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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결(2)
[이곳에서 마신결을 전수받는다고?]
나는 다시 한 번 성을 바라보았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드는 엄청난 규모였다.
[혹시 진법으로 만들어진 성인가?]
[아니다. 실제 성이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서 물어본 것이지, 이곳이 진법 내부가 아니란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마공이나 사술을 부리는 것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이 성은 대체 언제 지어진 것이지?]
[정확히 모른다. 아마 수백 년 전에 지어졌겠지.]
[대체 어떻게 이런 성을 지은 거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런 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거지?]
무림맹주였던 내가 모른다면, 세상 사람들 역시 모른다는 뜻이다. 하긴, 혈천신교 내에서도 이곳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야 아무도 모르게 지었으니까. 앞서 우리가 지나온 진법을 지나지 않는 한, 절대 발견할 수 없으니까. 우린 이곳을 마신성(魔神城)이라고 부른다.]
[마신성!]
[만약 마신이 된다면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곳이 당신들 소유가 아니란 뜻이군?]
[그래. 이곳은 혈천신교의 최고 성지이지만 우린 지금 손님에 불과하다.]
이곳은 정말이지 마신이란 말과 잘 어울리는 성이었다. 마신이란 말이 주는 그 강렬한 느낌처럼, 이 거대하고 웅장한 성 역시 보통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어떤 기운이 있었다.
내가 천천히 들판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겼다.
아름다운 꽂과 풀들이 피어 있는 그곳으로 토끼가 뛰어다녔고, 나무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녔다. 하늘은 높았고, 공기는 더 없이 맑았다.
아직 성에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가히 새외선경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까워질수록 성은 웅장한 모습을 제대로 드러냈다.
천마가 내게 설명했다.
[마신결은 무공구결이 아니다.]
[구결이 아니라면?]
[시험이다.]
[시험이라고?]
사실 예상한 바였다. 평범한 방식으로 구결을 전수하고 그 비밀을 푸는 것이었다면, 굳이 이곳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 저 성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그렇다면 역대 모든 천마들이 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로군.]
[그래.]
그 역대 천마에는 내 몸속에 들어 있는 천마도 포함될 것이다.
[대체 어떤 시험이기에?]
[해보면 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뭔가?]
[전대 천마가 시험에 떨어지면 그 내용을 후대에 알려주지 않았나? 그러면 후대가 연구를 거듭해서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 텐데.]
[우선 이 시험은 단 한 번만 도전할 수 있다. 그리고 시험을 포기하고 나오는 순간 시험과 관련된 내용은 모두 잊게 된다.]
[아, 그랬군.]
시험과 관련한 의구심은 풀렸지만 동시에 묘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생겨났다.
계속 걸음을 옮겨 성 아래까지 도착했다.
성문은 어찌나 거대한지 내가 전력을 다해 일장을 날린다 하더라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그런지 주먹을 날려보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다.
만약 진짜 부서지면, 난 시험을 치러보기도 전에 마신성의 정문을 때려 부순 최초의 인물이 될 테니까.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옆에 작은 석판이 불어 있었다. 고급 기관에서 볼 수 있는 내공을 주입하는 석판이었다.
[손바닥을 대고 혈뢰심법을 구사해라.]
천마가 시키는 대로 손바닥을 대고 혈뢰심법을 운기했다. 진기가 일주천하면서 혈뢰심법이 손바닥 끝으로 전해졌다. 다음 순간.
쿠르르르릉.
거대한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워낙 문이 커서 아주 천천히 열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문은 빠르고 부드럽게 열렸다.
이렇게 거대한 성문이 보통의 문처럼 열리다니?
나는 이 모습만으로도 마신성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드넓은 연무장이 펼쳐졌다. 성의 규모에 어울리는 크기였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넓은 연무장을 본 적이 없었다. 저 멀리 있는 건물 역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연무장과 건물을 보고 있자니, 규모가 주는 압도감을 넘어서 공간의 낭비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내 시선을 휘어잡은 것은 정문에서 중앙 건물로 이어진 길 양옆에 세워진 석상들이었다. 거대한 크기의 석상이 좌우에 서 있었는데, 악귀와 마귀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석상들은 팔짱을 낀 재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부터 칼을 내지르거나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등, 다양한 동작들을 하고 있었다.
석상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걸었다.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검을 내뻗은 거대석상이 금방이라도 살아나 나를 내리칠 것만 같았다.
[여기 관리하는 사람 있지?]
걸어가고 있는 길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있지. 하지만 네 앞에는 결코 나타나진 않을 거야.]
[그렇군.]
그렇게 거대석상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중앙의 성으로 들어 갔다.
그곳은 굳이 석판에 손을 대지 않더라도 문 앞에 서는 순간,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문 뒤에 아무도 없는 것으로 볼 때 아마 발판에 문을 열어주는 장치가 되어 있었거나, 아니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가 기관 장치로 열어준 것 같았다.
내부의 구조는 간단했다.
문 뒤로 넓은 복도가 있었고 그 끝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그 곳이 내가 시험을 치를 장소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좌즉에는 대청이 있었고 우측에는 방문이 하나 있었다. 그 대청에서 음식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큰 식탁에 요리가 차려져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이었다.
나는 이 요리가 나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먼저 소고기로 만든 요리를 한 점 맛보았다. 고기가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서 없어졌다. 정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었다. 그 옆의 매운 고추로 조림한 돼지고기는 자극적이면서도 맛있었고, 국수는 더없이 시원하고 깔끔했다.
나는 그곳에서 요리를 배불리 먹었다. 정말 이런 요리는 처음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요리한 숙수를 납치라도 하고 싶군.]
[그건 마신결의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 같군.]
[왜지?]
[나 역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곳에 왔었지. 그때 한 달 가까이를 이곳에 있었다. 한 달 내내 이곳에서 음식을 먹었지. 시험을 치르다가 배가 고프면 언제라도 이곳에 오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이 성에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럴 리가?]
이런 음식을 차리려면 한두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한데 천마의 무공으로 사람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고? 아무리 마신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곳은 강호에서 가장 신비한 곳이다.]
[음식에 약이라도 탔나보지. 당신이 자는 사이에 음식을 차렸겠지.]
[이미…….]
평소처럼 때 '이 미친놈'이라고 버럭 소리치려던 천마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혈천신교의 성지이다 보니 그는 언행을 조심하고 있었다.
물론 천마에게 했던 말은 그를 놀리려는 말이었다.
당장 오늘의 이 요리만 봐도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 요리는 이미 다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진법을 통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 많은 요리를 다 해냈을까?
내가 도착해서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된 후, 그때부터 나오는 음식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요리를 준비해 둔단 말인가?
설마 언젠가 올 그 누군가를 위해 매일매일 요리를 하는 것일까? 천마만이 시험에 도전할 수 있는 이곳인데?
만약 그렇다면? 이곳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사람은 미친놈이 틀림없다.
그냥 이곳 관리자들이 평소 먹는 요리를 내놓았다고 생각하면 편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요리가 너무 고급스러웠다.
어쨌든 덕분에 맛있는 요리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요기를 할 음식뿐만 아니라 한옆에는 온갖 종류의 술이 준비 되어 있었고, 귀한 차도 있었다.
나는 맛 좋은 차를 마신 후, 대청의 건너편 방을 열어보았다.
과연 내 짐작대로 그곳은 침소였다. 침상에는 깨끗한 이불이 깔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 벌러덩 누웠다.
천마가 다급히 물었다.
[이봐, 뭐해?]
[너무 피곤해서. 좀 자고 일어날게.]
[뭐? 이 미친놈이? 지금 자겠다고? 잠이 와?]
[이 시험 길어지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서두를 것 없잖아? 나중에 깨고 나서 시험을 치르지.]
나는 그길로 잠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어서였는지 잠이 잘 왔다.
그대로 푹 잠이 들었다. 몇 마디 구시렁대던 천마도 이내 조용해졌다.
얼마나 잤을까?
그렇게 많이 먹고 잤는데 또 배가 고픈 것을 보니 온종일 잠만 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건너편 대청으로 갔다. 과연 새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어제와 다른 요리들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정말 미친 거야.]
내가 언제 일어날 줄 알고 막 지은 듯한 요리를 준비해 둔단 말인가?
내 말에 천마가 말했다.
[미친놈은 너지. 마신결의 시험을 치르러 와서 하루 종일 잠만 자다니! 넌 대체 어떻게 된 놈이냐? 궁금하지도 않냐?]
[당연히 궁금하지.]
[한데 왜 이렇게 여유만만이지?]
[본래 시험이란 최상의 상태에서 치르는 거다. 몸도 마음도.]
내 말에 천마가 흠칫 하는 것이 느껴졌다. 깊이 공감한 모양이다. 또한 이런 자책도 있었을 것이다.
[당신은 오자마자 바로 시험에 임했지? 허겁지겁 달려와서. 그렇지?]
천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마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 되었음을 깨달은 모양이다.
다시 밥을 잘 챙겨먹고 난 후에야 나는 복도 끝에 있는 커다란 문 앞에 섰다.
문 앞에서 천마가 말했다.
[이제부터 네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
[그래.]
[만약에 네가 말한 하늘이 있다면…… 왜 너와 나를 만나게 했을까?]
[글쎄.]
[나는 본교의 숙원인 이 마신결을 풀기 위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이 혈천신교의 숙원을 푸는 일이 될까? 나는 혈천신교 사람도 아닌데.
[나를 과대평가해주는 것은 좋지만, 과연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할 수 있을 거다.]
과연 내가 그것을 해낸다면? 문득 마신결과 관련해 혈천신교에 전해 내려온다는 말이 떠올랐다.
<마신결의 비밀을 풀면 능히 고금제일의 마공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마신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비밀을 풀면 정말 나는 마신이 되는 것일까?
전생에 무림맹주를 지냈던 내가 이번 생에서 마신이 된다고?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운명의 이끌림을 따라 이곳까지 왔다.
이제 내 운명은 이 문 너머에서 결정될 것이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 문을 열려고 하는데 천마가 말했다.
[이봐, 하진이.]
[왜 그러나?]
[잘해라.]
나는 알지 못한다. 그의 속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나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설령 그와 느끼는 이 우정을 그도 느끼고 있다 해도, 그래서 나를 친구로 여긴다 해도…… 그는 천마다.
우리가 쌓아올린 우정이 단 한 번의 파도에 휩쓸려갈 모래탑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봐, 천광이.]
[왜?]
[내게 기회를 줘서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천마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의 탁자와 의자. 그 탁자 위에 놓인 단 한 권의 책자. 그럼에도 방 안의 공기가 달랐다. 긴장해서인지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가 들어선 문과 일직선인 벽에 또 다른 문이 있었고, 그 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책자에 적힌 내용을 모두 익히면 이 문이 열릴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책자의 표지에는 마신영풍보(魔神英風步)라고 적혀 있었다. 무공비급? 그것도 처음 들어보는 보법이었다.
왜 보법이지?
무공을 익히는 시험이라면 검법이거나 도법, 권법이어야 했을 텐데.
다시 내 시선이 정면의 문을 향했다.
어쩌면 시험은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첫 번째 시험에 불과한 것이다. 마신결의 비밀을 푸는 일이 고작 보법 하나를 익히는 것으로 끝일 리는 없었으니까.
시험에 대해 천마가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는 아예 입도 열지 않았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차피 그는 이 방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천천히 마신영풍보를 읽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었다. 한차례 읽고 난 소감은 이것이었다.
어렵다.
나는 어지간한 무공은 한 번 보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한데 마신영풍보는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이해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이 무공,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