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화산천검 5권(11화)
4장 공천패(4)
스거거걱!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뜨거운 피가 가슴에서 튀는 것이 느껴졌다.
매화유향에 이은 매화만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초식.
벽을 뛰어넘고, 만전의 상태였는데도 졌다.
질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는데도 졌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슴을 베이고 뒤로 쓰러지는 순간이 어째서 이렇게 느린 것일까?
흔들리는 눈동자에 비친 것은 굳은 얼굴로 거친 숨을 내뱉는 갈천악.
경지에 이른 무인이니 거친 숨을 내뱉는다는 것은 많은 내공을 소모했다는 뜻.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이기지 못했다.
패배한 것이다.
옆에서 놀란 표정을 짓는 남궁수련과 내가 반쯤 쓰러진 때에 달려드는 남궁세가의 고수들.
그것을 끝으로 눈이 조금씩 감겨 왔다.
아니, 감겨 오려 했다.
공천패가 나를 쳐다보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공천패는 무심히 나를 쳐다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그것만으로 나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몸을 옭아매는 기운.
상단전의 염력이었다.
정신을 잃을 수도 없었다.
“본질을 읽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형에 의존하니 지는 것이니라.”
공천패의 근처는 그 누구도 없었다.
갈천악에게 달려드는 모두가 공천패의 근처를 무의식중에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산파 천년의 절기는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절세의 무공, 본질을 읽고 그 형을 제대로 이해하여 극성에 오른다면 가히 무적이라 칭해도 과찬이 아닐 것이니라.”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공천패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화산파 천년의 절기.
본질과 형.
무적.
몇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있었지만 단서가 부족했다.
공천패의 의도와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에는.
“도사로서 세속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는 않지만 커다란 혈겁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친우가 길을 벗어나 잘못된 업을 쌓으니, 그 업으로 인해 짊어질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것이 도리겠지.”
우우웅∼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점점 일으켜 세워지는 나의 몸.
내가 일어서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일어나는 느낌은 무언가 묘했다.
“벗어날 수 없는 길에 들어선 자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혈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우화등선을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너에게 힘을 주겠다.”
무심했던 공천패의 눈에 한 줄기 기광이 반짝였다.
곧바로 사그라졌지만 그 기광은 나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힘.’
방금 전까지도 강렬히 열망했던 그것.
나머지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힘을 얻을 수 있다.
그것도 천하를 넘보는 절대자에게서.
그것은 단지 하나의 말일 뿐인데도 온몸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끝나가는구나.”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갈천악을 몰아붙였다.
나에게 회풍도라는 초식을 쓰고 또한 남궁명헌과의 싸움에 의한 피로가 있는지라 갈천악은 계속되는 인해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일양정의 검이 갈천악의 목을 가르는 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회의 일사도치고는 무언가 허무한 죽음이었다.
아니, 천하제일세가와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이 정도 피해를 입힌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남궁수련은?’
분명히 쓰러지는 중에 남궁수련이 나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의 곁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남궁수련이 공천패와 나의 근처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 보였다.
‘어째서?’
눈은 맑다.
그러니 사술에 걸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와 공천패를 보지 못하고 이곳에 오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답은 나와 있지.’
공천패.
근처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것은 공천패가 어떠한 술수를 썼다는 말.
그것 외에는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이만 가 봐야겠군.”
말하며 공천패가 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공천패의 손가락이 나의 눈을 감기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정신을 잃었다.
5장 회담(1)
“예상보다 모두들 일찍 모인 것 같소이다.”
한 승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이마에 새겨진 계인(契印)과 자애로운 웃음을 보이는 승려.
말 한마디에 담긴 심후한 내공과 부드러운 말투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연세가 되셨는데도 아직도 정정하시군요.”
한 비구니의 말에 승려가 부드럽게 웃었다.
불타승(佛陀僧) 혜각(慧覺).
어릴 때부터 생지안행(生知安行)하여 그 덕이 무척이나 깊어 모든 불가의 인물들과 민초들로부터 칭송을 받고, 싸움을 한 상대가 그 누구더라도 절대 살계를 열어 본 적이 없다 하여 불타의 화신, 불타승이라 불리는 현 소림의 방장이다.
나이는 이미 팔십을 넘어 구십에 다가가고 있건만 그 무공에 관해서는 무림의 기라성 같은 고수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출중하다.
불염신니(佛染神尼) 혜선(惠宣) 사태.
아미파의 장문인으로서 불타승 혜각과 마찬가지로 불가의 사람들과 민초들로부터 크게 칭송을 받는 비구니다.
“다른 분들도 모두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불염신니의 말에 화산파 장문인, 검선이 답했다.
“한시가 급한 바, 무례인 것은 아나 회담을 빨리 진행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오.”
검선의 말에 종남파 장문인인 천수신검과 개방의 방주인 천풍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풍걸개는 이런 겉치레일 뿐인 인사들을 무척이나 싫어했기 때문이고, 천수신검은 한시가 급하다는 검선의 말에 동의를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화산파 장문인의 말대로 회담을 속히 진행하기로 하지요. 현재 상황은 어떻지요?”
불타승의 말에 천풍걸개가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현재 소림과 화산, 그리고 무당을 빼고는 모두 혈천회라는 단체의 흑풍이라는 자들이 잠입한 상태요. 그리고 몇몇 문파는 장로들 아니면 후기지수들에 그들의 간세가 잠입한 상태였고.”
간세가 잠입한 상태였었다.
이것은 이미 모두가 겪었던 일이다.
다행히 천풍걸개의 적절한 조치에 의해 회담이 진행되기 전에 간세들은 모두 발본색원할 수 있었다.
“그들의 본거지는 어디요?”
해남파의 장문인인 남해신검(南海神劍) 연풍극(燕風戟)의 말에 천풍걸개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예전에 비매각과 비조각이 그들에 대해서 조사한 적이 있는데, 호북까지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개방에서도 추적해 본 결과, 호북에 있는 것이 확실할 것으로 보입니다.”
“호북이라……. 숭산에 무림맹을 발동시켜도, 호남의 악양에 무림맹을 발동시켜도 너무 가깝소.”
곤륜파의 장문인인 무상도(無上道) 일현(佚賢)의 말에 공동파의 장문인인 천강복마(天剛伏魔) 소평군(蕭平君)이 묵직하게 힘을 주어 말했다.
“예전에 혈천과 싸웠을 때도 무림맹과 지척에 그들의 본거지가 있었다고 들었소. 그리고 겨우 한 성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이 무섭다고 그렇게 숨어 버리려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부끄러운 줄 아시오.”
“허허, 공동파의 장문인께서 조금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어떻습니까?”
불타승 혜각의 말에 일현과 소평군이 노려보던 것을 멈추고 화를 눌렀다.
“공동파의 장문인께서 조금 흥분을 했지만 그래도 맞는 말이라 생각되오. 다른 곳에서 무림맹을 발동하느니, 바로 옆이라 하더라도 당당하게 전통적인 자리에서 무림맹을 발동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되오.”
점창파의 장문인인 관일공(貫日公) 등표훈(鄧飇勛)이 천강복마 소평군의 말에 찬성을 하고 나섰다.
“저희 아미파도 찬성입니다.”
“화산파도 찬성이오.”
“소림사도 공동파 장문인의 말에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찬성입니다.”
“해남파도 찬성이오.”
“종남파도 찬성이오.”
“개방도 찬성이오.”
“……찬성이오.”
무상도 일현도 천강복마 소평군의 말에 찬성하고 나섰다.
남은 것은 무당파.
무당파의 장문인인 허성(虛晟) 진인이 입을 열었다.
“찬성이외다.”
“그럼 무림맹의 위치는 전통대로 하남의 숭산으로 하겠소. 다들 찬성했던 것이니 나중에 불만 가지지 마시오.”
천풍걸개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한 가지 골칫덩어리가 해결되었소. 그리고 이제 나머지 하나의 골칫덩이가 남았소.”
“무엇입니까?”
“무림맹의 맹주(盟主)요.”
“그렇다면 저는 소림사의 장문인을 추천하겠습니다.”
천풍걸개의 말에 불염신니가 곧바로 대답했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또한 감정을 잘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불타승 혜각이다.
게다가 무림맹을 발동시키려는 위치가 소림사가 있는 숭산의 지척이고, 구파의 수좌 또한 고래로부터 소림사였으니 반박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동의하는 것으로 알겠소. 불만 있는 사람은 얘기하시오.”
천풍걸개의 말에 불타승이 입을 열었다.
“이 노납(老衲)은 무당의 장문인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음? 불타승께서는 맹주의 자리가 싫은 것이오?”
“원래는 산속의 암자에 들어가 조용히 불경이나 외워야 할 늙은이가 일선에 나서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젊은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시오.”
천강복마의 말에 불타승이 미미한 웃음을 지었다.
“저 또한 소림사의 장문인께서 맹주를 맡아 주셨으면 하니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불타승이 추천한 영선(靈仙) 허성 진인까지 불타승을 추천하자, 불타승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알겠습니다, 모두의 뜻이 그러하다면야.”
“그럼 맹주는 불타승께서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소. 나머지 분들은 혈천회와의 대결이 끝나고 무림맹이 해산될 때까지 무림맹의 장로가 되는 것이오.”
“알겠소.”
“그럼 무림맹에 관한 것은 이쯤에서 끝을 내기로 하고, 우리 정도 무림의 적인 혈천회에 대해서 얘기해 주겠소.”
천풍걸개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미미하게 굳어졌다.
“왜들 그러시오? 설마 겁이라도 먹은 것이오?”
“장난을 할 분위기가 아니니 말조심하시오.”
천강복마의 말에 천풍걸개가 변 씹은 표정으로 말했다.
“칫, 알았소. 현재 혈천회는 음지에서 활동을 하는 중이오. 양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은 세 번. 첫 번째는 종남파와 화산파의 합동훈련 때, 두 번째는 철검파가 갑자기 무림에 두각을 드러냈을 때.”
“잠깐, 철검파가 혈천회라는 뜻이오?”
“혈천회가 은밀하게 지원해 준 곳이 철검파요. 그렇지 않으면 그 작은 문파가 어떻게 그리 강해졌겠소?”
“…….”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가장 때요.”
“우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