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172화
“흠, 전서구를 보내는 게 빠르지 않겠나?”
“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말려야 합니다. 사령회의 정예와 청룡단이 한차례 싸움을 벌여서 사상자가 많이 났다고 합니다.”
“허, 결국 붙었군.”
“예, 문제는 사령회가 총동원령을 내려서 위남으로 진격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분명히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 뻔했다. 누군가 말리지 않으면 사도맹과 무림맹에서 추가로 무인들을 파견할 것이다.
이때 가만히 있던 혈황이 한마디 던졌다.
[사도맹은 이미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으면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거다.]
-역시 그렇겠지요?
[네 녀석, 삼원진사 맞냐? 어째 무공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 같다.]
-…….
* * *
청운은 무림맹으로 전서구를 띄우는 한편 서찰을 적어서 전령도 따로 보냈다. 전서구로는 많은 내용을 알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화산파로도 전서구를 띄웠다. 자신이 갈 때까지 싸움을 멈춰달라는 내용이었다.
종남파에도 당부를 남겼다.
“사도맹이 움직였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들이 장안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종남에 들르거나 따로 무인들을 보내서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으음, 알겠소. 그렇다면 자오곡의 경계를 철저히 해야겠구려.”
“그리하십시오. 그들이 자오곡을 거쳐서 온다면 장안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종남을 거쳐서 화산으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한중에서 장안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포야도를 거쳐서 오장원으로 향한 후 장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자오곡을 지나서 곧장 장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이밖에도 진창도와 당락도를 거치는 방법도 있다. 보통은 포야도의 야곡을 많이 이용한다. 만일 잔도가 발달한 자오곡을 이용한다면 종남을 노릴 확률이 높았다.
“진무사 덕분에 장안으로 돌아가려 했던 무인들이 많이 남아 있소. 이들과 함께하면 쉽게 밀리지는 않을 거요.”
청운은 출발에 앞서 장안에 적을 둔 무인들을 만났다.
“전령에게 생존자들의 연락을 가져오라 했습니다. 갑갑하시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고맙소.”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거요.”
생존자가 있다는 말을 전령이 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전령에게 수고스럽지만, 명단을 작성해서 가져오라 일렀다.
또한 그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는 말도 함께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장안의 무인들은 청운에게 마음을 열고 감사를 표했다.
“장부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괜찮다 했습니다. 적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알겠소이다. 진무사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무림 동도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와 함께 혈채를 받으러 가는 순간까지 보중하십시오.”
청운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화산에서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일선에서 벌어지는 변수 때문에 책사가 선조치 후보고를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 결정 때문에 상황이 점점 악화일로로 달리고 있으니 문제였다.
청운은 모두의 걱정과 기대 속에서 종남산을 내려갔다.
* * *
청운이 종남을 나와 화산으로 가는 동안 우려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령회의 구원요청을 사도맹이 받아들인 것이다.
사도맹은 무림맹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동안 평화롭게 지낸 것은 아니지만 별다른 마찰도 없었다.
그런데 마음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사도맹은 휘하 세력에 전서응을 날렸다.
-정파가 공격을 시작했다. 대비하라!
중원 전역에 퍼 져있는 사도맹 세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사령회같은 지부가 각성마다 하나씩은 존재했다.
정파가 강한 곳도 있지만 사파가 강한 곳도 있었다.
그 때문에 중원 무림은 폭풍 전야의 위기 속에서 정사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청운은 하루 만에 화산파에 도착했다.
중상을 입은 안겸은 백가장 호위무사가 업고 달렸다.
흙먼지와 땀으로 범벅된 그들은 화산의 산문을 통과했다. 청운은 백가장 무사와 안겸을 객당에서 쉬게 하고 곧장 화산의 대소사를 결정짓는 자소궁으로 향했다.
자소궁은 이 층으로 된 커다란 전각이었다. 화산파 장문인이 기거하는 곳으로, 태상노군의 커다란 신상이 정면 벽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소궁 안에는 화산파 장문인을 비롯한 무림 명숙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무림맹 무사들을 이끄는 제갈신우도 있었다.
청운은 안으로 들어서며 제갈신우와 눈이 마주쳤다.
제갈신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쯧쯧, 나를 나무라는 것이군.’
제갈신우는 청운의 눈빛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왜 공격했냐는 뜻이겠지.’
청운이 말하기도 전에 제갈신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갔던 일은 잘되었소?”
“예,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하아, 내 설명해드리리다.”
예상대로 청운이 질문하자, 제갈신우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청운은 전후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문희 단주가 문제군요. 제갈신우 장로님, 주작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아직 연락이 안 되고 있네.”
“역시 그렇군요.”
청운은 문희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작 처리했어야 했거늘.’
신비세력과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 예상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 휘하에 있는 자들도 상당수가 의심스러운 자들이었다. 그래서 청운은 주작단에 첩자를 집어넣은 상태였다.
청운은 금의위 위사를 불렀다.
화산에도 연락을 위해서 남겨놓은 금의위 위사가 있었다.
곧 금의위 위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십조 조장인 윤석평 백호였다.
청운이 윤석평에게 물었다.
“위치는 파악했느냐?”
“예, 화산 남쪽을 돌아서 장안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상주 방향에서 장안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종남 방향으로 갈지 아직 모르겠다는 연락입니다.”
“언제 온 것인가?”
“이른 아침에 왔습니다.”
아침에 도착했다면 거리상 새벽이거나, 아니면 어젯밤에 전서구를 날렸다는 말이었다.
청운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화산파 장문인인 현허진인에게 물었다.
“장문인,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무량수불, 말씀하시지요.”
“혹, 조금 전에 말한 위치에 사령회 관련된 문파나 세력이 있는지요?”
“한 군데 있소. 사천혈륜궁이라는 곳인데, 왜 그러시오?”
현허진인은 청운의 물음에 이상함을 느꼈다.
청운은 대답 대신에 재차 물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사천혈륜궁은 어느 정도 세력입니까?”
“무량수불, 사천혈륜궁은 사령회를 지탱하는 네 개의 세력 가운데 한 곳이외다.”
“강하겠군요.”
“맞소. 사령회 지부 중에서 세 번째로 강한 곳이오.”
“그럼 주작단이 공격하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청운의 물음에 현허진인은 도호를 외우며 고개를 저었다.
“무량수불, 공격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단독으로 그곳을 쳤다가는 모두 죽지 않으면 다행이오. 특히, 궁주인 혈존자는 무서운 자요. 빈도도 그와 승부를 장담할 수 없소이다.”
“감사합니다. 혹시 주작단이 사천혈륜궁을 공격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물어본 것입니다.”
“무량수불. 진무사,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사천혈륜궁을 아는 아이들이 주작단에 포함되어 있으니 공격하지 않을 거요.”
현허진인의 말에도 청운은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문희라면 사천혈륜궁을 칠 것이다.’
과연 문희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불안했다.
청운의 안색이 여전히 굳어 있자, 이번에는 제갈신우가 말했다.
“진무사. 장문인의 말대로 걱정하지 말게. 사천혈륜궁은 유명한 곳이네. 주작단주가 경거망동하지는 않을 거네.”
“주작단에 연락은 해보셨습니까?”
“이미 그리했네. 아직 연락이 없지만, 곧 연락이 올 것이네.”
“알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윤 백호에게 말씀하십시오.”
“고맙네. 바로 조치하겠네.”
제갈신우가 마지못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청운은 좌중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은 마도사파와의 싸움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자신과 달리 정파인들은 피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청운은 이곳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제갈신우를 보며 말했다.
“장로님, 이대로 흘러간다면 정사대전은 불가피합니다.”
“알고 있네.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피할 생각은 없네.”
생각대로였다. 제갈신우 역시 싸움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청운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가 급하게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제갈신우의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른 자들도 싸우자고 나서지 못할 것이다.
청운이 제갈신우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 누군가의 음모입니다.”
“진무사, 또 그 이야기인가? 쯧쯧, 신기 녀석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내 다시 말하지만 확실한 물증을 가져오라니까.”
제갈신우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제갈신기와 청운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신비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 역시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협조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은 적이 없었다. 분명히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둘은 때가 아니라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청운은 예상한 대답을 했다.
“장로님, 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흥! 내 그럴 줄 알았네.”
제갈신우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청운을 보았다. 얼굴을 살짝 기울이고 턱을 들어 올린 그는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청운도 제갈신우의 말대로 증거를 내놓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은 안겸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었다.
안겸의 증언을 들으려면 그가 일단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래야 증언을 하든 심문을 받든 할 것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내상이 심해서 정신을 언제 차릴지, 그것조차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이곳에도 놈들의 첩자가 있겠지.’
무림맹에도 있던 첩자다. 화산파에도 있을 것이고, 이곳에 와 있는 무림인들 사이에도 숨어 있을 것이다.
한편, 제갈신우는 청운의 태도에 짜증이 일었다.
‘분명히 무언가 있어. 이것들이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야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해줄 것 아니야?’
그의 불만은 그것이었다.
이것들이 의뭉을 떨고, 감히 제갈세가의 직계이며 무림맹 장로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청운은 제갈신우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이런, 장로님께서 삐치셨군.’
제갈신기는 제갈신우를 평가할 때 이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형님은 나이를 지긋이 드셨지만,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있네. 절대 삐치게 하면 안 되네. 특히, 이렇게 얼굴을 하고 턱을 살짝 올리며 코 평수를 늘리면, 삐친 거네. 이럴 때는 칭찬을 하며 띄워주고……. 내 말 알겠나?”
처음 제갈신기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이었다. 덕분에 요즘은 제갈신우의 협조를 구하기가 쉬운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제갈신우의 표정이 딱 그러했다.
청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내일 말씀 올릴 터이니 일단 싸움을 멈춰 주십시오.”
“당장 내놓지 않으면 어림없는 이야기네.”
“하룻밤 싸우지 않는다고 전세에 영향이 있겠습니까?”
“학자라는 친구가 할 말은 아니군. 하룻밤이면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도 남을 시간이네.”
획!
제갈신우는 듣기 싫다는 듯이 손에 쥔 무언가를 휘저었다.
순간, 청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좋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려주신다면 제가 선봉에 서서 장로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정말인가?”
“예, 그만큼 확실한 증거입니다.”
“허허, 좋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 기다려주지.”
제갈신우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청운이 제시한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최고의 패가 자기 손에 쥐어지는 일이었다.
청운은 화경의 고수가 분명했다. 그런 고수를 장기판의 말처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판은 내가 무조건 이긴다.’
제갈신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