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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마존-129화 (129/257)

# 129

129화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모습에 청운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혈황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쯧쯧, 여자라면 아주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순간 청운의 단전에서 청명한 기운이 뻗어 나와서 온몸을 휘감았다.

“아!”

청운은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내가 무슨 짓을.’

자괴감이 들었다. 고작 여인들의 보습에 홀려서 정신을 잃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청운의 모습을 지켜보던 요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럼 그렇지. 사내 놈이란 늙으나 어리나 다 똑같다니까.’

요희는 광존을 호위하던 자세를 풀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풍만한 둔부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요희가 봤을 때는 청운이 환란천상진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청운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가냘픈 짐승일 뿐이었다.

그런데 요희가 막 한 발 더 나아가려 할 때 청운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사되더니 사방을 휘감았다.

연이어 푸른 뇌전이 사방을 휘감으며 천상환락진을 펼치는 여자들의 몸을 휘감았다.

“꺄아아악!”

“아아악!”

빠지지지직!

거대한 청룡이 청운의 몸에서 튀어나와서 사방을 쓸고 지나갔다.

청운의 정신을 빼앗았던 세 여자가 청룡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그 모습에 너무도 놀란 요희는 두 눈을 부릅뜨며 뒤로 주춤 물러서더니, 몸을 돌려서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지켜보던 칠야 역시 부상이 심한 광존을 어깨에 메고 요희의 뒤를 따라 몸을 날리며 명령을 내렸다.

“놈을 막아라!”

뒤쪽에 묵묵히 서 있던 복면인들이 청운을 공격했다.

청운은 당장 도망치는 셋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자들 때문에 당장 추격할 수가 없었다.

더 어두워지면 추적이 쉽지 않을 텐데.

“젠장.”

입에서 거친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일단 내가 쫓아가 볼 테니 그놈들부터 처리해!]

그는 분풀이를 하듯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자들을 향해서 아낌없이 검을 휘둘렀다.

서너 명이 그의 검세에 휩쓸려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나머지 대여섯 명도 어둠을 철저히 이용하며 청운을 공격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공세는 그들이 지닌 실력보다 몇 배의 위력을 발휘했다.

청운은 그들을 십 초식이 지날 때쯤 모두 쓰러뜨렸지만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칠야를 비롯한 세 사람은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혈황도 거리가 멀어지자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청운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제길…… 겨우 끌어냈는데…….”

그 모습에 혈황이 풀썩 웃으며 한마디 했다.

[괴물인 줄 알았더니 네 녀석도 약점은 있었구나. 하하하.]

혈황은 무엇이 즐거운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무림맹으로 돌아가자, 웅천이 입구로 들어서는 청운에게 달려와서 다급히 말했다.

“어디에 계셨습니까? 지금 무림맹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신시 말에 무림맹 외곽 여기저기에서 갑자기 화염이 치솟았다고 한다.

무림맹에서는 곧장 무사들을 파견하고 타격대를 대기시켰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했다.

웅천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도 어수선합니다. 듣기로는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것 같다고 합니다.”

“나에게 호위로 붙인 자들을 떼어내게 하려고 한 짓이야. 너무 신경 쓸 것 없네.”

“예?”

웅천은 그제야 청운의 모습을 살폈다. 의복의 여기저기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잘려져 있었다.

“대인, 싸움이 있었습니까?”

“놈들이 기습을 했네.”

“괜찮으십니까?”

“그래, 위소에 연락을 해서 용문석굴로 흐르는 강을 따라가면 놈들의 시체가 있을 것이니 수습하라 이르게.”

“예!”

웅천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당장 청운의 명령에 응했다. 곧장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청운을 뒤따라갔다.

무림맹은 청운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다.

맹주의 명으로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감히 무림맹에 와서 분탕질을 쳤다는 말인가? 어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하라.”

정보를 담당하는 월평이 보고를 올렸다.

“놈들은 양동작전을 이용한 성동격서로 진무사를 호위하던 자들을 빼돌린 다음 습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군사, 유인한다고 모두 가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예, 맹주, 연락할 인원 둘이 남았었는데 모두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몸에 난 상처로 봐서는 저항도 못 해보고 당한 것 같습니다.”

정보를 담당하는 자들은 신호탄과 호각을 휴대하고 다닌다. 유사시 신호탄을 터트리거나 호각을 불면 근처에 있는 이들이 달려간다.

그런데 그럴 시간조차 없이 당했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놈들이 저희 신호체계를 역으로 이용해서 무사들을 다른 곳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놈들이 우리의 연락망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단 말이군.”

“예,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양조생은 고개를 돌려서 제갈신기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제갈신기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만, 놈들이 이처럼 대담한 계략을 펼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단 말이오?”

“예, 아마 진무사도 예상한 일이었을 겁니다.”

제갈신기의 말에 양조생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시고 계셨다면 막을 수도 있었단 말인데, 왜 안 막으신 것이오?”

“저희가 직접적으로 나섰다면 그들이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는 게 더욱 어려웠겠지요. 어쨌든 진무사가 별말을 하지 않아서 따로 복안이 있는 줄 알고 지켜보기만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의 마음이 더 조급했나 봅니다.”

“허어, 그러다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진무사도 짐작하고 있는 이상 별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양조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제갈신기를 다그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천뇌께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귀띔이라도 해주셨으면 하오. 이번 일로 인해서 몇몇 아이들이 애꿎은 목숨을 잃었지 않소?”

“그 점은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갈신기는 양조생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무림맹 무사 일곱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정예 중의 정예라 할 수 있는 정보대의 대원들이.

제갈신기는 속으로 이를 갈며 분노를 삭였다.

‘내 이 핏빚은 꼭 받아내고 말겠다.’

놈들은 철저하게 흔적을 지웠다. 그저 청운이 말한 신비세력으로 추측될 뿐.

적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속으로 화를 삼키는 게 전부였다.

‘그의 말대로 알아서 하게끔 놔뒀어야 했어.’

그랬다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빌어먹을! 놈들을 너무 쉽게 봤어.’

* * *

무림맹이 대책회의로 바쁠 때 청운을 습격했던 노룡회의 셋은 비밀 안가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칠(七)이라는 금색 글씨가 이마에 써진 칠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놈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합니다.”

“몇 달 못 본 사이에 저리 강해지다니. 어디서 패관수련이라도 했단 말인가?”

온몸을 하얀 천으로 칭칭 감고 있는 광존이 이를 갈며 말했다.

칠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몇 달 수련했다고 강해질 것 같으면 천하에 고수 아닌 자가 어딨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저리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제 생각으로는 그동안 놈이 실력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광존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상처에서 오는 아픔보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컸다.

청운의 경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들을 때마다 성장하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긴 했지만 자신보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화경의 고수. 못해도 청운과 동수는 이룰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더군다나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놈에게 철저하게 당하고 말았지 않은가 말이다.

“빌어먹을!”

그런 광존의 기분을 알고 요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아직 기회는 있어요.”

“뭐?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네년이 처음부터 협공만 해줬어도 내가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광존의 말대로 요희는 청운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작정하고 나섰다면 자신이 지금 누에고치처럼 천으로 둘둘 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순순히 인정할 요희가 아니었다.

“아응,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너무한 거 아니에용?”

요희는 콧소리와 함께 상체를 비틀며 얼굴을 광존에게 들이밀었다.

빠드득.

그 모습에 광존은 이를 갈았다.

요희의 말대로, 그나마 청운의 일격을 막아준 건 그녀였다.

청운의 공격을 받고 일시적으로 내공을 사용하지 못했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요희가 앞을 막지 않았다면 자신의 몸은 두 동강 났을지도 몰랐다.

분명히 목숨을 구원받은 건 맞지만 광존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네년이 처음부터 나와 힘을 합쳐서 공격했다면 놈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어설프게 계집들의 가랑이로 유혹하려다 이 꼴이 된 거 아니냐?”

“흐응, 글쎄요?”

요희는 콧소리를 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광존은 이를 드러내고 요희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칠야는 둘 사이가 험악해지자 중재에 나섰다.

“두 분 그러지 마시고 잠시 고정하십시오. 우리끼리 싸웠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두 분이나 저나 이제는 한배를 탄 운명입니다.”

“끄응.”

칠야의 말에 광존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도 칠야의 말뜻을 알고 있었다. 이를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이 요희가 말했다.

“하긴, 회에서 큰 소리를 치고 왔으니, 이대로 실패하고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요희는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투로 말했다. 광존의 얼굴이 더욱 구겨진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칠야는 다시 험악해질지도 모르는 분위기를 잡으려고 서둘러 말했다.

“요희 님, 방법이 있으신 것 같은데 말씀해주십시오.”

“흐응, 맨입으로?”

“예? 혹,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글쎄?”

요희는 말을 하며 광존을 힐끔 보았다.

칠야는 요희가 광존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광존에게 말했다.

“광존 님, 무엇인지 모르지만 들어주시지요.”

광존의 얼굴이 붉게 변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칠야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다.

요희는 배시시 웃으며 광존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한바탕 소란이 무림맹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 여파는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무림맹 정보망은 눈에 불을 켜고 수상한 자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무림맹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변함없는 것도 있었다.

청운이었다.

큰일을 겪었으면서도 청운의 행보는 변함이 없었다. 회의가 끝나면 여전히 무림맹을 나섰고, 그의 행적은 고스란히 무림맹에 보고가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진무사에게 호위를 더 붙여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제갈신기가 반대했다.

“진무사의 일은 진무사가 알아서 하게 둬라. 그가 우리에게 요청하기 전까지는 나서지 마라.”

청운의 일이라면 양팔 걷어붙이고 나서던 제갈신기가 등을 돌린 것처럼 보였다.

이를 두고 여러 말들이 나왔지만 제갈신기의 말을 어길 만큼 간이 큰 자는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제갈신기는 무림맹 총군사로, 무림맹 군사 중 절반에 가까운 책사들의 스승이었다.

청운은 홀가분하게 무림맹과 낙양 일대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더구나 간혹 역용술을 사용해서 그를 주시하던 정보망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청운이 역용을 하고 들른 곳은 낙양성 안에 있는 안가였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안가는 제법 규모가 컸다.

오래전 관리를 지냈던 인물이 말년에 고향으로 가며 내놓은 곳인데, 청운이 금의위를 시켜 개별적으로 사들였다.

은밀한 거래여서 주변에서는 주인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있었다.

청운은 정문을 통하지 않고 곧장 월담해서 안으로 들어섰다.

역용한 청운을 몰라보고 경계하던 자들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곧 청운의 전음을 듣고 경계를 풀었다.

안으로 안내된 청운은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중년의 사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삼천, 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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