였다.
“화산파 장로…….”
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장문인의 목소리였다.
조금 굳어 있는 사부를 대신하여 긴장을 푼 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웃!’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
주변을 짓누르는 거대한 기에 의해서 걸음이 멈추었다.
하지만 이런 압박감은 수없이 경험해 본 나이다.
기를 끌어 올리고 염력을 보태어 기를 흘려보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사부가 침음성을 흘렸다.
흉흉한 눈빛, 연민에 찬 눈빛, 무심한 눈빛.
각 문파에 따라 다른 눈빛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흉흉한 눈빛의 주인공, 관일공 등표훈이 입을 열었다.
“네놈 혼자 멀쩡하게 이곳까지 왔느냐?”
충격적인 발언.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이건 지금까지 털어 내지 못한 마음의 짐이다.
모두가 심각하게 다칠 동안 나 혼자 커다란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아니, 있다면 있지만 그것은 나의 기술을 내가 완벽히 제어하지 못해서 생긴 내상일 뿐 적들에게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것 때문에 사실 마음속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것을 건드린 것이다, 아무리 구파 중 점창파의 장문인이라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검병으로 향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하극상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냐? 좋다, 내 특별히 후배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도록 하마.”
살기 넘치는 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땅을 박차고 발검을 하려는 순간 사부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내 손을 장심으로 눌렀다.
“가만있거라.”
사부의 차가운 말투에 머리끝까지 올랐던 열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곳에서 전쟁이라 할 수 있는 싸움을 벌이고 돌아온 아이입니다. 이제 막 돌아왔을 뿐이지요. 점창파의 장문인이시라지만 심한 말입니다.”
사부가 화를 꾹꾹 눌러 참은 듯한 말투로 말했다.
화가 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내가 들은 모욕에 사부도 화가 난 것이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꾹꾹 눌러 참은 것이다.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오.”
“아이들이 다친 이유는 그쪽 분들이 명령하신 일 때문 아닙니까? 화를 낼 대상을 착각하고 있으신 것 같군요.”
맞받아친 사부의 대답에 관일공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확실히 관일공께서 심하셨소. 아이들에게 임무를 준 것은 바로 우리들. 화를 낸다면 혈천회나 우리에게 내야지요. 그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소.”
“하지만……!”
“그대 혼자만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좋아서 참고 있는 줄 아시오?”
남해신검 연풍극의 말에 관일공의 얼굴이 굳었다.
그렇다.
신룡들 모두가 심한 상처를 입은 상황이다.
수족을 잃고, 단전까지 파괴된 자도 있다.
남들이라고 좋아서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저 아이는 화산파의 제자.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그렇게 타박한다면 참지 않겠소이다.”
장문인께서 감싸고 나오셨다.
그렇게 되자 할 말이 없는 듯 관일공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궜다.
어두워진 분위기.
눈을 감고 있던 무당파의 장문인 영선이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쪽은 누구인가?”
사부가 영선을 보며 포권을 취했다.
“화산파의 장로인 무진이라고 합니다. 이 아이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도문이로군. 게다가 상당한 실력. 어째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군.”
영선의 칭찬.
이어서 공동파의 장문인과 곤륜파의 장문인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도사로서 상당한 실력이군.”
“조만간 시간을 내서 얘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떻겠소?”
“감사합니다.”
도문에 속한 문파의 장문인들의 갑작스런 칭찬에 사부가 미소를 지었다.
“청우, 마진천은 정말로 납치된 것이 사실인가?”
화기애애해지려는 분위기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종남파의 장문인, 천수신검 곽형일의 말.
“예, 사실입니다.”
“믿겨지지가 않는구나. 그 뛰어난 아이가, 어디에 내놓아도 수위를 다툴 그 아이가 납치를 당하다니…….”
“솔직히 저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마진천.
상처도 가장 크게 입었고, 납치까지 당했다.
직접 눈앞에서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가 없었으리라.
“분명 납치해 간 것이더냐?”
“예, 납치했습니다.”
“협상을 하려는 것인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뛰어난 무용으로 무림맹의 사기를 높이는, 후기지수들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룡들.
그들을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도 있었다.
“협박일 수도 있지.”
“모르는 일. 개방에 부탁을 하였으니 조만간 소식이 올 것이다.”
“그러면 좋겠소.”
관일공과는 다르게 천수신검은 허탈하게 말할 뿐이었다.
차기 장문인으로 점찍어 놓았던 마진천.
그런 마진천이 납치되었으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요. 우리가 이 아이를 부른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으니.”
불염신니의 말에 장문인들이 입을 다물고 나와 사부를 쳐다보셨다.
중구난방으로 떠들다가 갑작스레 시선이 집중되자 조금 긴장됐다.
“사천당가에서 온 전서로 대강의 내용은 알지만 세부적인 것은 모른다. 청우, 그 당시에 대해 설명하거라.”
장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가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눈치챈 것 같았기는 하지만 의심하는 정도로 들켰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강호에서의 경험이 저보다 많은지라 위기를 잘 넘기더군요.”
“그랬겠지. 후기지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많은 임무를 수행했던 아이들이니.”
“사천당가의 도움을 받아 흑풍의 본거지라 의심되는 곳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세 조로 나뉘어 세 곳에 침투했지요. 나머지 두 조는 어떻게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그리고 저는 흑풍의 이인자 혈조부 무삼과 흑풍들을 막아 내고 마지막 층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혈천회의 두 호법을 만났습니다.”
호법이라는 말에 장문인들이 눈을 빛냈다.
이쪽에 알려진 것은 창마 황신.
나머지 두 호법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것이리라.
“한 명은 온몸에 주렁주렁 까만색의 무언가를 두른 노인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뼈다귀와 혈관이 보일 정도로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었습니다.”
“까만색의 무언가라…… 그것이 대량참사로 이어졌다던 그 폭탄인가?”
“예, 맞습니다.”
사천참사(四川慘事)라고 불리는 이번 사건.
주역은 정체불명의 호법이었다.
“그자와는 한 번도 싸워 보지 않아서 정확한 실력은 모르겠습니다만…… 절대로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그거야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일.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거라.”
공동파의 장문인 천강복마 소평군의 재촉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나머지 한 명은 알고 있습니다. 혈천회의 삼마병 중 삼병인 금환봉의 주인이자 삼호법인 고루시수 망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별호대로 시체를 다루는 자, 혈천회 내에서 혈마강시를 만들어 내는 유일한 자라고 했습니다.”
“혈마강시!”
“으으음…….”
“일이 커지는구려.”
무상도와 불염신니, 그리고 불타승이 각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금환봉이 더 문제였습니다. 금환봉의 공능은 기의 분산. 금환봉에 맞닿기만 하면 기가 분산되어 버리니 최강의 방패이자 검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구파는 소림을 제외하곤 모두가 내가고수이다.
간혹 외공의 고수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소수.
내가고수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기를 분산시킨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전무였다.
“네가 살아남아 이곳으로 온 것을 보니 분명히 약점이 있었겠지. 말해 보거라.”
영선이 물었다.
영선의 말대로다. 만일 금환봉의 약점이 없었다면 내가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고루시수 망영 본인의 실력이 저보다 조금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금환봉이 분산시킬 수 있는 기에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 저를 도와주신 두 사형이 크게 다치기는 했지만…….”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느냐?”
“우연히도 공격에 성공해 금환봉이 부서져 폭주, 겨우겨우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 이후론 삼류무사에게도 질 정도로 내력이 고갈되었지만 말입니다.”
마지막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전의 말, 호법에게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승리한 것에 비해 얼굴이 좋지 않구나. 어떤 이유에서냐?”
말을 끝냈음에도 아무도 기뻐하지 않았다.
이유는 나의 표정 때문이었나 보다.
“사실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