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천마-229화 (229/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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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결(4)

그곳은 무인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층마다 수십여 개의 큰 방들이 있었고, 그 방에는 다시 수십 명의 무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방마다 꼼꼼히 살펴보았다.

원래 시험이 치러지던 건물을 나오는 것이 혹시 어떤 시험이라면? 풀어야 할 어떤 것은 분명 밖에 있을 테니까.

그렇게 건물을 둘러본 나는 또 다른 건물을 둘러보았다.

그 옆 건물은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객잔처럼 꾸며진 곳이었는데 수백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한옆에 수십 명의 숙수들이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붙어 있었다.

그 옆에는 무기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고, 말들을 키울 수 있는 마구간도 있었다. 옷을 만들고, 세탁하고, 말리는 곳도 있었고, 온갖 종류의 채소를 키우는 텃밭도 있었다.

각각의 규모들이 얼마나 컸는지,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마구간은 수천 마리의 말을 키울 수 있었는데, 그 규모가 무림맹의 그것보다 두 배는 더 컸다.

건물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건물 외벽에는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방비책이 마련되어 있었다. 기관과 진법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가동되지 않고 있었음에도 그것들이 범상치 않는 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잘 지어진 성이다.]

[당연하지.]

[자, 이번에는 저길 둘러볼까?]

[계속 보려고?]

[봐야지. 기왕 나선 것 구석구석 남김없이 다 보려고. 왜? 벌써 지겨워?]

[지겹다기보다는 굳이 다 볼 필요가 있냐는 것이지. 차라리 혈뢰천화공이나 익히는 것이 어때?]

자신의 독문무공을 전수해줬는데, 내가 딴데 정신을 파니 내심 섭섭할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내가 좋은 어조로 말했다.

[나중에. 우선은 좀 더 둘러보자고.]

[네 뜻이 그렇다면.]

뒤쪽에 있던 건물은 실내에 마련된 수련장이었다. 비무를 할 수 있는 비무장부터, 십팔반 병장기를 각각 수련할 수 있는 곳들까지. 비가 오거나 해서 외부에서 수련할 수 없을 때, 내부에서 충분히 수련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면 볼수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신성이라 이름 붙어 있지만 이곳은 그 어떤 곳보다 무인들을 수용하고 양성하기에 최적화된 곳이었다.

마신이 되어 강호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망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다양한 건물들을 볼 수 있었지만 구경하면 할수록 앞서 보았던 같은 용도의 건물들이 반복되었다.

한 구역을 지나면 또 다른 구역이 나오고, 그곳에는 다시 무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 식사를 하는 장소, 무기고, 기타 창고들, 수련장 따위가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하나 다 들여다보았다.

[이놈아, 뭘 그리 자세히 살펴보냐? 지도라도 만들 작정이냐?]

[하하하.]

참다못한 천마가 불평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곳들이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나 역시 귀찮고 지루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믿음이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선택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음을.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내가 같은 구조를 지닌 방을 계속 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던 중 내 움직임이 멈췄다.

[어라? 여긴 뭔가 다르군.]

무인들의 숙소를 계속 확인하던 중에 다른 방이 하나 끼어 있었던 것이다.

[서재 같은데?]

[그러네.]

사방에 책장이 있었고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시험을 보던 건물을 나와 이곳 건물의 이 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란 것을.

그랬기에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서재 일 수도 있지만, 내가 찾아야 했던 곳일 수도 있었으니까.

내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천마가 물었다.

[왜? 책 보려고?]

천마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때론 책이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잖아?]

[오랜만에 꼰대로 돌아갔군.]

[하하. 온 김에 한번 둘러보자고.]

안으로 들어선 내가 천천히 그곳을 둘러보았다.

책장에는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었다. 역사에 대한 책도 있었고, 지리에 대한 책도 있었다. 무공에 관련된 비급들도 있었다.

'오, 이 무공이 이곳에?'

그런 생각이 드는 무공비급도 있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나는 꼼꼼히 책들을 살펴보았다. 이 성의 건물들을, 그 건물들의 방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서 이 서재를 찾았다.

그렇다면 이 세재에서도 그런 꼼꼼함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첫 번째 책장의 첫 번째 칸의 책부터 하나하나 살펴나가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서책을 살폈을까?

내 눈에 한 권의 책이 들어왔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난 두 눈을 부릅떴다.

떨리는 손으로 책을 꺼냈다.

제목을 제대로 확인한 천마가 먼저 소리쳤다.

[맙소사!]

책의 제목은 이것이었다.

마신영풍보 주해(注解).

마신영풍보를 해석하는 책이었다.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정말 앞서 내용을 전혀 모르겠던 마신영풍보 비급을 해설해 둔 책자였다. 생소한 단어를 해석해두었고, 심법과 움직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두었다.

[이런 내용이었군.]

[망할. 처음부터 이렇게 써두면 될 것을.]

천마의 불평에 내가 말했다.

[일종의 시험인 거지. 그 건물을 나올 수 있는지. 그래서 이 책을 찾을 수 있는지.]

시험은 여러 가지를 요구했다.

우선 경직된 사고를 깨야 했다.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했다.

건물을 나가면 시험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건물을 나와서는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과연 보통 사람이 이 서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서재에서 이 해석집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고맙다.]

내 인사에 천마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갑자기 왜?]

[이 책을 찾은 것은 당신 덕분이야.]

경직된 사고를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천마가 나를 정파 꼰대라 놀리고, 틀에 갇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그곳을 나올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절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싱거운 놈!]

천마가 툭 내뱉었지만 내 말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난 그곳에 서서 책자를 천천히 읽었다. 이미 원래 내용은 숙지하고 있었기에 해설집을 읽는 것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망할! 이런 뜻이었군.]

천마 역시 대번에 이해했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알고 나면 정말 별것 아닌 것처럼, 이 무공도 그러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무공이 별것 아니란 뜻은 아니었다.

이 보법은 정말 처음 보는 굉장한 것이었다.

[배운 것을 한번 시험해볼까?]

[가능하겠어?]

천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 무공은 심법부터 정공도 마공도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만약 내가 혈뢰심법과 혈뢰천화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이 무공을 이렇게 쉽게 익히진 못했을 것이다.

이 무공은 확실히 마공과 정공 모두를 기반에 두고 있었는데, 그 구분은 무의미했다.

아마도 내가 사공을 익혔다면 사공 역시 기반을 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무공은 지금 우리 세대의 무공과는 차원이 다른 무공이었다.

우리가 익혔던 무공보다 펄씬 상위의 무공이라는 말이다. 모두를 아우르면서도, 동시에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심해. 보통 무공이 아니다.]

[알았어.]

곧장 건물 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가벼운 움직임부터 시도했다. 그야말로 걷고 서는 아주 기초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느낌이 달랐다.

[다르다.]

[정말 그렇군.]

확실히 더 빠르고 경쾌하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한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격이 다르다는 느낌. 기본적인 움직임에도 심오함이 느껴졌다.

정말 이것이 마신결의 무공인가?

나도 천마도 흥분했다. 그도 나도 무림맹주와 천마이기 이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인이었으니까.

기본적인 움직임도 계속 연구하고 수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은 처음부터 가능한 움직임을 다 해볼 생각이었다.

다음으로는 다음 단계의 움직임을 해보았다. 전후좌우로 움직였다. 아주 대단히 현란하지 않았음에도, 그 어떤 변칙적인 공격도 다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느껴졌다.

[아! 정말 대단하다!]

처음에는 이런 감탄을 하다가 결국에는 천마가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아. 대체 우린 지금까지 무슨 무공을 배웠던 거냐?]

물론 과장이 조금 깃든 말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이 보법이 주는 충격은 컸다.

구결대로 몸을 움직였다. 움직임의 반경이 점점 커졌다.

내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이 움직였다.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했다. 무엇보다 움직임에 격조가 있었다.

어려운 부분은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다.

정말이지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그렇게 기본적인 움직임을 펼쳐본 후에 나는 한 가지 시도를 위해 연무장 가장자리에 섰다.

이번에 시도할 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닌 이름이 붙은 초식이었다.

초식의 이름은 마신일보(魔神一步)였다.

마신이 걷는 한 걸음이란 뜻이었는데, 과연 그 한 걸음이 어떨까?

주해의 설명대로라면 단번에 이 넓은 연무장을 가로지를 수 있다고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기서 저 끝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지금의 내 경신술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물론 천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는 인간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선 채로 숨을 고르던 내가 목표한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쉬이이이이 이이이이잉.

"아앗!"

내 몸을 조종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비명이 터져 나오던 순간.

꽝!

빛처럼 빠르게 연무장을 가로지른 내가 건물 벽에 사정없이 부딪쳤다.

건물에 구멍이 뻥 뚫렸고 나는 바닥을 뒹굴었다.

후두두둑.

쏟아지는 벽의 잔해와 먼지에 나는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 후 몸을 일으켰다. 처음 몸을 날린 곳과 이곳은 이렇게 한 번에 가로지를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더 놀라운 일은 여기 건물이 없었다면 훨씬 더 멀리까지 갔을 것이란 점이었다.

그것도 첫 번째 시도에서.

마신일보란 첫 초식이 이렇다면 다음에 익히게 될 마신비행 (魔神飛行)은 어떤 움직임이란 말인가? 또 그 다음 초식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천마의 물음에 내가 깊어진 눈빛으로 대답했다.

[어쩌면…… 마신결의 시험을 통과하면 마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

꽝! 꽝!

밖에서 들려오는 연속된 굉음에 천소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하가 달려와서 보고했다.

"멸마단과 철기단입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물론 천소선은 그럴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들어가 있는 천란을 두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수하가 다시 위로 뛰어올라갔다.

생각보다 빨리 위치가 들통 났다. 어쩌면 암흑상계까지 가세해서 놈들에게 정보를 흘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소선이 천란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 이제 나오셔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천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열마단과 철기단이 함께 쳐들어왔다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곳 밀실은 숨어 지내기에 적합한 곳이지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는 최악인 곳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주무공인 광살풍은 고수를 상대하는데 특화된 무공이지, 다수를 상대하는데 적합한 무공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그렇다고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챙챙챙챙챙!

가까이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꽝!

문이 부서지며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쇄애애애액!

천소선의 일장에 무인들이 휩쓸려 날아갔다.

상대는 무림맹의 정예들이었다. 한 번 당한 이상 절벽으로 치닫는 동물 떼처럼 무작정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놈들이 독탄이나 진천뢰를 던져 넣으면? 불을 지르면?

자신 혼자라면 벽을 부수고라도 탈출하겠지만, 천란을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가서 싸워야 한다.'

나중 일이 어떻게 되던 나가야 했다.

천소선이 입구로 몸을 날렸다. 두 번째 무인들이 진입하면서 검을 찔렀다.

쇄애애앵!

천소선이 쌍장을 휘둘렀다. 무인들이 온몸이 으스러지며 튕겨져 날아갔다.

그때였다.

툭,툭,툭,

진천뢰가 연달아 굴러 들어왔다.

천소선이 뒤로 물러나며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꽈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펼친 덕분에 천란이 부서지진 않았다.

"빌어먹을!"

달려 나가려고 천소선이 주먹을 말아 쥐던 바로 그때였다.

구르르릉.

뒤에 있던 천란이 한차례 크게 진동하더니.

덜컹.

천란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천소선이 깜짝 놀랐다.

안에서 누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젊은 낯선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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