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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5화 (35/408)

# 35 < 약속 (3) >

준혁의 몸 주위로 강렬한 영기 파동이 일자, 지금껏 으스대며 건들거리던 차 수사가 뒷걸음치며 손가락질했다.

“너, 너?!! 연기기가 아니었어? 이 정도면 축기기 초, 아니 중기?!! 너 이···.”

하지만 차 수사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서둘러 법기를 꺼내며 앞으로 내밀었다.

“이런 씨ㅂ..”

어느새 준혁의 손 앞에 나타난 단검이 차 수사를 꿰뚫어 버릴 것처럼 쏘아지고 있었다.

탕- 파각-

단검은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더니 차 수사가 급하게 꺼내 들었던 방패 법기의 일부분을 깨트리고는 멀리 멀어졌다가 다시 쇄도했다.

“너 이 새끼! 감히 사형을 공격해?! 제정신이냐?!”

기습 공격을 힘겹게 막아낸 차 수사가 버럭 소릴 지르자, 준혁이 손을 지휘하듯 허공에서 휙 젓다가 아래로 내리쳤다.

“너 같은 놈을 사형이라 생각한 적 없다.”

말과 동시에 준혁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서 크게 선회한 단검은 순식간에 다섯 자루로 늘어나며 차 수사의 몸통을 쪼개버릴 것처럼 아래로 수직 하강했다.

차 수사는 급하게 들고 있던 방패를 위로 던지며 수결을 맺었다. 그리곤 공간대에서 부채를 꺼내 들더니 준혁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건방진 새끼! 보물만 뺏고 목숨은 살려주려 했더니! 오늘 필히 죽인다! 퍼져라!”

차 수사가 휘두른 부채에서 바람이 일더니, 이내 반투명한 칼날이 되어 준혁에게 쏟아졌다.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준혁은 공간대에서 적색 패를 꺼내 영기를 주입했다.

앞으론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하기로 했기에 그 결심은 벌레에게도 적용되었다.

적색 패는 영기가 주입되자 스스로 움직이더니 날아오는 칼날들을 전부 차단했다.

그 모습에 공격을 이어가려던 차 수사가 또 한 번 소릴 질렀다.

“적호패(赤狐貝)!! 스승님께서 아끼던 상급 법기가 왜 네 손에!!”

그리고는 부채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영기를 주입하며 세차게 휘둘렀다.

“정말 너무하시는구나! 어찌 이리 차별을 하신단 말이야!!”

차 수사는 이성을 잃어가는지 입가에 실핏줄이 흐르는데도 멈추지 않고 연속해서 부채를 흔들었다.

너무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칼날을 적색패가 일일이 막아내긴 힘들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준혁은 적마도를 꺼내 들었다.

준혁이 적마도를 잡아챈 순간, 그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바람 칼날들은 허공을 스쳐 지나가며 빈 땅에 무수히 박혀 들었다.

“어? 어딜?”

눈 깜짝할 사이에 준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차 수사는 심장이 차갑게 식는 느낌과 함께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분노가 살짝 가라앉았다.

급하게 기감을 퍼트리며 준혁을 찾으려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깜짝 놀라며 부채로 막아서며 급하게 몸을 틀었다.

푸욱-

하지만 그의 행동은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후면을 방어하기도 전, 핏빛 장도가 등 뒤를 파고들어 심장을 관통한 채 몸을 뚫고 나왔다.

“커억-”

“잘 가란 말은 않겠다. 지옥에 떨어지거든 죗값이나 치러라.”

스윽-

멈추어 선 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한 차 수사를 밀쳐내며 적마도를 회수했다.

적마도가 몸에서 빠져나오자 차 수사는 경직된 몸 그대로 앞으로 기울었다.

쿵-

그리고는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

“역시 진법 법기를 이용한 거였군.”

대방음진을 해체한 준혁의 손엔 원반 형태의 법기가 들려있었다.

일반적으로 진법 깃발을 이용해 진법을 사용하는 데는 공부와 실력이 필요했지만, 이렇게 진법 법기의 힘을 빌린다면 영기와 수결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같은 수준이라고 가정한다면 일반 법기와 비교해 훨씬 고가였기에, 축기기 수사가 쉽게 가지고 다닐만한 건 아니었다.

준혁은 진법 법기를 공간대에 집어넣고는 차 수사의 시체를 비행법기에 올렸다.

그리고는 빙결술을 이용해 주변 일대를 얼린 후, 다시 화구술을 이용해 녹였다.

그러자 주변 지형이 질퍽해지며 두 사람의 싸움 흔적이 완전히 훼손되었고,

뒷정리를 끝낸 준혁은 지체하지 않고 강만학이 머무는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

강만학의 처소.

거실의 상석엔 강만학이 언짢은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그 앞엔 준혁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 뒤로는 강만학의 다른 제자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준혁의 발치에 놓인 차 수사의 시체에 시선이 가 있었다.

“말해보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강만학의 질문에 준혁은 자신이 겪은 일을 알렸다.

“스승님께 허락을 받아 마 사형의 처소를 정리했었습니다. 헌데 차 사형은 제가 마 사형의 재산을 독식한 것으로 의심하고는 저를 불러내 모든 걸 빼앗아 가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툼이 일었고···.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준혁의 설명을 듣던 사형제들이 일제히 반발하며 소리쳤다. 그중 대사형인 이충선이 강하게 반론하며 나섰다.

“그렇다고 한들. 사형을 죽인단 말이냐! 스승님! 차 사제가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빼앗다니요? 이건 너무한 처사입니다. 게다가 겨우 연기기인 저자가 차 사제를 해하다니. 분명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충선의 말에 강만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렸다.

“맞는 말이다. 남의 재산을 욕심낸 건 분명 경수의 잘못이 맞는다만, 그렇다 한들 죽인 건 안 될 일이다. 만약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면 나에게 말했어야지.”

경수는 차 수사의 이름이었다.

강만학은 심기가 편하지 않은지 인상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아무리 준혁이 인지경이라는 희대의 보물을 바쳤다고는 하나, 오랜 세월 자신을 보필한 제자의 죽음에 아무렇지 않을 스승은 없었던 것.

준혁은 가타부타 말없이 품에서 부적 석 장을 꺼내 그중 한 장을 강만학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더냐?”

“제가 처음 입산했을 때 마 사형이 전해준 전음부입니다. 차 사형이 찾아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음부를 활성화했으니···. 그 안의 내용을 들어보시고, 제자에게 벌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강만학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전음부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준혁이 처소 앞에서 처음 차경수를 만났을 때부터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어디 남색(男色)가를 단번에 홀릴만한 방중술이라도 익혔나?

-그런 말을 함부로 하셔도 되시겠습니까? 엄연히 스승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차경수가 내뱉은 뒷담화에 강만학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동시에 준혁 뒤에 서 있던 사형제들도 몸서리를 치며 잔뜩 긴장했다.

전음부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는 흘러 흘러 마동탁의 여동생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묻지 않습니까!!! 죽였습니까?

-씨발 뭘 당연한 걸 물어? 그럼 살려둬? 내가 영석을 가져간 걸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게?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마지막 준혁이 소리치는 것을 끝으로 전음부는 홀라당 타버리며 잿가루만을 흩날렸다.

강만학의 입에서 악다문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게 끝이더냐?”

“스승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전음부에 소리를 담기 위해선 영기가 끊이질 않게 집중해야만 합니다. 제자. 너무 화가 나 더는···.”

“됐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강만학은 말없이 좌중을 훑어보더니,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선은 차경수의 시체에 닿아있었다.

“저놈에게서 제자위를 박탈한다. 시체는 아무 곳에나 버려두어 동물들이 뜯어먹게 하여라. 감히 스승을 능멸하고 사형제의 재산을 노리다니. 더군다나 일반인은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을 깨고 그런 참혹한 일을 저지르다니! 하물며 오랜 시간 함께한 사형제의 가족을!”

강만학은 말을 할수록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그리고 또 한 번 이런 분쟁이 생길 것 같아 말하건대, 동탁이가 가지고 있던 보물은 이미 태식이가 바쳤다. 그에 저 녀석을 어여삐 여기고 영석과 법기를 하사한 것이다. 또한 저 녀석의 수행은 처음부터 축기기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직계 제자로 받았겠느냐? 충선아, 너는 내가 사리 분별도 못 하는 자라 생각하느냐?”

강만학의 말에 대사형 이충선은 깜짝 놀라 바닥에 부복하며 외쳤다.

“제자는 단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습니다.”

어느새 준혁을 제외한 전원이 바닥에 머리를 맞대고 몸을 바짝 엎드렸다.

“쯧쯧. 그리 오래 나를 보아왔으면서 그딴 저급한 생각 따위나 하다니. 너희들에게 실망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당분간은 얼굴도 보기 싫으니 썩 나가라! 막내가 혈단법을 온전히 익혀낼 때까지는 누구도 방해하지 말고.”

“명 받잡겠습니다.”

강만학은 인지경을 거래한 일을 마동탁의 보물로 포장해주더니, 분노한 듯 소리치며 모두를 내쫓았다.

마지막엔 다들 들으라는 듯 준혁에게 따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태식이는 저놈의 공간대를 가져가고 동부를 확인하거라. 동탁이의 동생에게 가족이 남아있다면 그들을 보살피고, 없다면 네가 가지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마동탁에 이어 차경수의 재산까지 준혁에게 준다는 말에 바닥에 엎드린 사형제들이 움찔거렸다.

준혁은 크게 동요하지 않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여 명령을 따르겠다는 의지만 내비쳤다.

잠시 후 축객령에 모두 몸을 일으키며 돌아서야 했고, 준혁도 조용히 사형제들의 뒤를 따랐다.

‘무슨 꿍꿍이지?’

다른 이들은 모두 이마를 바닥에 대고 있느라 보지 못했지만. 준혁은 마지막 순간에 강만학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걸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등 뒤로 소름이 쏴악 올라왔다.

+++

강만학의 저택 밖으로 나오자 이충선이 준혁에게 다가오며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 사제. 축기기였다면 미리 언질을 줬으면 좋질 않나? 그랬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준혁이 축기기라는 걸 알았다면 차경수가 성급히 행동하지 않았을 거란 말은 마치 모든 일이 준혁의 탓이라는 뜻으로 들려 기에, 준혁의 말을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제 탓이란 말입니까? 애초에 인면수심 한자는 그자가 아닙니까?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아, 아니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후우, 아니네, 미안하네. 내 말실수를 한 것 같으니 용서해주게.”

조금 전 서슬 퍼런 강만학의 태도 때문인지, 이충선은 대사형이란 위치에도 불구하고 준혁에게 곧바로 사과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네 번째 사형인 류휘안이 준혁을 말렸다.

“사제. 진정하시게나. 사제 말대로 차 사제가 심한 행동을 한 건 맞네. 나도 오래전부터 그를 말렸지만 소용없었지. 그렇다고 대사형께 그리 소리치면 되겠는가? 앞으로 평생 보아야 하지 않은가.”

준혁도 괜히 상황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었기에 곧바로 태도를 낮추며 허릴 숙였다.

“소릴 질러 죄송합니다. 대사형.”

“아니네. 자네 말이 틀린 것 없으니. 후우···. 이만 헤어지세. 수련 잘하고.”

꽤나 지친 듯 이충선은 힘겹게 발을 옮겼다. 그때 준혁이 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

“저기, 대사형.”

“왜 그러는가?”

“스승님께서 한동안은 저에게 아무 임무도 시키지 말라고 하셨지만 말입니다. 사형들만 일하고 혼자 수련에 매진한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마 사형에 이어 차 수사의 자리까지 비었으니···.”

“하고 싶은 말이 먼가?”

“두 사람을 대신해 연구회 일을 돕고 싶습니다.”

“정말인가?”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류 사형의 말대로 평생 보아야 할 사이인데···. 저도 일을 도우며 사형들과 친분을 다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준혁의 말이 맘에 들었는지 어느새 이충선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안 그래도 일손이 달렸는데, 그리 말해주니 너무 고맙네. 하지만 스승님의 명도 있는데 일을 시키는 게 영···.”

“사형이 시키는 것도 아니고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것도 수련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러는 것이니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스승님께서 문제 삼으신다면 제가 부탁드렸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이충선은 준혁의 손을 덥석 맞잡았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그럼 조만간 부를 터이니 돌아가서 기다리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대사형. 사형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준혁은 곧장 하급 비행법기를 꺼내더니 공룡능선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준혁이 모습을 감추자 떠나지 않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다가와 이충선에게 말했다.

“사형. 그래도 미혼술의 효과가 제법인 거 같지 않습니까?”

이충선이 고갤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나에게 호감을 느끼게 해두었으니 저리 행동하는 것이겠지. 잘됐네. 시작이 삐걱 대긴 했지만, 잘 구슬리면 쓸만하겠어. 게다가 연기기도 아니고 축기기라니. 일을 시키기에 적당하겠어.”

어느새 이충선의 눈엔 진한 광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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