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48)
“놈은 혼자가 아니다!”
“대원들은 폭풍차륜진을 펼쳐라!”
사토는 고함을 내질렀다.
휙! 휙휙! 휙휙휙!
사인루 자객들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어떤 자는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내기도 했다.
상대방의 시야를 현혹시킬 정도로 빠르게 내달리는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금장생이었다.
“자객들에게 합격술을 펼치라고 하는 자는 지휘관 자격이 없는 자라고 할 수 있지.”
“왜요?”
금장생 옆에 있던 사미염이 물었다.
“자객은 기본적으로 혼자 활동하는 존잽니다. 합격술 같은 걸 배우지도 않고, 설사 배운다고 해도 자객들은 집중하지 않습니다. 평생 써먹을 일이 없는 기술을 배우는 데 집중하는 자들은 없으니까요.”
“그럼 방금 저자가 합격술을 펼치라고 명령한 건 실수한 거네요?”
금장생의 말은 백팔무영비를 지휘하고 있는 사미염에게는 금과옥조였다.
“맞습니다. 죽든 살든 개인전으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척!
금장생은 자세를 잔뜩 웅크렸다. 그의 도는 도집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서른 명!”
파앗!
잔뜩 웅크렸던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되었다.
순식간에 십 장 앞에 도착한 그는 앞으로 내민 오른발로 바닥을 찍으며 도를 뽑았다.
슈캉!
도집에서 뽑히는 순간 도강이 튀어나왔다.
길이가 일 장 이상 길어진 도는 사방에 푸른색 궤적을 남겼다.
“컥!”
“큭!”
“억!”
나직한 비명들이 금장생 주위에서 흘러나왔다.
파앗!
금장생의 신형이 다시 오 장 정도를 쏘아졌다, 그리고 전후좌우로 움직이며 두 자루의 왜도를 휘둘렀다.
그가 펼치는 보법은 군림천하보고, 보법에 맞춰 휘두르는 무공은 철장과 소도 그리고 삼백육십혈부였다.
그가 휘두르는 도는 무자비했다. 상대의 도와 몸통을 동시에 잘랐다.
철컥!
금장생은 소도를 원래 자리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손 장도에 이어 왼손을 내뻗었다.
그가 내뻗는 왼손은 오른손 장도보다 군림천하보와 어울렸다.
퍽! 퍽퍽퍽! 퍽퍽! 퍽퍽퍽!
금장생의 신형은 마치 환영처럼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때마다 푸른 뇌전과 함께 둔탁한 소성이 터져 나왔다.
푸스스! 푸스스! 푸스스!
뇌전을 맞은 자는 잘리고, 왼손에서 쏘아져 나간 권에 맞은 자는 가루로 변했다. 그가 펼친 건 마왕의 무공인 마수魔手였다.
“마수?”
사미염은 나직하게 소리쳤다.
금장생이 펼치는 마수는 적천영이 펼치는 것보다 더 완벽하고 더 강했다.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익힌 사람보다 더 완벽하게 펼칠 수 있는 거지?’
적천영의 무공이 강하긴 했지만 성인을 한 방에 가루로 만들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금장생이 펼친 마수는 완벽하게 가루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금장생의 무공은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 이유가 금장생이 익힌 양극신공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그녀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사이 금장생 주위로 더 많은 시체들이 쌓여 갔다.
그 시체는 모두 왜도에 당한 자들이었다. 마수에 당한 자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저럴 수가…….”
금장생의 가공할 무공에 가장 놀란 자는 사인루 루주 사토였다.
그는 믿기지 않는 얼굴로 금장생을 보았다.
물론 어느 정도 희생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왕의 무공은 상상 이상이었다.
“커억!”
“크윽!”
“으윽!”
여기저기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비명을 내지르지 않도록 훈련받은 자객이 비명을 내지른다는 건 이미 자아를 상실했다는 뜻이 된다. 자객들이 자아를 상실하는 건 극한의 공포를 느꼈을 때뿐이다.
“어떻게…….”
사토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자는 야마시타였다.
“다이묘! 이러다가 전부 당합니다.”
야마시타는 사토를 보며 소리쳤다.
야마시타의 외침에 사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요시다, 이토, 스즈키, 야마시타! 너희가 선두로 나가라!”
“하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날렸다.
탁! 탁탁탁! 탁탁탁!
네 사람은 동영 무인만의 특이한 신법을 펼치며 금장생을 향해 내달렸다.
“타하하!”
“하아아아!”
네 사람은 기합을 내질렀다. 검은 오른편 어깨 위에 세운 상태였다.
“하아!”
“타하하!”
“차아아!”
네 사람이 금장생을 향해 내달리자 다른 자객들이 네 사람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기다란 줄 네 개가 생겨났다.
철컥!
금장생은 다시 왜도를 도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크아아아아!”
그의 입에서 포효가 터졌다.
그는 자객들을 향해 마주 달렸다. 그가 달려가는 모습 또한 자객들과 비슷했다.
양측 간의 거리는 급격하게 좁혀졌다.
“차하!”
“타하!”
“하아!”
자객들은 일제히 검을 내리그었다.
슈캉!
바로 그때 금장생의 허리춤에서 뇌전 기운이 폭발했다.
화려한 광채를 허공에 남긴 왜도는 다시 본래 자리인 도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소도가 뽑히며 조금 전보다 작은 뇌전을 부려 놓았다.
철컥!
소임을 다한 듯 소도는 다시 본래 자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장도가 뽑혔다.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한 자들은 선두에서 내달리던 요시다 일행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르던 자들이 우수수 죽어 나갔다.
후드득! 투두둑!
먼저 잘려 나간 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와 팔과 몸통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도가 번갈아 뽑혔고, 자객들은 죽임을 당했다.
“바, 발도뇌섬류!”
사토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것은 전설의 무공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일반 무공을 익히는 것보다 더 쉽다. 도집에서 도를 뽑아 휘두르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 쉬운 걸 이룬 사람은 지난 천 년 동안 세 명뿐이다.
발도뇌섬류라고 하였지만 뇌섬류에 국한된 기술은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광도류를 펼치면 발도광도류가 되고 태양이도류를 펼치면 발도태양류가 된다.
이론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기술이 그토록 어려운 건, 도를 뽑을 때 온몸으로 몰아치는 압력을 견뎌 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모든 무사가 한 번은 어떻게 견뎌 내고, 많이 견디는 자가 세 번이라고 하였다.
도를 뽑을 때마다 몸 내부에 가중되는 압력은 배로 증폭되고 다섯 번만 뽑아도 처음 압력의 서른두 배가 된다. 그리고 열 번을 뽑으면 천스물네 배에 달하는 압력을 견뎌야 한다.
따라서 발도뇌섬류는 펼치는 회수에 따라 위력도 점점 더 강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건 몸이 견뎌 냈을 때 이야기다.
온몸이 무쇠로 돼 있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게 상식이었다.
그런데 마왕이 그 상식을 뒤엎고 쉬지 않고 발도뇌섬류를 펼치고 있다.
마왕이 동영의 삼대무공이자 마지막 쇼군인 요시아키와 함께 실전된 뇌섬류를 펼친다는 사실보다 발도뇌섬류를 익힌 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더 놀라왔다.
“아악!”
“으악!”
“크악!”
비명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는 걸 보면 사인루 자객들은 더 이상 자객이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금장생이 펼치는 발도뇌섬류가 그만큼 두려웠던 탓이다.
공포에 휩싸인 건 자객들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사토 또한 겁을 집어먹어 창백하게 질렸다.
발도뇌섬류가 주는 압박은 그만큼 컸다.
“쳐라! 죽여라! 죽여라!”
그는 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 역시도 다른 이들과 함께 공격 대열에 참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은 자꾸만 뒤로 움직였다.
잠시 후 사토는 진영의 후미로 빠졌다.
“아악!”
“으악!”
“크악!”
앞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십 장 떨어져 있는데도 마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이 만들어 낸 역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동영 무인은 저 역장을 ‘죽음의 광기’라고 부른다.
“난…….”
사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응?”
그의 눈이 커졌다.
삼 장 건너편에 복면을 쓰고 야행복을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사토를 막아선 사람은 사미염이었다.
“너 혼자구나.”
놀랐던 것도 잠시, 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혼자라고 우습게 보면 큰일 나!”
파앗!
사미염은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일 장을 날아간 그녀의 신형이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머리 위!’
사토는 머리 위쪽으로 살기가 다가드는 걸 감지했다.
“타하!”
사토는 기합과 함께 도를 힘껏 쳐 올렸다.
창!
막아 냈다고 안도의 숨을 쉬는 순간 섬뜩한 기운이 정수리로 파고들었다.
“헉…… 커억!”
놀람에 찬 신음과 비명이 이어졌다.
“이건…….”
사토가 내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가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사미염의 사류가 연검이란 사실을 몰랐던 탓이었다.
챙!
사미염은 연검을 다시 허리춤으로 집어넣었다.
“어?”
그녀의 얼굴이 의아하게 변했다.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진 탓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싸움터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싸움터에서 그녀를 반긴 건 수백 구의 시체였다.
시체 중 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건 한 구도 없었다. 모든 시체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거나 상체와 하체가 떨어져 있었다.
사미염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금장생이 자객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마왕!
그녀는 금장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서른 명 정도가 도망쳤습니다, 비주.
―싸움은 끝났나요?
―네. 이들은 내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자들입니다.
―우호적인 감정을 가졌다는 게 어떤 뜻이죠?
―나는 동영에서 사부를 한 분 모셨습니다. 이들은 제 사부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데 한 가지만 질문해도 돼요?
―얼마든지.
―당신은 어떤 사람이죠?
―……마왕입니다.
―그렇군요.
사미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그녀가 사인루 밖으로 나가는 동굴로 들어가는 그 순간 금장생은 사인루 감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뒤에는 금장생이 사용했던 도의 주인은 류가 따르고 있었다.
“갇혀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네.”
“그런데 중요한 사람 같다는 거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두 사람은 감옥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류,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금장생은 감옥 안을 보며 말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을 보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그녀는 금장생 옆에 서 있는 류에게 동영어로 물었다. 그녀는 사인루에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늘부로 사인루는 사라졌습니다.”
금장생이 동영어로 말했다.
“어?”
여자는 금장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동영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하는 중원인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인루가 사라졌다는…….”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말을 내려야 하는지 올려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였다.
“말투를 결정하기 힘들 땐 나이를 고려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여자의 내심을 알아차린 금장생이 말했다.
“어떻게 사인루가 사라졌다는 거죠?
여자는 말을 올렸다.
“호, 혹시 유키雪 님 아니십니까?”
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
여자는 류를 보았다.
“접니다. 아가씨께서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라며, 도죠라고 불렀던 륩니다.”
“정말 도죠 아저씬가요?”
“맞습니다, 아가씨.”
류는 감옥으로 다가가 도를 휘둘러 자물쇠를 잘랐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도죠 아저씨 맞군요.”
여자는 감격한 얼굴로 류가 가진 도로 시선을 주었다.
도에 새겨진 유키雪는 바로 자신의 이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