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130화
“대인, 어서 오십시오.”
청운을 반갑게 맞아준 중년 사내는 놀랍게도 삼천이었다. 청운에게 전수받은 천면만화신공을 익혀서 중년 사내로 역용한 상태였다.
청운의 지시로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담금질한 삼천은 예전에 비해 배는 더 강해진 상태였다.
자리에 앉은 청운이 그에게 물었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찌 되었는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달라진 곳이 제법 되었습니다.”
청운은 삼천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었다. 그중 하나가 신비세력에 대한 것이었다.
삼천은 자신이 알아온 정보를 청운에게 말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룡궁과 깊이 연관된 곳은 대부분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청운은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에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남은 곳도 있는가?”
“예, 그대로 활동하는 곳도 있습니다. 여기 따로 정리했습니다.”
삼천은 청운에게 얇은 책자를 넘겼다. 책자를 펼쳐서 한 차례 훑어본 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가 남은 것만 해도 다행이군.”
“그냥 버리기에는 투자한 자금과 시간이 아까웠을 겁니다.”
“그렇겠지. 고생했네.”
청운은 삼천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를 완벽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처리한 것만 보면 어느 정도 믿음을 줘도 될 듯했다.
하긴 들키면 이제 죽은 목숨 아닌가. 가족을 위해서라도 청운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운은 책자를 다시 바라보며 생각했다.
‘놈들에 관한 단서를 다시 찾았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겠군.’
영풍장을 끝으로 청운이 알고 있던 신비세력의 꼬리가 끊긴 상태였다. 그런데 다행히 삼천 덕분에 꼬리를 다시 잡았다.
놈들과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무림맹에서 파악한 자들과 연계한다면 좀 더 깊이 연관된 자를 추릴 수 있겠군.’
제갈신기가 청운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두 사람이 비밀리에 무림맹 인사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수상한 자들 몇을 추려낼 수 있었다.
그들과 책자에 적힌 자들만 처리해도 신비세력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듯했다.
‘삼천 덕분에 일이 조금 수월해졌군.’
그때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든 청운은 삼천을 살펴보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왠지 모르게 신경을 거슬렸다.
‘뭐지?’
의아함도 잠시, 신경을 거슬리는 그 기운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 금제 때문에 발생한 기운이군.’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이상했다.
혈황이 알려준 대로 삼천의 몸에 금제를 했었다. 그런데 금제로 인해 발생하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청운은 고개를 돌려서 혈황에게 전음을 보냈다.
-삼천의 몸에 한 금제와 혈황진기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랬다. 삼천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놀랍게도 혈황진기였다.
비록 미약하지만, 자신의 몸속에 웅크리고 있는 혈황진기와 뿌리가 같아서 그가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혈황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아, 그거? 일반적인 금제는 잘못하면 풀린다. 그래서 혈황진기를 응용해 확실하게 묶어둔 거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 듯한 말이어서, 청운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혈황진기를 응용한 금제라면 혈황 외에 누구도 풀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무림맹에 들어와서 생활하게. 신분은 백인장으로 해두었으니 움직이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네.”
“알겠습니다.”
* * *
삼천은 청운이 무림맹과 회의를 할 때 그의 뒤에 서서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청운이 삼천을 무림맹 회의에 참석시킨 이유는 그가 자신보다 신비세력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회의에서 나온 사항을 삼천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형적인 놈들의 꼬리 자르기입니다.
-그럼 덮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이야긴가?
-예, 이미 다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신비세력과 관련이 없는 무고한 자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청운은 삼천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삼천을 곁에 두기를 잘했군.’
누구보다 신비세력에 대해서 잘 아는 인물이 삼천이다. 특히 그들의 습성을 잘 알기에 놈들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거나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이제 하나씩 가지치기를 해주마.’
청운은 마음을 다잡으며 회의에 집중했다.
“그곳을 치는 일은 보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신비세력과 관련된 자들은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진무사, 확신하시오?”
청운의 반대에 월평이 물었다. 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정 의심되면 사람을 붙여서 확인해보는 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흠, 좋습니다. 진무사께서 그리 확신한다면 그곳은 넘어가도록 하지요. 그럼 이곳은 어떻습니까?”
월평은 종이 한 장을 펼쳐 보였다.
맹진(孟津) 금검장(金劍莊).
다섯 글귀가 쓰여 있었다.
맹진에 있는 금검장이라는 곳이 새로운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곳은 삼천에 의해서 확인한 곳이다.
낙양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가 맹진이다.
낙하를 이용해서 낙양으로 짐을 옮기는 수운(水運)이 발달한 곳.
금검장은 황하를 이용한 교역과 수운 사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가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들이 들락거렸다. 그 때문에 무림맹에서 신비세력의 자금줄이 아닌지 의심하는 곳 중 한 곳이었다.
청운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금의위에서 파악한 곳과 동일합니다. 신비세력의 자금줄이 분명합니다.”
청운은 이번에도 확신에 찬 말을 했다.
월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말했다.
“그럼 양측에서 동의했으니 정리하는 것으로 했으면 합니다. 혹, 반대하시는 분 계신가요?”
반대하는 이가 없자 월평이 확정을 지었다.
“반대하시는 분이 안 계시니 이곳은 정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종이를 한쪽으로 내려놓은 월평은 다른 종이를 펼쳤다.
“이번에는 이곳입니다.”
새로운 곳이 거론되었다. 이번에도 청운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회의는 계속 진행이 되었다.
회의를 마치고 전각을 나선 청운은 호위처럼 따라붙은 삼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삼천은 청운에게 회의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무림맹이 생각보다 신비세력에 대해서 아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나도 놀랐네. 오래전부터 무림에 이상 징후가 있었다고 하더군. 그때부터 조금씩 조사를 했었는데 확신이 없어서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네.”
청운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제갈신기와 독대를 했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무림 암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신비세력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대인, 그럼 앞으로 어찌 되는 것입니까? 우리도 출동하는 것입니까?”
“자네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이번 일은 무림맹이 단독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네.”
삼천은 신비세력에게 맺힌 게 많았다. 더욱이 아직 가족의 생사를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갇혀 있었다는 곳에서부터 역추적하고 있지만 좀처럼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삼천은 신비세력을 상대하다 보면 작은 단서라도 발견할 수 있기에 청운의 결정을 아쉬워했다.
그런 삼천의 마음을 잘 알기에 청운이 말했다.
“아침 회의에서 무림맹 장로들이 거품을 물고 나에게 덤비는 것을 자네도 보았을 것이네.”
“아! 깜짝 놀랐습니다. 무림맹 장로라는 분들이 무슨 시정잡배도 아니고……. 흠흠.”
삼천은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 자신의 발언을 들었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말이었다.
다행히 들은 이는 없었다. 그 모습에 청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소리를 차단하고 있으니.”
청운은 내공을 이용해서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소리를 차단하고 있었다. 무공이 뛰어난 자는 수십 장 넘는 곳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오늘 결정된 사안을 놓고 내일 아침에 회의할 것이네. 장로들이 입에서 불을 뿜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기대하게.”
청운은 아침마다 무림맹 장로들과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서 합의를 했다. 그나마 웅천이 온 뒤로 들어가는 장비와 인력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오늘같이 어딘가를 공격하는 일은 전과와 관련된 일이다.
더욱이 전리품을 취득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장로들은 절대로 양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청운의 예상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았다.
장로 중 몇몇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진귀한 광경을 선보였다.
특히 장로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제갈신우가 앞장섰다.
“진무사, 이번 일은 오래전부터 무림맹이 계획하고 준비했던 일이네. 그걸 양보하라니? 진무사께서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으신가?”
“제갈 장로님, 금검장은 숨은 고수가 많은 곳입니다. 더욱이 황하의 절벽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공격할 수 있는 방향이 한 곳입니다.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뭐라? 지금 우리 무림맹을 무시하는가?”
“장로님,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진무사의 무공이 강하다고는 하나 여기는 무림맹이네! 기인이사가 모래알처럼 많은 곳이란 말이네!”
무림맹 장로이자 제갈신기의 사형인 그는 청운도 상대하기 쉽지 않았다.
더구나 그의 말도 크게 틀린 부분이 없었다.
무림맹이 나선다면 고수들이 파견될 것이다. 그들 정도라면 금검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했다.
청운은 적절한 상황에서 한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작전은 무림맹에 맡기지요.”
그제야 제갈신우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네. 그들은 우리가 확실하게 처리하지.”
“제발 그러시길 바랍니다.”
청운의 말투에 가시가 있다는 걸 느끼고 제갈신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저놈이……!’
하지만 청운은 모른 척하고 차만 마셨다.
“차가 지나치게 쓰군요. 맛이 어째 시골구석의 찻집만도 못 한 것 같습니다.”
“…….”
새파란 놈이 어디 감히 어른들 앞에서 차 맛 운운을 해?
제갈신우는 청운의 주둥이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 * *
청운은 삼천에게 따로 명령을 내렸다.
“금의위와 함께 금검장이 자리 잡은 낙하 강변 쪽에 은밀하게 숨어 있게.”
“무림맹의 장로들이 나서지 말라 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훗, 내가 그들의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지 않는가? 나는 천하에 해를 끼치는 자들을 잡으려는 거네. 황제의 명령으로.”
차갑게 미소를 지은 청운이 마저 명을 내렸다.
“적이 강할 시에는 절대 마주하지 말고 뒤만 밟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아직은 금의위의 실력이 부족했다.
휘하에 있는 금의위 중 석덕조와 웅천이 제일 강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초절정 경지에 오르지 못한 상태였다.
당장 믿을 수 있는 건 자신과 삼천뿐인데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림맹에서도 고수들을 파견할 테니 나는 가지 않을 것이야. 그러니 그 노인네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도 아니지.”
만일 자신이 움직였다가는 무림맹에서 난리를 칠 것이 뻔했다.
“나중을 위해서 이번 한번은 양보하겠지만,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게 해줄 거네.”
삼천은 청운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노인네들이 사람 잘못 건드린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