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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수능력으로 광부에서 신선까지-34화 (34/408)

# 34 < 약속 (2) >

동굴을 나선 준혁은 곧장 류 수사의 거처로 날아갔다. 거처 앞에서 전음부를 날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류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류 수사는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 사내였는데, 항상 회색 장포를 걸치고 있어 우중충한 느낌이 들게 했다.

“류 사형을 뵙습니다.”

“드디어 나왔군, 얼굴 한번 보기 힘들어서야 원.”

“죄송합니다. 스승님께서 전해주신 진법들을 익히느라···.”

“나무라기 위해 부른 건 아니네. 혹시 최근에 차 사제가 자넬 찾아가질 않았나?”

준혁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음부를 통해 만나자는 말은 몇 번 하였지만,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흠, 그래? 이상하군.”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한참 동안 턱을 매만지던 류 수사가 말했다.

“내 이야기를 너무 서운하게 생각 말고 듣게나. 자네가 마 수사의 처소를 정리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스승님께 허락을 받고 행한 일입니다.”

“알고 있네. 쩝. 아무튼 그 일로 차 사제가 매우 심술이 나 있었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류 수사는 짧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휴, 만약 누군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의 재산은 제자가 물려받는 게 일반적이네. 하지만 제자가 없다면 사형제들이 나누어 가지는 게 이곳의 암묵적인 룰이지.”

“흠.”

“헌데 자네 혼자 마 사제의 재산을 독식했으니 사실 다들 불만이 쌓여있었네. 더군다나 마 사제가 갑자기 씀씀이가 커져서 그의 재산이 크게 늘었음을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류 수사의 말을 종합하자면 이랬다.

여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수도자원은 물론 사형제들에게까지 손을 벌리며 동냥하기를 수십 년. 그런 마동탁이 어느 날부터 대량의 약재를 사들이게 되었고 그가 어떤 보물을 발견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마동탁이 죽었으니 그 보물 혹은 재산을 사형제가 나눠 가져야 했는데, 준혁이 독식했으니 몇몇은 강한 불만을 나타냈고, 사라진 차 수사가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란 것.

“그러니 갑자기 사라져서 혹시 자넬 찾아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었던 거네.”

“걱정하시는 바는 알겠지만, 만난 적 없습니다. 헌데 스승님이 직접 명을 내리셨는데. 차 사형이 저에게 해코지하겠습니까?”

준혁의 질문에 류 수사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다 말했다.

“사실···. 이 얘기까진 안 하려 했지만, 흠, 차 사제는 마 사제의 재산이 자기 것이라 생각하네.”

“네? 그게 무슨.”

“그 이유까진 모르겠지만, 처음 마 사제가 엄청난 약재를 사들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말을 가끔 했었네. 원래는 자신의 것이었어야 한다고.”

“모를 말이군요.”

“나도 몇 번 물어봤는데, 그 이윤 알려주지 않더군. 아무튼 자넬 찾아가지 않았다면. 알겠네. 약초라도 캐기 위해 어딜 갔나 보지.”

대화를 나누던 류 수사는 차 수사가 준혁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는 축객령과 함께 조언도 곁들였다.

“스승님께서 무슨 이유로 자넬 제자로 받아주었는지는 모르나. 항상 자세를 낮추게, 연기기에 불과한 자네가 같은 사형제가 되었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이도 적지 않으니.”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류 수사에게 허리 숙여 인사한 준혁은 곧장 자신의 거처로 향하지 않고, 마동탁의 처소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류 수사의 말을 듣고 보니 짐작 가는 것이 있어서였다.

“욕심 많은 놈이, 함정에 걸렸나 보구나.”

+++

마동탁의 처소 앞에 도착한 준혁은 가볍게 수결을 맺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걷지 않아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마동탁의 동굴 한쪽에 마련된 진열장 앞.

준혁이 관심조차 가지지 않고 지나쳤던 진열장 앞엔 차 수사가 멍한 눈을 한 채 손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사실 준혁이 마동탁의 처소를 정리하며 진열장에 손도 대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진짜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이 아닌, 진법으로 만들어놓은 함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동탁은 보물들을 발견한 후 재산이 넉넉해지자, 곧바로 동생이 먹을 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약재를 엄청나게 사들였다.

그 와중에 사형제들의 의심을 받았기에 혹시 모를 침입을 대비해 함정을 만들어 두었던 것.

“어리석긴.”

손을 허우적거리는 사내를 응시하던 준혁은 잠시 고민에 빠지다 검은 깃발 다섯 개를 꺼내 들었다.

맘 같아서는 평생 저대로 갇혀있게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결국은 이곳 처소가 다른 이에게 배정될 테고, 그럼 자연스럽게 풀려나게 돼 있었다.

괜히 오랜 시간을 환영진에 속박당한 채 분노를 키우게 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쓰게 웃은 준혁이 다섯 개 깃발 중 두 개를 던지면 수결을 맺었다, 동시에 공간대에서 영석 하나를 꺼내 가루로 만들며 주변에 흩날렸다.

날아간 깃발 두 개가 조금 거리를 두고 바닥에 꽂히더니 짧게 진동하다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반응을 보고는 나머지 깃발을 던지며 수결을 맺었다.

“남의 물건에 욕심을 냈으니 고생 좀 하십시오.”

다섯 개 깃발을 이용해 환영진 주변으로 두 개의 진법을 설치한 준혁은 진법이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동굴을 나섰다.

그리고 처소에 거의 당도 했을 때쯤. 마동탁의 처소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쾅!!

준혁은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빠져나오는 마동탁의 처소 방향을 바라보다 자신의 동굴로 들어갔다.

준혁이 짧은 시간에 초급 진법가 수준이 되었다고는 하나, 마동탁이 오랜 시간 꼼꼼하게 설치해놓은 환영진을 단번에 해체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진법을 설치해 강제로 작동시키고는, 폭발의 기운에 환영진이 흔들릴 때 진법을 해제할 수 있는 해체 진을 따로 설치했던 것.

물론 그 와중에 무방비로 폭발에 휩쓸린 차 수사가 크게 낭패를 보게 될 건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

6개월 후.

진법 공부에 심취해 있던 준혁의 처소에 손님이 찾아왔다.

모르는 척 무시하려 했으나. 동굴 앞에서 기운을 풀풀 날리며 시위하듯 기다리는 모습에 결국 움직여야 했다.

‘역시 좋은 의도는 아니구나, 혹시 모르니.’

준혁은 수결을 맺은 후 거처 밖으로 나갔다.

“차 사형을 뵙습니다.”

진법 폭발에 휩쓸려 한동안 조용하던 차 수사는 잔뜩 성이 난 얼굴로 준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네 정말 건방지군, 사형인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을 해야 얼굴을 비추는 건가?”

“스승님께서 당분간은 모든 일에 신경을 끈채 수련에만 전념하라 하셨습니다.”

준혁이 고개를 숙이며 차분히 대답하자 곧장 비아냥이 쏟아져 나왔다.

“아? 그러셔? 아주 스승님의 사랑을 독차지하시는구먼? 어디 남색(男色)가를 단번에 홀릴만한 방중술이라도 익혔나? 그동안 스승님께서 우리 제자들은 손대지 않으셨는데. 자넨 아주 특별한가 봐?”

강만학의 성적 취향이 남다르단 얘길 접했었기에 준혁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하셔도 되시겠습니까? 엄연히 스승님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크큭, 왜? 쪼르르 달려가 이르려고?”

시비조가 매우 강했기에, 준혁은 괜히 화를 불러올 말은 삼가고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로 오신 건지 말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 아~ 그랬지? 내가 아주 우리 사제님 만나려고 그동안 얼마나 애가 탔었는지.”

“...”

차 수사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한참 동안 준혁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여기선 좀 그렇고. 따라와. 가서 얘기 좀 하자.”

그리곤 준혁의 대답도 듣지 않고 비행 법기에 올라타 동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점점 멀어지는 차 수사를 보던 준혁은 짧게 한숨을 내뱉고는 결국 비행 법기를 꺼내 그 뒤를 따랐다.

보나 마나 마동탁이 숨겨놓은 재산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를 게 뻔해 보였기에, 반쯤 초주검 상태로 만들어 앞으로 경거망동하지 못 하게 할지. 아니면 바짝 수그리고 영석이라도 바쳐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차 수사는 당장이라도 범죄를 저지를 사람처럼 흉흉한 기운을 흘리며 설악산을 벗어나 한참이나 이동하더니, 소나무가 빼곡하게 자라있는 언덕 한쪽 공터에 내려섰다.

곧이어 준혁이 따라오자 아까완 다르게 얼굴에 진한 비웃음이 걸려있었다.

“여기가 적당하겠어. 이제 진지한 대화 좀 나눠볼까?”

건들거리며 말하는 차 수사를 보며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십시오. 저를 왜 이곳까지 데려온 겁니까?”

“그전에 말이야.”

차 수사가 비열한 웃음을 머금은 채 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수결을 맺었다.

우웅-

긴 수결이 끝나자, 언덕 주변에 작은 진동이 일어나더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주변을 넓게 덮었다.

“대방음진(大防音陳)?”

“오? 이걸 알아본다고? 스승님이 진법서를 주기 전에도 진법 공부를 했나 보지?”

대방음진은 준혁의 동굴 처소에 설치된 방음진의 상위호환으로 소리와 영기 흐름을 차단해주는 건 물론이고 강한 충격에도 쉽게 깨지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대방음진을 알아보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 이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른다는 건 잘 알겠지?”

차 수사의 말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흐흐, 그래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차 수사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며 비죽였다. 그 순간, 차 수사의 주변으로 작은 파동이 일어나며 끈적한 기운이 화악 하고 일어났다.

그것은 축기기 초기를 넘어선 중기 수준의 영력이었다.

“마 사제의 처소에서 가져간 것 전부 내놔. 그렇지 않으면 살아 돌아가긴 힘들 거야.”

너무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의 태도에 준혁도 잠시 당황했다.

“...당신. 축기기 초기가 아니었군.”

강만학의 제자 중 대사형인 이충선부터 삼 제자까지 축기기 중기, 그 밑으로는 축기기 초기로 알고 있었다.

“당신? 하? 이 새끼가 미쳤나. 미쳤어? 사형한테 당신? 오늘 진짜 제대로 버릇 좀 고쳐줘야겠네.”

“미친 건 당신 아닙니까? 스승의 명도 무시한 채 사제에게 강도질을 하려는 거 아닙니까?”

“뭐? 강도질? 하하. 잘 들으라고 원래 그건 내꺼야. 원래 내 것이라고!!”

실성한 듯 웃다가 갑작스레 소리를 꽥 지른 차 수사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소리쳤다.

“마 사제가 보물을 얻은 건 분명 독주폭포 인근이었을 것이야! 그날 스승님의 명을 수행한 그다음부터 약재를 사들이기 시작했으니까!”

‘알고 있었던가?’

“원래 그날 스승님의 명을 받은 건 나다! 원래는 내가 가야 했었는데! 내가! 빌어먹을! 수행 직전 기혈이 뒤틀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곳에 갔을 것이고! 내가 그 보물들을 얻었을 거란 말이다!!”

차 수사는 진심으로 마동탁이 발견한 보물이 자신이 발견했어야 했던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된단 말인가? 스승이 찾아오라는 약초를 구하기 위해 꼼꼼하게 독주폭포 인근을 뒤졌기에 마동탁은 보물을 얻었다.

과연 저 뺀질이 같은 차 수사가 그곳을 수색했다면 똑같이 보물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준혁은 절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랬기에 준혁은 절로 냉소를 흘렸다,

“말이 된다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설마 그렇다 한들 그게 사제를 죽이고 물건을 강탈할 이유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어쩌라고 씨발! 배알이 꼴려서 수련에 집중을 할 수가 없는데!”

준혁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혀를 차고 말았다.

“쯧쯧, 마 사형이 살아있었다 한들 살려두지 않으셨겠군요.”

“크큭 그래. 류 사형이 말려서 참고는 있었지만 큭. 조만간 손 좀 보려고 했지.”

이젠 대놓고 인정하는 그를 보며 준혁은 새삼 느껴지는 인간의 추잡스러운 욕심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잘못 짚으셨습니다. 보물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그저 마 사형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처소의 짐들을 정리해 그의 동생에게 전해준 게 답니다.”

준혁이 말을 마치자 차 수사가 무엇이 그리도 웃긴 지 배를 잡고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웃던 그가 자세를 바로 하더니 준혁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너, 너 이 새끼, 크큭, 내가 그딴 말에 속을 것 같아? 이미 확인했거든?”

준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확인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소롭다는 듯 차 수사가 대답했다.

“겨우 짐을 정리했다고? 그런데 여동생에게 영석을 1,500개나 전해줘?”

“??!!!”

준혁의 표정이 급변했다.

“당신! 설마 그녀를 찾아갔습니까?”

“크큭, 당연한 거 아냐? 너도 사람이면 그년한테 뭣 좀 나눠줄 거라 생각했지. 그렇게 많은 재산을 넘겨준 진 몰랐지만 말이야. 그래서 난 확신했지. 마 사제가 발견한 보물이 엄청난 거라고 말이야. 그러니 그 많은 영석을 아무렇지 않게 줬겠지?”

그 순간 준혁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설마. 죽였습니까?”

“크크큭.”

“묻지 않습니까!!! 죽였습니까?!”

“씨발 뭘 당연한 걸 물어? 그럼 살려둬? 내가 영석을 가져간 걸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게?”

투툭-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차 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혁의 눈빛에서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주위로 정제되지 않은 영기 파동이 화악- 하고 강렬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곤 이가 갈리는 소리가 준혁의 입술 사이로 빠져나왔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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