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28화 (228/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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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결(3)

우선 나는 마신영풍보의 구결을 완벽하게 외웠다.

어떤 무공이든 그 수련의 시작은 구결을 정확히 암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몇 번이나 제대로 외운 후, 비급을 조사했다. 숨겨진 장이 있을지, 혹은 빛에 비쳐봤을 때 다른 글자가 나오는지.

하지만 마신영풍보의 비급에 비밀은 없었다.

하긴 굳이 비밀로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안에 적힌 내용만 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었으니까.

무공의 경지가 한 단계 위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단지 기존의 무공체계와는 다른 것인지, 아니면 둘 모두 때문인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생소한 단어들이 전체 뜻을 모호하게 했고, 짐작한 대로 하자니 기존의 상식에 위배되는 것들이 많았다.

어떤 부분은 대체 뭘 어쩌라는 것인지 짐작조차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끈기 있게 비급을 연구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었어도 여전히 처음 비급을 펼쳤을 때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맛있는 요리나 먹으면서 세월아 네월아 비급수련을 하면 좋겠지만, 난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나는 구조신호를 보냈다.

[이봐, 당신.]

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왜 대답이 없어? 자?]

여전히 천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중요한 시기에 연결을 끊었거나 자고 있을 리는 없었다.

[이봐, 어서 대답해! 죽었어? 죽었어도 다시 한 번 태어 나! 어서!]

[어휴, 시끄러워서 도저히 못 참겠군!]

[그러게 깨어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해?]

[너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고 했잖아? 내 말 못 알아들었어?]

[알아들었지.]

[한데 왜?]

[혼자서 못 하겠어.]

[뭐?]

[혼자서는 못 하겠다고. 당신이 좀 도와줘.]

황당해하는 천마의 감정이 느껴졌다.

[맙소사! 이 빠른 포기는 대체 뭐냐?]

[맙소사는 내가 할 말이야. 이 미친 무공은 뭐야? 대체 어디서 나온 무공이야? 뭐가 이리 어렵냐고?]

[이놈아, 그럼 이게 쉬울 줄 알았느냐? 쉬웠으면 역대 천마들이 줄줄이 다 실패했겠느냐는 말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천하제일의 마공을 익히는 일이 어찌 쉬울 것이며, 나아가 마신이 된다는 그 전설이 사실이라면? 이 시험은 인간이 신이 되는 시험이다. 애초에 불가능할 정도의 난이도가 당연했다.

[그러니까 당신 도움이 필요해.]

[안 돼!]

[왜?]

[마신결의 시험은 혼자서 시도해야 하는 거다.]

[몸속에 천마가 들어와서 함께 풀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나?]

[……그건 없지만.]

[그런데 뭐가 문제야?]

내가 이번 마신결의 시험에서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 몸에 천마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무재가 뛰어나도 역대 천마 중에는 나보다 더 뛰어난 천재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도 모두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따라서 고집이나 자존심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장점을 확실히 살려야 했다.

[문제는 없지만…… 이건 혼자서 풀어야 해.]

[난 혼자야. 당신은 내 마음에 있는 존재잖아?]

[그래도…….]

여기가 마신성이고, 마신결을 시험받는 곳이기 때문에 천마는 여러모로 긴장하고 있었고 사고 또한 경직되어 있었다.

예전에 광두가 이런 경직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객잔에서 한 방을 잡았을 때나 같이 술을 마실 때 그랬다.

비록 지금은 내 몸속에 있지만 천마도 사람은 사람인가보다 싶다.

내 설득은 계속되었다.

[이봐, 이 시험은 마신이 되는 시험이야. 어디 중이나 도사가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일이 아니라고. 오히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내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겠나?]

[궤변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비급을 처음부터 내민 이 시험 자체가 궤변이야.]

천마가 살짝 고민하는 것이 느껴졌다.

거기에 내가 결정적인 한방을 날렸다.

[시험에 당신이 나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면 이미 당신은 나와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고 있을걸. 이곳은 그만큼 신비하고 대단한 곳이잖아?]

그 말에 천마가 마음을 돌렸다. 사실 그도 엄청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좋아. 같이 풀어보자.]

[천기심환공을 만들테니 나올래?]

[그건 안 돼! 이 정도까지라도 허용해 줄 때, 그냥 고맙게 받아들여.]

[대체 누구에게?]

[누구긴. 우릴 마신으로 만들어줄…….]

[만들어줄 누구?]

천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과연 누굴까? 또 다른 마신일까? 아니면 지옥의 염왕일까? 아니면 하늘일까? 운명일까?

어쨌든 천마를 생각해서 천기심환공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구결은 당신도 다 외웠지?]

[외웠지.]

[어떴어? 이해가는 부분이 있어?]

[더럽게 어렵더라.]

[그렇지? 당신도 모르겠지?]

[어쩌면 나는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시험과 관련해서는 기억이 모두 다 지워졌다는 것도 신기했다.  끼니때마다 맛있는 요리가 차려지고, 침상이 정리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둘이 힘을 합치면 풀 수 있을지 모르지.]

[좋아! 한번 해보자.]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마신결을 풀려고 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결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

"마철군이 무림맹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천소선이 인상을 굳혔다.

"생각보다 빠르군."

"네. 주철룡이 죽고 철기단이 마철군의 손아귀에 넘어가자 다른 조직의 수장들이 하나둘씩 마철군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갈대 같은 놈들!"

무림맹과 같은 큰 세력에 속한 조직들의 생리였다. 대세의 흐름에 민감하고 눈치를 잘 보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번에 할아버지와 피신을 하면서 그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령인까지 마철군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천소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과 천도문이 제대로 손을 잡으면, 쉽게 볼 힘이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삼안각은 물론이고, 강호의 모든 정보망을 다 이용해서 우릴 찾고 있습니다."

"우릴 찾아내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만…… 오래 버티진 못할 겁니다."

"알았다."

수하가 밖으로 나갔다.

천소선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천란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 안가에 왔을 때만 해도 대법이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법이 끝날 시간이 지났음에도 천란은 열리지 않았다.

"할아버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불안한 마음만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밖에서 천란을 억지로 열 수는 없었다. 이 신묘한 장치를 그렇게 다뤘다간 결코 좋은 결과를 보진 못할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안에서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편으론 기대되는 바도 있었다.

이번 대법은 성공확률이 불과 이 할이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제시간에 천란이 열리면서 할아버지의 시체를 내놓았을 것이다. 대법의 실패는 곧 죽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났음에도 천란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변수가 발생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만약 대법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완벽하게 재탄생할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내공을 모두 전수받은 자신이 함께라면 이 강호는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다.

무림맹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를 제거하려든 암흑 상계에도 제대로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천소선의 시선이 다시 천란을 향했다.

'할아버지.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하지만 굳게 닫힌 천란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

마신성에 들어온 지 칠 일이 지났다.

하지만 나와 천마는 여전히 마신영풍보를 이해하지 못했다. 말없이 비급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천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났나?]

[아니.]

[화났지? 너 화났어. 아침부터 한마디도 안하고 있었어.]

[안 났다니까!]

[났군.]

[그래, 났다. 이 사람아! 천마가 이것도 못 풀어?]

[헐. 이 자식 미친 것 아니야? 이게 내 시험이야? 내 시험이냐고!]

[우리 시험이지.]

[네 시험이라고!]

나는 비급을 덮고 방을 나왔다. 시험이 있는 방과 침소, 그리고 식사를 하는 대청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으니까.

[원래 불가능한 시험 아닌가?]

[무슨 헛소리냐?]

[그렇게 흥분할 게 아니라, 당신과 나 둘이 머리를 맞댔는데도 모른다면, 과연 이걸 풀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니까 전설로 내려온 마신결이지.]

그래, 신이 되는 길이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이대로라면 마신결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때 천마가 먼저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다.

[네게 혈뢰천화공을 전수해주겠다.]

[혈뢰천화공을? 그건 당신 독문마공이잖아?]

[혹시 네가 이것을 익히면 마신영풍보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럴까? 한데 괜찮겠어?]

[상관없다. 이제 와서 내 독문무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천마가 자신의 무공에 얼마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그런 그가 혈뢰천화공을 전수해 준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겠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천마는 이 마신결을 얻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좋아. 해보자.]

우린 뭐든 해봐야 했으니까.

나는 천마에게 혈뢰천화공을 전수받았다. 이미 혈뢰심법을 배웠기에 그 과정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이게 내 무공수준이다. 당사자가 직접 가르치면 천마의 무공이라 할지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정도의 실력.

[실전은 나가서 펼쳐보자.]

[나간다고?]

[왜? 나가면 안 돼? 여기서 당신의 그 무공을 펼쳐볼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한데. 한 번도 이 건물을 나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그 순간 나는 흠칫했다.

나 역시 이 건물을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선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이 되었으니까. 그것도 아주 굉장히 맛있는 요리였고, 아주 편안한 잠자리였으니까.

다른 천마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천마쯤 되면 안 가져 본 것도 없을 것이고, 안 해본 것도 없었을 테니까. 굳이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어떤 시험은 아니었을까?

[나가보고 싶다.]

[안 돼! 그랬다가…….]

[그랬다가 뭐?]

우리가 나가는 것을 막는 결정적인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괜히 함부로 나갔다가 시험이 취소되면 어쩌려고?]

모든 천마들이 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잖아도 마신성이란 이유만으로 저렇게 경직되어 있는데.

[이 안에서만 치러야 하는 시험이라면 저 문은 열리지 않게 해 두었을 거다. 만약 함부로 이곳을 벗어났다고 시험에서 떨어지게 한다면, 이 시험을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뭐? 이 자식이! 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마신결을 무시하는 것이냐?]

[당신이 여러 번 그랬지? 내가 틀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렇게 따지면 이것 역시 마찬가지잖아? 마신이 되는 굉장한 시험인데 좁고 갑갑한 틀에 갇혀 있잖아?]

천마는 뭐라 항변하지 못했다.

내가 한풀 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네 전설이 그보다는 뛰어나다고 믿는다. 당신은?]

잠시 사이를 두고 천마가 대답했다.

[……나도 믿는다.]

[그럼 나가보자.]

성큼성큼 문으로 걸어갔다.

들어올 때 자동으로 열렸던 것처럼 앞에 서자 문이 활짝 열렸다.

난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실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시험에서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건물에서 삼십여 보 걸어 나온 후, 나는 다시 건물로 걸어갔다.

닫혔던 문이 다시 자동으로 열렸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여전히 시험을 치르는 방에는 비급이 놓여 있었고, 침소나 대청의 요리도 그대로였다.

[거 봐. 나가도 되는 거잖아?]

[정말 그렇군.]

우리 두 사람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살짝 상기 되어 있었다.

이곳을 빠져나오는 일은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지만, 그렇지만 누군가 쉽게 선택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천마의 무공을 실전으로 펼쳐보려는 생각은 잊은 지 오래였다.

넓은 연무장 주위로 다른 건물들이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성이었으니 시험이 치러지는 건물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건물들이 있겠는가?

나는 우리가 나온 건물의 좌측에 세워진 커다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 한번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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