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가-149화 (149/524)

황금가 (149)

절대삼마

“내게는 조카가 한 명 있다.”

“조카요?”

“전대 쇼군이었던 형님의 딸이다. 이름은 유키雪다.”

“그분은 어디 있습니까?”

“그자의 수양딸이 돼 있다.”

“사부님은 자식이 없습니까?”

“있었다.”

“있었다는 말은…….”

“사고로 죽었다.”

“그럼 유키 그분은?”

“우리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돌봐 주었으면 하는구나.”

“그자의 수양딸이라면 저보다는 훨씬 형편이 나은 상황입니다.”

“네가 이곳에서 새우를 잡을 거라고 꿈에라도 생각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나도 내가 이곳에서 새우를 잡게 될 줄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사람이 어떻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큭큭큭!”

그때 금장생은 웃고 말았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딱 맞다.

어릴 때는 동영이란 나라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랬던 자신이 동영으로 가서 멍텅구리 배를 타고 새우를 잡았다.

사부님 말처럼 나중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뭐라고 부르면 됩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아이愛라고 부르면 됩니다.”

“갈 곳은 있습니까?”

돌봐 주는 건 그녀가 갈 곳이 없다고 하면 그때 생각해 볼 참이었다.

“원래 살던 곳이 있기는 한데 쫓겨난 상태라…….”

“없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류는 어떻습니까?”

금장생은 류를 보았다.

“저희는 배신자가 됐습니다.”

“혈가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혈가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사인루가 혈가에서 운영하는 단체라고 하던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루주를 비롯한 수뇌들은 혈가에서 왔지만 대부분은 혈가를 거치지 않고 여기로 바로 왔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살길을 마련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여기서 나갑시다.”

금장생은 몸을 돌렸다.

감옥 밖에는 류와 같은 길을 걷는 자들 사백 명이 서 있었다.

비록 사토를 따르지 않아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그들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 가주님!”

자객들 속에서 놀람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가 오다아이를 알아본 것이었다.

“가주?”

금장생은 의아한 얼굴로 아이를 보았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혈가의 가주였어요.”

“그, 그러니까 당신이 혈왕?”

금장생은 깜짝 놀랐다.

설마 혈왕이 이곳에 잡혀 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

오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거 문제네요.”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사람 같으면 마가로 데리고 가서 써먹을 수 있겠지만 혈가 혈왕이라면 달라진다. 혈왕이 이곳에 구금돼 있었다는 건 혈가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성공했다는 걸 뜻한다.

쉽게 말하면 오다아이는 전 혈왕이 됐다는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마가로 데리고 가면 독이 될 뿐이다.

“복위될 가능성은 아주 없는 겁니까?”

“반란을 일으킨 자는 사토에게 날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그런데 사토 그자는 나중에 써먹을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려 둔 거군요.”

“맞아요.”

“그럼 돌아가는 건 그른 것 같고, 그렇다고 마가로 들일 수도 없는 일이고…… 아무튼 생각을 좀 해봅시다. 일단 루주 처소로 자리를 옮기지요.”

금장생은 류를 보았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류는 앞장서 걸었다.

“남은 자들 중에 가장 연장자가 누굽니까?”

“접니다.”

“지휘가 가능한가요?”

“네.”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일행은 루주 처소 앞에 당도했다.

“좀 쉬라고 하세요.”

금장생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 층과 이 층을 지난 그는 곧바로 삼 층 침실로 들어갔다.

“안 피곤하세요?”

삼 층까지 따라 올라온 오다아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게 궁금해서요.”

오다아이는 금장생의 왼손을 가리켰다.

금장생은 자신의 왼손 손가락을 보았다.

“오래전이지만 제 아버지가 끼고 계시던 거였거든요.”

“이건 급할 때 쓰려고 가지고 다니는 건데.”

금장생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급할 때라는 건 무슨 말이죠?”

“지금 오다아이 당신 같은 상황을 말합니다.”

“저 같은 상황이라면…….”

“집도 절도 없을 때 말입니다.”

“그러니까…….”

“천 냥의 가치가 있다는 건 확인했습니다.”

“동영 쇼군의 신물을 팔아먹을 생각을 했다는 건가요?”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고 해도 제 목숨보다는 못하니까요.”

“주웠나요?”

“일단 전리품부터 찾아야겠습니다.”

금장생은 대답도 않고 침대 주위를 살폈다.

“보통 비밀 창고는 침대에 앉아서…… 사토 그자가 오른손잡입니까, 왼손잡입니까.”

금장생은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앉은 채 물었다.

“오른손잡이였어요.”

“오른손잡이라…….”

금장생은 오른손을 자연스럽게 내렸다. 그리고 침대 측면을 더듬었다.

철컥!

그의 뒤편에서 자물쇠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르릉!

벽장이 좌우로 열렸다.

금장생은 몸을 돌려 벽장 안 물건을 꺼냈다.

안에서는 커다란 포대기 하나와 왜도 두 자루, 서류 뭉치 그리고 책들이 나왔다.

금장생은 먼저 책을 보았다. 모두가 비급이었다.

그중 몇 권을 차례로 펼쳐 보았다.

“대단하네.”

금장생은 혀를 내둘렀다.

무공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런 비급이 총 열 권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권에는 청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두 권은 끝까지 다 채워져 있고, 한 권은 절반가량 글로 채워져 있었다.

금장생은 글이 쓰인 마지막 장을 펼쳤다.

대상: 마가 가주

…….

자신에 대한 청부였다.

“쿡!”

피식 웃고는 책을 내려놓고 서류 뭉치를 들었다.

상부, 즉 혈가로부터 받은 명령서였다.

금장생은 서류 뭉치를 한편으로 치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루를 열었다.

사실 그가 가장 궁금했던 건 자루였다.

금장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자루 안에는 전표가 가득 들어 있었다.

전표는 천 냥과 백 냥짜리가 뒤섞여 있었다.

“자리 좀 비켜 주실래요?”

“자리요?”

오다아이는 의아한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제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거든요.”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오다아이는 여전히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지금 상황을 보고도 이해를 못 하면 설명해 줘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아, 알았어요.”

오다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금장생은 자루를 침대 위에 쏟았다. 그리고 수북하게 쌓인 전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먼저 전표를 크기별로 정리했다. 천 냥짜리와 백 냥짜리는 크기가 달랐다.

분류를 마친 후 전표를 추려 개수를 셌다.

백 장을 헤아려 한편에 놓았다. 그리고 다시 수를 셌다.

백 장짜리 묶음은 총 백 개였다.

“백 냥이 백 장이면 만 냥, 만 냥이 다시 백 개면 백만 냥이네.”

금장생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백 냥을 헤아리는 게 다 끝나자 이번에는 천 냥짜리 전표를 셌다.

천 냥짜리는 열 장을 한 묶음으로 묶어 놓았다. 그것도 백 묶음이다.

그러고도 잔돈이 남았다. 이십만 냥이나.

“아무래도 사토 그 친구 무덤이라도 만들어 줘야겠네.”

금장생은 히죽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풋!”

그때 허공에서 나직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어 사미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전에 아이 소저에게 하는 말 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사라져 주십시오.”

“혼자 정리하려면 힘들 것 같은데 도와주지 않아도…… 아, 알았어요. 얼른 꺼져 줄게요.”

사미염은 얼른 방에서 나갔다.

금장생의 몸에서 순간이었지만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금장생은 자신이 살기를 내뿜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나저나 그들에게 얼마를 줘야 하나.”

그는 돈 이백이십만 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말한 그들이란 오다아이와 류 일행이었다.

“일단 돈부터 챙겨 놓고.”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거면 되겠네.”

그는 한편에 늘어뜨려진 주발 앞으로 갔다. 그리고 주발을 만들 때 사용한 줄을 전부 뽑아냈다.

그걸 가지고 와서 전표 다발을 한 묶음씩 묵었다.

그가 끈으로 묶지 않은 건 침대 위에 남아 있는 이십만 냥이었다.

“그나저나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금장생의 가장 큰 고민은 오다아이와 사백 명의 자객들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였다.

“일단 이놈부터 좀 보고.”

그는 아직 확인하지 않은 왜도를 집어 들었다.

두 자루는 동영 무사들이 함께 소지하는 장도와 소도였다. 금장생은 먼저 장도를 뽑았다.

스르릉!

장도가 뽑히면서 도면에 금장생의 얼굴이 비쳤다.

“허!”

금장생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 도를 보자 사토가 류의 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몰라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설사 알았다고 해도 무시했을 게 분명했다. 지금 뽑은 이 도는 그만큼 대단했다.

절반쯤 뽑힌 도를 내려놓고 소도를 뽑았다. 소도는 장도보다 더 뛰어났다.

지금까지 많은 왜도를 보았지만 눈앞에 있는 두 자루가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소도는 신도라 불러도 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왜도 어디에도 장인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류에게 물어보면 알겠지.”

금장생은 도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창가로 갔다.

건물 마당에는 동영 자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류 상!”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류 상은 안에 있습니다.”

자객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이 층에서 내가 좀 보자 한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자객은 안으로 들어갔다.

금장생은 청부 내용을 기록한 장부와 사토가 상부로부터 받은 서류 뭉치 그리고 줄로 묶은 돈 이백만 냥을 자루 안에 한데 모아 비밀 창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돌아갈 때 찾아갈 참이었다.

그리고 비급과 왜도, 돈 이십만 냥을 챙겨 이 층으로 내려갔다.

이 층에는 류가 먼저 올라와 있었다.

“동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없어요?”

“동영에 일거리가 없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일거리만 있다면 이곳에 남고 싶어 합니다.”

“지금까지 한 달에 얼마나 받았습니까?”

“석 냥씩 받았습니다.”

“적게 받았군요.”

“사실 돈을 받아도 쓸 곳도 없습니다.”

“외출을 나간 적은…… 공연한 걸 물었네요.”

이곳까지 오면서 느낀 거지만 만불산에서 술집이 있는 도시까지 나가려면 신법을 펼쳐서 꼬박 하루는 가야 한다. 술을 마시겠다고 나가기엔 너무 멀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한꺼번에 사 오곤 합니다.”

“그랬군요. 만일 말입니다…….”

금장생은 말끝을 흐렸다.

“말씀하십시오.”

“검을 놓고 일을 해야 한다면 하겠습니까?”

“자객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검을 놓는다고 해서 무공을 익히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이렇게 익힐 무공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금장생은 사토의 비밀 창고에서 나온 비급 열 권을 류 앞으로 밀었다.

“하는 일은 어떤 겁니까?”

비급을 가만히 바라보던 류가 물었다.

“대장간 업종, 주류 업종, 장례 업종 세 가집니다.”

“그런 일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류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장간 일은 그가 가장 잘하는 분야였다.

아울러 자객들 중에는 양조장을 하다가 망해서 자객이 된 자도 있고, 집안 대대로 장례업을 한 사람도 있었다.

“다행이군요. 그들을 부르기 전에 이것부터 좀 봐 주세요.”

금장생은 왜도를 류 앞으로 밀었다.

“이건…….”

류는 먼저 소도를 들었다. 장인답게 소도가 더 뛰어나다는 걸 대번에 알아보았다.

“맙소사!”

류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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