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09화 (109/175)

# 109

화산천검 5권(9화)

4장 공천패(2)

뚜두둑! 우두둑!

혈도를 타고 흐르는 약기가 조금씩 혈도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져나간 기운은 약기운의 백분지 일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효과만은 뛰어났다.

금이 가거나 꺾인 뼈와 늘어나거나 찢어진 근육을 잇거나 바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내외상을 전부 치료하는 가운데, 약기가 드디어 치명적인 상처에 도달했다.

카드득!

마치 인두로 피부를 지지는 것만 같은 느낌.

무척이나 뜨거운 열기가 상처 부위를 타고 온몸으로 흘렀다.

‘크으으…….’

하지만 참아야 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그다음은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열기가 줄어들었다.

심한 내상을 입었던 부위도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혈도를 타고 돌다가 도착한 옆구리의 상처.

피부와 근육을 베인 것이기에 내상은 없다만 그 주위로 타고 흐르는 탁기가 있었다.

아니, 탁기라 하기에는 뭐하고 나의 기운과 맞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내 몸에 퍼져 있는 기운들과 맞서며 조금씩 세력을 넓혀 가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

백승의 장창에 찔려 흘러 들어온 백승의 경기였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정종의 내공은 아니었다.

내 자하심법은 기초심법인 만큼, 그리고 천지인을 아우르는 만큼 다른 기운과 융화되기가 쉽다.

그런 자하심법으로 얻은 내공과 상충하는 백승의 기운.

그것만으로도 정종의 내공이 아닐 뿐더러 심하게 사이한 심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단약은 무척이나 뛰어난 약인 것인지.

백승의 기운을 차례차례 제압하더니 그곳에 틀어박혀 조금씩 기운을 흘려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뒤틀린 기혈이 바로잡히고 피륙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간지러운 느낌.

방금 전까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하단전으로 빠르게 돌진하는 약기운.

속도에 맞춰 생겨나는 기의 파동.

파동은 약기가 직접 닿지 않아도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자잘한 상처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런 파동을 만들어 내던 약기가 하단전에 도달했다.

지금은 만전일 때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버린 하단전의 기운.

약기는 하단전의 내공과 만나 어우러졌다.

음과 양이 어우러지듯.

태극의 원을 그리며 웅웅웅 진동하던 기운들이 점차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조금 이질적인 기운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지금의 단약과는 다른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기운.

내가 모두 흡수했었던 약선의 단약이었다.

아니, 모두 흡수했었다고 느꼈던 것인가 보다.

이렇게 분리가 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하나로 합쳐진 기운과 분리된 기운이 점점 어우러지더니 하나로 뭉쳐졌다.

우우웅∼

공명하듯 진동하는 기운.

그리고 그 기운에 공명하여 꿈틀거리는 삼단전.

‘뭐지?’

하단전에서 중단전으로, 중단전에서 상단전으로, 상단전에서 하단전으로 길을 잇는 기운들.

온몸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며 머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순간 찌릿한 느낌과 함께 머릿속이 밝아졌다.

하단전, 중단전, 그리고 상단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타고 돌던 기운들이 점점 속도를 줄여 가며 마침내 하단전에 정착했다.

저번보다 더욱 정순해지고 늘어난 기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한계까지 몸을 쓰면서 벽을 조금 허물어뜨렸고, 치료하는 도중에 그 벽을 전부 허물어 버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하나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안정되어 조용히 맥동하는 내공.

모든 일을 끝마친 것 같았기에 눈을 떴다.

조금은 흐릿한 사물의 형상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점점 시야가 맑아져 갔다.

화아악∼

맑게 트인 시야.

운기조식을 하며 취했던 자세를 풀고 정립했다.

콰아앙! 파캉! 푸슉!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은 것인지.

검왕 남궁명헌과 탈백도 갈천악은 계속해서 검과 왜도를 맞대고 서로에게 살수를 날리고 있었다.

옆을 둘러보자 남궁세가의 보통 무인들은 거의 넋이 빠져 있었고, 장로들과 가신들은 굳은 얼굴이었으며, 남궁수련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남궁명헌과 갈천악의 싸움을 다시 보았다.

핏! 카아앙!

왜도와 검이 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갈천악의 극에 이른 쾌도는 남궁명헌의 창궁무애검법의 맥을 끊고 있었다.

모든 방어를 꿰뚫는 첨예한 창의 일격.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가주.

이것은 그저 직계라는 핏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모두를 뛰어넘는 뛰어난 심계와 무재가 있어야 한다.

천하제일세가의 구성원들 모두를 뛰어넘는 무재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천하 무림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무재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 남궁명헌이 갈천악에게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갈천악은 피륙의 상처가 많았다.

많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저대로 죽진 않을까 할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남궁명헌은 갈천악에 비해 상처가 많이 없었다.

하지만 갈천악의 표정은 여유가 있는 데 반해 남궁명헌은 창백하면서도 굳은 얼굴이었다.

‘내상!’

외상보다는 내상이 훨씬 위중하다.

특히나 이런 고수의 싸움에서는 말이다.

남궁명헌이 내상을 입었으니 갈천악에게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지만 다시 말하듯이 남궁명헌은 뛰어난 무인이다.

제대로 싸우기만 한다면 갈천악에게 밀릴 리가 없을 텐데…….

‘중단전.’

정파 정종의 무공은 마음가짐에서 그 위력에 차이가 난다.

부동하는 평정심이야말로 정종 무공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점이며 또한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남궁명헌은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의 세가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 말이다.

부동심에서 벗어난 노(怒).

당연히 제대로 된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갈천악이 창궁무애검법의 맥을 끊을 수 있고, 중요한 혈도에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다.

‘위험하다.’

가주는 세가 자체라 말할 수 있다.

가주가 진다는 것은 그 세가가 그자에게 졌다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남궁세가가 하나의 인물에게 크나큰 치욕을 당한다는 뜻이다.

천하제일세가로서의 명성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게 되고, 한 성의 패자로서의 위치가 흔들린다는 뜻.

그렇기에 싸움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일반무사들과는 달리 장로들과 가신들, 그리고 남궁수련이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염력으로라도…….’

하지만 생각을 더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남궁수련이 나의 오른손을 꾹 쥐고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어째서 안 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나선 순간부터 여기에 당신이 나설 자리는 없어요. 이건 남궁세가의 일이에요.”

“아…….”

그런 것인가.

가주가 밀리고 있어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 이겼다.

아니, 그것이 보이지 않는 도움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 하여도 싸우고 있는 당사자는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이겼다고 알려져도 자신은 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잡하다.

모든 것의 사정을 헤아려야 하며 모든 것의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

마음먹은 대로 행동할 수 없으며 마음먹은 대로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은 온몸을 짓누르는 하나의 압박이었다.

‘힘.’

번쩍 떠오르는 한 글자.

무림은 힘이 법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바로 무림의 진리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싶으면 강해지면 된다.

강하다면 무림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복수에 대한 열망과는 무언가 다른 뜨거운 열망.

가슴속에 깊이 박혀 빼낼 수가 없게 될 정도였다.

콰앙!

마지막으로 치닫는 결투.

남궁명헌이 갈천악에게 검을 겨누고 갈천악이 왜도를 두 손으로 붙잡고 살짝 비껴 잡았다.

남궁명헌의 이마에 땀방울이 생겨나는 동시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

남궁명헌의 검을 감싸며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만 끝을 내자는 건가?”

남궁명헌에 반해 갈천악은 그저 몸을 조금 낮추고 잘 벼려진 칼과 같은 기세를 내보일 뿐이었다.

조금 더 대치하다가 격돌하려는 찰나.

누군가가 또다시 난입했다.

“지금은 들어오지 못하오, 돌아가시오.”

저 멀리 끝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남궁세가의 무사가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들어오면 안 된다고 얘기했잖소?”

소란이 커져 가고 있었다.

말소리가 계속해서 들리자 남궁명헌이 눈썹을 꿈틀하며 갈천악에게 말했다.

“아직도 동료가 남아 있던가?”

“아니, 분명 내가 마지막이었다. 누군가가 더 온다는 얘기, 나는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누군가가 난입한 것에 흥이 깨진 것인지.

점점 커져만 가던 둘의 기세가 조금씩 줄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대치 중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흥이 깨졌다, 잠시 승부는 미루도록 하지. 제삼의 세력이라면 우리 둘 모두 위험하니 말이다.”

남궁명헌은 조용히 수긍하였다.

둘 모두 검과 도를 검집과 도집에 집어넣고 소란이 일어나는 곳을 보았다.

“익모쾌(?募?), 더 이상 소란스럽게 하지 말도록 단속해라. 그리고 일양정(?陽情), 누군지 보고 정중히 모셔오도록.”

남궁명헌의 말투에 담긴 감정은 ‘불쾌’다.

마지막 일 초를 남겨 두고 싸움이 멈추었다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천뢰공(天雷公) 익모쾌.

천뢰지(天雷指)를 익힌 절정의 고수로서 남궁세가의 가신이다.

고혼객(孤魂客) 일양정.

고혼검법(孤魂劍法)을 익힌 절정의 고수로서 익모쾌와 마찬가지로 남궁세가의 가신이다.

두 남궁세가의 가신이 남궁세가 현 가주의 명령을 받들어 소란지로 날아가듯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이 잠잠해지고 인해가 갈라지며 이곳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길이 생겼다.

익모쾌와 일양정의 뒤에서 걸어오는 한 중년인.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리고 무척이나 놀라 나도 모르는 새에 눈이 크게 떠졌다.

예전에 본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얼굴이다.

이곳, 남궁세가의 전쟁터.

전혀 변하지 않고 그 혼자만이 세월의 풍파에서 벗어나 독야청청(獨也靑靑) 빛나는 것만 같은 느낌.

부리부리한 호목에 어지러이 삐쭉삐쭉 뻗친 수염과 산적과도 같은 얼굴.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몸 밖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자연지기.

도사였다, 그것도 우리 화산파 도문의 장로님들보다도 더욱 높은 경지의 도사.

예전에 상단전을 열기도 전에 만났던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나에게 도움을 주었기에 미약하게나마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면, 지금은 나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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