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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40화 (140/170)

140.

권준홍은 배지슬이 그를 지키려고 뒤에 붙었다가 같이 기겁한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최후의 던전> 열렸고, <종말 방어전> D시 방어선 뚫렸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저거 독성 물질이라 맞으면 골로 가고요. 여기 있으면 다 죽겠어서 지금 목숨 걸고 시민들 대피소로 이동시킬 건데, 죽기 전에 고백하시든가요.”

“……!?”

강울림과 소서정마저 ‘이게 무슨 헛소리야’라는 표정으로 이단우를 돌아보는데…….

화악!

권준홍의 안에서부터 마력이 솟아오르더니 외부로 뿜어져 나왔다. 눈부신 흰빛의 마력은 지원가 계열, 그중에서도 힐러의 특징이었다!

“……!”

띠링!

권준홍은 자신에게만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허공을 훑었다.

이단우는 그 잠깐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너 뭐 떴어.”

“제, 제가 힐러……?”

권준홍이 더듬거렸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헌터가 될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어, 어머.”

그 순간 배지슬의 얼굴이 빨개졌다.

“어…… 어?”

얼이 빠져 있던 권준홍의 얼굴도 달아올랐다.

헌터의 각성 조건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권준홍의 각성 조건은 명백했다.

배지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

두 사람이 어쩔 줄 모르고 서로를 쳐다보는 걸 이단우는 오 초쯤 기다려 줬다.

‘포옹이라도 해라.’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커플이었다면 과거에 진작 이어지지 않았겠는가?

단우는 그냥 말했다.

“너 배지슬 살리고 싶지. 그럼 우리 팀 들어와라.”

“네. ……네?!”

* * *

‘이 새낀 잡았고.’

단우는 팀원들을 돌아봤다.

“우리 대피소로 시민들 이동시켜야 돼.”

“아니 잠깐. 우리한테 상의도 없이 팀원 받아 놓고 화제 돌리지 말래?”

소서정이 팔짱을 꼈다.

그는 말이 많아서 설득하려면 시간을 써야 하는 상대였으나, 차우원은 간단히 물리쳤다.

“그러게. 서정이 말이 맞다. 나도 상의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좀 나중에 하자. 우리 출발해야 돼.”

“뭐? 언제?”

“지금.”

단우가 대답했다.

“몬스터 웨이브 오 분 뒤에 방어선 도달 예정이야. 지금 바로 가야 돼. 지원팀이 인솔할 거라 우리가 민간인 챙길 필요는 없고.”

“……나 우리가 민간인 챙겨야 하는지를 궁금해한 건 아니었거든? 작전 회의를 오 분 전에 하는 팀이 어디에 있냐?!”

“여기 있잖아. 그리고 이제 사 분 남았어.”

소서정이 입을 닫았다. 그러자 강울림이 물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오는데 왜 민간인을 출발시켜?”

‘이 자식은 자기도 민간인인 걸 알고 있나?’

신분은 헌터지만 통솔에 따라 대피소로 가야 하는 처지라는 점에서 강울림은 민간인이었다. 실은 그보다 나빴다. 스스로는 걷기도 힘든 병자니까.

그러나 단우는 대답했다.

“걔네 지능종이야. 건물이 있으면 그 안에 먹잇감이 있다는 걸 알 정도로.”

“그런 건 어떻게 알아?”

“몬스터 지능도 확인 가능해?”

“이리로 오면서 가로막는 건물 다 입으로 철거하고 있다니까 맞겠지.”

“……?”

“그냥 보이는 건 다 부수는 거 아니야? 몬스터잖아.”

강울림이 물었다.

‘얘는 왜 생각을 안 하지?’

단우는 참았다. 평소처럼 대하기에 강울림은 덜 튼튼해 보이는 꼴이었다…….

“전기가 안 끊겼잖아.”

“그게 왜?”

“부수는 게 취미면 전선은 놔뒀겠어? 건물만 먹어 치우는 거야. 뭐 콘크리트가 식성에 맞는 놈들이어도 민간인을 건물 안에 놔둘 수는 없지. 몬스터가 건물 먹어 치울 때 안에서 깔려 죽거나 아니면 별식 발견한 놈들한테 같이 먹히지 않겠어?”

“……!”

강울림의 얼굴에 ‘그렇구나’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이해하면 다 납득한 거여서 단우는 물었다.

“그러니까 민간인 대피시키고 우리는 몬스터 웨이브 막을 거야. 이의 있는 사람.”

강울림이 다시 손을 들었다.

‘소서정이 아니라?’

“말해.”

“……나는 뭐 해?”

강울림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단우는 목까지 붕대를 감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네가 뭘 하냐.’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넌 지원팀이랑 같이 도망치고.”

“…….”

“살아 있어.”

“……!”

강울림은 깜짝 놀라더니 “응, 그럴게.” 하고 비장하게 말했다.

못마땅한 기색으로 권준홍을 힐끗거리던 소서정도 쓸데없는 견제를 멈추고 단우를 돌아봤다.

차우원이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 단우가 걱정하니까 울림이는 회복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

단우는 딱히 그런 소리를 한 기억이 없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시간 없다.’

그가 권준홍을 돌아봤다.

“너는 배지슬이랑 강울림 끌고 지원팀 가고. 너 최상위 티어 힐러니까 죽지 않을 만큼만 혹사시켜 달라고 말해.”

“네?”

‘뭐가 ‘네’냐.’

권준홍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표정이었으나 단우는 그를 다루는 법을 알았다. 배지슬이랑 비슷한 부류가 아닌가?

“하늘에서 독 떨어져서 피난길에 다들 골골댈 텐데, 너 그거 두고 보기 싫지.”

“네?”

“죄다 앓아눕고 뒤따라온 몬스터한테 잡아먹히는 엔딩이 나아?”

“아니요?! 그, 물론 다들 사셨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어. 네 힘으로 잘 고쳐 줘라. 힘들면 포션 먹고.”

단우는 인벤토리를 열고 소지한 마나 포션을 전부 털어 줬다. 포션병이 와르르 쏟아져서 권준홍은 좌우로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느라 야단이었다.

“어어, 네?!”

“잘 받아.”

그러느라 권준홍은 ‘못 하겠는데요’라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권준홍은 기본기도 없다.’

체격은 괜찮은데 몸 쓰는 일을 별로 안 해 봤다. 그냥 대학생이다.

그러나 포지션이 힐러이니만큼 몸 쓰는 재주 없는 건 크게 상관없었고…….

‘힐만 잘하면 된다.’

<최후의 던전>에서는.

단우는 과거에도 초보자 셋을 훈련시켜 봤다. 그러나 차치원은 포지션 변경일 뿐 딜러로서의 경험이 있는 데다 기희윤 놈은 별격이었다. 단우가 처음부터 끝까지 취향에 맞춰 만들어 낸 헌터는 권준홍 하나인 셈이었다.

그 경험으로, 단우는 생판 초보자를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초보 경험치 먹이는 데는 질보다 양이다.’

권준홍이 다 듣고도 제자리에 서 있어서 단우는 턱짓했다.

“뭐 해? 안 나가고. 이 분 남았다.”

“네?”

“그냥 말 들어. 휠체어 어디 있어?”

강울림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래도 큰 목소리라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듣긴 했다.

“…네?”

권준홍은 여전히 얼빠진 채로 강울림이 탄 휠체어를 밀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이미 복도에는 대피하려는 시민들로 가득해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

“……?”

그가 넋 나간 얼굴로 병실을 돌아봤다.

단우는 무시하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서정을 쳐다봤다.

“잠깐. 쟤네 다 나가고, 지원팀은 민간인 이끌고, 우리 셋 남잖아? 우리가 또 웨이브 막아?!”

소서정이 기본 산수를 했다.

“어.”

“……나는 아직 마력 회복 덜 됐거든?”

‘이 자식은 좀 더 나대는 성격이었는데.’

거만하기 짝이 없어서 어디서든 잘난 체를 하지 않고는 못 견뎠다. 그런데 어릴 때는 몸 사리는 게 우선이었는지, 이상하게 어린 소서정은 잘도 발을 빼려 들었다.

이단우는 자기가 너무 굴려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4차 웨이브 방어는 빠졌으니 30분은 쉬지 않았나.’

마력을 한계 이상으로 쥐어짜면 회복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쯤이면 스킬 한두 개 쓸 마력은 돌아왔을 텐데 엄살이었다.

그러나 단우는 관대하게 말했다.

“어. 넌 놀든가.”

“……진짜로 아예 못 쓴다는 건 아니고. 너 뭐 잘못 먹었니?”

소서정이 얌전하게 물었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한계라는 건 이단우도 알고 있었다.

‘쓰러지면 손해다.’

소서정이 마력의 한계를 봐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최후의 던전>이다.

단우는 답하지 않고 차우원을 봤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참는 듯한 얼굴로 단우를 보고 있었다.

‘세상 망해 가는데 뭐가 즐겁지.’

단우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차우원이 웃는 게 싫지 않았다. 과거의 차우원은 잘 웃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단우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나 성검 쓴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갖고 싶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네 손에 쥐여 줄 테니까. 날 신경 써서 한 얘기면, 지금이 취소할 때야.”

“날 그렇게 배려심 넘치는 사람으로 봐 줘서 고마운데, 이 얘기 슬슬 지겹다.”

“…….”

“단우야, 네가 성검의 주인이야.”

단우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가 넋을 놓을 만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는데 차우원은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들었다.

차우원은 언제나 그랬다. 이단우를 현실로 끄집어냈다.

단우는 주변을 돌아봤다. 이 방에는 방금 전까지 <차우원 팀>의 모든 인원이 있었는데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우는 앞으로도 누구도 잃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

그는 인벤토리에서 성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

훅 퍼진 빛이 성검 안으로 빨려 들어가며, 검은 이단우의 손안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내 주인.

성검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그것이 원하는 걸 말하라고 요구했다.

이단우의 염원은 차우원이 죽은 뒤로 한 번도 바뀐 적 없었다.

이 종말을 끝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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