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171화
청운은 신비세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군웅들의 안색이 시시각각 변했다.
“……종남파 혈겁에 동참한 구혼지마 한겸은 사령회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신혈교라는 단체에 속한 자입니다. 지금 백가장 사람들이 그를 메고 종남파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장안의 일도 신혈교가 무림맹과 사도맹을 싸우게 하려는 계략이 분명합니다.”
뒤쪽에 있던 누군가가 청운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구혼지마 외에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증거는 아니지만, 다른 건 있습니다. 한겸을 압송하는 과정에서 신혈교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종남파를 공격한 게 자신들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소?”
누군가 증거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청운은 곧장 군웅들에게 말했다.
“백가장의 백영상 장로님께서 함께 있었습니다. 그분이 확인해 주실 것입니다.”
“끄응.”
누군가 앓는 소리를 냈다.
청운이 말을 이었다.
“놈들은 정사대전을 일으켜서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속셈입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주십시오.”
청운의 설명이 무겁게 군웅을 덮쳤다. 이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청운이 한 말뜻을 알아들었다.
선두로 나와 있던 각 세력의 대표는 서로를 보았다.
“난 종남으로 돌아가겠소.”
“같이 가시지요. 진무사의 말씀이 맞는다면 원수는 따로 있는 것이니.”
청운의 말에 뜻을 꺾었다. 그러나 모두가 청운의 말에 움직인 건 아니었다.
“저희는 장안으로 가겠습니다.”
“나도 장안으로 가겠네. 가족의 시체라도 수습해야지 않겠나?”
“맞습니다. 혹시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살려야지요.”
순식간에 양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칠성도제가 모두의 의견을 듣고 청운에게 대표로 말했다.
“진무사, 남을 자와 떠날 자가 결정되었소. 그러니 이제 길을 열어주시오.”
“알겠습니다.”
청운은 대답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길 중앙에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칠성도제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무슨 짓이오?”
“힘으로 해결하지요.”
“머, 뭐요? 아무리 황실 사람이라지만 우리가 그리 우습던가?”
후아아앙!
칠성도제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잠들어 있던 그의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었다. 초절정에 이른 무공에 분노가 더해지자 기세가 거칠고 사납게 변했다.
칠성도제의 내공이 발산하는 기운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낸 청운의 옷자락이 태풍을 만난 듯 펄럭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청운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칠성도제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솟구치며 허공에서 재주를 넘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독문병기인 칠성도가 들려 있었다.
그는 칠성도법 네 번째 초식인 벌성천뇌를 펼쳤다.
하늘이 벌을 내리듯이 강맹한 도기가 청운에게 쏟아졌다.
청운은 양발을 넓게 벌리고 자세를 낮추며 쌍장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서 장력이 쏟아졌다.
콰과과광!
두 사람의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청운은 몸을 빙글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칠성도제는 땅에 내려서자마자 미끄러져가며 칼을 치켜들었다. 좌우로 획획 움직이는 것이 칠성보법의 한 종류 같았다.
청운도 검을 뽑았다.
우웅.
그의 검에서 맑은 검명이 울렸다. 칠성도제는 자세를 낮추며 도를 움켜쥐었다.
팟!
일도필살의 자세로 한 발 나선 칠성도제가 사선으로 도를 휘둘렀다.
청운도 마주 검을 뻗었다.
쉐에엑! 쾅!
두 사람의 기운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크윽.”
칠성도제가 폭발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순간, 청운이 잔상을 남기며 칠성도제를 향해 쇄도했다. 칠성도제는 빠르게 도를 휘둘러서 청운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청운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척.
어느새 칠성도제의 어께 위에 청운의 검이 놓였다.
도를 앞으로 내민 그대로 칠성도제가 얼음 기둥처럼 굳었다.
스르륵.
힘없이 도를 늘어트린 칠성도제의 앙다문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졌소.”
고개 숙인 그의 모습이 한없이 처량해 보였다.
청운은 칠성도제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지켜보고 있는 자들을 향해서 말했다.
“다음은 누구입니까?”
군웅들은 눈치를 보며 나서지 않았다.
이미 청운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지켜봤다. 군웅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칠성도제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십여 초 만에 패배했지 않았는가.
그러나 도전하지 않을 것 같던 군웅들 사이에서 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난 적천가(赤天家)의 가주 천중경이오. 이번에는 내가 상대해보겠소.”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장한이 검을 뽑아 들고 청운에게 달려들었다.
청운은 한 차례 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말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싸움 아닌 싸움이 다시 벌어졌다.
천중경 역시 십여 초 만에 패배했다. 그 뒤로도 여러 인물이 청운에게 도전을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청운을 넘지 못했다.
더 이상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가 없자 청운은 군웅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의 분노와 슬픔을 만분의 일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있을지 몰라서 금의위와 동창을 장안으로 보냈습니다. 뒷수습은 그들이 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복수를 위해서 남아주십시오.”
이대로 이들을 보냈다가는 놈들의 맛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어쩌면 가는 길 어딘가에 놈들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
군웅들은 청운을 넘지 못하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갔다.
축 처진 그들의 모습에 청운 역시 마음이 아팠다.
* * *
종남파로 돌아온 청운은 곧장 종남 제자의 안내를 받으며 천도관으로 갔다.
그곳에는 일청자를 비롯한 종남파 장로들과 백영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운은 포권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척마대주께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척마대와 멸사대는 연락을 받고 떠났습니다.”
청운의 물음에 일진자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사령회 때문에 따로 움직인 것 같았다.
일청자는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청운에게 말했다.
“진무사, 그런데 장안으로 떠났던 무인들을 다시 데려오셨다고요?”
“예, 이미 늦었는데 가봐야 함정에 빠질 뿐입니다. 더욱이 이곳 종남파를 지키는 데 그들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왜 진무사 마음대로 정하는 겝니까?”
일청자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청운을 쏘아보며 말했다.
청운은 예상이라도 했는지 담담히 일청자에게 말했다.
“뻔히 적의 계략인 것을 아는데 보내라는 말씀이십니까?”
“뭐요? 적의 습격으로 가문과 문파가 혈겁에 빠졌는데 당연히 돌아가야지요. 한 명의 생존자라도 살려야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게요.”
청운은 일청자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백영상을 보며 물었다.
“백 장로님, 아직 말씀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자네가 오면 하려고 아직 말하지 않았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남파 장로들과 남아 있던 섬서성 정파 인사들을 보며 그간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종남을 공격한 것은 구혼지마 안겸과 그가 속한 신혈교입니다. 지난번 뒤쪽 건물의 잔해를 백청청 소저가 치우고 역천마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백가장이…….”
청운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종남의 수뇌부는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된 것입니다.”
청운의 이야기가 끝나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진무사, 그게 사실입니까?”
“포로로 잡았다는 안겸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자를 어서 데려오게 하시지요. 그에게 직접 물어봅시다.”
청운의 말을 뒷받침해줄 포로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장은 그를 취조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포로로 잡은 안겸이 놈들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정신을 차린 후에야 심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영상이 청운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진무사의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소이다. 이 백 모가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외다.”
그러나 종남파의 장로들은 백영상의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었다.
청운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손뼉을 쳤다.
짝!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청운의 행동에 모든 이가 청운을 보았다.
“이 사실을 서둘러 무림맹에 알리고 무사들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사파에도 이 사실을 알려서 그들이 어부지리를 얻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진무사의 말대로 할 수는 없소.”
일청자가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청운은 뻔한 대답이 나올 걸 알면서도 물었다.
“일청자 님, 이유가 무엇인지요?”
“몰라서 묻는 게요? 이미 정파는 많은 피를 흘렸소. 적의 계략이었다 할지라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청운은 적의 계략에 속는 것을 알고도 물러서지 않는 일청자에게 화가 났다.
“종남을 공격한 자들은 사도맹이 아니라 신혈교입니다. 정사대전으로 번진다면 신혈교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것입니다. 진짜 복수를 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진무사. 그대가 황실 사람이라서 잘 모르나 본데, 정파는 약하지 않소. 당장 여기 백가장 역시 정파요. 하긴, 관리가 무얼 알겠소?”
“무슨 말씀입니까? 설마 사파와 신혈교가 동시에 덤벼도 정파의 힘으로 상대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잘 아시는구려. 그러니 진무사께서는 구경이나 하시다가 황실로 돌아가시오.”
일청자는 더 말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청운 역시 입을 닫았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그렇게 자신 있는 자들이 습격에 무너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도와주겠다는데도 이러면 할 말이 없었다.
그때 밖에서 다급하게 청운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무사 대인! 전령이 당도했다고 합니다.”
“알겠네.”
청운은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회의장에 있던 이들도 궁금한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금의위가 서 있었다.
그가 한쪽 무릎을 빠르게 꿇으며 군례를 올렸다.
“충! 금의위 십장 석수광입니다.”
“오랜만이군. 그래 누가 보낸 것인가?”
“동창의 정 소감님이십니다.”
전령은 대답과 동시에 두루마리를 건넸다.
청운은 두루마리를 죽 펼쳐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이,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
청운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상을 구겼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궁금한지 청운을 보았다.
청운이 고개를 돌리더니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화산에서 연락이 있었습니까?”
“그렇소, 사령회를 견제하기 위해서 위남으로 청룡단을 파견한다는 내용이었소.”
일진자가 청운의 물음에 대답했다.
청운이 다시 일진자에게 물었다.
“제갈신기 총군사님의 명령은 있었습니까?”
“아니요. 무림맹에서는 연락이 없었고, 화산에 계신 제갈신우 대협의 전서구를 받았을 뿐이오.”
청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일이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다. 자칫하면 자신이 안겸을 잡으러 간 일이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아무래도 제갈신우 장로님이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셨나 보군. 이 일을 어쩐다.’
청운이 고민을 할 때 백영상이 슬쩍 물어왔다.
“진무사, 무슨 일인가?”
“아, 죄송합니다. 생각을 하느라…….”
청운은 급히 사죄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 사령회가 먼저 시작한 게 아닙니다. 무림맹 사신단 중 주작단이 먼저 위남의 사령회지부인 영마장을 치면서 생긴 일이라 합니다.”
“무림맹이 먼저 공격했다고?”
“예, 그래서 사령회가 장안을 친 것이고요.”
청운을 모두가 듣게끔 설명을 해주었다. 청운의 설명에 시시각각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이야기가 이어질 때 일청자가 다시 소리쳤다.
“흥! 우리 종남을 친 건 사파 놈들이오! 무림맹에서 영마장을 쳐서 복수한 것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이시오!”
“장로님, 아까 사령회를 가장한 신혈교가 종남을 공격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청운은 일청자에게 일침을 가하고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일청자는 그 모습에 화가 나는지 막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이것 놓아라!”
“사형! 제발 진정하십시오. 제가 다 부끄럽습니다.”
일진자가 일청자를 잡아끌었다. 일청자는 무엇이 분한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운은 일청자를 무시하며 백영상에게 말했다.
“장로님, 죄송하지만 곧장 화산으로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