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58화 (158/524)

황금가 (158)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사채

바타르는 무혼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과도한 마나를 쏟아 낸 검사가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마나 폭주다.

마나 폭주가 일어나면 자신도 제어하지 못한다. 곧 분노의 정령에게 정신을 내주고 버서커가 되고 만다. 그리고 모든 걸 쏟아 낸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마나 폭주라면 저렇게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바타르는 아스 곁으로 다가갔다.

“그가 왜 아무것도 아닌 날 없애지 않고 아스의 영혼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지 궁금하다고 했지?”

무혼은 바타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그 질문을 했을 때 너는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곧 나이기 때문이다.”

“…….”

바타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지식 창고를 뒤져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뜻이냐?”

그는 지식 창고를 찾는 걸 포기하고 물었다.

“그와 나는 도플갱어란 말이다.”

“그, 그러니까 크로노마스와 네가 영혼을 절반씩 가지고 태어난 존재라는 거냐?”

“맞다. 중원인이었던 내 영혼이 샤이칸드리아 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와 내가 도플갱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이 동시대에 나타날 수 있었던 거였군.”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바에 따르면 무혼은 삼천 년의 시공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그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륙의 주인이 되려는 순간 등장한 자가 크로노마스다.

크로노마스는 과거보다 더 강해진 상태였다. 라그나뢰크마저 초월한 드래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부활에 대해서는 어떤 드래곤도 설명하지 못했다.

크로노마스를 깨어나게 한 자는 바로 무혼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플갱어는 한 사람이 소멸하면 상대도 소멸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차원을 넘었다는 건 즉 그 세상에서 소멸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그런데도 크로노마스는 여전히 멀쩡했다.

“도플갱어라면 내가 차원을 넘었으니까 소멸돼야 한다는 거냐?”

“맞다.”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존재의 파편이 있다면 설명이 될까?”

“지금 존재의 파편이라고 했느냐?”

바타르는 깜짝 놀랐다.

천령광신주, 마령애루주, 광령인혼주, 생령회혼주 네 개를 가리켜 존재의 파편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물건으로, 영혼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응.”

“그건 마계 깊숙한 곳에 있다고 했는데?”

“원래는 그랬다. 하지만 팔천 년 전에 대륙으로 넘어왔다.”

“누가…… 혹시 크로노마스?”

“맞다. 그가 가지고 넘어왔다. 하지만 크로노마스 자신도 그 구슬 네 개가 존재의 파편인지는 몰랐다. 그걸 알아낸 이들이 바로 르산나다.”

“르산나라면? 혹시 그분을 말하는 거냐?”

르산나는 그랜드 크로스 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드래곤 중 한 존체였다. 그랜드 크로스가 끝나고 그녀는 드래곤 사회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랬던 르산나를 무혼이 언급한 것이다.

“그녀가 날 살려 냈다.”

물론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는 마족 루다가 있었다.

루다는 죽기 전까지 르산나를 도왔다.

“그랬구나.”

바타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 존재의 파편을 크로노마스가 가지고 있다는 거냐?”

“맞다.”

“그렇다면 존재의 파편이 도플갱어의 저주마저도 극복하게 해 주나 보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혼이 차원을 넘는 걸 허락할 리가 없었을 테니까.

“맞아. 그리고 아스의 영혼과 몸도 놈에게 있고.”

무혼은 목소리에 스산한 기운이 어렸다. 그 기운은 곧 아스의 몸을 통해 외부로 표출되었다.

“……!”

바타르는 아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금장생이 서천왕부로 돌아온 건 승천비무를 사흘 앞둔 십일월 이십칠일이었다.

오는 도중에 중원전장에 들러 이백만 냥을 맡기며 사람보다는 인장을 보고 돈을 내주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대륙황가에 들러 아수수를 데리고 서천왕부로 향했다.

서천왕부 정문 앞에서는 이십여 명이 금장생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미염이 먼저 돌아가 마왕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여행 중에 자객들의 공격을 받아 아수수가 죽을 뻔했다는 것도 말했다.

그 소식은 곧바로 왕부 전체로 전해졌고, 수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정문으로 내달렸다.

그들 중에는 적지영, 적풍영, 적운영 형제도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금장생과 아수수가 다가오자 수뇌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다시 보니까 좋습니다, 여러분.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습니다.”

금장생은 수뇌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공격을 받았다고 하던데 괜찮습니까?”

동천장 항우각이 금장생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산적 천장이 보기엔 어떻습니까?”

“그리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항우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경을 헤맸다는 아수수는 멀쩡해 보이는데 마왕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호흡도 깊지 않다. 다리도 조금씩 후들거린다. 그건 몸이 몹시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나는 아주 좋습니다. 최고의 몸 상탭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금장생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객이었다고 하던데…….”

항우각은 말끝을 흐렸다.

“맞습니다. 누군가가 날 죽이려고 청부를 한 모양입니다.”

금장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적지영 일행에게로 향했다.

우연이었을까? 마침 적지영도 금장생을 바라보고 있었던 탓에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적지영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

“자객들을 몇 명 생포해 오지 그러셨습니까? 그랬더라면 청부자를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요.”

“정체를 밝혀내면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다 없애 버렸습니다.”

“복잡해져요?”

적지영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마치 청부자를 알고 하는 말 같아서였다.

“자객을 잡아 오면 고문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어떤 단체에 속한 자들인지 밝혀질 테고 그럼 공격을 해야 하겠지요? 감히 마가의 마왕을 암살하려고 한 자들인데 공격하는 시늉만 할 수도 없고, 시작하면 멸문을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멸문을 시켜야지요.”

“아마 승천비무만 없었다면 나도 공격을 지시했을 겁니다.”

“그럼 승천비무 때문에?”

“승천비무는 십 년 만에 열리는 우리 마가의 축제 아닙니까. 다른 세력과의 전쟁으로 축제를 망칠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사건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 참았다는 겁니까?”

적지영이 안도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 그건 핑곕니다.”

“핑계요?”

적지영은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네. 내가 적을 생포하지 않고 다 죽여 버린 건 수수와의 여행을 망치기 싫어섭니다. 모처럼만에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나갔는데 바로 돌아올 수는 없잖습니까.”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적지영은 어이가 없었다.

자객이 죽어 가면서 청부자가 마가의 가솔 중 한 명이라고 했다고 하면, 모든 의심의 눈초리가 향할 곳은 한 곳뿐이다. 마왕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대륙황가에 다녀온 것이다.

어떤 꿍꿍이속이 있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증거는 챙겨 왔습니다.”

“어떤 증거를 가져왔다는 거죠?”

“이겁니다.”

금장생은 등에 차고 있는 왜도 두 자루를 풀어 보여 주었다. 사토가 비밀 창고에 숨겨 두었던 마사무네 두 자루였다.

“그건……?”

적지영의 눈이 커졌다.

“왜돕니다.”

“마왕을 공격한 자들이 혈가였단 말입니까?”

적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는 왜도라고 했지 혈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서천장은 왜 혈가라고 단정하는 겁니까? 혹시 자객들이 날 죽이려고 한 사건에 대해 아는 거라도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적지영은 말을 더듬었다.

“그렇군요. 아무튼 무사히 여행을 마쳤으니까 됐지 않습니까? 승천비무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그만 들어갑시다.”

금장생은 적지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마차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마왕!”

거석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금장생은 빙긋 웃고는 대문 앞에 세워진 마차에 올랐다.

“저녁은…….”

총관 나박이 마차 옆으로 가며 물었다.

오랜만에 돌아왔으니까 수뇌들과 저녁이라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승천비무를 시작하면 어차피 함께 먹어야 할 거 아닙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마왕.”

나박은 고개를 숙였다.

“대주, 갑시다.”

금장생은 거석을 보며 말했다.

“이럇!”

거석은 고삐를 휘둘렀다. 그러자 마차가 출발했다.

적지영은 멀어지는 마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님!

적풍영이 적지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들어온 소식이라도 있느냐?

―사인루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정말이냐?”

적지영은 너무 놀란 나머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소리를 질렀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운영의 처소에서 보자.

파앗!

적지영은 바닥을 차고 몸을 날렸다.

한 식경 후 적운영의 집무실로 세 형제가 모였다.

“자세히 말해 봐라.”

적지영은 적풍영을 보고 다그치듯 말했다.

“저도 이곳으로 나오기 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사인루가 멸문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적풍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조직에서 사인루를 공격했다는 거냐?”

“놈입니다.”

“놈?”

“마왕 말입니다.”

“그놈이 공격했다는 증거가 있느냐?”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백팔무영비가 은밀하게 마가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돌아온 마왕은 내상을 입은 상태고요.”

“그러니까 네 말은, 백팔무영비가 나간 게 사인루를 공격하기 위해서란 말이구나. 놈이 부상을 당한 곳 또한 산이 아니라 사인루 본산이고.”

“그렇습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냐?”

“우리가 청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인루에서 청부자에 대해 기록해 놓았을 거란 말이냐?”

“청부업체에서 청부자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건 가장 기본적인 업뭅니다. 물론 청부자에 대한 기록은 비밀문서로만 작성되고요.”

“그래서 놈이 공격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 날 쳐다본 거였구나.”

적지영은 대문 앞에서 마주쳤던 금장생의 눈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대로 두면 우리가 아수수 그 계집에게 당하고 말 겁니다.”

적운영이 말했다.

“운영이 말이 맞다. 놈을 없애지 못하면 우리가 당한다. 그리고 이젠 직접 없애는 수밖에 없다.”

적지영이 맞장구를 쳤다. 그녀는 적풍영을 보았다.

“문제는 어떻게 놈을 없애느냐 하는 겁니다. 가장 좋은 건 승천비무 때 도전을 하는 건데,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시기가 좋지 않다는 건 무슨 소리냐?”

“놈은 부상을 입은 상탭니다. 그 상황에서 도전하면 설사 승리한다고 해도 가솔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힘듭니다. 오히려 마왕 자리가 탐이 나서 부상을 입은 동생을 공격했다고 비난 할 겁니다.”

적풍영이 말했다.

“그래서 놈을 이대로 두자는 거냐?”

“아니죠. 없애야죠. 없애지 않으면 우리가 당할 판인데. 제 말은, 승천비무를 시작하고 나서 바로 없애는 건 좋지 않다는 겁니다.”

“하면 너는 언제가 좋겠느냐?”

“제가 생각하는 건 마지막 날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리면 놈은 내상을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제가 놈에게 패할 거라고 보십니까?”

적풍영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가짜 마왕에게 패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네가 패한다는 게 아니라, 우린 아직 놈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놈을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니 비무는 내게 맡기십시오.”

“내가 시작하자마자 도전을 하면 비난을 받게 될 거란 사실을 무시하면서까지 도전을 하려는 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증거요?”

적풍영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

“그게 뭡니까?”

“그건 바로…….”

적지영은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마왕패와 적수다.”

적지영은 속삭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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