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131화
그날 오후, 무림맹 고수들이 당당하게 출동했다.
출동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청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절정급과 일류급, 그리고 초절정 경지의 고수가 섞여 있군.’
아쉬웠다. 화경의 고수가 무림맹에 없는 것도 아니다. 한두 명쯤 함께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번 출동에는 화경의 고수가 참여하지 않았다.
지금의 전력이면 금검장을 상대하고도 남는다는 장로들의 판단 때문이었다.
청운으로선 뭐라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자신에게 무림맹 무사를 움직일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도 조심하라 이른 덕분에 초절정 고수가 함께 간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흥! 뜨거운 맛을 보면 알겠지.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그런데 돌아서려던 청운은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그 허전함의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도 필요 없었다.
‘가만? 혈황 님은 어디 계시지?’
생각해보니 혈황이 안 보인지 제법 되었다.
최근 들어서 제법 먼 거리까지 벗어날 수 있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멀리 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감을 넓혀 봐도 혈황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딜 가신 거야?’
* * *
무림맹에서 출발한 무인들은 곧장 금검장을 포위하고 조사를 받으라며 압박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싸늘한 코웃음과 반발이었다.
오히려 무림맹이 선량한 상인을 핍박한다며 큰소리쳤다.
무림맹은 증거를 내밀며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결국 싸움이 벌어졌고, 양측은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무림맹은 자신들의 안방이나 마찬가지인 낙양에서 벌어지는 싸움이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금검장 실력은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출동한 무사들이면 금검장 몇 개도 동시에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싸움이 벌어지니 금검장 무사들의 실력이 무림맹 무사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압도하는 부분도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을 거느리고 출동한 매화쌍검(梅花雙劍) 도운형(屠雲亨)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화산오검 중 한 명인 도운형은 쌍검의 달인이다. 그의 쌍검에서 쏟아지는 매화검법은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알려질 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한 괴인을 상대하며 연신 뒤로 밀렸다.
챙! 차자장.
도운형은 쌍검이 어지러이 휘둘러서 상대의 거도를 맞받아쳤다.
거대한 도를 사용하는 사내는 무림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였다.
자신의 덩치와 맞먹는 거대한 도를 휘두르는 사내의 공격은 경쾌하고 힘이 넘쳤다.
‘어디서 이런 놈이!’
후웅!
수평으로 휘두르는 도를 막기 위해서 도운형은 쌍검을 교차에서 맞받았다.
쾅!
차르르륵.
도운형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놈의 도를 피해서 공격해야 하는데 틈이 없다.’
도운형은 전체를 살피며 무사들을 지휘해야 하는 위치였다. 그런데 괴인 때문에 지휘를 포기해야만 했다.
다행히 다른 이가 도운형을 대신해서 무림맹 무사들을 지휘했다.
생각지도 못한 금검장의 반격에 무림맹은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연신 뒤로 밀렸다.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이 눈앞의 괴인을 물리치고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퇴한 후 지원대와 합류한 후 다시 공격하는 것이다.
도운형은 결론을 내리고 소리쳤다.
“모두 뒤로 물러난다! 어서 물러서라!”
계속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무사가 죽거나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양패구상.
현 싸움은 누가 크게 이득을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입구는 하나다. 이곳을 철통같이 지켜라!”
금검장은 뒤쪽과 옆면이 절벽으로 이뤄져 있었다. 무공이 뛰어난 자들은 경공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도 많았다.
더욱이 낙하에 무림맹 무사들이 배를 띄운 채 대기하고 있었기에 상대는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
금검장 담장 밖으로 물러난 무림맹 무사들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미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곧 증원군이 달려올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각, 금검장의 주요 인물들은 비밀통로를 통해서 장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비밀통로는 절벽 아래에 있었다.
모든 무인들이 빠르게 비밀통로로 이동해서 황하를 지키는 무림맹 무사들의 뒤를 기습했다.
싸움 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도운형은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고 빠르게 병력을 나눠서 황하 쪽으로 보냈다.
입구로 금검장 무인이 튀어나올 수 있기에 자신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 고수들이 황하 쪽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황하를 지키던 무인들이 패배한 채 길을 열어준 뒤였다.
무림맹 무사들은 도주하는 금검장 무사들을 추격하려고 했지만, 근처에 배는 한 척도 없었다. 무림맹에서 띄운 배는 이미 금검장 무인들에게 탈취당한 상태였다.
결국 그들은 황하를 건너는 금검장 무사들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금검장 무사들이 반대편 강기슭에 배를 정박하고 내리는데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서 그들을 공격했다.
“놈들을 쳐라!”
선두에 서서 무인들을 지휘하는 이는 삼천이었다.
초절정 경지에 오른 삼천은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의 손에서 쏟아지는 화려한 검술은 금검문 무사들을 추풍낙엽처럼 쓸고 지나갔다.
금의위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이었다.
그들은 금검문 무인들을 상대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하지만 금검문 무사들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림맹과의 싸움으로 상당수 피해를 입은 상황인데도 금의위의 공격에 밀리지 않았다.
그때 삼천과 함께 금의위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던 천호장 홍산길이 외쳤다.
“합격진을 펼쳐라!”
“명!”
금의위들은 빠르게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진법을 펼쳤다.
모두가 청운이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지난번 하오문과 백가장의 싸움에서 백가장 무인들은 합격진을 펼쳤었다. 방어에 특화된 합격진은 실력이 떨어지는 백가장 무인들로 하여금 고수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했다.
청운은 곧장 혈황과 합격진을 만들었고 금의위들에 익히게 했는데, 마침내 그 합격진이 빛을 발했다.
밀리던 금의위가 다시 대등하게 금검장 무인들과 싸움을 하자 급해진 건 금검장이었다.
방어에 특화된 금의위의 진세는 쉽게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강 건너에 있는 무림맹 무사들이 강을 건널 것이다. 그리되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전장이 되어버린 강변에서 군계일학은 역시 삼천이었다. 삼천은 가슴속에 담긴 울분을 토하듯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살수를 펼쳤다.
혈황이 그 모습을 한쪽에서 지켜보았다.
[그놈, 속에 쌓인 것이 청운에 못지않군. 자질도 저만하면 쓸 만하고.]
그때 허공에서 강력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삼천도 느꼈는지 빠르게 뒤쪽으로 물러서며 검을 휘둘렀다.
콰쾅!
“크윽.”
삼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뒤로 주르륵 물러선 그는 자신을 공격한 이를 보았다.
조금 전 도운형과 싸웠던 거도를 든 사내였다.
“누구냐?”
“알 것 없지 않나?”
삼천의 물음에 거도를 든 사내는 짧게 대답했다.
삼천은 사내가 신비세력에서 파견한 보호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금검장을 보호하는 인물이겠지.’
중요 거점에는 그곳을 보호하기 위해 신비세력에서 은밀히 보낸 자들이 있었다. 눈앞의 사내 역시 무림맹과 금의위에서 파악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삼천은 검을 살짝 들어서 가슴으로 올렸다.
파르르.
검이 살짝 흔들렸다. 조금 전 사내의 거도를 막은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삼천은 검병을 움켜쥔 손에 살짝 힘을 빼며 부드럽게 다시 쥐었다.
거짓말처럼 떨림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혈황이 활짝 웃었다.
[호, 그놈 제법인데?]
그러나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직은 삼천이 상대할 수 없는 강자였다.
혈황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삼천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삼천과 거도의 사내가 다시 격돌했다.
검기 도기가 난무하며 서로의 요혈을 파고들었다.
거도의 사내는 그 넓은 도신을 적절하게 사용했다.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 몸을 도신 속으로 숨겨버렸다. 덕분에 삼천은 공격할 곳을 잃고 애먼 도를 두들기기 바빴다.
그나마 일 초 일 초 초수가 늘어나면서 날카롭게 상대를 물고 늘어졌다.
팽팽한 양측의 힘겨루기에 금이 간 것은 새로운 선박이 강기슭에 닿으면서다.
“뭣들 하느냐! 저것들을 어서 치워라!”
뒤늦게 합류한 금검장의 무사들이었다.
기존 무사들과 비교해서 크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숫자가 많아서 금의위가 밀리기 시작했다.
삼천 역시 새로운 많은 무사들이 나타나자 마음이 흔들렸다.
게다가 새로 나타난 자들 중에서 고수로 보이는 자가 공격에 가세했다.
“크윽.”
삼천의 입에서 다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새롭게 나타난 인물과 거도의 사내는 연수합격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한 몸처럼 삼천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삼천은 이를 악물며 둘의 공격을 흘리기 바빴다.
하지만 공방은 오래가지 못했다.
삼천은 휘몰아치는 거도를 막았지만,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삼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콰당!
“으윽!”
옆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바람에 순간적으로 눈앞이 핑 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혈황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겨우 씨앗을 심었는데 그냥 죽게 둘 수는 없지.]
스르륵.
혈황의 몸이 허공에서 연기처럼 흩어졌다.
정신을 차리려고 연신 고개를 흔들던 삼천의 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삼천이 주저앉아 있는 곳으로 신비세력의 두 사내가 여유롭게 접근했다.
거도의 사내가 도를 들어 올리며 한마디 했다.
“제법이다마는….”
그러고는 고개 숙인 삼천의 목을 향해서 거도를 힘차게 휘둘렀다.
후웅!
“…이만 죽어줘야겠다.”
순간 감겼던 삼천의 두 눈에서 붉은 기운이 폭사되었다.
턱!
“헉! 무슨?”
삼천이 오른손을 들어서 떨어져 내리는 도를 맨손으로 잡았다.
거도를 휘두르던 사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삼천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두 눈에 붉은 기운이 어려 있는 그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다른 사내가 삼천의 품으로 파고들며 삼천의 허리를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팅!
삼천의 왼손이 사내의 검을 튕겨냈다.
삼천을 공격했던 사내 역시 거도의 사내처럼 두 눈을 부릅떴다. 믿지 못할 일의 연속이었다.
그 순간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삼천의 손가락에서 뿜어진 한 줄기 붉은 빛줄기를.
대경한 두 사람은 다급히 피하려 했지만 빛의 빠르기는 그들의 상상 이상이었다.
뽁!
둘의 양미간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이, 이…….”
주춤주춤 물러서는 그들을 보며 삼천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검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둥실.
검이 삼천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삼천은 망설임 없이 검을 휘저었다.
서걱, 서걱.
두 사내의 몸에 붉은 실선이 나타났다.
삼천은 두 사내를 지나쳐서 전장이 되어버린 곳으로 몸을 날렸다.
삼천이 떠난 자리에 석상처럼 남아 있던 두 사내의 머리에 균열이 갔다. 미간을 중심으로 머리가 쩍 갈라지더니 미간에 있던 작은 구멍이 갈라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비세력의 고수 둘이 죽고 삼천이 전장을 휘저으면서 전황이 금의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믿을 수 없는 반전이었지만 누구도 정확한 사실을 아는 이는 없었다.
혈황을 제외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