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10화 (110/175)

# 110

화산천검 5권(10화)

4장 공천패(3)

강하다.

나 또한 방금 전 하나의 벽을 넘어서 강해졌다고 느꼈다만 저 도사보다는 아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일사도의 무공을 보았던 것과는 다르다.

그때는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에 전율이 흘렀던 것이라면 지금은 천하를 논하는 하나의 대기(大器)이자 그 끝을 측량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인으로서 그 누구나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경지에 이른 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

무심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며 들어오는 공천패.

그런 공천패의 눈이 나와 남궁세가의 사람들에 미쳤다.

턱!

그 무심한 눈에 순간 빛이 반짝이더니 공천패가 자리에 서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왜 그러십니까?”

남궁명헌이 공손히 데려오라고 했다.

소란을 피운 자인데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일양정이 조금 퉁명스럽게 말했다.

“쯧, 하나같이 미혹에 잠긴 눈빛이로구나. 남궁세가라고 해서 무언가 있을 줄 알았더니 역시나 사람 사는 곳은 그 어떤 곳도 모두 똑같구나. 한쪽은 현명한 판단으로 현재를 지키나, 한쪽은 순간의 영화에 눈이 멀어 더 뻗어 나가길 원한다. 그래 봤자 남을 것이 없거늘, 어째서 그렇게 탐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공천패의 말에 남궁세가의 가신들과 장로들, 그리고 남궁수련과 남궁명헌이 몸을 살짝 떨었다.

‘뭐지?’

공천패의 말에 모두가 반응한다.

한마디로, 무언가 관계가 있다는 말.

남궁수련이 몸을 떨었다는 것으로 보아 남궁수련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 현 남궁세가의 문제인 것만 같았다.

“아직 아이들은 순수하구나. 하지만 그만큼 물들기 쉬운 법. 몇몇 아이들은 물들어 그 눈빛에 어두운 무언가가 일렁이는 것이 보이는구나. 잘 지도해 준다면 다시 정광을 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우민(愚民)이 될 것 같구나.”

움찔!

이번엔 후기지수 쪽에서 몸을 살짝 떨었다.

‘대체 무슨 사정이기에…….’

공천패의 말.

조금씩 무언가를 추측하게 만들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단서가 너무 적었다.

“이곳엔 대체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남궁명헌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와 보니 이곳이었을 뿐.”

그냥 길을 따라 와 보니 이곳이었다는 얘기다.

남궁명헌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신 것이오?”

“뒤틀린 것이 보이기에 왔을 뿐,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소. 하지만 악의는 없어 보이니 그냥 지나가시오. 일양정, 배웅해 드려라.”

하지만 공천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남궁명헌을 지나 갈천악에게 향했다.

움찔!

이번엔 갈천악이 몸을 떨었다.

“…….”

공천패는 말없이 갈천악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무심한 눈이었다.

갈천악이 얼굴을 굳히더니 이내 순식간에 달려들어 도를 내쳤다.

극에 이른 쾌도.

하지만 공천패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갈천악의 도가 빨려 들듯 그 손가락에 닿았다.

턱!

베이지도 않았고 밀려나지도 않았다.

남궁명헌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갈천악이 얼마나 강한지는 싸워 봐서 알 터이니 놀랄 수밖에.

저렇게 막는다는 것은 상대를 가볍게 이길 정도의 실력이라는 뜻이니.

“칫, 역시 무리로군. 공천패.”

갈천악은 공천패를 잘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곤 도를 거두었다.

“아직도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구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그저 지켜보고 나의 일을 할 뿐.”

“그 도사 사칭 좀 그만할 수 없나? 파문(破門)당한 주제에.”

파문.

대체 무슨 말인지.

하지만 공천패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큰 화를 당할 미래밖엔 없으니 참으로 암울하도다.”

“하, 그 정돈 알고 있어.”

공천패의 무언가를 꿰뚫어본 듯한 말에 갈천악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대답하곤 공천패를 지나쳤다.

“뭐하는 짓이지?”

남궁명헌이 검을 겨누며 말했다.

“어차피 흥도 깨졌는데 더 싸울 필요가 있나?”

“우리 둘의 싸움이 끝났을 뿐이지 아직 남궁세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처처척!

남궁명헌의 말이 끝나자마자 갈천악을 둘러싸고 병장기를 겨누는 남궁세가의 사람들.

갈천악이 인상을 찌푸렸다.

“승부가 나지 않았을 뿐 끝에는 분명히 네가 졌을 것이라는 것을 알 텐데?”

사실 그렇다.

비등비등한 실력에서 한쪽은 냉정하게, 한쪽은 분노한 상태로 싸웠으니 승부는 당연히 냉정한 쪽에게 돌아간다.

갈천악이 아무리 피륙의 상처가 많아 지금 피를 흘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궁명헌은 내상을 입었다.

단편적으로 봐도 갈천악이 이긴 것이고, 장기적으로 봐도 갈천악이 이겼을 것이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

하지만 남궁명헌에겐 통하지 않았다.

“명문 정파 오대세가 중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지금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

남궁명헌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 그래, 입막음이라……. 그것도 좋지. 마음에 들어.”

갈천악이 비꼬는 듯 말하곤 주변을 쭉 훑어보았다.

“그러니 나도 내 마음에 드는 일을 해야겠어.”

비릿한 웃음을 짓곤 갈천악이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나를 노리는 건가?’

구파의 제자가 오대세가의 안에서 죽는다.

갈천악이 죽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입막음을 할 수가 없다.

그 사정과 경위를 설명해야 되니 남궁명헌이 졌다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침묵해도 곤란하고, 말해도 곤란하다.

갈천악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런데…… 아니야, 내가 아니다.’

살기와 예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나를 향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향한 기운들은 모두 내가 목표의 근처에 있기 때문.

목표는 바로 나의 옆에 있는 남궁세가주의 여식, 남궁수련.

‘위험해!’

남궁수련은 아직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다.

내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느라 호법을 서 주었기 때문.

갈천악의 극에 이른 쾌도를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이 일자 기가 움직였다.

우우우웅∼

하단전에서 치고 올라와 상단전에서 맥동하는 기운.

장심이 갈천악을 향하도록 장을 내뻗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매우 조금이지만 느려진 갈천악의 몸놀림.

갈천악이 놀라 하며 틈이 생겼을 때, 발검했다.

매화검로 일 초 매화초개.

공중에 남는 자색 잔영.

카아앙!

갈천악이 몸을 빙글 돌리며 매화초개를 막아 냈다.

“크윽!”

치이익!

하지만 틈을 노리고 쳐서 그런지 갈천악의 왜도엔 제대로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아 그는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화산파, 역시 네놈이로군. 이 무형기와 쾌검, 보고받은 대로야. 만만치 않군.”

나에게 막혔기 때문에 남궁수련은 포기한 것인지, 갈천악이 말하며 나에게 도를 겨누었다.

“…….”

말없이 자하검을 겨누었다.

만전이었을 때는 모르겠다만 현재 갈천악은 남궁명헌과의 싸움 때문에 피로한 상태.

싸운다면 승기는 나에게 있을 터다.

“만전일 때라면 호쾌한 상대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로군.”

원을 그리고 포위하던 것이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포위망을 좁히면 갈천악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아무리 남궁명헌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한 실력이더라도 제일 앞에 있는 것이 남궁세가의 가신들과 장로들, 그리고 그 뒤가 남궁세가 직계의 후기지수들인 이상 쉽게 뚫기도 어려우며, 뒤에 일반 무사들로 이루어진 인해의 벽도 있기 때문이다.

빠져나가고 싶다면 한시라도 빨리 한쪽 벽을 뚫어야 했다.

“빠져나갈 순 없소.”

칠사도는 혈천회의 중요 인사들이다.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것만으로 전력의 일 할이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

게다가 칠사도 중 가장 강하다는 일사도이니 절대 빠져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기운을 끌어 올려 검을 살짝 비틀며 휘둘렀다.

매화검로 십오 초 매화유향.

치링∼

기분 좋은 검명과 함께 퍼져 나가는 그윽한 매화향.

“마지막 필살검인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일도로 끝내 주마.”

나의 기세를 보고 눈치를 챈 것인지 갈천악이 얼굴을 굳히며 남궁명헌과 마지막 일초를 나누려 하던 때의 자세를 취했다.

상처 입은 호랑이.

하지만 호랑이는 호랑이다.

절대 약자가 될 수 없는 법.

상처를 입었다 해도 그 기백과 기세만은 처음과 마찬가지인 듯했다.

‘상관없다.’

이기든 지든 상관은 없다.

다만 검을 나눔으로써 나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을 뿐.

“간다. 이 회풍도(廻風刀)를 막는다면 내 네 실력을 인정해 주지.”

회풍도.

마지막 필살의 이름인가.

파앙∼

달려드는 갈천악.

낮은 자세로 달려들던 갈천악이 나와 가까워지자 상체를 세웠다.

‘뭐하자는 거지?’

갑작스런 자세의 변화는 빈틈을 만들 뿐인데 어째서 지금 상황에서 자세를 바꾸는 것인지.

‘관계는 없다.’

틈이 생긴다면 찌를 뿐.

매화검로 십육 초 매화만천.

화아아아∼

만천에 피어나는 매화꽃.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매화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갈천악의 근처에서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때 다시 한 번 움직이는 갈천악.

갈천악이 몸을 빙글 돌리며 왜도를 움직였다.

“뭣?”

매화만천.

상단과 중단을 노리고 전개한 무공이다.

그런데 갈천악은 매화만천이 찌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몸을 낮추며 검을 휘두른 것이다.

“회풍도.”

파라라라락!

왜도가 마치 연검과도 같이 휘어지며 갈천악의 근처를 휘돌았다.

파카카카캉!

갈천악이 몸을 일으켜 세우자 왜도와 맞부딪치는 매화만천의 매화꽃잎들.

다행히 피한 것이 아니라 회전력을 얻으려 움직인 것이었다.

회풍도와 맞부딪치는 매화만천.

막상막하로 부딪쳐 가는 두 초식.

하지만 어느샌가 알 수 있었다.

‘밀린다!’

매화만천은 나의 실력이 되는 한 거의 무한의 연격이다.

그 연격을 갈천악의 회풍도가 쓸어버리고 있었다.

일 도에 열 개의 꽃잎, 즉 두 개의 매화를.

밀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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