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화산천검 7권(8화)
3장 납치(3)
팟! 카캉! 우드득! 뻐억!
재빨리 달려가 비수를 사전에 막아 내고 장천수로 머리를 박살 냈다.
‘한꺼번에 온다. 막아 내기 힘들어!’
계속된 침입의 실패에 작전을 바꿨나 보다.
엄청난 실력의 암살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든 것이다.
그만큼 기운을 느끼기도 쉬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나도 한계가 있다.
한꺼번에 열 명 정도를, 그것도 빠르게 잠입하는 자를 모두 막아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전력을 다해야 다섯 명 남짓.
‘뚫렸다!’
결국 내가 막아 내지 못한 장소로 살수가 잠입했다.
안에 있는 것은 상처 입은 신룡들과 당가의 의원 하나.
나를 보고 근처를 경계하던 당가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기는 하지만 살수들이 신룡들을 죽이고 도망치는 것보다 느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최악의 상황.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의외의 변수.
바로 당가의 의원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는데 그렇게 쥐새끼처럼 얼쩡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피피핏! 푸푸푸푹!
당가의 의원이 혈에 꽂아 넣던 침들을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살수에게 던진 것이다.
그것도 백발백중, 치명적인 요혈과 사혈에 꽂아 넣는 엄청난 실력.
‘의원이 저런 실력이라니…….’
무슨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는지.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좋은 일이다.
“네놈들! 본가에서 그렇게 거들먹거리던 실력은 어디 간 것이냐! 겨우 이런 놈들조차 막아 내지 못해서 나에게 손을 쓰게 만드느냐?”
“죄, 죄송합니다.”
의원의 호통에 고개를 숙이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당가의 무인.
‘……?’
보통 가문에 소속되어 고용된 의원과 그 가문의 무인이라면 지금과는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어야 한다.
‘뭔가 있는 건가?’
하긴,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저 그런 의원일 리가 없다.
무언가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막아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당가의 무인을 꾸짖고 다시 치료에 들어간 의원.
막아 내지 못하여 신룡들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아무런 피해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방심은 금물이지. 독과 암기를 사용하는 사천당가라면 가장 잘 알고 있을 상식일 텐데?”
푸푸푸푹! 딱!
“뭣……!”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누가 잠입했단 말인가?
바깥을 경계하는 사이 안쪽에서 불쾌한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막을 거칠게 젖히고 안쪽을 보자, 한 남자가 여러 곳을 관통당해 피를 흘리고 있는 의원의 뒤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화산의 신룡, 검룡 청우. 오사도인 사필마 번냉비라고 한다.”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풀자 끝이 뾰족한 판관필(判官筆)이 보였다.
“오사도!”
역시나 혈천회의 고위급 인사가 이곳에 더 있었다.
그것도 내가 예상했던 대로 오사도 사필마 번냉비였다.
“예상했다는 듯한 말투로군. 뭐, 이놈들을 쓰러뜨렸을 때부터 들킬 것은 조금 예상했었지만.”
연화를 발로 툭툭 건드리는 오사도.
연화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살짝 신음을 내뱉었다.
“네놈!”
“움직이면 곤란하지. 네놈의 발검이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과연 이 상태에서도 나보다 빠를 수 있을까?”
발로는 마진천을 누르고, 판관필로는 연화를 겨누고 있는 오사도.
‘큭!’
자하십육검 일 검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런 상태에선 오사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그건 그렇고 당가의 장로를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있다니, 운이 좋았어.”
오사도의 말을 들어 보니 의원은 당가의 장로였다.
‘그래서 당가의 무인이 그렇게 떨었던 거로군.’
“연화와 신룡들에게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곧바로 죽을 줄 알아라.”
만일 이들의 상처가 지금보다 심해진다면, 손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곧바로 심검을 전개해 버릴 것이다.
“삼호법을 쓰러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나를 죽일 수 있을까?”
“죽기를 각오한다면.”
말 그대로다.
심검을 하루 안에 두 번이나 쓰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한다면 쓸 수가 있다.
“나도 목숨은 하나이고 소중하니 건드릴 수 없겠군. 하지만 이건 어떨까?”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판관필을 만지작거리는 오사도.
이어서 새하얀 종이에 먹이 번지듯 판관필에서 검은 연기가 퍼져 나와 순식간에 막사를 뒤덮었다.
“이런!”
앞이 보이질 않는다.
기감으로 잡아내 심검을 쓴다 해도 문제다.
자칫 연화나 다른 신룡들을 잡고 있기라도 한다면 심검에 휘말려 다 같이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휘이잉∼!
이런 연무는 당가에서도 유용하게 쓰는 무기 중 하나다.
당가의 인물들이 능숙하게 연무를 날려 보내자 예상했던 대로 오사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사라진 사람이 있었다.
반룡 마진천과 사일신검 북초이가 없었다.
4장 소강상태(1)
오사도와 함께 마진천과 북초이가 사라진 직후.
목적은 납치였는지 밀리고 있던 이사도와 약을 올리듯 계속해서 도망치며 폭탄으로 피해를 입히던 정체불명의 사도가 물러났다.
사부는 이사도를 끝장내지 못한 것에 조금 미련을 두셨고, 당가의 인물들은 정체불명의 호법에게 농락당한 것 때문에 분노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당가의 의원, 장로에게 치료를 받고 있던 신룡들.
겹겹이 둘러싸인 인해의 벽을 뚫고 침입한 암살자들과 오사도에 의해 의원인 당가의 장로가 죽고 마진천과 북초이가 납치되어 버린 것이다.
“실수했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어.”
막사로 들어와 상황을 살펴본 독살성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모두가 속아 넘어갔다.
나조차 어수선한 상황을 틈타 암살자들이 침투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진짜 목적을 몰랐으니까.
정체불명의 사도의 폭탄이 당가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터지기에 모두는 이곳에 모인 인원을 괴멸시키기 위하여 적들이 쳐들어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당가 사람들에게 터뜨린 폭탄과 이사도의 진격은 유인과 진짜 목적의 은폐.
그들의 진짜 목적은 신룡의 납치였던 것이다.
“놈들의 목적이 신룡의 납치였을 줄이야…….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졌군.”
신룡들의 비밀임무.
그것은 사천당가의 세력권 내에 있는 것이기에 많은 협상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에는 임무에 대한, 우리에 대한 물심양면의 지원과 임무가 끝난 후의 치료와 안전 보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전 무림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혈천회의 흑풍을 뿌리 뽑으려는 임무이기에 안전 보장은 솔직히 그저 형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넋 놓고 농락당하다가 신룡 중 둘을 납치당하게 방관한 것이기에 입장이 달라졌다.
당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지기에도 무리가 있다.
당가조차 막아 내다가 장로가 죽고, 일반 무사도 많이 죽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황.
당가도 최선을 다한 것, 그저 목적을 잘못 읽은 것이기에 구파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다른 신룡들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하지만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당가는 농락당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신룡들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심각한 상처를 입었는데 두 명이 납치당했으며, 사부는 이사도와의 결판을 내지 못했다.
하나같이 암울한 소식들.
한숨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일단 아이들의 치료가 급선무가 아니겠소? 그러니 당가에서 실력자들을 추려 내 몇몇은 이곳의 상황을 정리하고,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나머지는 습격을 대비해 신룡들의 호위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되오.”
그래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부가 독살성에게 제안했다.
맞는 말이기에 독살성도 고개를 끄덕이곤 사부의 제안대로 행동했다.
당가의 의원이 죽었기에 이곳엔 의원이 없는 상황.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당가에 의원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니 다시 의원을 부르거나 아니면 당가 본가로 이동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독살성은 당가 본가로의 호송을 택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되고 한 명씩 신룡을 업고 당가 본가로 이동을 시작했다.
물론 나도 치료를 받아야 되기에 이들을 따라 당가 본가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하였다.
“저놈들이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본가로 호송한다만, 네놈은 멀쩡해 보이는데 굳이 당가로 와서 치료할 필요가 있더냐?”
독살성이 퉁명스럽게 나에게 말했다.
“자잘한 내상은 내가 모두 치료해 줄 수 있다. 심한 내상은 네 심법과 내 도술로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당가로 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 차라리 일찍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나로서도 장문인께 할 말이 있으니 말이다.”
사부까지도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했겠는가?
당연히 당가로는 가지 않고 곧바로 무림맹으로 돌아갔다.
무림맹에서 이곳으로 왔던 것처럼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니 돌아갈 때는 순탄하고 아늑하다고 할 수 있는 여정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시간이 있다 보니까 사부와도 제대로 된 해후를 나눌 수 있었다.
꽤나 오래된 것만 같은 도문과 검문의 알력 싸움부터 시작해서 지금의 임무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모두 풀어냈다.
하나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의 행보에 사부는 크게 호통을 치셨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일이기에 그 이후에 다시 언급하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사부의 이야기.
성의에게 치료를 받은 일부터 이사도와 싸운 일, 그리고 나를 찾아다니다 천풍걸개의 도움으로 인해 나를 찾아내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사부가 이야기하셨다.
사부의 이야기는 나에 비해서 그렇게 크게 누군가의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사부이기에, 지금까지 어디에 계신지조차 몰랐던 사부의 이야기이기에 나에게는 무척이나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끝냈을 무렵에, 빨리 도착하려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림맹에 도착해 버렸다.
내가 무림맹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한산한 분위기가 나는 정문.
천천히 다가가자 두 문지기가 창을 교차하며 길을 막아섰다.
“먼저 방명록에 이름을 적으시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기에 말을 끊으며 말했다.
“화산파, 검룡 청우라고 하오.”
그동안의 일에 의해 많이 해져버린 옷이지만 그래도 화산파의 상징인 매화 무늬가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
매화 무늬를 보여 주자 두 문지기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우르르릉∼!
커다란 대문이기에 열리는 소리조차 천둥 소리와 비슷했다.
“들어가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자 사부가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표했다.
“크구나! 게다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라니…….”
내가 처음에 느꼈던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으신 듯하였다.
“장문인께 가실 거죠?”
“그래, 일단은 먼저 사문의 장문인께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 예의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되지?’
장문인께서 있으실 만한 곳은 두 곳이다.
첫 번째로 화산파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자리한 장문인의 거처, 그리고 두 번째로는 구파일방의 수뇌부가 모이는 회의장.
과연 지금 장문인께서는 어디에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