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도망칩시다.
지원팀 힐러는 이단우의 말이 ‘다 같이 도망치자’인 줄 알았다.
‘등 뒤까지 도달한 몬스터에게서 어떻게 도망치자는 거지?’
의문은 들었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시간이 없는데 할 일은 많았고, 무엇보다 이단우에게 무슨 방법이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원팀의 리더였으나 거대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보다 우수한 헌터의 판단을 따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 방법이 이거였나?
-우리가 막을 동안 대피소로 가세요.
-예?
그러고 이단우와 차우원은 가 버렸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마법사까지 남겨 두고.
다른 젊은 헌터가 한 말이었다면 힐러는 ‘닥치고 같이 튀어라’라거나 뭐 그런 소리를 했을 터였다. 그러나 상대는 이단우였다.
‘……방법이 있겠지!’
힐러는 그 말대로 했다. 민간인을 보호하며 대피소로 향했다.
그러며 미친 듯이 주변에 지원 요청을 돌렸으나 어디서도 응답이 오지 않았다. 청연에서만 ‘최대한 마중 갈 테니까 너희도 좀 잘 도망쳐 와라’ 따위의 대책 없는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단우는 ‘우리가 도망쳐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의 말에는 곧 모든 방어선을 뒤로 물려야 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D시가 터졌다. 모든 전선에 부하가 걸렸다. 지원할 여력이 되는 세력은 일대에 없다.
그들만의 힘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막고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지원팀과 <차우원 팀>, 두 팀 중 누군가가 전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그건 <차우원 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탱커가 부상으로 참전하지 못하는 데다 원거리 딜러까지 빠진대도, 더 우수한 쪽은 그쪽이었으니까.
<차우원 팀>을 구조하러 왔던 힐러가, 이곳에 도착해서는 그들만으로 전선 방어가 가능하리라 믿을 정도였다. 그만큼 훌륭한 팀이었다.
그래서 여러 경보가 날아들 때도 ‘우리가 이곳을 방어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 제시까지 했으나…….
“허억, 허억, 헉…….”
“저, 저게 뭐야?”
“건물이…….”
“돌아보지 마세요! 앞사람의 등만 보고 걸으세요, 곧 도착합니다!”
힐러가 소리쳤다.
민간인들이 패닉에 빠지면 그들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으니까. 그리고 이들이 각기 살길을 찾겠다고 개별 행동에 나서면 몰살은 순식간이다.
길드에서 충분히 교육받은 헌터들도 몬스터를 마주하면 종종 혼란 상태에 빠지는데, 민간인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외침과 반대로 그의 고개는 뒤로 돌아갔다. 자신은 사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도시가 해체되는 광경이었다.
‘어?’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날은 흐렸고 눈발이 휘날려서 시야도 좋지 못했다. 악취에 코는 마비되고 두통마저 일었다. 먼 곳이 이상하게 휑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뿐이었다. 무언가 어색하게 비어 있다는 위화감.
‘비어 있다고?’
힐러는 곧 무엇이 이상한지 깨달았다. 이곳은 청연의 보호 구역이었다. 다시 말해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시였는데…….
건물이 없다.
멀리서부터 건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파도가 모래성을 허무는 것처럼 손쉽게.
이 도시를 재로 돌리며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쿵…….
나직하게 땅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힐러는 오싹했다. 동료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진동을 아직은 느끼지 못할 민간인들은, 그러나 뒤에서 일어나는 사태만으로 침착을 잃었다.
다가오는 속도가 빠르다. 멀었을 때는 알기 힘들던 일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와닿았다.
“꺄아아악?!”
“으흑, 흑, 흐익……!”
“돌아보지 마! 앞만 보고 가세요! 뒤는 보호받고 있습니다!”
말하면서도 힐러는 입이 말랐다.
‘B급 이상.’
힐러는 지원팀으로 오래 활동했다. 여러 던전 브레이크 현장에 나가 지원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 덕에 육안으로 몬스터를 확인할 수 없는데도, 다가오는 몬스터 웨이브 개별 개체의 랭크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건 군단이다.
‘말렸어야지.’
그의 머릿속에 <차우원 팀>의 젊고 뛰어난 헌터들이 떠올랐다.
판단이 잘못된 건 아닌가? 그들이 잠시라도 시간을 끌고 <차우원 팀>이 살아남도록 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시간을 끌 수 있나?
게이트 너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헌터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해 수행 중인 작전을 어그러뜨리는 것이었다. 훈련된 헌터인 그는 표정과 말로 자신의 공포감을 드러내지 않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행렬이 규율을 잃고 흐트러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좀…! 기어가지 말라고!”
“아악! 밀지 마!”
“누가 넘어졌어요! 꺄악!”
“성검의 주인은 어디 있어?”
“우릴 버렸어!”
“아닙니다!”
힐러가 외쳤으나 그들 귀에 들리지 않았다.
<종말 방어전>은 헌터들만 치르는 전쟁이 아니다. 방어전의 가장 비극적인 사태 중 하나가 눈앞에서 일어나려는 차였다.
사람들이 서로를 버리고 해치는 일.
“안 돼!”
앞장서 <감지>를 쓰던 보조계 헌터가 소리쳤다.
우의와 겉옷에 동화 물약을 바르고,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그들은 몬스터의 마력 반응을 피해 경로를 잡고 있었다. 안전 경로를 이탈해 한 명이라도 들키는 순간 전원의 존재가 드러난다.
딜러가 이탈자를 막아섰다. 그러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흩어졌다.
‘작전 실패’, ‘전멸’이라는 단어가 지원팀의 머릿속에 떠오를 때…….
화악!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눈발이 멎은 듯했다. 사방이 고요해져서 힐러는 이곳이 몬스터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으로 시끄러웠음을 알았다. 잠시간 악취마저 사라졌다.
모든 것을 정화하듯 터져 나온 빛이, 세상을 물들이고 사그라들었다.
빛이 잦아들자 사람들은 따듯한 곳에서 얼어붙은 땅으로 강제로 끄집어내진 것처럼 추워졌다.
그러나 공포감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빈자리를 절대적인 안도감이 채웠다.
누구도 본 적 없으나, 저것이 무엇인지 누구나 알았다.
‘성검!’
그 광경을 대피를 도우러 나온 청연의 지원2팀도 확인했다.
차치원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습니까? ……몬스터는요? 또 부상자는…….”
“몬스터는 다 죽은 것 같고, 부상자는…….”
힐러는 뒤를 돌아봤다.
훅!
희미한 빛의 무리가 민들레 꽃씨 날듯 퍼지더니 사람들의 머리에 내려앉았다. 기침 소리가 멎어 들고 사람들의 걸음에 힘이 돌아왔다.
최상위 랭크 힐러의 광역힐이다. 행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범위로 삼는.
지원팀 힐러도 무리한다면 사용이야 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저 스킬이 지금 처음 시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차치원이 놀라서 물었다.
“이림에서 지원이 나왔습니까?! A급 헌터 아닙니까? 저런 귀한 자원을 지금 지원으로 보낼 리가…….”
지원팀 힐러는 ‘우리 팀 새 힐러다, 초보니까 잘 써 달라고 한다’ 소리를 하던 강울림을 떠올렸다.
‘저 사람이 초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우리가 사양할까 봐 팀의 귀한 힐러를 낮춰서 말한 거구나.’
단둘이 출정하는 팀에서 힐러까지 빼앗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차우원 팀>은 힐러를 민간인 보호를 위해 남겨 두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들의 능력을 믿고 오만해서가 아니다. 능력만큼이나 훌륭하고 희생적인 성품 때문이다.
‘영웅!’
힐러는 떨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했다.
“<차우원 팀>의 힐러입니다. 저희가 보호해야 합니다.”
‘왜 팀의 힐러가 여기에 따로 있지?’
차치원은 의문이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형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단우 헌터는?”
“곧 오실 겁니다!”
지원팀은 가슴이 벅찼다. 그들뿐만 아니라 행렬의 모두가 이단우와 차우원에게 환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다.
‘……?’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부상당해서 거동이 힘든 상황이라면 저희가 지원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헌터들이 합당한 의견을 제시했다.
지원2팀의 보조계 헌터가 <원경>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살폈다. 그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어… 두 분……. 어디 가시는데요?”
“…어디 가?!”
* * *
이단우는 정부 요원의 안내 멘트를 듣고 있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걸 권해 드립니다. 상대가 강력한 정신계 헌터이기 때문에 이곳엔 감시자도 두지 않았습니다.”
“네.”
단우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근방에 사람 붙여 놓지 말라고 한 건 단우였으니까.
기희윤이 갇힌 센터 특수동은 외따로 설립된 건물이라 주변이 휑하고 유독 조용했다. 자동으로 열리는 문 안으로 단우와 차우원이 들어갔다.
“늦었잖아! 하마터면 그냥 갈 뻔했다니까.”
창살 너머로 기희윤이 방긋 웃으며 눈을 떴다.