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59화 (159/524)

황금가 (159)

“마왕패와 적수라고요?”

적풍영과 적운영은 둘 다 놀랐다.

마왕패는 마가의 가주신물이고, 적수는 가주지공이다. 그 두 가지가 어떻게 해서 가짜 마왕을 잡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적풍영은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아수수를 수행했던 자들 중에 마왕이 가짜라는 사실을 아는 자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가 마왕이 가짜라고 밝힐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누님.”

적풍영이 말했다.

가짜를 내세웠다면 수행했던 자들 중 한두 명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아무도 없었다.

즉, 현 마왕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수수와 가짜 마왕 둘뿐이다.

“풍영 네 말이 맞다. 아수수 그 계집은 허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일 처리를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완벽함이 약점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게 어떤 약점이 된다는 말입니까?”

이번에는 적운영이 물었다.

“수행원들이 마왕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건 적천영의 시체를 보지 못했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적천영은 마왕패를 가지고 있었고, 적수를 익혔다.”

“그러니까 누님 말은,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마왕패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적수마신만마공도 전수받지 못했을 거란 말이군요.”

적운영은 그제야 적지영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맞다.”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걸 도전 명분으로 삼기엔 너무 위험합니다. 만의 하나 그에게 마왕패가 있다면 우린 정말로 반역자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신중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적풍영이 말했다.

“상화를 아느냐?”

“아수수의 시비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계집의 머리에는 제혼대법이 펼쳐져 있다.”

“제혼대법은 심령을 제압하여 꼭두각시로 만드는 대법 아닙니까?”

“맞다.”

적풍영의 물음에 적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법을 어디서 구한 겁니까?”

“그건 알 필요 없다.”

“그자가 준 거군요.”

적풍영이 말한 그자는 제갈휴였다.

“그이에 대한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풍영.”

적지영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알았습니다.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 대법으로 그간의 아수수 행적을 조사했는데, 그 계집은 적천영이 남긴 마지막 흔적을 발견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시체라도 찾을 생각으로 북망산으로 갔고.”

“그래서 거기로 간 거였군요.”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풍영이 북망산 사건을 알고 있는 건 아수수를 없애기 위해 출동했던 대원들이 마지막으로 싸웠던 장소가 북망산의 망루라는 장의사 근처였기 때문이다.

북망산 장의사에서 싸움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아수수 일행이 왜 거기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럼 적천영, 아니 가짜를 찾은 건 어떻게 된 겁니까?”

“북망산에서 무덤을 파헤치면서도 적천영을 계속 찾고 있었던 모양이더라. 그러다가 적천영을 찾던 자들 중 한 명이 낙하 강변 대장간에서 가짜를 찾아냈고.”

“아수수와 그놈 둘이 짠 거군요.”

“맞다. 적천영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적수마신만마공을 익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마왕패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내 목을 걸어도 좋다.”

똑똑똑!

바로 그때 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적지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서 불길한 징조가 감지되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냐?”

적지영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군사께서 율각으로 잡혀가셨습니다.”

벌컥!

적지영은 문을 열었다.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부천장 유덕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적지영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공금횡령죄라고 하였습니다.”

“공금횡령?”

“처음 들어와서는 입출금관리 대장을 누가 작성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군사께서 작성자가 자기라고 하자 없어진 돈 이백만 냥에 대해 추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군사께서 제대로 대답을 못 하자 포박해 갔습니다.”

“죽일……!”

적지영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잘못 계산된 일백만 냥에 대해서 소명자료를 제출하라고 하였지만, 이번 외출에서 돌아오지 못할 걸 확신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그 일부터 먼저 시작한 모양이었다.

“누님!”

“누님!”

적풍영과 적운영이 적지영을 부르며 몸을 날렸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적지영을 따라잡았다.

척!

적풍영은 적지영의 팔을 잡았다.

“이거 놔!”

적지영은 거칠게 뿌리쳤다.

하지만 적풍영은 팔소매를 놓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님!”

“어떻게 하자는 거냐?”

적지영은 걸음을 멈추고 적풍영을 돌아보았다.

“놈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 증거를 들이밀면 누님은 어떻게 대답할 겁니까?”

“그건…….”

적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보십시오. 누님은 물론이고 우리는 할 말이 전혀 없습니다.”

“어떻게 하자는 거냐?”

“실수라고 잡아떼야 합니다.”

“그런 다음엔?”

“갚아야지요.”

“백만 냥이 어디 있다고 돈을 갚아!”

“전장에서 빌려서라도 갚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승천비무에서 도전을 하기도 전에 우린 무공을 잃고 쫓겨나고 말 겁니다.”

“혹시…….”

적지영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왜 그러십니까?”

적풍영이 물었다.

“놈이 혹시 풍영 네가 도전할 거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 전에 우리를 쫓아내려고 급하게 서두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누님.”

“죽일 놈!”

적지영의 눈에서 새파란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전에 금액이 백만 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적운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맞다. 그런데 왜 그러느냐?”

“조금 전 부천장이 이백만 냥이라고 그런 것 같아서요.”

“정말이냐?”

적지영은 뒤따라온 부천장 유덕인을 보며 물었다.

“분명 이백만 냥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장.”

유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일 놈! 가자.”

적지영은 다시 몸을 날렸다.

“누님!”

적풍영은 적지영을 부르며 쫓아 달렸다.

“흥분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지금은 휴를 구하는 게 먼저야.”

적지영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녀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율장이 있는 율각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율장 감옥으로 쳐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엔 제갈휴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율장의 채윤을 다그쳤다.

하지만 채윤도 아는 게 없었다. 결국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마왕이었다.

이번에는 서천전으로 내달렸다. 서천장의 군사를 가둘 사람은 마왕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들이닥친 그 시각, 금장생은 그의 집무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콰앙!

문이 거칠게 열리고 세 사람이 뛰어들어 왔다.

척! 척척척!

세 사람이 서슬 퍼런 얼굴로 뛰어들자 마가대 대원들이 무기 손잡이에 손을 얹고 금장생을 호위했다.

“비켜라!”

적지영은 버럭 소리쳤다.

“그들은 내 부하들입니다, 서천장. 내 말 아니면 듣지 않습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금장생에게서 흘러나왔다.

“네놈을…….”

“우린 마왕을 뵈러 왔소이다.”

적운영이 적지영의 말을 잘랐다.

“아! 그러셨군요. 대원들은 물러나도록 하시오.”

“존!”

마가대 대원들은 허리를 숙이며 소리치고는 물러났다.

“긴한 이야기를 할 거니까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됩니다.”

금장생은 다시 말했다.

“물러가겠습니다, 마왕.”

이어 마가대 대원들은 자기네들 처소로 돌아갔다.

“앉으세요.”

금장생은 의자를 가리켰다.

그 앞에는 의자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탁자는 놓여 있지 않았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의자는 너무 붙어 있어 세 사람은 어깨가 닿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금장생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서천장의 군사인 제갈휴 대협을 체포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 그것 때문이었군요. 물어볼 게 있어서 그를 데려왔습니다.”

“알고 싶은 게 뭐죠?”

“입출금관리 대장상의 금액이 사백오십만 냥이 차이가 나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려고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

“사, 사백오십만 냥이라고요?”

세 사람의 눈이 커졌다.

“왜 그러십니까?”

금장생은 적지영을 보며 물었다.

“전에 말할 땐 백만 냥이라고 했소.”

“아! 그래서 그렇게 놀란 거였군요. 그땐 제가 계산을 잘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검토해 보니 절반만 계산했더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이백만 냥이잖소!”

“서천장 건 이백만 냥 맞습니다. 백오십만 냥은 중천장 거고, 백만 냥은 남천장 겁니다.”

“우리도 두 배나 많아졌단 거요?”

적풍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비슷한 부분에서 잘못 계산됐더라고요. 그래서 작성한 자를 찾아보았더니 전부 서천장의 군사 제갈휴 대협이 관여했더라고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를 데려온 겁니다.”

“지금 어디 있소?”

적지영이 버럭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서천장.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제갈휴는 내 부하요, 마왕. 내 부하를 마왕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서천장.”

“그건 있을 수…….”

“조금 전에 잘못 계산됐다고 하던데 그건 무슨 뜻이오?”

적풍영이 적지영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말 그대롭니다. 현재까지 조사해서 나온 건 계산이 잘못돼 사백오십만 냥이 사라졌다는 정돕니다. 횡령 여부나 공범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합니다.”

“만일 횡령으로 드러나면 어떻게 할 거요?”

적풍영이 물었다.

“율법대로 처리해야지요. 하지만…….”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뭐요?”

적풍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은 나도 고민이 많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승천비무를 시작하려면 이 사건을 내일까지 마무리 지어야 하거든요. 잘못 계산된 거라면 돈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지만 횡령이라면…….”

“돈만 채워 넣으면 없었던 일로 해 주겠다는 거요?”

적풍영은 물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승천비무를 즐거운 마음으로 치르고 싶습니다. 굳이 사건을 부풀려서 속 좁은 가주로 남고 싶지도 않고요.”

“알겠습니다. 저희가 돈을 채워 놓도록 하겠습니다.”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풍영아!

적지영은 적풍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만일 제갈휴가 모든 걸 밝혀 버리면 누님과 우리 둘은 횡령을 한 게 됩니다.

―그래서 저놈에게 돈을 주자는 거냐, 그것도 사백오십만 냥이나?

―네.

―우리에게 그런 거금이 어디 있다고 그러느냐?

―우리 셋의 이름이면 오백만 냥까지는 빌릴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빌리자는 거냐?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만 쓰겠다고 하면 됩니다. 그럼 우린 보름이나 한 달 이자와 함께 돈을 돌려주면 됩니다.

―승천비무에서 놈을 없애고 마왕이 되면 된다는 말이구나.

―이제야 제 말을 이해하셨군요.

―그래도 두 배로 물어 주는 건…….

―이자로 따지면 몇백 냥뿐입니다, 누님.

―알았다. 그렇게 하자.

적지영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돈을 채워 넣을 시간은 내일 정오까집니다. 그때까지 사백오십만 냥이 제 앞에 있어야 합니다. 그게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저는 고문 도구를 들고 제갈휴를 찾아갈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금장생은 세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알았소.”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 구하려면 바쁠 텐데 어서 가 보십시오.”

금장생은 문을 가리켰다.

“오늘 환대 잊지 않겠습니다, 마왕.”

자리에서 일어나는 적풍영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네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적지영은 금장생을 노려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너무 편한 자리라서 쉽게 내려놓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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