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 (150)
“왜 그러십니까?”
“이거 어디서 난 겁니까?”
류는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물었다.
“비급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루주가 제 검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던 거군요. 이런 검을 가지고 있어서요.”
“무라마사에서 만든 건 아니죠?”
“네. 이건 우리보다 먼저 최고의 검을 만들어 낸 마사무네正宗 물건입니다.”
“아!”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범상치 않다고 했더니 마사무네 물건이어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다.
류의 말처럼 마사무네는 무라마사 이전 동영 최고의 검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검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마사무네가가 제자를 두지 않았다고 하기도 하고, 마사무네로부터 기술을 배운 제자가 무라마사라는 이름으로 독립하는 바람에 대가 끊겼다고도 한다.
“류가 가진 녀석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금장생은 물었다.
“이 검과의 비교 대상은 황천이지 제 검은 아닙니다.”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군요.”
“네. 최곱니다.”
“알았습니다. 이제 주류 업종과 장례 업종에 종사했던 사람을 불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류는 밖으로 나갔다.
“마나부學, 모모코桃子! 올라와!”
이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이 뛰어올라 왔다. 그리고 류와 함께 금장생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친구는 아버지가 양조장을 했던 마나붑니다.”
류는 먼저 건장한 체격의 사내를 소개했다.
“처음 뵙습니다. 마나붑니다.”
사내는 금장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금장생은 사내를 가만히 보았다.
자객답지 않게 순박한 인상이었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자객의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과도 어울리지 않는 사내였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했습니까.”
금장생은 허리춤의 검으로 시선을 주며 물었다.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이 친구가 만든 술로 저희는 회식을 하곤 했습니다.”
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술을 만드시던 분이 어쩌다가 검을 쥐었습니까?”
술과 검은 전혀 다른 분야다. 문득 마나부가 검을 쥔 이유가 궁금했다.
“술이 지긋지긋해서요.”
“어릴 때부터 최고가 돼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는 말이군요.”
“네.”
“그 싫어했던 술을 다시 빚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습니까?”
“……!”
마나부는 대답 대신 류를 돌아보았다.
“동영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거네.”
“아!”
마나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금장생을 보며 말했다.
“자객 일만 아니라면 어떤 일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사실 마나부는 주방을 맡기 전 몇 년 동안 자객 일을 했다.
그는 자객 일에서도 상당히 뛰어나, 일 년이 되지 않아 상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십 회 연속 성공의 기록을 가진 사람도 그가 유일하다.
그랬던 그가 회의감을 느낀 건 자객 일을 사 년째 하던 때였다.
회의감은 집중력 저하로 이어졌다. 집중력이 떨어진 자객이 임무에 실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곧 그는 검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더 이상 자객행에 나가지 못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풋!”
금장생은 피식 웃었다.
마나부의 심정을 알 만했다.
“마침 내 친구가 양조장을 개업했는데 잘됐네요.”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양조장을 개업했다는 말에 마나부의 눈에 광채가 어렸다.
“지금은 오백 병입니다. 술집에 넘기는 가격은 석 냥 정도고요.”
“술값은 아주 좋은데 생산량이 너무 적군요.”
“그래서 경험 있고 유능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제 친구는 물론이고 동업자도 주류업은 처음입니다.”
“양조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감숙성입니다.”
“전국적인 판매망을 확보하는 것과 유통비용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관건이군요.”
“그래서 이걸 받아 두었습니다.”
금장생은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대륙황가 석보산과 맺은 계약서였다.
마나부는 계약서를 받아 읽었다.
“원가는 석 냥인데 운송비가 일 문이면 거저군요. 거기에서 잃어버리면 두 배로 보상하는 것까지……. 실례지만 대륙황가 단주와는 어떻게 된 사이십니까?”
마나부의 생각에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대륙황가 주인이 아니면 나올 수 없었다.
“제가 상단주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계약서에 나와 있는 그 친구는 제 목숨을 구해 주었고요.”
“아!”
마나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생산량을 하루 이천 병까지 늘릴 생각인데, 그럼 몇 명이나 필요합니까?”
“최소한 백쉰 명은 있어야 합니다.”
“그럼 밖에 있는 이들 중에서 백쉰 명을 데리고 가십시오. 감숙성에 도착해서 내 동업자에게 그 계약서를 보여 주면 될 겁니다.”
금장생은 양조장 위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마나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건 가는 동안에 쓸 경빕니다. 가서 일을 하고 있으면 조만간 제 친구가 그곳을 방문할 겁니다. 그 친구 이름은 장생입니다.”
금장생은 마나부에게 칠만 냥을 건넸다.
“알겠습니다.”
마나부는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서 함께 갈 사람을 뽑도록 하세요.”
“그럼.”
마나부는 밖으로 나갔다.
마나부가 나가자 금장생은 류와 모모코를 보며 말했다.
“두 분이 가야 할 곳은 낙양 북망산입니다. 그곳에 가면…….”
금장생은 북망산 망루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남은 돈 십삼만 냥을 건넸다.
“천야라는 분을 찾아가면 된다는 거군요.”
“네.”
“친구분은 대장간을 몇 채나 가지고 계십니까?”
류가 물었다.
“백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을 듣다 보니 그 친구분은 대장간 일을 전혀 모르시는 것 같은데…….”
“대장간 일은 모르지만 사업하는 집안 출신이라 세상을 읽는 눈이 탁월합니다.”
“세상을 읽는 눈이 탁월하다는 건, 곧 대장간이 돈을 벌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철광석을 사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철광석을 사들일 정도면?”
“그 친구는 전쟁이 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쟁요?”
류의 눈이 커졌다.
“유례가 없는 큰 전쟁이 날 거라고 하더군요. 실은 나도 그 친구 의견에 동의합니다. 유례없는 거대한 전쟁이 일어날 테고, 준비를 한 자들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겁니다.”
“큰 전쟁이라면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전쟁터는 중원 전역이 될 테고 동영과 조선이 참전하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대장간 한두 개로는 턱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나 있어야 합니까?”
“낙양에 있는 모든 대장간을 사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무기도 수만 점을 만들어 둬야 하고요.”
“그 일을 류 대협이 해 주십시오.”
“제가요?”
“그 친구에게 대장간을 선물해서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돈도 내가 댈 겁니다.”
금장생은 사토가 숨겨 두었던 돈을 전부 투자할 생각이었다.
다만 어떻게 주느냐 하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백만 냥을 선뜻 맡길 수는 없다. 게다가 돈 자루를 건네면 돈의 출처에 대해 의심을 할 게 뻔하다.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은 이백만 냥을 전장에 맡기고 류가 필요할 때 찾아 쓰게 하는 것이다.
‘인장이 있어야겠네.’
맡긴 사람과 찾는 사람이 다를 때,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보통은 전장에서 패를 만들어 주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류 상은 마나부 상을 불러 올려서 이 비급을 전부 모사하세요. 모사한 건 마나부 상에게 주면 됩니다.”
금장생은 비급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붓과 종이를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지켜보던 금장생은 삼 층으로 올라갔다.
조금 전 삼 층에서 옥촛대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맞는다면 그 옥은 단단한 경옥 종류가 분명했다.
푸른색 촛대는 침실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금장생은 촛대를 들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검은색 소검을 빼 들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길 얼마쯤.
번쩍!
눈을 뜨고 소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소검에서 시퍼런 광채가 일렁이더니 촛대가 반으로 잘렸다. 떨어지는 촛대를 허공섭물로 잡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조각을 시작했다.
서걱! 서걱! 서걱!
소검을 움직일 때마다 푸른 광채가 일고 잘려 나간 옥이 떨어져 내렸다.
“아!”
바로 그때 허공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금장생은 고개를 들었다. 창문 밖에서 대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훔쳐보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그는 전음을 보냈다.
―방금 조각할 때 펼친 그건 뇌섬류 아닌가요?
창밖에서 안을 훔쳐본 사람은 오다아이였다.
‘아무튼 무슨 놈의 무공들이…….’
금장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은신술은 사미염보다 더 뛰어났다.
―혹시 벗고 있나요?
문득 극한의 은신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벗어야 한다는 사미염의 말이 떠올라 물었다.
―네?
오다아이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닌 모양이군요.
금장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직 제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어요.
뇌섬류가 맞느냐는 질문에 관한 거다.
―맞습니다.
금장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뇌섬류의 마지막 전수자는 제 숙부였어요. 당신이 끼고 있는 천지황의 주인이기도 했고요.
―그분은 새우를 잡고 있었습니다.
―새우를 잡았다는 건 무슨 뜻이죠?
―동영이나 조선에는 멍텅구리 배라는 게 있습니다. 그 배는…….
금장생은 새우잡이 배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망망대해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육지와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거의 폐인이라고 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그분은 육지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나가야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었다는 거군요.
―네.
―숙부님의 마지막은 평안하셨나요?
―내심은 어쨌는지 모르지만 태양을 마주 보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그게 언제였죠?
―칠 년 전입니다.
―그럼 당신은?
―멍텅구리 배에서 탈출해 동영으로 갔습니다. 그분의 유언을 이행해야 했거든요.
―어떤 유언을 남기셨는데요?
―뇌섬십관, 뇌섬류, 천지황, 황천 네 가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랬군요. 그런데 마왕도 죽었나요?
오다아이는 불쑥 물었다.
―내가 실수를 했군요.
금장생의 몸에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건 바로 살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