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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천마-257화 (256/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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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비화(1)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에 깨어난 곳은 산 중턱 오솔길이었다. 저 멀리 처음 꾼 꿈에서 보았던 들판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 오솔길도 왠지 낯이 익었지만, 아무리 떠올려 봐도 와본 기억이 없었다.

천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평생을 무공수련을 하며 살아놓고 대낮부터 뭔 수련이야?]

잠이 안 온다는 것을 무시하고 다시 꿈속에 들어온 것 때문에 괜히 시비를 거는 천마다.

[하하. 그러게 말이다.]

무공의 마지막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정말이지 끝없는 고행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끝이 보이잖아?]

[끝? 난 이제 시작이란 생각이 드는데?]

칠 성까지 빠르게 오르다가 팔 성에 도달한 후, 보통의 무인은 팔 성에서 끝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상승의 무공일수록 더욱 그러했으니 마신결의 경우에는 그 어려움의 정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정점에 도달한 사람이다.

[구 성까지는 무난히 갈 것 같은데?]

[어련하시려고.]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며 무공수련이 시작되었다.

십일 갑자 내공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마신결을 수련했다.

한바탕 수련을 마쳤을 때, 내가 처음 깨어났던 산은 무너지고 깎여서 사라져 버린 후였다.

황무지가 된 그곳에서 운기조식을 했다. 단전에 차오르는 내공을 느끼며 천마와 대화를 나눴다.

[이봐, 천광이.]

[왜?]

[내기 말이야. 지금이라도 할까?]

[싫다는데 왜 그래?]

[왜 싫은데?]

[빌 소원이 없으니까.]

[소원이 없는 사람이 어딨나? 누구나 한두 개쯤은 있지.]

[가령?]

내가 마음속으로 그의 소원을 대신 떠올렸다.

살고 싶다거나. 내 몸에서 나가고 싶다거나.

두 가지 일은 내게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 젊은데 평생 그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나도 나지만, 그는 또 어떻게 그 답답함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내 몸에서 내보낸다?

이혼대법을 통해 내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내 몸에 들어온 것이 대법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폭발로 인한 사고로 들어왔다. 과연 대법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누구의 몸으로 들어가게 할 것인가?

이런 어려운 상황임에도 그런 소원을 떠올린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이제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내 입으로 할 말이 아니었다. 천마를 살려주는 무림맹주가 세상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에 하나라도 그가 세상에 나가서 다시 혈겁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내기라도 걸려는 것이다. 그가 이겨서 약속을 지키라고 닦달이라도 해줬으면 싶은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결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난 소원 다 풀었다.]

마치 자식과 손자를 본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는 것처럼 말했다.

[흥! 좋겠다. 원도 한도 없이 잘살아서.]

[화났냐?]

[화나긴.]

내가 뒤로 벌렁 드러누우며 행동과 반대되는 말을 했다.

[이제 그만 깨자.]

쪼로롱, 쪼로로롱.

내가 눈을 떴다. 창밖에는 어스름 해가 지고 있었다.

[이런! 또 자야겠는데?]

[그만 자!]

내가 침상에서 일어나며 천마에게 다시 장난을 쳤다.

[그래, 배고프니까 밥 먹고 자자.]

[이놈아! 그만하라고!]

* * *

천왕군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이 맹주전 내부를 휘감았다. 예전에 그가 내뿜던 기운보다 훨씬 더 짙었다.

맹주전 내부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 하나가 연기에 노출되자 피를 토하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건너편 기둥 뒤에서 경계를 서던 무인들이 그를 구하러 뛰어갔다. 하지만 그 역시 가던 도중에 피를 통하며 쓰러졌다.

또다시 서너 명의 무인들이 나섰지만 모두 마찬가지였다. 내공의 많고 적음에 따라 걸음의 숫자가 달라졌을 뿐, 모두 바닥에 쓰러져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그들을 죽인 검은 기운은 무공 실력을 떠나 도저히 인간이 견딜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었다.

이 상황을 예상했다면 미리 수하들을 물렸어야 했다. 하지만 천왕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무림맹 무인들을 사물처럼 대하고 있었다.

츠츠츠츠츠.

사방에 흩어져 있던 검은 기운이 한곳으로 모여들면서 하나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대략의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얼굴은 굉장히 기괴했는데 눈과 코와 입이 간신히 형체만 갖춘 채 붙어 있었다.

그 입이 열렸다.

아직 형체가 다 갖춰지지 않아서일까? 그 소리가 웅얼거리며 울려서 아직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암호처럼 들리기도 했고 주술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천왕군은 마치 그 내용을 모두 다 알아듣는다는 듯,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마친 그것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귀신소리를 내며 주위를 휘돌았다.

히이이이이이익.

이내 검은 연기들은 천왕군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천왕군이 천천히 태사의에서 일어났다. 주위에 쓰러져 있는 시체가 눈에 띄었지만 그는 힐끗 쳐다보았을 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가 걸음을 옮겨 창가로 걸어갔다. 맹주전에 나있는 창문으로 보이는 풍광은 무림맹에서 볼 수 있는 풍광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그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었다.

긴장과 위기감, 공포와 살의, 슬픔과 저주. 온갖 나쁘고 어두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말이 흘러나왔다. 평소 천왕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고 습한 목소리였다.

“……당신은 절대 나를 막지 못할 것이오.”

* * *

꿈에서 무공수련을 시작한 지 열흘째.

지난 열흘간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몽련비술에 푹 빠져 있었다. 정말 미친 듯이 수련을 했다. 더 어찌 노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늘 나는 들판에서 추혼수라검술을 펼쳐내고 있었다.

내내 마신결의 검술만 펼치다가 오늘 갑자기 추혼수라검술을 펼쳐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그런 욕구가 든 것이다.

천마가 내 검술이 불완전하다고 말했던 이후, 내 무공이 성장하면서 추혼수라검술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었다. 덕분에 그날 이후, 추혼수라검술은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마신결을 익힌 이후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오늘 꿈속 수련에서 펼쳐보는 것이다.

찰나인과 진명인, 무극인과 탈혼겁이 연이어 발출되었다. 그 속도와 위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강력해져 있었다.

회륜겁이 펼쳐지자 사방에서 강기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하나, 둘, 셋, 넷…… 스물, 스물하나……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

엄청난 위력의 회오리가 끝없이 생겨났다. 예전의 회륜겁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예전의 회륜겁이 무서운 자연재해에 마치 세상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면 지금은 진짜 세상이 뒤집히고 있었다.

육초식 대멸겁이 발출되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완전히 소멸했다. 소멸되는 범위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넓었다.

예전의 그것이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것 같았다면 지금은 진짜로 종말이 찾아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소멸해버렸는데, 다른 어떤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할 것인가?

이렇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공이었는데, 나는 그 위력을 전부 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공의 경지가 올라선 지금에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마어마하군.]

[그렇군.]

천마마저 감탄할 정도였으니까.

이번에는 선학비술을 발휘해보았다.

내 경지는 이제 그것을 패도적으로 펼치느냐, 아니냐라는 예전의 고민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선학비술이 극한의 위력을 발휘하며 펼쳐졌다.

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천마의 할아버지조차 자신이 창시한 이 무공이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임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한바탕 선학비술을 펼친 후에 다시 마신결의 검술을 펼쳤다.

마신결의 검술까지 모두 마쳤을 때, 내가 나직이 말했다.

[구 성에 도달했다.]

[뭐? 이런 미친! 헛소리 말고!]

천마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아무리 나라해도 구 성의 벽을 열흘 만에 깰 줄은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말했잖아? 무난하게 구 성에 이를 것 같았다고.]

[대체 어떻게?]

[조금 전에 세 무공을 연이어 펼치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정사마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추혼수라검술은 정공.

마신결은 마공.

정공과 마공의 중간에 있는 선학비술.

오늘 난 이 세 개의 무공을 극한까지 완벽하게 펼쳐냈고, 그 과정에서 정사마의 구분과 한계,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말로 알고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진짜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내게 정공과 마공, 사공의 구별이 무의미해졌다.

이 깨달음을 얻고 경지에 도달한 순간, 동시에 마신결 팔 성의 벽을 넘어 구 성에 도달한 것이다.

어쩌면 이 순간은 정공과 마공의 사이를 이어줄 선학비술을 익혔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하한다.]

[고맙다.]

[진심이다.]

[안다.]

그래, 이젠 진짜 안다. 그의 마음도. 아마 그도 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요즘 마음이 더 복잡했으니까.

[이제 대성만 남았구나.]

[결국은 해내지 않겠어?]

[어련하시려고.]

[하하하.]

가장 큰 고비만이 남았다.

대성을 이루려면 내일 당장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이루지 못하려면 백 년을 수련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문득 마신성에서 만났던 노인이 떠올랐다. 대성을 이루게 되면 마신과 관련한 선택이 주어질 것이라 했다.

과연 어떤 선택이며, 어떤 시험이 주어질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천마와의 관계도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천마가 다시 말했다.

[너 이 새끼, 정말 멋지다.]

욕이 섞였지만 그것이 천마의 극찬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천마와 한마디 더 너스레를 떨려고 괜히 으스대며 대답했다.

[후후. 그걸 이제 아셨나?]

* * *

갈사량의 보고는 잠에서 깰 때마다 계속되고 있었다.

아까 깼을 때 들어온 좋은 소식 하나.

마철군에게 전해질 천도문의 자금줄을 일 차로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공수찬이 천도문과 관련한 상단과 전장에 수를 쓴 것이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맡긴 일처리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기에 나는 수련에 열중할 수 있었다.

쪼로롱, 쪼로로로롱.

오늘도 꿈속으로 들어왔다.

습관처럼 허공으로 날아오르려다가 검을 검집에 넣었다.

[왜 이곳이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왜 이곳이라니?]

[꿈속 장소가 왜 항상 이곳이냐고?]

[좋잖아? 넓고 사람도 없고.]

[그렇긴 한데.]

이 들판을 중심으로 산 중턱 오솔길에서 깰 때도 있었고, 조금 떨어진 호숫가에서 깰 때도 있었다. 어떤 날에는 계곡물이 흐르는 폭포 근처에서 깰 때도 있었고, 다 날려버리기 너무 아까운 아름다운 대숲에서 깰 때도 있었다. 그 모든 장소들이 이 들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첫날에도 궁금함을 느꼈지만 무공수련이 우선이란 생각에 더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마신결이 구 성에 이르자 궁금해졌다.

왜 이곳일까?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나는 천천히 발길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낯이 익으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분명 낯이 익은데 정작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와본 적은 없는 곳.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들판의 끝에서 나는 흠칫 발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서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 열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과 소녀였다. 사내아이가 몇 걸음 먼저 걷고 있었고, 여자아이가 그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충격과 놀람으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가 아는 둘이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이라도,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그 아이들은 바로 어린 시절의 벽리단과 송화린이었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내 앞까지 걸어왔지만 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꿈속의 공간이자 과거의 한 단면인 것이다.

벽리단은 화난 모습이었고, 송화린은 달래려고 하는 중이었다.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어.”

“안 가면 되잖아?”

“간다고 아빠하고 약속했단 말이야.”

“쳇! 그럼 어서 가 버려!”

“화내지 마. 무공수련 열심히 하고 돌아올게.”

나는 알 수 있었다. 송화린이 그 이상한 사부놈에게 무공을 배우러 산동을 떠나던 그 무렵이란 사실을.

내가 처음 벽리단으로 깨어났을 때 광두가 그랬다. 무공수련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은 아주 친했었다고. 나 역시 그녀가 떠난 이후에 많이 변했었다고.

맙소사! 그러고 보니 내가 계속 수련했던 꿈속은 내 꿈이 아니라 벽리단의 꿈속이었구나!

왜 이곳이 낯익지만 와본 적이 없었던 곳인지 알 수 있었다.

한데 왜?

왜 난데없이 벽리단의 꿈을 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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